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고심하면 갈피를 못 잡을 수도 있어서 그냥 곧장 떠오르는 세 명의 저자를 골랐다. 사회학자와 러시아문학자, 그리고 정치철학자다.

 

 

먼저 사회학자 송호근 교수의 신작이 나왔다. <나는 시민인가>(문학동네, 2015). <인민의 탄생>과 <시민의 탄생>에 이어지는 3부작 마지막 책인가, 하면 그렇지는 않고(기대되는 책이긴 하다) 에세이 범주에 속하는 책이다. 제목이 던지는 물음은 '나는 국민인가, 시민인가'를 줄여 말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깊은 절망과 자조의 한숨으로 고스란히 한 해를 채운 2014년 말, 사회학자 송호근은 한 칼럼에서 “우리는 아직도 국민의 시대를 산다”는 말로 한국사회를 진단했다. 근대 시민사회를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채 들어선 국민국가. 모든 것이 ‘국민’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가운데, 미숙한 시민은 국가에 복무하는 ‘국민’으로 반세기 넘게 동원되었다. 송호근 교수는 2015년의 들머리에 선보이는 이 책 <나는 시민인가>를 통해, 우리가 무엇보다도 ‘시민’ ‘시민-됨’의 가치를 되돌아봐야 함을 강조한다. 불신, 격돌, 위험 사회의 모습을 보이는 오늘의 한국에서, 보다 안전하고 합리적인 사회를 만들어가기 위한 전제 조건은 바로 탄탄한 시민사회의 건설이다. 시민 개개인에서부터 정치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국사회의 모든 영역, 모든 계층을 호명하는 저자는, 하지만 그에 앞서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과연 시민인가?’

사회학에서 '시민'이란 말은 지난 80년대에 '민중'에 의해 대체된 '올드한' 용어인데, 송호근 교수는 일련의 저작을 통해 이 개념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국민이냐, 시민이냐'라는 물음이 유효하다면 '시민-됨'의 문제도 더 진지하게 숙고해봐야겠다.

 

 

러시아문학자 오종우 교수도 새로운 책을 펴냈다. <예술수업>(어크로스, 2015). 러시아문학, 특히 안톤 체호프 전공자로 그간에 체호프 번역서와 연구서를 펴냈고, 대학 강의실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러시아 거장들, 삶을 말하다>(사람의무늬, 2012)로 묶은 바 있다(<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의 개정판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지만 <예술수업>에서는 저자의 관심과 시야가 예술 전반으로 확장됐다. '천재들의 빛나는 사유와 감각을 만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이 부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와 체호프의 소설, 피카소와 샤갈의 그림, 셰익스피어의 비극과 타르콥스키의 영화, 그리고 베토벤의 교향곡과 피아졸라의 탱고가 흘러넘치는 인문학자의 강의실에서 예술가의 창조적 영감이 폭발했던 순간으로 떠나는 황홀한 모험이다. 저자는 시대를 가로질러 살아남은 작품을 통해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유했던 천재들의 빛나는 통찰과 남다른 감각을 읽어내고, 인간과 세상의 진보를 가져온 인류의 지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게 해준다.   

문학뿐 아니라 음악과 미술, 영화까지 포괄해서 다루고 있는 것이 이 '예술수업'의 특징이다. 저자의 전방위적 관심과 통합적 지성이 어떤 결과로 응집되었는지 '예술수업' 강의실에 잠시 앉아보아도 좋겠다.

 

 

저작보다 연구서들이 먼저 나와서 어리둥절하게 했던 영국의 정치철학자 마이클 오크쇼트(오크숏)의 책이 처음 번역돼 나왔다. <신념과 의심의 정치학>(모티브북, 2015).

20세기를 대표하는 보수주의 정치철학자인 오크쇼트가 사망한 후에, 그가 거주하던 도싯 해안의 통나무집에서 발견된 원고 뭉치를 편집해서 출판한 책이다. 집필 날자가 적혀있지 않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종합할 때, 집필 시기는 1947년에서 1952년 사이인 것이 거의 확실하다. 오크쇼트가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지는 정치를 이해하는 데 그리고 정치를 실천하는 데 중용의 감각이 대단히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째서 높은 명망을 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이게 국내에 소개된 첫 책이다!) '보수주의 정치철학'을 대표한다고 하니 읽어봄직하다는 생각은 든다(물론 한국의 보수(주의)를 이해하는 데에는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할 테지만).

 

 

더불어 박동천 교수의 번역이란 점도 책을 신뢰하게 만든다. <깨어 있는 시민을 위한 정치학 특강>(모티브북, 2010)과 <플라톤 정치철학의 해체>(모티브북, 2012) 등의 저자이면서 <이사야 벌린의 자유론>(아카넷, 2014)을 포함해 정치사상 분야의 여러 고전을 우리말로 번역해왔기 때문이다(자유주의 정치철학자인 벌린도 분류하자면 보수에 속하겠군). 분량이 묵직하지 않은 것도 나름 장점. 흥미가 생긴다면, 김비환 교수의 <오크숏의 철학과 정치사상>(한길사, 2014)까지 손에 들 수 있겠다...

 

15. 01.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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