'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고심하면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어서 그냥 곧장 떠오르는 세 명의 저자를 골랐다. 사회학자와 러시아문학자, 그리고 정치철학자다.

 

 

먼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 <나는 시민인가>(문학동네, 2015).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에 이어지는 3부작 마지막 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기대되는 책이긴 하다)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제목이 던지는 물음은 '나는 국민인가, 시민인가'를 줄여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깊은 절망과 자조의 한숨으로 고스란히 한 해를 채운 2014년 말, 사회학자 송호근은 한 칼럼에서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산다”는 말로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근대 시민사회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들어선 국민국가. 모든 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미숙한 시민은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반세기 넘게 동원되었다. 송호근 교수는 2015년의 들머리에 선보이는 이 책 <나는 시민인가>를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시민’ ‘시민-됨’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함을 강조한다. 불신, 격돌, 위험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의 한국에서,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탄탄한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시민 개개인에서부터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계층을 호명하는 저자는, 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시민인가?’

사회학에서 '시민'이란 말은 지난 80년대에 '민중'에 의해 대체된 '올드한' 용어인데, 송호근 교수는 일련의 저작을 통해 이 개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국민이냐, 시민이냐'라는 물음이 유효하다면 '시민-됨'의 문제도 더 진지하게 숙고해봐야겠다.

 

 

러시아문학자 오종우 교수도 새로운 책을 펴냈다. <예술수업>(어크로스, 2015). 러시아문학, 특히 안톤 체호프 전공자로 그간에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를 펴냈고, 대학 강의실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사람의무늬, 2012)로 묶은 바 있다(<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의 개정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예술수업>에서는 저자의 관심과 시야가 예술 전반으로 확장됐다.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이 부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피카소와 샤갈의 그림,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타르콥스키의 영화,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졸라의 탱고가 흘러넘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에서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이 폭발했던 순간으로 떠나는 황홀한 모험이다. 저자는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남은 작품을 통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유했던 천재들의 빛나는 통찰과 남다른 감각을 읽어내고,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가져온 인류의 지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영화까지 포괄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예술수업'의 특징이다. 저자의 전방위적 관심과 통합적 지성이 어떤 결과로 응집되었는지 '예술수업' 강의실에 잠시 앉아보아도 좋겠다.

 

 

저작보다 연구서들이 먼저 나와서 어리둥절하게 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쇼트(오크숏)의 책이 처음 번역돼 나왔다.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모티브북, 2015).

20세기를 대표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인 오크쇼트가 사망한 후에, 그가 거주하던 도싯 해안의 통나무집에서 발견된 원고 뭉치를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다. 집필 날자가 적혀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집필 시기는 1947년에서 1952년 사이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크쇼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지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정치를 실천하는 데 중용의 감각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째서 높은 명망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게 국내에 소개된 첫 책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한다고 하니 읽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물론 한국의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테지만).

 

 

더불어 박동천 교수의 번역이란 점도 책을 신뢰하게 만든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 2010)과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모티브북, 2012) 등의 저자이면서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14)을 포함해 정치사상 분야의 여러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왔기 때문이다(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벌린도 분류하자면 보수에 속하겠군). 분량이 묵직하지 않은 것도 나름 장점. 흥미가 생긴다면, 김비환 교수의 <오크숏의 철학과 정치사상>(한길사, 2014)까지 손에 들 수 있겠다...

 

15.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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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갑자기 생각이 나 미셸 푸코의 영어판 선집(전3권)을 주문하고 푸코의 책을 더 찾아보다가 <임상의학의 탄생>이 절판된 사실을 알았다. 악명 높은 번역서였기에 절판된 것 자체가 아쉬울 건 전혀 없지만(그럼에도 고가의 중고본들이 돌아다닌다. 오역서의 희귀한 교본이라도 되는 걸까?) 개정된 번역본이 아직 나오지 않은 건 미스터리하면서 유감스럽다.

 

근대 의학 담론을 탐구, 19세기 의학이 임상의학으로 변화하기까지의 역사를 추적한 미셸 푸코의 주저 중 하나이다. 푸코 특유의 방법론인 고고학과 계보학을 적용해 근대 의학이 태동한 이후로 권력이 인간의 신체에 어떻게 작용했는지의 과정을 재구성하고, 임상의학과 국가와 제도, 사회와 담론의 관계를 분석한다.

 

<임상의학의 탄생>은 1963년작이며, <정신병과 심리학>(1954)까지 포함하면 푸코의 세번째 책이다. 두번째 책이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광기의 역사>(1961)이고 그 뒤로는 <말과 사물>(1966)이 이어진다(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레이몽 루셀>이 <임상의학의 탄생>과 같은 해에 나왔다). <정신병과 심리학>도 현재 절판된 상태. <광기의 역사>나 <말과 사물>처럼 개정판 번역들이 나오면 좋겠다. 푸코에게 영향을 준 조르주 캉길렘의 <정상과 병리>(한길사, 1996), 혹은 <정상적인 것과 병리적인 것>(인간사랑, 1996)도 마찬가지. 그래야 '초기 푸코'에 해당하는 1960년대 저작들이라도 구색이 맞춰진다.

 

 

호기심이 발동해 의학의 역사를 다룬 책을 검색해봤더니 생각보다는 많이 나와 있다. 이미 알고 있는 <정신의학의 역사>(바다출판사, 2009)를 제외하더라도 재컬린 더피의 <의학의 역사>(사이언스북스, 2006), 로이 포터의 <의학: 놀라운 치유의 역사>(네모북스, 2010), 그리고 제임스 르 파누의 <현대의학의 역사>(아침이슬, 2005) 등이 눈에 띈다.

 

 

앤 르니의 <의학 오디세이>(돋을새김, 2014)나 이재담의 <서양의학의 역사>(살림, 2007)은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 그러고 보면 이 분야에서도 놀랄 만한 책, 압도적인 책이 더 나와도 좋겠다 싶다. 의학사 백과사전 같은... 아무려나 요점은 <임상의학의 탄생>이 다시 나오길 바란다는 것이다... 

 

15. 01. 24.

 

 

P.S. 참고로 어제 주문한 푸코 선집이다(펭귄에서도 똑같이 나와 있는데, 알라딘에는 3권이 빠졌다). 하드카바가 나왔을 때 가격 때문에 구입하지 못했는데, 어느새 소프트카바가 나온 지도 십수 년이나 됐다. 그간에 다시 찾아보지 않은 게 놀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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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문화재단의 웹진 '수성문화'에 실은 글을 옮겨놓는다. 지난 연말에 쓴 것인데, 톨스토이 특집에서 내가 맡은 건 '톨스토이와 러시아문학'이란 꼭지였다. 한번 더 느낀 것이지만, 대표작 <전쟁과 평화>가 세계문학전집판으로 올해는 출간됐으면 싶다...

 

 

 

수성문화(14년 겨울호) '거대한 인간' 톨스토이를 말하다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는 두말할 것도 없이 러시아가 자랑하는 대문호이다. <전쟁과 평화>와 <안나 카레니나>와 같은 걸작 소설의 작가이면서 사회 사상가이자 ‘인생의 스승’으로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이미 생전에 ‘성자’로 추앙받기도 했으니 단순히 작가로만 기억하기엔 부족한 느낌을 주는 이가 톨스토이다. ‘거대한 인간’ 톨스토이는 어떤 생애를 살았고 우리에겐 어떤 교훈을 남기고 있는가.

 

1828년 야스나야 폴라냐의 톨스토이 백작 가문의 4남으로 태어난 톨스토이는 어려서 일찍 부모를 여의는 불운을 맞는다. 유복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긴 했지만 어머니가 그의 나이 세 살 때, 그리고 아버지는 아홉 살 때 세상을 떠났다. 성장기 대부분을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자라게 되는데, 특히 어머니의 부재로 인한 모성에 대한 갈망이 그의 젊은 시절 방탕과 여성 편력의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44년에 카잔대학교 동양어학부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군에 입대해 크림전쟁(1853-1856)에도 참전한다. 전쟁의 실상에 대한 경험은 여러 단편들의 소재가 됨은 물론 대작 <전쟁과 평화>의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데도 활용된다.

 


작가로서의 데뷔는 1852년 잡지 <동시대인>에 <유년시절>을 발표하면서 이루어진다. 주변의 일상과 어머니의 죽음을 어린아이 주인공의 시점으로 그리고 있는 데뷔작이 호평을 받자 톨스토이는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연이어 발표함으로써 ‘자전 삼부작’을 완성한다. 작가로서의 탄생이 자기 자신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었다는 건 톨스토이에게서 문학이 갖는 의미가 무엇이었던가에 대해 시사해준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관심과 물음에 충실하고자 했던 그에게서 문학은 스스로를 들여다보는 거울이자 자기 탐구의 수단이었다.


외모에 대한 콤플렉스 때문에 결혼을 늦추던 톨스토이는 1862년 서른네 살 때 당시 열여덟 살의 처녀 소피아 베르스와 결혼한다. 만년에는 불화로 유명해지는 부부이지만, 결혼과 함께 톨스토이는 생활의 안정을 찾고서 창작에 전념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오래 준비해오던 대작 <전쟁과 평화>에 착수할 수 있었던 것은 결혼이 그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할 것이다. 세계문학사에서도 손꼽을 만한 스케일의 이 작품은 당초 톨스토이가 1825년 12월에 일어났던 데카브리스트 봉기를 다루려고 했던 계획의 부산물이다.

 

전제주의의 개혁을 요구하는 청년 장교들의 봉기가 새로 즉위하는 황제 니콜라이 1세에 의해 강제로 진압된 사건이 데카브리스트 봉기였는데, 톨스토이 가문에서도 가담자가 있어서 톨스토이는 이 정치적 사건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이 봉기는 1812년 나폴레옹 전쟁의 여파로 발생한 것이기에, 그는 봉기의 의미를 제대로 조명하기 위해서는 1812년 전쟁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다루어야 한다고 판단한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러시아에서는 ‘조국전쟁’이라고 부르는 나폴레옹 전쟁 전후 시기 러시아 사회를 총체적으로 다룬 <전쟁과 평화>이다.

 


유럽전역으로 정복전쟁에 나선 나폴레옹은 러시아의 전력을 얕잡아보고 1812년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러시아로 진격해 들어간다. 하지만 여름철 전염병과 이르게 닥친 추위 때문에 힘겨운 전쟁을 치른다. 더구나 전쟁 초반 전투에서 패배한 러시아군은 후퇴로 일관했고, 프랑스군은 모스크바까지 점령하지만 아무런 성과를 얻어내지 못한다. 러시아의 항복을 얻어내지 못한 상황에서 전황이 불리해지자 나폴레옹의 군대는 결국 후퇴할 수밖에 없었는데, 프랑스로 되돌아가는 퇴로 곳곳에서 러시아군의 기습을 받아 거의 궤멸하게 된다. <전쟁과 평화>는 바로 이러한 과정을 배경으로 당시 러시아 상류사회의 모습과 나타샤와 안드레이, 그리고 피에르 등 주요인물의 행적을 그린다. 특히 핵심이 되는 인물은 매력적인 여주인공 나타샤 로스토바인데, 이 작품에서는 처음에 소녀로 등장하지만 결말에 이르게 되면 성숙한 여인이자 아내, 그리고 어머니로 성장한다. 그래서 <전쟁과 평화>는 나폴레옹 전쟁 시기의 러시아를 다룬 역사소설이면서 여주인공 나탸사의 성장과정을 다룬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전쟁과 평화>가 러시아문학에서 갖는 의의는 비단 작품의 스케일이나 문학적 성취에서만 찾을 수 있는 건 아니다. 작품 초반에 나폴레옹의 침공을 두려워하면서 러시아 사교계에서는 프랑스어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온다. 러시아 궁정과 상류사회의 문화가 모두 프랑스식 문화였고 그들이 사용한 언어가 프랑스어였기 때문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나폴레옹 전쟁은 러시아란 무엇인가란 질문을 낳게 한 전쟁이었다. 이를 계기로 러시아에서는 러시아의 독자성과 고유성은 무엇인가를 질문을 품게 된다. 국가적 정체성에 대한 물음과 함께 국민적 각성이 이루어진 것이다. <전쟁과 평화>가 러시아의 ‘국민문학’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러한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가 1860년대 톨스토이의 대표작이라면 또다른 장편 <안나 카레니나>는 1870년대 톨스토이의 창작을 대표하는 작품이다. 20세기 독일작가 토마스 만이 ‘가장 위대한 사회소설’이라고 격찬한 <안나 카레니나>는 얼핏 한 러시아 상류사회 귀부인의 불륜 사건을 다룬 소설로 비칠 수 있다. 하지만 그러한 얼개 속에서 톨스토이는 당대 러시아 사회의 온갖 문제를 다룬 거대한 사회적 벽화를 그려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작가 자신의 정신적 자서전도 겸하고 있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가 갖는 독특한 면모이다.


<안나 카레니나>는 “모든 행복한 가정은 서로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각기 나름대로의 불행을 안고 있다”는 유명한 첫 문장으로 시작한다. 통상적인 독법에 따르면, 이 소설은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을 대비시키고 거기에서 도덕적인 교훈을 이끌어내는 결말로 이어질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안나와 브론스키의 불행한 결말과 대조되는 레빈과 키치의 결혼생활은 이러한 결말에 부합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삼십대 초반 톨스토이의 결혼 생활을 모델로 하고 있는 레빈과 키치의 결혼생활도 결코 이상적인 조화와 상호이해에는 이르지 못하는 걸 암시하면서 작품은 끝나기 때문이다.

 

정작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쓴 이후 정신적 위기에 봉착하여 문학의 의의 자체를 부정하는 쪽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모든 결혼생활에 대한 부정과 나란히 이루어진다. 행복한 가정과 불행한 가정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가정(결혼)은 기만에 불과하다는 것이 <안나 카레니나> 직후에 쓴 <참회록>에서 톨스토이가 도달하는 결론이다.

 


이미 <전쟁과 평화>를 발표한 직후에 죽음에 대한 절대적인 공포에 사로잡혔던 톨스토이는 <안나 카레니나>를 완성하면서 다시금 그러한 공포와 대면한다. 죽음은 톨스토이에게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는데, <참회록>에 따르면 그에겐 인생의 진리가 바로 죽음이었다. <참회록>에서 그가 예로 들고 있는 동양의 우화는 시사적이다. 한 나그네가 맹수에게 쫓기다가 우물에 빠지는데, 빠지는 순간 관목 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우물 밑을 내려다보니까 용이 입을 쫙 벌리고 있다. 말 그대로 절체절명의 순간이고 살아나갈 방도가 없다. 죽음이 필연인 상황, 이것이 톨스토이가 본 인생의 진리다. 그런데 나그네는 그런 순간에도 관목 가지에 달린 벌통에서 흘러내리는 꿀을 핥으며 도취돼 잠시 자신의 처지를 잊는다. 바로 이것이 톨스토이가 생각한 삶의 모습이었다.


이 우화에서 꿀이란 무엇인가. 죽음이라는 삶의 진리를 직시하지 못하게 가로막는 거짓이고 기만이다. 그러한 기만에 해당하는 가장 대표적인 두 가지가 가정과 예술이라고 톨스토이는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거짓을 혐오했던 톨스토이가 이후에 가정과 예술에 대한 부정으로 나아가게 되는 것은 필연이다. 그는 더 이상 예술작품으로서의 소설은 쓰지 않고자 하며 여러 차례 가출을 시도함으로써 자신의 생각을 실천에 옮기고자 한다. 몇몇 중요한 작품들을 더 쓰긴 하지만 예술에 대한 부정은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며, 가정에 대한 부정은 1910년 그의 가출과 객지에서의 죽음을 통해서 완결된다. 여든 두 살의 노구를 이끌고 집을 나선 톨스토이가 생을 마감한 곳은 한 허름한 시골 역사(驛舍)였다.

 


작가로서 톨스토이의 면모를 주로 살펴보았지만 그는 급진적인 사상가이자 설교가로서 모든 제도적 권위와 폭력, 그리고 전쟁에 반대한 무정부주의적 평화주의자였다. 후기에 쓴 장편소설 <부활>에서 묘사된 교회 비판이 문제가 된 1901년 러시아정교로부터 파문당한 사실은 그의 종교관이 얼마나 급진적이었던가를 말해준다. 세계문학사에 남을 걸작들을 쓴 작가였지만 말년의 톨스토이는 그가 쓴 작품의 의의마저도 부정했다. 작가이면서 작가를 넘어선 자리에 인간 톨스토이가 자리한다고 해야 할까. 러시아의 대문호라고 하지만 만년에는 러시아라는 국가 자체도 부정하고자 했던 톨스토이였기에 그에게 붙여질 수 있는 이름은 ‘거대한 인간’밖에는 따로 없는 듯싶다. 

 

15. 0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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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브레이트학회에서 엮은 <브레히트 선집>(연극과인간)의 5,6권이 마저 출간됐다. 이번에 나온 건 두 권의 시선집. 2011년부터 나온 브레히트 선집은 3권의 희곡집과 1권의 시나리오, 그리고 2권의 시집으로 구성돼 있는데, 추가적으로 더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이미 희곡집 가운데 두 권이 품절 상태. 이렇게 이빠진 선집이 돼서야 출간의 의의를 어디서 찾아야 할는지. 그럼에도 상당 분량의 시들을 모은 선집이어서 일단은 주문을 넣었다. 좀더 완결된 선집의 모양새가 갖춰지기를 기대한다...

 


6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브레히트 선집 6- 시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15년 1월
20,000원 → 20,000원(0%할인) / 마일리지 20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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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선집 5- 시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15년 1월
13,000원 → 13,000원(0%할인) / 마일리지 13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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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브레히트 선집 4- 영화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11년 2월
18,000원 → 18,000원(0%할인) / 마일리지 18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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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레히트 선집 3- 희곡
한국브레히트학회 엮음 / 연극과인간 / 2011년 2월
30,000원 → 30,000원(0%할인) / 마일리지 300원(1%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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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시사IN(384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도널드 바렛과 제임스 스틸의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어마마마, 2014)를 읽고 적었는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탐사보도팀이라는 두 사람은 40년 넘게 공동작업을 해왔고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 사는가>는 그들의 여덟번째 책이다. <미국: 무엇이 문제인가>도 베스트셀러였다.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저널리스트들이라는 생각이다.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기에...

 

 

 

시사IN(15. 01.24) 배신당한 중산층의 꿈

 

미국의 두 저널리스트가 쓴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의 원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배신’이다. 무엇이 아메리칸 드림인가.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답했다. “열심히 일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죠. 집을 가질 수 있고, 가정을 꾸릴 수 있으며, 의료 혜택을 받고, 공과금이나 여타 지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미국은 기회의 나라니까요.” 그런 건 말 그대로 꿈이라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기회의 나라’라는 건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지나친 냉소이자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다. 분명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산층의 파괴와 함께 지나가버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부흥기였다. '전쟁 특수'란 말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의 개인 소득은 극빈자를 제외하면 부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비슷한 비율로 증가했다. 일단 중산층에 진입하게 되면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복지, 그리고 내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중산층의 존재였다.


하지만 1970년대 초부터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상류층의 소득만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저자들도 인용하고 있는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상위 1%의 소득은 62% 증가했지만 하위 90%의 소득은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부의 편중이 갈수록 극심해졌고, 빈부격차는 유례없이 커졌다. 조금 더 실감나게 말하면, 1980년 CEO의 평균급여가 공장노동자의 42배였지만 오늘날에는 325배다. 오늘날 계속 추락중인 미국의 중산층은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공과금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변화가 경제법칙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나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적으로 평등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법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정책화했다. 그 결과 “미국은 소수가 자신들의 편협한 이익을 늘리기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계획을 꾸미는 금권정치 체제가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들리는 ‘규제완화’만 하더라도 원조는 미국이다. 중산층의 급여와 복지가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의 부자들은 갖가지 싱크탱크를 만들었고 언론은 그들의 규제반대론을 마치 여론인 양 포장했다. 일례로 1978년에 제정된 항공규제완화법을 보자. 애초엔 경쟁을 자극하여 요금을 낮추고 서비스 수준을 올라가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신규 항공사들이 시장에 진입하긴 했지만 규제가 사라진 시장은 정글과 다를 바 없었다. 대형 항공사들이 소형 항공사들을 집어삼켰고, 2012년에 와서 항공산업은 규제 완화 이전보다도 경쟁이 줄었다. 당연한 결과로 규제완화 초기에 일시적으로 내려갔던 요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러한 역효과는 자유무역 옹호론에도 해당한다. 명분은 미국의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이득을 보는 건 미국의 다국적 기업뿐이다. 노동력이 싼 곳으로 공장을 옮겨 간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관세도 없이 다시 미국시장에 들여와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기업이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말릴 수 없을지 몰라도 정부는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 전체 국민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잡는 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 체제를 국민 다수가 아닌 극소수를 위한 체제로 바꾸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15.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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