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384호)에 실은 리뷰를 옮겨놓는다. 도널드 바렛과 제임스 스틸의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어마마마, 2014)를 읽고 적었는데, 미국에서 가장 존경받는 탐사보도팀이라는 두 사람은 40년 넘게 공동작업을 해왔고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 사는가>는 그들의 여덟번째 책이다. <미국: 무엇이 문제인가>도 베스트셀러였다.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저널리스트들이라는 생각이다. 결코 남의 나라 일만은 아니기에...

 

 

 

시사IN(15. 01.24) 배신당한 중산층의 꿈

 

미국의 두 저널리스트가 쓴 <국가는 잘사는데 왜 국민은 못사는가>의 원제는 ‘아메리칸 드림의 배신’이다. 무엇이 아메리칸 드림인가. 한 엔지니어는 이렇게 답했다. “열심히 일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다는 것이죠. 집을 가질 수 있고, 가정을 꾸릴 수 있으며, 의료 혜택을 받고, 공과금이나 여타 지출에 대해 걱정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미국은 기회의 나라니까요.” 그런 건 말 그대로 꿈이라는 반론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애당초 ‘기회의 나라’라는 건 없었다고. 하지만 그건 지나친 냉소이자 정확하지 못한 인식이다. 분명 좋았던 시절이 있었다. 중산층의 파괴와 함께 지나가버린.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1950년대까지 미국 경제는 부흥기였다. '전쟁 특수'란 말로 다 설명되지는 않는다. 이 시기에 미국인들의 개인 소득은 극빈자를 제외하면 부자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비슷한 비율로 증가했다. 일단 중산층에 진입하게 되면 좋은 일자리와 훌륭한 복지, 그리고 내 집을 소유할 수 있었다. 아메리칸 드림은 다른 게 아니라 바로 그런 중산층의 존재였다.


하지만 1970년대 초부터 뭔가 변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소득은 늘어나지 않고 상류층의 소득만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저자들도 인용하고 있는 토마 피케티에 따르면 2002년부터 2007년 사이에 상위 1%의 소득은 62% 증가했지만 하위 90%의 소득은 4% 증가하는 데 그쳤다. 부의 편중이 갈수록 극심해졌고, 빈부격차는 유례없이 커졌다. 조금 더 실감나게 말하면, 1980년 CEO의 평균급여가 공장노동자의 42배였지만 오늘날에는 325배다. 오늘날 계속 추락중인 미국의 중산층은 더 이상 미래를 낙관하지 못한다. 공과금을 낼 수 있을지 의문이고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저자들이 보기에 문제의 핵심은 이러한 변화가 경제법칙에 따른 불가피한 현상이 아니라 정부 정책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것이다. 미국 의회나 정부의 정책 결정자들은 경제적으로 평등한 경쟁의 장을 제공하는 법을 마련하는 데 실패했고 오히려 특정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정책화했다. 그 결과 “미국은 소수가 자신들의 편협한 이익을 늘리기 위해 다수를 희생시키는 계획을 꾸미는 금권정치 체제가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도 자주 들리는 ‘규제완화’만 하더라도 원조는 미국이다. 중산층의 급여와 복지가 처음으로 줄어들기 시작한 1970년대 이래로 미국의 부자들은 갖가지 싱크탱크를 만들었고 언론은 그들의 규제반대론을 마치 여론인 양 포장했다. 일례로 1978년에 제정된 항공규제완화법을 보자. 애초엔 경쟁을 자극하여 요금을 낮추고 서비스 수준을 올라가게 할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 신규 항공사들이 시장에 진입하긴 했지만 규제가 사라진 시장은 정글과 다를 바 없었다. 대형 항공사들이 소형 항공사들을 집어삼켰고, 2012년에 와서 항공산업은 규제 완화 이전보다도 경쟁이 줄었다. 당연한 결과로 규제완화 초기에 일시적으로 내려갔던 요금은 두 배 가까이 올랐다.

 

이러한 역효과는 자유무역 옹호론에도 해당한다. 명분은 미국의 소비자에게 혜택이 돌아가게 한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이득을 보는 건 미국의 다국적 기업뿐이다. 노동력이 싼 곳으로 공장을 옮겨 간 다국적 기업들이 자신들의 상품을 관세도 없이 다시 미국시장에 들여와서 판매할 수 있도록 해줬기 때문이다.


기업이 맹목적인 이윤추구는 말릴 수 없을지 몰라도 정부는 기업의 이익과 국가의 이익, 전체 국민의 이익 사이에 균형을 잡는 정책을 추진해야 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고 지난 반세기 동안 경제 체제를 국민 다수가 아닌 극소수를 위한 체제로 바꾸었다. 바로 지금 우리에게서도 벌어지는 일이다.

 

15. 0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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