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의 후유증인지 숭례문 화재의 여파인지 머리는 무겁고 가슴은 답답하다. 주기적인 우울증인지도 모르겠다. 원래 '시인을 위한 물리학'이란 제목의 페이퍼를 쓸 생각이었으나(이런 일과 욕심에서 언제쯤 해방될 수 있을까?) 시간도 없고 기력도 부족해서 <롤리타>에 관한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강의준비를 겸하여 몇 자 적어두는 것이기도 한데, 국역본 첫문단의 오류에 관한 것이다.

 

 

 

 

알다시피 이 작품은 이렇게 시작한다. 제레미 아이언스 주연의 <롤리타>(1997) 서두(http://www.youtube.com/watch?v=8D_Bo0UFxq4)를 먼저 참조하시길. 주인공 험버트 헙버트(제레미 아이언스)의 나레이션으로 시작되는데, 특이하게도 이 영화에서는 소설의 처음 문단과 두번째 문단 순서가 바뀌어서 나온다. 여기서 읽을 건 유명한 첫문단이다. 같은 대목을 관련서들에서는 어떻게 옮기고 있는지 비교해보겠다.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롤리타>, 민음사, 15쪽)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입천장을 세 번 굴러 세 번째는 이를 톡 치는 혀끝. 롤. 리. 타."(<롤리타>, 이룸, 47쪽)

"롤리타, 내 인생의 빛, 내 사타구니의 불길, 나의 죄이자 나의 영혼이여, 롤-리-타. 나의 혀끝은 입 천장에서 세 번을 움직여 그 이름을 두드린다.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혀는 아래로 내려와 마지막 세번째는 이를 건드린다. 롤. 리. 타."(<아주 특별한 책들의 이력서>, 31쪽)

이 한 문단에서만 '롤리타(Lolita)'란 이름이 세 번 반복되는데, 말 그대로 '롤리타'란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건 말 그대로 '유희적인' 시작이다.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이라는 거창한 '호명'과 롤리타란 이름이 입안에서 어떻게 발음되는가에 대한 묘사/음미가 병치되고 있는 것이다. 잔뜩 무거운 분위기로 처연하게 시작한 에드리안 라인의 <롤리타>가 막바로 이러한 나레이션으로 시작할 수 없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와 달리 나보코프는 이렇게 대놓고 시작한다.

"Lolita, light of my life, fire of my loins. My sin, my soul. Lo-lee-ta: the tip of the tongue taking a trip of three steps down the palate to tap, at three, on the teeth. Lo. Lee. Ta."

이 서두가 의미심장한 것은 작품의 맨마지막 문장과도 호응하기 때문이다. <롤리타>는 어떻게 끝나는가? "그리고 이것이 너와 내가 나눌 수 있는 단 하나의 불멸성이란다, 나의 롤리타."(422쪽) 원문은 "And this is the only immortality you and I may share, My Lolita." 이 서두와 결어 사이의 여정(trip)이 바로 <롤리타>의 여정이며 그것은 또한 '불멸성'에 이르는 여정이다. 그리고, 그 여정이 혀끝(tip)의 이동으로 대변될 수 있는 '언어적 여정'이라는 데 이 소설의 비밀이 놓여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그 비밀에 대해서 자세히 늘어놓을 자리는 아니고, 인용한 국역본의 번역에서 문제가 되는 것만 살피도록 한다. 먼저 사소한 불만을 적자면 "롤리타, 내 삶의 빛이요, 내 생명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이라는 첫마디가 나는 나보코프의 원문처럼 동사가 빠진 명사구 형태로만 제시되는 게 더 적절하다고 본다. '내 삶의 빛이요'라는 식으로 늘어지는 게 개인적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 세번째 제시한 번역에서처럼 "롤리타, 내 인생의 빛, 내 사타구니의 불길" 하는 식이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이 경우엔 왜 잘 나가다가 "나의 죄이자 나의 영혼이여"라고 늘어진 것인지?). 즉, 내가 원하는 건 "롤리타, 내 인생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하는 식으로 옮기는 것이다.

 

 

 

 

'허리'라고 옮긴 'loins'는 원래 '허리'란 뜻이다. 내가 갖고 있는 주석본 <롤리타>(신아사, 1997)에서 윤효윤 교수에 따르면 "문학에서 말하는 loin은 '허리'를 의미하기보다 생명 또는 생식기를 의미"한다. '생명'이나 '사타구니'란 의역은 그래서 가능하다. 나는 다만 그런 걸 감안하면서도 ' 내 허리의 불꽃' 정도로 옮기는 게 나보코프의 짓궂은 취향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싶다(러시아어본에서도 그냥 '허리'를 뜻하는 단어가 쓰였다).  

그리고 두번째 마디. "롤-리-타.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며 세 단계의 여행을 하는 혀끝. 롤. 리. 타."라고 번역됐는데, '롤-리-타'를 발음해 보면 바로 알 수 있지만 '세 번 입천장에서 이빨을 톡톡 치면서"는 발음할 수 없다. 정상적인 경우 'Lo-Lee'를 발음할 때는 혀끝이 이빨이 닿지 않기 때문이다. 그 발음의 과정을 풀어서 번역한 것이 "나의 혀끝은 입 천장에서 세 번을 움직여 그 이름을 두드린다. 한번씩 움직일 때마다 혀는 아래로 내려와 마지막 세번째는 이를 건드린다."이다. 이게 혀끝의 여정이다. 'Lo'를 발음할 때는 입천장을 치고, 'Lee'를 발음할 때는 약간 앞쪽으로 내려온다. 그리고 'Ta'를 발음할 때 비로소 혀끝은 이빨을 톡 치게 된다.

나대로 다시 옮기면, "롤리타, 내 인생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나의 죄, 나의 영혼. 롤-리-타. 혀끝이 입천장을  세 단계로 톡톡 치며 내려오다가 세번째에는 이빨에 가닿는 여정. 롤. 리. 타." 그런 여정의 끝에 네가 있다. 롤리타, 내 인생의 빛, 내 허리의 불꽃, 내 허벅지의 경련, 내 발가락의 가려움, 아무도 가려주지 못할 나의 슬픔, 나의 공허, 롤. 리. 타...

08. 02.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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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보코프와 예술이라는 피난처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3-04 00:17 
    저녁강의가 있어서 늦게 귀가해보니 식탁에 이번달 <출판저널>(3울호)이 놓여 있다. 원래는 지난달에 실려야 할 '로쟈가 읽은 책 속의 한 장면' 원고가 한달 늦춰졌고, 이번이 마지막 글이 됐다. 나대로의 '이어 읽기'로 나보코프의 <롤리타>를 다루고 있으며, 4월호 원고까지 썼더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 이어질 참이었다. 그래도 원고 부담이 하나 줄어서 다행이
 
 
2008-02-12 03: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2-12 03: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2 10:02   좋아요 0 | URL
저도 파일은 없고 프린트된 것만 갖고 있었습니다. '활력소'를 이런 곳에서 찾으시면 안되는데요.^^;

parksang 2008-02-12 14:19   좋아요 0 | URL
색깔 구분 안된 뒷부분 번역문 몹시 맘에 드네요.

로쟈 2008-02-12 17:20   좋아요 0 | URL
^^;

2008-02-12 16: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2 17:20   좋아요 0 | URL
저도 후보들을 더 생각해봤지만 대체할 만한 게 떠오르지 않네요.^^;

섬나무 2008-04-14 10:06   좋아요 0 | URL
문장의 미세한 결을 드러내는 솜씨로 보면 로쟈님은 인문학 번역보단 문학류 번역에 적합하신것 같습니다.^^ 롤리타를 읽으면서 저 롤리타 발음에 대한 묘사를 따라하다가 어떻게 이빨을 세 번이나 치나? 하면서 다른 뜻의 표현일거라 생각했어요. 세번째에는 이빨에 가닿는 여정.롤.리.타. 확연해지고 한결 좋네요. 그런데 저렇게 세 군데의 책을 모두 읽어보시나요? 역시 보통의 열정은 아닙니다. 검은 글씨 두 줄은 '롤리타'의 전부네요.

로쟈 2008-04-14 23:58   좋아요 0 | URL
개인적으론 문학작품 번역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문체'도 옮겨야 하기 때문에요.^^;

섬나무 2008-04-15 18:43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문자 번역이 아니라 문체를 번역하고 싶은 로쟈님의 부담이야 이해되는데요 로쟈님의 깊은 감수성이면 충분히 가능해보입니다. 어쩌면 숨은 능력을 발휘하지 않고 있는 건지도 모르지요.^^

로쟈 2008-04-15 21:43   좋아요 0 | URL
사실 제가 맡은 번역들도 문학쪽이 더 많습니다.^^;

섬나무 2008-04-16 11:20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러시아문학 쪽인가요? 번역작품들을 알려주시는 게 불법은 아닐테니 소개해주시면 좋겠는데요......

로쟈 2008-04-17 23:41   좋아요 0 | URL
물론 러시아문학쪽이구요, 내년쯤부턴 나올 예정입니다.^^;
 

2월 10일은 러시아 시인 알렉산드르 푸슈킨(1799-1837)의 기일이(었)다. 구력으로는 1월 29일이지만 신력으로 환산하면 2월 10일이고 공식적인 기념행사는 이날 행해진다. 푸슈킨에 대해서는 예전에 몇 차례 다룬 바 있고 새로 무얼 쓸 형편은 아니어서 관련자료나 검색해보다가 옥사나 체르카소바의 애니메이션 <당신의 푸슈킨>(1999)을 발견했다(http://www.youtube.com/watch?v=WZB6oQVZMrM). 탄생 200주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듯한 9분짜리 애니메이션이다. 간단한 설명에 따르면 모든 사람이 시인과 관련한 자신에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시인의 전기적 에피소드들이 거기에 결합되어 그려진다고. 더불어 나탈리야 본다르추크(<전쟁과 평화>를 찍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의 딸이다)의 영화 <푸슈킨. 마지막 결투>(2006)도 눈에 띈다(예고편은 http://www.youtube.com/watch?v=0VysCTzuBJA). 영화의 스틸사진 몇 장을 옮겨놓는다.

Кадр из фильма

Кадр из фильм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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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사진은 단테스와의 결투에서 복부에 총상을 입고 쓰러지는 푸슈킨의 모습이다. 그리고 아래는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와 함께 한 푸슈킨. 두 사람은 1831년 2월 18일에 결혼했으며 둘 사이엔 2남 2녀가 있었다.

바실리 곤차로프 감독의 <푸슈킨의 삶과 죽음>(1910)은 이번에 발견한 '희귀자료'다(http://www.youtube.com/watch?v=8gbVw1yk3gA). 시인의 전기를 주요 에피소드를 따라가면서 요약하고 있다...

08. 02. 11. 

 

 

 

 

국내에는 두 종의 작품 선집이 출간돼 있지만 소개된 푸슈킨의 전기로는 구드룬 치글러의 <푸슈킨>(한길사, 1999)이 거의 유일하다. 쯔베또바의 <푸슈킨>(건국대출판부, 1997)은 그의 삶과 문학세계에 대한 간결한 소개이다. 알라딘에서 구할 수 있는 영어본 전기로는 비뇬(Binyon)과 드루주니코프(Druzhnikov)의 것이 있다. 러시아문학 연구자들이나 애호가들에게 추천할 만한 필독서에는 "The Pushkin Handbook'(2006)이 있다. '푸슈킨학'의 현재를 가늠해볼 수 있는 책이다...

Анри Труайя Александр Пушкин PouchkineЛеонид Гроссман Александр Сергеевич Пушкин. Биография

참고로, 내가 갖고 있는 전기 가운데 가장 두툼한 책은 저명한 망명 저술가 앙리 트루아야(Henri Troyat)의 <푸슈킨>이다(국내에는 그의 <고리키>가 번역돼 있다). 원래 불어본 저작을 러시아어로 옮긴 것인데 무려 1056쪽 분량이다(영역본은 발췌본이다). 레오니드 그로스만(1888-1965)의 <푸슈킨>은 가장 대표적인 전기 중 하나인데 소비에트 시절 시인의 서거 100주기를 기념하여 쓰여졌다. 분량은 480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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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1 17: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2-11 19:59   좋아요 0 | URL
애니매이션이라고도 적었는데요.^^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필요 때문에 에드워드 윌슨의 <통섭>(사이언스북스, 2005) 등을 읽고 있다. 계기가 된 건 <이분법을 넘어서>(한길사, 2007)이다. <지식의 통섭>(이음, 2007)에는 학문간 경계를 뛰어넘고자 하는, '통섭을 꿈꾸는 학문'들로 진화경제학, 사회생물학, 복잡계과학, 세계체계론 등이 거론되고 있는데 거기에 프랑코 모레티의 문학사회학도 포함되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그의 책들이 더 번역되기를 바란다). 윌슨과 장회익, 모레티의 책들을 몇 권 모아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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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부쩍 자주 출간되고 있는 교양과학서는 뇌과학에 관한 것이다. 교수신문에서 푸짐하게도 네 권의 뇌과학 관련 신간들을 다루고 있는 서평기사를 옮겨온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5516). 책들을 다 읽어볼 여유는 없지만 무슨 내용들이 쓰여 있는지는 일람해두는 게 유익하겠다.  

교수신문(08. 01. 29) 의식과 영혼의 네트워크

마음을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 마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기는 더욱 쉽지 않다. 최근에 소개된 네 권의 번역서로 마음을 현대적 의미로 비교 분석해보는 작업은 마음의 행로를 살피기에 흥미로운 일이다. 인지신경과학과 철학이 만난 『스피노자의 뇌』, 숨겨졌던 의사의 일대기와 뇌과학이 만난 『영혼의 해부』, 신경회로망과 진화론이 만난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철학과 뇌과학이 만난 『마인드』가 대상이 됐다. 네 권의 책을 읽고 나서 아쉬운 점은, 동양에서는 ‘마음’을 어떻게 보았나 하는 것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우리는 마음을 말할 때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리킨다. 마음을 말하는 한자어인 心과 情에는 모두 심장을 뜻하는 心자가 들어간다. 동양의 마음에 대한 견해는 성리학자의 四端七情論에서 엿볼 수 있다. 이황은, 사단은 理에서 나오는 마음이고, 칠정론은 氣에서 나오는 마음으로, 인간의 마음은 이와 기를 함께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작용은 이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과 기의 발동으로 생기는 것 두 가지라는 理氣二元論을 주장했다. 옛말에 “사촌이 땅을 사면 배 아프다”, “애간장이 탄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라는 재미난 표현이 있다.



뇌는 여러 절차를 거쳐 필요한 몸의 부분을 움직이도록 명령한다. 뇌의 변연계에 자리 잡고 있는 편도체는 두려움과 관계가 있으며 생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만약 쥐에게 편도체가 없어지면 고양이를 봐도 놀라지 않는다. 두려움이 사라져 잡혀 먹히는 난처한 일이 일어난다. 에크만(Ekman)은 화, 공포, 혐오, 행복, 슬픔, 놀람을 사람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기본적 정서라고 보았다. 정서는 대뇌 좌우반구에서 비대칭적으로 처리된다. 만약 좌반구가 손상되면 두려움, 우울증이 나타나며 우반구가 손상되면 무관심해진다. 우반구는 정서를 만들어 내고 좌반구는 정서를 언어를 사용해 해석한 후, 정서의 개념적, 인지적 수준을 형성한다.

사람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에 관한 생각은 시대에 따라 변했다. 이집트 사람은 선악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 기록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미라를 보존하기 위해 뇌를 제거한 반면, 심장은 그 사람의 존재와 지성을 상징한다고 여겨서 잘 보존했다. 심지어 사람이 죽으면 심장을 저울에 올려놓고 깃털의 무게와 비교했다. 악한 사람은 심장이 무겁고, 선한 사람은 심장이 깃털처럼 가볍다고 여겼다. BC 5세기 알크마이온이나 아나사고라스에 이르러서야 뇌의 기능이 중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기 시작했다.

피타고라스의 제자였던 알크마이온은 최초로 사람을 해부했으며, 시신경과 귀의 ‘유스타키오관(Eustachian tube)’을 발견했고, 뇌가 지적활동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플라톤은 ‘화’를 다루는 신체의 부분은 ‘간’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옛 말 “애간장이 탄다”와 일맥상통하는 점이다. 플라톤은 지능을 ‘뇌’에서 다스리고 공포, 화, 용기는 ‘간’에서 다스리며 욕망, 고민, 탐욕, 무절제는 ‘장’에서 다스린다고 했다. 또 사람이 죽으면, ‘간’과 ‘장’에서 다스리는 부분은 사라지지만, ‘뇌’에서 다스리는 지능과 이성은 불멸하다고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뇌를 심장의 열기를 식히는 냉각장치로 여겼고, 고대와 중세까지 해부학 최고의 권위자였던 갈레노스도 뇌를 우주적 정기가 잠시 머무는 텅 빈 공간으로 보았다. 뇌가 불멸을 상징하는 영혼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은 신성 모독에 가까운 생각이었기 때문에, 서양에서는 뇌가 영혼의 서식처라고 여긴 플라톤보다는 심장을 중요시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견해가 우세했다. 히포크라테스는 저서 『On the Sacred Disease』에서 “사람은 뇌에서 기쁘고, 슬프고, 즐거운 것을 느낀다. 우리는 뇌를 통해 지혜와 지식을 얻고, 보고 들으며,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무엇이 정당한지를 알아낸다. 또한 뇌를 통해 공포도 느끼고, 화를 내기도 한다. 이렇게 뇌는 사람에게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해준다”라고 주장했다.



『스피노자의 뇌』를 쓴 다마지오는 아이오와 주립대 의과대학 신경학부 교수다. 그는 『데카르트의 오류』를 저술했으며, 체감각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 탐색했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정서에 관한 저서에서 영감을 받아 스피노자의 발자취를 좇았다. 17세기 유대인 철학자 다마지오는 사고에는 위계가 있다고 보며, 그의 이론은 루스 바클리, 가자니아와 비슷하다. 스피노자는 우리 주변, 우리 자신의 안과 밖 어디에든 신이 있으니 찾아보라고 했다. 다마지오는 인지신경과학과 스피노자 철학의 만남을 통해 우리가 어떻게 마음을 이해하고 해석해야 하는지에 대해 과학적으로 지혜롭게 설명하고 있다.



『마인드』를 저술한 마음의 철학 분야 권위자 존 R. 설(John R. Searle)은 버클리대 철학과 교수로 『마음의 재발견』, 『의식의 신비』, 『마음, 언어, 사회』, 『현실 세계에서의 철학』, 『의식과 언어』 등을 저술했다. 저자는 생물학적 자연주의(biological naturalism)입장을 취한다. 그는 인간이 자유의지를 갖고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존재라 생각한다. 인간은 의식을 가졌으며, 이 의식은 두뇌에서 일어나지만 물질적인 것으로 환원될 수 없는 독특한 질적 특성을 가진다는 점을 주장했다.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면서, 믿음이나 욕구와 같은 ‘지향적 행위’를 통해 자신의 환경을 만들어가는 존재라는 입장을 철학적으로 압축해 제시한다. 그는 많은 철학적 이론 중에서 특히 이원론과 유물론은 진실을 말하고자 하지만, 철학을 더욱 곤란하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한다.



『마인드』는 독자를 잘못된 방향으로 이끄는 철학자들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밝히고 있다. 인간의 사유 활동은 삶 그 자체이며, 언어는 궁극적으로 마음이 가지고 있는 생물학적으로 근본적인 능력의 표현이라는 것이다. 인간은 물리적 입자로 구성된 세계 속에서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지적이고 합리적으로 언어를 사용하며, 물리적 실재를 인간적 실재로 변형시키고, 그 실재를 주체적 의지로 가공해 나간다. 마음의 철학에서 탐구하는 심신문제란 궁극적으로 우리 인간이 누구이며, 외부 세계와 자신을 어떻게 연결시키는지, 그리고 그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인간적 실재를 어떻게 구축하는지 탐구하는 것이라고 한다. 그는 최근의 마음의 철학 중에서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거의 대부분의 이론이 오류라고 지적한다. 저자는 이 책의 마지막 장에서 짧지만 명쾌한 필치로 ‘철학과 과학적 세계관’을 다뤘다.

유물론자에게 의식은 두뇌 과정일 뿐으로 의식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존 설은 “의식은 두뇌 과정일 뿐이지만, 질적, 주관적, 일인칭적, 구체적 형상이 없는, 촉각으로 느끼는 현상이기 때문에, 바로 그 의식이 두뇌 안에서 진행되는 과정”이라고 강조한다. 이원론자는 의식이란 삼인칭적 신경생물학적 과정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일상적인 물리적 세계의 부분이 아니며, 그 세계를 넘어 존재하는 별개의 어떤 것이라 말한다. 존 설은 이에 대해, 의식이란 인과적으로 환원될 수 있지만 존재론적으로는 환원될 수 없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의식은 일상적인 물리적 세계의 부분이지 그 세계와 다른 별개의 어떤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존 설은 “과학적 세계관”이란 말은 잘못된 의미라고 밝히면서, 똑같은 실재라도 마음에서는 경제적 관점, 미학적 관점, 정치적 관점, 과학적 탐구의 관점에서 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학적 방법”이란 일단 발견되고 나면 과학의 소유물이 아니고 완전히 공공의 재산이기 때문에, ‘과학적 실재’ 혹은 ‘과학적 실재 같은 것’은 전혀 없고, 여러 개의 사실이 있을 뿐이라는 주장을 펼친다. “과학적 세계는 없으며, 그저 세계가 있을 뿐이며,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세계 속에서 인간의 위치가 무엇인지를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기본원칙은 원자물리학과 진화생물학”이라는 매우 독자적이고 강한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영혼의 해부』를 쓴 칼 지머는 <뉴욕 타임스 북 리뷰>로부터 “우리 시대의 가장 훌륭한 과학 평론가”라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과학 잡지 <디스커버> 수석편집장을 역임한 과학저널리스트다. 『영혼의 해부』는 국왕으로서 참수형을 당한 찰스 1세 시절 의사였던 토머스 윌리스(1621~1675)의 이야기를 다룬다. 성직자를 꿈꾸던 윌리스는 옥스퍼드 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한 후 의사가 됐다. 그는 혈액 순환의 원리를 밝혀낸 윌리엄 하비(1578~1657)로부터 의학을 배웠다. 그는 해부 실험을 통해 영혼이 심장이 아니라 뇌에서 작동함을 과학적으로 입증했고, 이를 토대로 『뇌와 신경의 해부학』을 저술했다.

윌리스는 1660년 왕정복고와 함께 옥스퍼드 대학 자연철학 교수가 되었다. 윌리스는 뇌의 혈액 흐름을 밝혀내기 위해, 뇌 질환으로 사망한 환자의 뇌를 꺼내 물감을 주입하는 실험을 했다. 그는 뇌신경이 화학물질을 통해 전기충격(정기)을 발생시키는 방식으로 기억을 형성하고, 상상을 이뤄내며, 꿈을 꾸게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일련의 실험을 통해 뇌가 인체의 중심이며 뇌에서 기억과 상상과 꿈이 형성되고, 감정과 욕망, 식욕도 뇌에서 이루어진다고 밝혔다. 신경학이란 용어도 윌리스가 만들어낸 것이었다.

『영혼의 해부』표지에 실린 정물화는 네덜란드 화가 에두바어르트 콜리에르(Edwaert Collier)가 그린 바니타스 정물이다. 바니타스(vanitas)란 라틴어로 ‘덧없음’을 의미하며, 죽음에 대한 경고, 인생무상과 같은 메시지와 기독교적 세계관을 벗어난 철학을 담은 그림이다. 아마도 이 그림은 자유주의 철학자가 된 로크의 유명세 그늘에 가려져, 정작 로크의 스승이었던 윌리스의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아이러니를 상징하기 위해 선택됐을 수도 있다. 저자 칼 지머는 새로운 의학에 대한 윌리스의 두려움은 뇌와 자아에 대한 서구의 견해를 지배해온 이분법에서 비롯됐다고 보았다.

21세기인 현재 프로작(Prozac), 팍실(Paxill) 등 항우울제의 미국 내 판매는 연간 120억 달러에 달한다. 재미난 것은 프로작을 복용한 사람이 우울증이 호전됐을 때 뇌영상 사진을 찍어보니, 그들의 뇌가 건강한 사람의 뇌와 비슷하게 변했다. 그러나 심각한 우울증 환자 중 유명한 항우울제를 6~8주간 복용한 후, 기분이 좋아진 사람의 경우는 35~45%에 불과했다. 나머지는 약간만 기분이 좋아지거나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과학자들은 대다수 환자들에게는 약에 들어 있는 화학물질의 효력보다 약효에 대한 믿음, 즉 위약효과(placebo effect)가 효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고 보았다. 만약 서양의 이분법이 사실이라면, 때로는 설탕으로 만든 가짜약이 프로작과 똑같은 효과를 정신에 미친다는 위약효과를 설명할 수 없다. 우울증을 완화시켜줄 때 심리치료와 항우울제가 아주 흡사한 방식으로 뇌의 활동을 변화시킬 수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저자는 우리의 영혼은 물질적인 동시에 비물질적이며, 화학작용의 산물인 동시에 다른 사람과 주고받는 정보의 네트워크라고 주장한다.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저자 스티븐 핑커(Steven Pinker)는 캐나다의 몬트리올에서 태어났다. 맥길대학에서 실험심리학을 전공하고,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21년간 MIT에서 교수로 재직했으며, 현재는 하버드대 심리학과에서 언어심리학과 진화심리학을 강의하고 있다. 이 저서는 마음의 존재, 출처, 역할을 본문만 865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설명하고 있다.

현대에 들어 과학적인 마음의 연구는 MRI를 이용해 뇌사진을 찍고, 사랑하는 연인들의 호르몬 작동을 탐색하고, 티베트 고승들이 명상에 들었을 때 뇌파를 측정하는 등의 방법을 사용한다. 핑커는 이러한 연구 성과를 종합해 통일성 있는 이론의 틀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했다. 그 과정에서 계산주의 마음 이론과 현대적인 진화이론인 자연선택 이론이라 두 개의 큰 이론을 이용했다.

계산주의 마음 이론은 과학적인 방법, 추론, 실험을 통해 마음의 작동 방식을 설명한다. 수학자 앨런 튜링, 컴퓨터과학자 앨런 뉴웰, 마빈 민스키, 철학자 제리 포더 등은 최초로 계산주의 마음 이론(computational theory of mind)을 정립했다. 인간의 마음은 진화의 산물로, 설계된 수많은 연산기관으로 구성된 체계로서, 유전자 프로그램에 의해 지정되어 특정한 상호작용을 전담한다. 인간의 마음은 입력장치, 기억장치, 중앙처리장치, 출력장치로 구성된 컴퓨터와 같은 네트워크를 가졌으며, 믿음과 욕구와 같은 ‘정보’가 기호의 배열로 표시된다고 설명한다.

핑커는 계산주의 마음 이론이 없으면 마음의 진화를 이해하기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인간의 사고와 행동이 아무리 섬세하고 융통성이 크다 해도 대단히 복잡한 프로그램의 산물일 수 있으며, 또한 그 프로그램은 자연선택이 우리에게 부여한 것일 수 있다고 본다. 그는 생물학의 전형적인 명령은 “…할지니라(Thou shalt)”라는 십계명의 첫머리가 아니고, “만약…라면…이고, 그렇지 않으면…(If…then…, else…라는 컴퓨터 프로그래밍의 문장 형태)”이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사람이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마음을 로봇공학의 관점에서 다룬다. 사람이 걸어가면서, 주변의 경치를 보고, 해야 할 일을 계획해 실행에 옮길 때, 어떻게 마음에서 논리, 추론, 판단 및 의사결정 과정이 일어나는가를 밝히는 것은, 달 표면에 착륙하거나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읽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복잡하다고 말한다.  



저자는 마음의 기본 능력들이 로봇으로 구현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지적하면서, 인간이 가진 특별한 기능을 추론한다. 연결주의학파는 간단한 신경망으로 인간 지능을 설명한다. 마음은 수많은 신경망의 연결이며, 지능은 환경이 연결가중치를 조정해서 생긴다. 사람은 기본적이고 간단한 지식을 합성해 수, 언어, 법과 같은 복잡하고 어려운 특수한 경험 영역에 대한 모듈을 형성한다. 저자는 어려운 신경회로망의 원리와 알고리즘의 기본 가정을 쉬운 예를 들어 풀어 써, 마음이 작동하는 기본적인 방식을 차근차근 설명하고 있다. 즉 사람이 생각하고, 말할 때에는 뇌에서 문법과 문장 체계를 효과적인 방식으로 연결해서 산출하는 것이다.

또 저자는 사람의 시각이 움직임을 분석해서 외부 물체를 정확하게 감지하는 놀라운 처리 능력을 가진 것이라는 점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은 망막에 맺힌 물체의 형태가 보는 각도에 따라 각기 다름에도, 그 물체가 같다는 대상영속성을 가지고 있다. 저자는 인공지능 공학자 데이비드 마르가 내린 시각에 대해 정의를 가장 적절하다고 본다. 마르는 시각처리 과정이란 자신이 본 외부 세계의 상을 자신에게 가장 유용한 정보로 재생산 하는 과정이라고 보았다. 한 예로 책을 보면 망막에는 사다리꼴 형태가 투사되지만, 우리는 책이 직사각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을 들 때도 손가락을 직사각형으로 만들고, 책장도 직사각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추론한다. 시각이 일단 망막 위에 상으로 맺힌 물체의 형태를 추론하면, 마음의 모든 부분이 그 발견을 활용한다.

핑커가 설명하는 신경회로망의 예에서 들고 있는 여러 문장의 생성과 이해과정을 읽다보면 노암 촘스키에 대한 이해의 폭도 넓힐 수 있다. 촘스키는 저명한 히브리어 학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언어학적 소양을 물려받고, 정치와 이데올로기 문제에 민감했던 어머니로부터는 정치적 성향을 물려받은 언어학자다. 촘스키는 전 세계에는 약 6 천여 개의 언어가 있지만, 언어가 공유하는 ‘보편 언어’가 사람의 유전자 속에 있기 때문에 어린이도 짧은 시간 내에 언어를 습득하게 된다고 했다.

재미난 것은 『마음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마인드』를 저술한 존 R. 설(Searle)의 ‘중국어 방’을 예로 든 논쟁이 잘 언급된 점이다.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안에 있으며, 그 사람은 중국어와 다른 기호가 섞인 복잡하고 긴 지시 사항 목록을 가졌다. 그 남자는 중국어를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하지만 단지 기호를 조작하여 답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방에 있는 사람은 중국어를 알고 있을까. 물론 문밖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방안에 있는 사람은 중국어를 알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이해는 기호 조작이나 연산과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존 설은 이 사고실험을 통해, ‘중국어 방’에 있는 남자에게 없는 것이, 기호와 기호가 의미하는 것의 관계인 지향성이라고 지적한다. 지향성, 의식, 그리고 그 밖의 마음 현상들은 정보처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실제 인간 뇌의 실제적인 물리-화학적 특성들’에 의해 야기된다는 게 존 설의 결론이었다. 이 사고실험에 대해 100편 이상의 논문이 출판되었고, 인터넷에서도 격렬한 토론이 있었다. 이에 대해 ‘핑커’는 사람의 언어 규칙은 무의식적으로 빠르게 사용돼야 하며, 언어의 내용이 사용자의 믿음과 연결돼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과학은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어떤 단어의 현실적인 예가 무엇인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 대상의 작동 원리가 무엇인가를 묻기 때문에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 책의 후반부는 지각, 생각, 감정, 사회성, 미술, 음악, 문학, 유머, 종교, 철학 등에 나타난 마음의 기능을 해부하고 있다. 아쉬운 점은 총 8장으로 이루어진 저서 중 7장 ‘가족의 소중함’, 8장 ‘인생의 의미’는 재미는 있으나 지나치게 주관적인 예화가 많아 인류학, 사회학 자료 박물관 같다는 느낌이 든다. 한 예를 들면 그는 “왜 인간이 예술을 추구 하는가”라는 이유로 예술은 미적 심리를 반영할 뿐 아니라, 지위 심리를 반영한다고 주장하면서, 예술의 가치는 대체로 미학과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대형 박물관을 관람하다 보면 한 번에 보기에는 너무 볼 것이 많고 다리가 아파서, 그만 중간에 놓인 푹신한 의자에 주저앉아 쉬고 만다. 이 책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상 연결에도 무리가 있어, 두 권으로 분권을 해서 제목을 달리 하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다. 책을 맺으며 저자는 우리가 잠시 자신의 마음 밖으로 걸어 나와, 자신의 생각과 감정이 자연의 일부이며, 자연계의 훌륭한 고안품이라는 점을 발견하기 희망한다.

『율리시즈』는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블룸에게 일어난 약 19시간의 일을 800여 쪽에 25만여 단어로 묘사한 소설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19시간(68,400초)동안 사람의 두뇌를 뇌영상으로 찍으면 그 분량이 얼마나 될까. 뇌영상 연구를 하는 경우 보통은 3초마다 머리 위에서 아래로 5mm 간격으로 20장을, 수십 분 동안 찍는다. 만약 19시간 동안 사람의 두뇌에서 일어난 생각과 느낌을 뇌영상으로 찍는다면, 해석해야 할 뇌영상의 분량은 매우 많다. 뇌영상 사진을 분석하는 경우, 찍는 동안 머리를 2mm만 움직여도 그 자료는 오차가 너무 커서 분석대상에서 제외된다.

이러한 여러 연구 제약 때문에 뇌영상 연구에서 발표되는 논문의 피험자의 수는 실제로는 십여 명 내외다. 그렇다면 수억의 인구가 느끼고 생각하는 ‘마음’을 과연 수십 명을 대상으로 한 뇌과학 연구 논문 수십 편에서 정리했다고, 일반화시킬 수 있을까. 물론 의공학이 나날이 눈부신 발전을 하고 있지만, 단편적인 뇌과학 연구 결과를 지나치게 맹신하면 안 된다. 그만큼 사람의 마음이 작동하는 두뇌는,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복잡하고 놀라운 능력을 가졌기 때문이다.

네 권의 뇌과학 책을 읽으며 생각해 봐야할 첫 번째는 진정한 의미의 “너 자신을 알라!”이다. 소크라테스는 아테네에서 지나는 사람에게 다음의 질문을 수없이 했다고 한다.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대의 현인도 이 질문을 받으면,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했다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고 싶었다. 그래서 자신의 무지함을 자각하라는 의미로, 그리스 델파이(Delphi)의 아폴론 신전에 새겨져 있던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을 외쳤다. “너 자신을 알라!”의 현대적 뇌과학적 의미는 무엇일까.

두 번째는 “덕이란 무엇이며, 우리는 어떻게 행복한 결말에 도달할 수 있을까”이다. 다마지오는 『스피노자의 뇌』에서, 스피노자를 찾은 이유를 그의 저서 『에티카』에 나온 “덕의 일차적 기반은 자기 자신을 보존하고자 하는 노력이며, 행복은 자신의 존재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란 구절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스피노자의 말이 종소리처럼 선명하게 울려 퍼진다는 느낌을 표현했다. 다마지오는 열정과 지혜를 추구하는 영적 삶을 통한 과학 지식과 심미적 경험이 행복한 결말에 이르는 한 가지 길이라고 제안했다. 뇌와 나는 포함 관계도 아니고, 교집합도 아니고, 등호가 성립하는 것도 아니며 유동적이다. 이제는 여러분이 이 네 권의 뇌과학 도서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차례다.(한종혜/ 고려대·인지신경과학연구실)

08.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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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8-02-09 22: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쌩뚱맞은 말이겠지만 전통적인 사형방법이였던 단두(斷頭)는 그 시대때 결코 과학적인 근거나 이유가 없었겠구나란 생각을 해버렸답니다.

로쟈 2008-02-10 13:26   좋아요 0 | URL
자유연상도 뇌의 신비죠.^^
 

알라딘에는 아직 뜨지 않고 있는 신간 중에 린 마굴리스의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이 있다. 마굴리스는 '공생 진화론'을 주창한 과학자이며 국내에도 몇 권의 책이 소개돼 있다. 아들인 도리언 세이건과의 공저 <생명이란 무엇인가>(지호, 1999), <섹스란 무엇인가>(지호, 1999) 등이 대표적이다(그녀의 전 남편이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었다).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2. 02) 지구 생명 과거와 현재그 안에 공생이 있다

‘공생’ 하면 흔히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공생은 지구의 모든 생명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는 ‘고리’다. 공생이 없었다면 생명의 진화 같은 것은 존재할 수 없었다. 천문학자 칼 세이건의 첫번째 부인으로 알려진 린 마굴리스 암허스트대 교수는 이 같은 주장을 ‘공생 진화론’을 통해 전개한다. ‘공생 진화론’은 세포핵을 가진 진핵세포가 세포핵이나 미토콘드리아 또는 엽록체와 비슷한 고대세균들이 공생하면서 탄생했다는 이론이다. 장기적인 공생이 처음으로 세포핵을 지닌 복잡한 세포를 진화시켰고 거기에서 곰팡이, 식물, 동물 같은 생물들이 유래했다는 것이다.

그는 아울러 각각의 생물들이 새로운 종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공생이 핵심적이고 근본적인 기능을 수행했다고 주장한다. 책은 이 같은 공생 진화론의 탄생과 발전, 현대 과학계에 미친 영향과 발전 등을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함께 소개한다. 공생이라는 개념 안에 지구 생명의 과거와 현재라는 거대한 맥락이 있음을 보여줌으로써 공존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케 하는 책이다.

한겨레(05. 12. 31) 세포여, 살림을 하라 린 마굴리스

2005년 줄기세포는 위조 로또였다. 일희일비하던 잔치는 끝났고, 몰래카메라 앞에서의 소동은 마무리 중이다. 하지만 줄기세포가 아니어도 생명의 기본단위 세포는 그 자체로 놀라운 생명의 복음서다. 생명의 단위인 세포, 요술 지팡이처럼 생긴 바늘로 그걸 콕콕 치며 황금을 길어내겠다고 연기를 펼친 황 마술사의 일거수일투족에 더 이상 가슴 졸이지 말고, 슬픈 군중이여, 부디 더 기쁜 소식을 들어주시라!

이른바 ‘적자생존’의 법칙을 따른다며 생명의 진화를 얘기할 적에, 삼엽충과 공룡의 화석 등 죽은 동물 뼈다귀들을 늘어놓고 강자가 약자를 공격하고 정복하는 ‘먹이사슬’이며 ‘힘의 법칙’을 얘기할 적에, 메탄가스로 뒤덮인 돌덩어리 지구 곳곳에 푸른 이끼가 돋아나며 40억 년 동안 지구어머니가 어떻게 변모했는지를 설파한 과학자가 있었다.

1970년대 린 마굴리스는 지구별만큼 정교하고 신비한 시스템인 세포를 들여다보며, 이 둘은 장구한 세월 어깨동무를 하고 함께 진화한 존재라는 사연을 발표했다. 결론적으로 지구어머니의 모든 자식은 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함께 진화한 ‘공동살림체’임을 밝히고, 놀라운 존재 ‘지구’의 애칭으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 ‘가이아’라는 이름을 헌정했다. 한편, 세포들은 수십억 년 생명 진화의 과정을 고스란히 담고 있으니 가장 놀라운 사연인즉, 이들을 더 높은 차원의 생명활동으로 이끈 진화의 동인은 공격과 정복을 일삼는 약육강식이나 적자생존이 아니고, 세포 내 기관들이 각자의 살림을 하다 더 큰 일, 진화의 도약을 위해 공동살림, 즉 공생을 시작했다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이야기에 정통 과학자들은 “가이아는 암컷 들개”라며 길들여지지 않는 그녀의 야생적 학문 태도를 조롱했고, 박사 논문으로 제출한 ‘세포 내 공생설’에 대해선 입을 다문 채 반대 의견조차 아까워했다. 그러나 20여 년 세월이 흐르며 ‘세포 내 공생’은 고도로 발달한 생명의 전략이며 자연의 질서임이 확인돼 대학 교과서에 자리잡았고, 이에 대해 마굴리스는 “남자들이 물리적 힘의 법칙으로 수백만 년의 진화를 이해하고 설명한 데 비해, 나는 수십억 년에 걸친 생화학적 조화와 절묘한 변화를 겪은 생명체의 공생에 주목했다”고 활짝 웃었다.

‘가이아설’과 ‘세포 내 공생설’ 등 파격적인 진실로 논란을 일으키고 대중들에게 과학의 생각거리를 던져주던 그녀는 <코스모스>와 <콘택트> 등의 과학 저술로 국내에도 잘 알려진 천문학자인 첫 남편 칼 세이건과 함께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했을 때부터 과학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 토론하며 열심히 연구했다. 또 아이 넷을 낳아 기르며 연구활동을 이어가는 동안, 생명의 진화는 ‘로또’를 차지하는 조급한 꾀나 힘이 아니라 수십억 년을 거쳐 ‘공생의 길’을 가는 자연의 진리임을 가슴으로 이미 느끼고 깨달았다고 고백한다.(김재희/ <이프> 편집인)

08. 02.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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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자란 2008-02-09 17:49   좋아요 0 | URL
역시 한가지 사실을 바라보고 느끼는 것이 그 사람의 심성과 인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바라봅니다. 물론 그 이야기에 평가하는 것도 모두 그 자신의 몫이지만요. 공생진화론의 논리는 그럴수 있다는 긍정도 같이 하게 됩니다

로쟈 2008-02-09 20:27   좋아요 0 | URL
저도 방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공동 살림체'라곤 하지만 자연계에는 공생관계도 있고 천적관계도 있는 것이니까요...

자꾸때리다 2008-02-09 18:42   좋아요 0 | URL
제가 알기론 마굴리스는 진화론자이면서도 신다윈주의 점진론적 진화론에 대해서는 "역사는 궁극적으로 신다윈주의를 앵글로-색슨 생물학이라는 널리 퍼진 종교적 신념에 속하는 20세기 소수종파로 평가할 것이다."라며 거부한 인물인 것으로 아는데요. "동물학적, 자본주의적, 경쟁적, 비용 편의적 해석을 오가면서 다윈을 잘못 이해했다. ...돌연변이의 점진적 축적을 고집하는 신다윈주의는 완전히 무력해졌다." 이런 진술도 했다는데...


하여튼 예쁘십니다. 어린 시절 사진은 더...ㅎㅎㅎ

로쟈 2008-02-09 20:25   좋아요 0 | URL
주류 진화론에는 거리를 두었다는 것이죠? 비주류로 치면 스티븐 제이 굴드도 마찬가지였고, 기독교 내에 다양한 분파들이 존재하듯이 진화론 또한 사정은 비슷한 거 같습니다...

이네파벨 2008-02-09 21:27   좋아요 0 | URL
앗 마침 요즘 파운드스톤이 쓴 "칼 세이건" 평전을 읽고 있었는데.........!!!

사실...솔직히...세이건의 사생활이 궁금해서 이 두껍고 비싼 책을 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죠...(예전에 세이건 책 번역하면서..세이건의 전기, 바로 이 책-파운드스톤의 글도 좋아하기에-을 번역출간하자고 출판사에 제안했다가 시큰둥한 반응을 얻었는데... 결국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냈더군요...)

이런 책(평전)은 지적 가치에 비해서 값이 너무 비싸다는 단점이 있지만...

재미로만 놓고보면...너무너무 재미있어요. 웬만한 소설보다 더 흡인력있네요.

린 마굴리스의 본명은 린 알렉산더였죠. 마굴리스는 두번째 남편인 결정학자 토마스 마굴리스의 성을 따른거라고 합니다. 그와도 80년대에 이혼했더군요...

세이건은 개성 강하고 매력적이지만 엄청 자기중심적이고, 아들을 떠받드는 에고 강한 어머니에게 spoiled되어 자란(세이건 어머니는 참 호감 안가는 분이더군요..쩝) 남편이었고 린은 자신의 일에 열정과 야심을 가진 독립적이고도....한성깔하는 여성으로 그려지더군요. 젊을때 둘은 결혼 전이나 후나 자주 박터지게 싸웠다고 해요...

인생주기로 볼 때....두 사람 모두 젊고 아름다울 때지만..또 그만큼 미성숙하고...성취한 것에 비해 야심이 더 큰...배고프고 갈길 바쁜 시기였기 때문이겠죠..

(전 이런 과학자나 사상가들의 사생활에 관심을 갖는 고약한 취미가 발달해서...책읽다가도 맘에 드는 저자가 있으면 구글 들어가서 이미지검색해서 관상도 보고..가족관계도 파헤치고...하이에나같은 파파라치본성...ㅡ,.ㅡ)

로쟈 2008-02-09 22:05   좋아요 0 | URL
뭐 '스타급' 과학자들이니까요.^^ 찾아보니 세이건은 세 번 결혼했더군요. 자신에게 맞는 반려자를 한 사람에게 찾는 이도 있지만 여러 사람에게서 얻는 경우도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