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펴내는 월간지 출판문화(587호)에 실은 초대석 칼럼을 옮겨놓는다. 수년 전 독서에세이를 연재한 적이 있는데, 이번에 다시 청탁을 받아 내년에도 격월로 독서에세이를 연재할 예정이다. 이 칼럼은 그 맛보기라고 해야겠다.

 

 

출판문화(14년 10월호) 책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다

 

굳이 해보지 않아도 아는 일이 있는 것처럼 굳이 읽어보지 않아도 어림할 수 있는 글이 있다. 서평가가 <출판문화>의 초대석 지면에 쓸 수 있는 글이 그런 종류일 것이다. 책을 읽자, 라는 빤한 얘기. 그렇다, 흥미로울 게 전혀 없는 고정 레퍼토리다. 우리가 독서량 조사에서 매번 꼴찌를 맴도는, 다시 말해서 어지간히 책을 안 읽는 국민이라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좀 읽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염려 섞인 제안. 이 글은 그런 기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임을 미리 밝힌다. 늘 반복하는 주장에 한두 마디 더 얹을 수 있다면 나로선 최선이겠다.

 

책이 거의 모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축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책에 대한 열혈 신자는 아니다. ‘독서 천국 부독서 지옥을 설파할 생각은 없다는 얘기다. 책에서 배운 것인지는 몰라도 내 나름으론 관용적이다.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도 얼마든지 고려한다. 어떤 가능성인가? 어차피 책과 담을 쌓기로 한 것이 우리의 결연한 태도이자 문화라면(이건 비독서 문화라고 해야겠다), 그리고 책을 안 읽는 게 우리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가운데 하나라면 그런 장기를 살리는 것도 한 가지 방책은 되지 않겠느냐는 것. 자문해보자. 잘하지 못하거나, 별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을 억지로 해서 좋은 결과를 얻은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되던가. 다른 선택지에 대한 기회비용까지 계산하면 역시나 좋은 선택은 아니었다는 결론이 나올 것이다. 소질이 없다면 일찍 접는 것도 차선은 된다. 어쩌면 한국인에게 독서 또한 그런 없는 소질은 아닐까.

 

예부터 책읽기를 즐겨온 자랑스러운 전통을 우리는 갖고 있다고도 말한다. 일리가 없지 않지만 딱히 맞는 말도 아니다. ()보다 문()을 숭상했던 조선조 선비들이 그 전통의 주역일 터이지만 문제는 책을 읽을 줄 아는 선비들이 결코 전체 인구의 다수는 아니지 않았느냐는 반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때 식민지 조선의 문해율이 30퍼센트를 넘지 않았다면 조선의 문해율 인구가 그보다 높았을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아무리 한쪽에는 독서를 즐기는 선비들이 있었다고 해도 인구의 절대 다수는 책과는 거리가 먼 문맹이었을 것이다. 책을 읽어온 내력 못지않게 안 읽어온 내력도 무시 못한다고 해야 온당하다.

 

물론 문해율만 놓고 보자면 사정은 달라진다. 어려운 한문 대신에 한글을 쓰게 된 덕이 크지만, 오늘날 한국인의 문해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곧 한글 문장을 읽지 못하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할 정도다. 30퍼센트 미만이던 문해율 인구가 거의 100퍼센트에 육박한다고 하면 말 그대로 뽕나무밭이 푸른 바다로 변한 수준이다. 그렇다, 나름 대단한 일이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그런데 그런 자부심이 자기도취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한 가지 의문도 해결해야 한다. 어째서 그런 높은 문해율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독서량은 형편없이 적은가라는 의문이다.

 

나는 두 가지 답변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답변은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불분명하지만, 우리가 분명 책을 읽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안 읽기로 작정했다는 것. 운전면허를 갖고 있지만, 운전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고, 가수 뺨치는 소질을 갖고 있지만, 노래만은 극구 사양하는 사람도 있다. 마찬가지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책을 읽을 수 있지만 다른 일에 손댄다는 것이다. 그것이 개인적인 선택이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겠으나 집단적으로 그런 선택을 했다고 하면 그 이유는 연구과제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답변은 문해력이 곧바로 독서력, 곧 책을 읽을 수 있는 능력을 보증해주는 것은 아니라는 것. 다시 말해서 문해력과 독서력이 일치하는 건 아니라는 설명이다. 그래야 높은 문해율과 낮은 독서량 사이의 불일치가 설명된다. 이 경우 사람들은 책을 안 읽는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상은 책을 읽을 능력이 부족해서 못 읽는 게 된다.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울까?

 

만약에 전자라면, 즉 다들 책을 읽을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읽지 않는 것이라면 문제의 해법은 관심을 독서로 돌리게끔 하는 것이다. 어떤 유인책이 효과적일지는 궁리해봐야겠지만 해법 자체가 복잡한 건 아니다. 물을 먹이기 위해 말을 강가로 데려가듯이, 어떻게든 책을 접하기 쉬운 곳으로 자주 데려가다 보면 어느 시점에서인가 국민의 절대다수가 독서국민으로 탄생하는 기적이 연출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만약 후자라면, 즉 문해력은 습득했지만 독서력이 갖춰지지 않아서 책을 못 읽는 거라고 한다면, 문제는 좀 복잡하다. 일단 책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읽을 수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책을 안 읽는 것이 아니라 못 읽는 것이라는 현실 직시가 필요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서 독서력을 갖추기 위한 독서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독서력을 갖춘다는 게 대단한 수고를 요구하는 힘든 일은 아니라는 점이다. 비유컨대 그것은 반복적인 독서를 통해서 우리 뇌에 독서근육을 만드는 일에 해당하다. 꾸준한 운동이 우리의 근력을 키워주는 것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독서는 우리의 독서근육을 발달시킨다. 책은 기분으로 읽는 게 아니라 근육으로 읽는다. 얼마만큼의 독서량이 있어서 독서근육이 만들어지는가에 대해서는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대략 150권가량의 독서가 권장된다. 1~2, 혹은 길게 잡아도 3~4년에 걸쳐서 그 정도 분량의 책을 읽는다면 자연스레 독서근육이 길러질 수 있다. 그리고 일단 독서근육이 형성된 다음이라면, 독서는 한결 수월하고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그러니까 이 경우에도 선후관계는 바뀔 수 있는데, 책은 재미있어서 읽는다기보다는 읽다 보면 재미있어진다.

 

독서력을 갖춘 독서국민이 되는 방도에 대해 적어보았는데,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자면 왜 굳이 그래야 할까란 회의도 검토해보아야겠다. 성인의 일 년 평균 독서량이 열권에도 미치지 못하는 현실에서, 온 국민이 책을 읽는 독서강국으로 가는 길은 너무 멀고도 험한 여정일 수밖에 없다. 왜 그런 고난을 감수해야 하는가. 몇몇 선진국의 사례가 있다손 치더라도 우리의 형편과 소질을 고려하지 않고 무작정 따라하기에 나서는 것은 몰주체적 행태 아닌가.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말이 있듯이 남의 나라의 좋은 문화가 항상 우리에게도 좋은 문화가 되는 건 아니다. 다른 나라의 훌륭한 도서관시설과 독서문화가 부럽다지만, 과거에 우리가 토착 민주주의라고 불렀던 한국형 민주주의가 따로 있었던 것처럼, 한국형 비독서 문화도 충분히 가져봄직하다. 어쩌면 그것이 한강의 기적을 낳은 성공신화의 밑바탕이었는지도 모를 일 아닌가?

 

나로선 이런 회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했다곤 하지만 우리에게 그 용도는 똑똑한 백성을 만드는 데 있지 않았다. 책을 널리 보급하여 누구라도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리의 이상도 아니었다. 책은 읽어온 내력보다 안 읽어온 내력이 양적으로는 오히려 더 본질적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책을 읽자고 제안한다면 뭔가 대단한 비전이라도 제시해야 할 듯싶지만, 나의 동기는 소박하다. 우리가 잘 안 해본 걸 한번 해보자는 것.

 

책을 안 읽는 건 너무도 오랫동안 줄기차게 해왔다. 부독서가 우리의 적성에 맞는지도 모르겠다. 그뿐 아니다. 책을 직접 구매한 독자의 경우도 대략 15퍼센트 정도만 완독한다고 하니까 우리의 비독서는 상당한 스펙트럼을 자랑한다. 책이 없어서 안 읽을뿐더러 있어도 안 읽는 것이니 말이다. 때문에 식상하다. 여전히 책을 읽는 사람이 신기하다고 생각할 게 아니라 꾸준히 책을 안 읽는 사람이 식상하다고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좀 덜 식상한 선택을 해보는 건 어떨까. 그래서 놀라운 반전의 드라마를 써보는 건 어떨까. 한국인들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드라마!

 

 

이게 아주 이상한 드라마는 아니다. 디지털 시대의 구루였던 스티브 잡스의 사례만 하더라도 그렇다. 잡스는 애플사의 아이패드가 출시되던 날 아이들의 반응은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자기 아이들은 써본 일이 없다고 대답했다. 그가 선호했던 건 아이들과 식탁에 앉아 책과 역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었다. 그가 아이들에게 권한 건 아이패드가 아니라 책이었다. 인터넷 시대에 책은 너무 낡은 것 아니냐는 낡은 생각을 뒤집을 필요가 있다. 독서국민은 우리가 아직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것이며 책은 여전히 우리의 미래다.

 

1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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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책'을 고른다. 잠시 쉬어가는 의미에서 평소와는 좀 다르게 '교양심리학' 분야의 책들로 다섯 권을 골랐다. 인지심리학 분야의 책도 하나 포함돼 있지만 넓게 보자면 모두 심리학 책들이다. 이 분야의 책은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아마도 고정 독자층이 있는 걸로 보인다) 나로선 평소에 잘 읽게 되지 않는데, 생소한 저자가 많아서 어떤 책이 진짜이고 또 가짜인지 판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보통은 저자 소개나 추천사 등에 의지하게 된다. 그렇게 고른 책들에 대락적인 순서를 부여했다.

 

 

먼저, 타이틀북은 니컬러스 에플리의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을유문화사, 2014). '오해와 상처에서 벗어나는 관계의 심리학'이란 부제가 책의 초점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아니, 그래도 부족하다.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가 도움이 되는 이유. "뛰어난 사회심리학자 니컬러스 에플리는 <마음을 읽는다는 착각>에서 다른 사람의 생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그리고 잘못 이해하는지)를 최근의 흥미로운 연구 사례들을 곁들여 생생하게 들려준다." 이 정도면 손에 들어도 된다. 저자는 시카고대학 경영대학원의 행동과학 교수.   

 

두번째는 독일 심리학자 게오르크 피퍼의 <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부키, 2014).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이 부제다. 이 역시 제목과 부제만으로는 어떤 책인지 가늠할 수 없다('치유의 심리학'을 표방하는 책은 부지기수다). 추가적인 소개. "지은이는 25년 이상 심리 치료사로 활동하며 수많은 사건·사고 관련자를 치료한 독일의 대표적인 트라우마 전문가로, 자신이 경험한 사례를 통해 삶에서 맞닥뜨리는 여러 위기를 극복하고 더 행복하고 충만한 인생을 살 수 있는 방법을 들려준다. '옷장이 쏟아진' 것처럼 마음이 무너져 내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놀라운 힘이 우리에게 내재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힘을 일깨울 방법을 알려 준다." 

 

 

세번째는 스페인의 인지심리학자 라파엘 산탄드루의 <마음의 함정>(생각의날개, 2014).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이 부제다. 제목과 부제는 다 거기서 거기다. "저자는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외부에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받아들이는 우리의 마음이라고 말한다. 똑같은 좌절을 겪고도 길에서 잠깐 넘어진 것처럼 무릎을 툭툭 털며 일어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주저앉아 낙심하며 일어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우리가 느끼는 모든 불행과 두려움과 좌절감이 우리 마음속에서 우러난 것이며, 이러한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 긍정적인 마음을 유지하는 방법을 깨닫게 될 것이다."는 소개도 그다지 미덥지는 않다. 다만 스페인에서 20만부 이상 판매된 베스트셀러라고 하니까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을 배우진 못하더라도 세계의 베스트셀러를 일람하는 효과는 있겠다.

 

네번째는 데이비드 리코의 <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마디, 2014). 원제는 '그림자 댄스'이고 부제는 '당신의 어두운 면이 지닌 능력과 창의성을 일깨운다'. 저자는 심리치료 전문가. "이 책은 개인생활, 가족관계, 인간관계, 종교 등의 세계에서 그림자가 나타나는 곳을 찾고, 마음을 조용히 훈련하여 자신의 어두운 면과 함께 지내는 법을 보여준다."

 

 

그리고 끝으로 다섯번째 책은 스티븐 코슬린 등의 <상뇌하뇌>(추수밭, 2014). "인지신경과학의 거목인 스티븐 M. 코슬린 박사가 30년 인지심리학 연구 결과들을 토대로 당신의 뇌가 생각하는 방식에 대한 전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바로 뇌는 좌뇌와 우뇌가 아니라 상뇌와 하뇌로 작동한다는 것. 이로써 50년간 우리의 편견을 지배해 온 좌뇌형 인간과 우뇌형 인간의 허구성이 드러나고, 우리 각자는 상뇌와 하뇌의 상호작용 정도에 따라 크게 4가지 인지유형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이 밝혀진다." 우리 뇌가 상뇌(뉴브레인)와 하뇌(올드브레인)로 구성되어 있다는 상식은 새로운 발견과 거리가 멀지만 작동방식에 따라 4가지 인지유형으로 나뉜다는 점은 흥미를 끈다. 덧붙여 스티븐 핑커의 추천사. "코슬린은 현 시대 인지신경과학 분야를 주도한 위대한 과학자 중 한 명이다." 헛소리를 하는 책은 아니라는 얘기니 믿어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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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읽는다는 착각- 오해와 상처에서 벗어나는 관계의 심리학
니컬러스 에플리 지음, 박인균 옮김 / 을유문화사 / 2014년 9월
14,000원 → 12,600원(10%할인) / 마일리지 70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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쏟아진 옷장을 정리하며- 힘들고 아픈 나를 위한 치유의 심리학
게오르크 피퍼 지음, 유영미 옮김 / 부키 / 2014년 9월
14,800원 → 13,320원(10%할인) / 마일리지 74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절판
마음의 함정- 나를 비참하게 만드는 부정적인 생각에서 벗어나는 법
라파엘 산탄드루 지음, 홍선영 옮김 / 생각의날개 / 2014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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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림자가 나를 돕는다- 당신의 어두운 면이 지닌 능력과 창의성을 일깨운다
데이비드 리코 지음, 김하락 옮김 / 마디 / 2014년 9월
15,500원 → 13,950원(10%할인) / 마일리지 770원(5% 적립)
2014년 10월 12일에 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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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읽을 만한 책'을 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이어가겠다고 했는데, 좀 늦어졌다. 분야를 약간 조정하고 좀더 자유롭게 고르려고 한다. 책이 너무 많으니 목록을 줄여보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나 어차피 골라서 읽는 거라면 읽을 만한 책 '후보'로 생각해도 되겠다.

 

 

1. 문학예술 

 

아무래도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프랑스 작가 파트릭 모디아노에게 관심을 쏠릴 듯하다. 이미 상당수 작품이 번역돼 있고 몇 권은 추가적으로 더 나온다고 하니까 독서 목록은 충분하다. 대표작으론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문학동네, 2010)이 꼽히는 모양인데, 1978년 공쿠르상 수장작이니까 그럴 만하다.

 

 

국내에 처음 번역된 작품은 그보다 한 해 전에 나온 <가족수첩>(1977)인데, 김화영 교수의 번역으로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문장사, 1978)라고 나왔었다. 그게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세계사, 1991)이라고 재출간됐고, 내가 읽은 것도 그 책이다. 읽었다곤 하지만 역자 해설만 기억이 난다. <프랑스문학 산책>(세계사, 1989)에서 저자 김화영 교수는 동시대 프랑스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로 르 클레지오, 미셸 투르니에와 함께 파트릭 모디아노를 꼽았었다. 그 중 벌써 두 작가가 노벨상 수상작가가 된 셈인데, 노벨문학상 심사위원회의 프랑스문학에 대한 '편애'라고 하면 억지일까. 그럼에도 물론 '이변'이라고는 할 수 없는 결과다. 10년 전, 2004년에 옐리네크가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의 '파격'에 비하면 아주 조신해보이기까지 한다. 아무튼 결과는 나왔고 한두 권 읽어보는 걸로 '의례'를 갈음해도 좋을 듯. 그러다 작가의 매력에 뒤늦게 빠진다면 한 계절을 축내고 어쩔 수 없겠고.  

 

 

예술분야에선 미술사 관련서 세 권을 골랐다. 동물행동학자 데즈먼드 모리스의 <예술적 원숭이>(시그마북스, 2014)는 '300만 년에 걸친 미술 진화사'가 부제. 초기작이 이제 번역됐나 했더니 2013년작이다(초기에 유인원들의 그림에 대한 책을 펴냈던 걸로 기억한다). "<털없는 원숭이>로 유명한 동물학자이자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초현실주의 화가로 직접 작품활동을 펼쳐온 데즈먼드 모리스는 우리 인류의 비범한 진화 이야기를 통해 예술이 사소하고 평범하게 시작하여 어떻게 발전해왔는지 시각 미술을 기반으로 설명하고 있다."

 

윌 곰퍼츠의 <발칙한 현대미술사>(알에이치코리아, 2014)는 '천재 예술가들의 크리에이티브 경쟁'이 부제. 저자는 세계적인 미술관 테이트 갤러리 관장을 역임했고, 그런 경력을 바탕으로 "19세기 인상파 작품들에서 시작된 현대미술 태동기부터 앤디 워홀의 「캠벨수프 깡통」, 데이미언 허스트의 「상어」로 이어지는 동시대미술을 아우르며, 걸작에 숨은 이야기들을 예술가들의 눈과 입을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토비 레스터의 <다 빈치, 비트루비우스 인간을 그리다>(뿌리와이파리, 2014)는 '인체비례도에 얽힌 2000년 서양문화 이야기'다. 원과 정사각형 안에 사내가 팔다리를 내뻗고 있는 유명한 그림이 '비트루비우스 인간'이다. 저자는 "그 상징적 그림에 담긴 비밀을 풀고 미술과 사상의 역사를 솜씨 좋게 엮어낸다."

 

 

 

2. 인문학

 

네덜란드 만화가 마르흐레이트 데 헤이르의 시리즈를 고른다. <과학이 된 무모한 도전들><철학이 된 엉뚱한 생각들>, 그리고 <종교가 된 사적인 고민들>(원더박스, 2014). 좀 가벼운 느낌의 책을 고른 건 사회과학 분야에서 무거운 책을 골라서다.

 

 

3. 사회과학

 

충분히 짐작할 수 있지만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글항아리, 2014)이다. 주변에서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이 책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중요한 것은 저자의 핵심 메시지를 더 많은 사람이 공유하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도 골라놓는다. '올해의 책'으로도 가장 강력한 후보이기에 군말은 적지 않는다.

 

 

4. 과학 

 

과학쪽은 뇌과학 분야의 책 세 권을 골랐다. 모든 이전에 한번씩 언급했던 책들이라 별도의 언급은 피한다. 에릭 캔델의 <통찰의 시대>(알에이치코리아, 2014)와 크리스토퍼 코흐의 <의식>(알마, 2014), 그리고 조금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스티브 다얀의 <우리는 꼬리치기 위해 탄생했다>(위즈덤하우스, 2014) 등이다.

 

 

5. 글쓰기

 

글쓰기나 책읽기 분야의 책들을 매달 돌아가면서 고르려고 한다. 이달에는 문장 교정에 지침서가 될 만한 책으로 <이수열 선생님의 우리말 바로 쓰기>(현암사, 2014)와 <고종석의 문장1,2>(알마, 2014) 두 권을 고른다(<고종석의 문장>은 한번 '이달의 읽은 만한 책'으로 고른 적이 있다).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박힌 것 자체가 책에 대한 신뢰를 암시한다. 자신이 쓰는 문장에 대한 '마사지 효과'를 경험해보시길.

 

14. 10. 11.

 

 

P.S. 피케티의 <21세기 자본>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이달의 읽을 만한 고전'도 마르크스의 <자본>을 고른다, 라고 하면 좋겠지만 무리한 일이기에 자본론 읽기에 도움이 될 만한 책 세 권을 고른다. 최근에 나란히 출간됐는데,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 공부>(돌베개, 2014), 강신준 교수의 <오늘 '자본'을 읽다>(길, 2014), 그리고 중국학자 양자오의 <자본론을 읽다>(유유, 2014)가 그 세 권이다. 가이드를 셋이나 두면 여정이 꼬일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정확한 길찾기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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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견이라고 이름 붙이기엔 너무 친숙한 주제이지만, 민족주의를 다룬 묵직한 연구서가 출간되었기에 '이주의 묵직한 발견'이라는 이름을 붙여본다. 서양사학자 김인중 교수의 <민족주의와 역사>(아카넷, 2014). '겔너와 스미스'가 부제인데, 민족주의 연구의 거목으로서 어니스트 겔너와 앤서니 스미스를 집중 조명하고 있기에 붙여진 것이다(한스 콘 같은 학자는 이제 지나간 이름이 되었나 보다).

 

 

저자는 에드워드 톰슨의 <영국 노동계급의 형성>(창비, 2000),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근대세계체제>(까치, 2013) 등의 굵직한 저서들을 공역했고, 민족주의 관련서로는 브라이언 젠킨스의 <프랑스 민족주의>(나남, 2011)를 우리말로 옮긴 바 있다. <프랑스 민족주의>의 부제는 '1789년 이후의 계급과 민족'인데, 홉스봄의 책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창비, 1998)를 떠올려준다. 1780년대가 중요한 분기점이란 걸 시사한다.

 

 

대표적인 민족주의 연구자로 언급되고 있지만 어니스트 겔너의 책은 <쟁기, 칼, 책>(삼천리, 2013)만 소개된 터이고 <민족과 민족주의> 같은 주저는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 앤서니 스미스 같은 경우는 사정이 나아서 <민족주의란 무엇인가>(용의숲, 2012)가 번역돼 있다(<국제화 시대의 민족과 민족주의>(명경, 1996)도 번역됐었지만 절판된 지 오래다).

 

 

저자는 앤서니 스미스의 저작들에 대해서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여 검토하고 있는데, 주요 저작들 가운데 특히 <민족들의 족류공동체적 기원>(1986)을 자세히 다룬다. 현단계 민족주의 연구를 대표할 만한 저작이라면 소개되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튼 민족과 민족주의에 대한 이해를 한단계 심화시켜줄 만한 노작이 나온 듯싶어 반갑다...

 

1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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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저자'를 고른다. 국내 저자로만 골랐는데, 먼저 <한국사 이야기(전22권)>(한길사)의 저자, 역사학자 이이화 선생의 신간으로 <허균의 생각>(교유서가, 2014)가 출간됐다. 자서전 <역사를 쓰다>(한겨레출판, 2011) 이후 단행본으로는 <처음 만나는 우리문화>(김영사, 2012) 다음인 듯싶다. 허균에 관한 책은 드물지 않은데, 이이화판 허균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가.

 

역사학자 이이화의 첫 책으로 초판 출간 당시 독서계에 ‘허균’ 바람을 일으켰던 위험한 책 <허균의 생각>이 수정·보완을 거쳐 새로 출간되었다. 이번 개정판에는 허균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그의 글을 추가로 풍부하게 실었다. 이 책은 명문가에서 태어나 당대 최고의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으나 끝내 역모죄에 얽혀 능지처참에 처해졌던 허균의 파란만장한 생애와 사상을 오롯이 담고 있다.

찾아보니 초판이 나온 건 1980년이고 한때 금서 목록에 오르기도 했으며 두 차례 수정판이 나온 바 있다고 한다. "이번에는 기존의 내용을 대폭 수정하고 허균의 저작을 더 많이 예시하여 독자들의 감상과 평가를 유도하려" 해고 "그의 고발정신과 저항정신, 그리고 열렬한 개혁의지와 냉철한 현실인식이 현대에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메시지를 담았다"는 게 저자의 말이다.

 

 

 

허균에 관해서는 전기소설로 이병주의 <허균>(나남, 2014)과 김탁환의 <허균, 최후의 19일>(민음사, 2009)를 들 수 있고, 국문학자 허경진 교수의 <허균 평전>(돌베개, 2002)과 <청소년 위한 허균 산문집 홍길동전>(서해문집, 2013), 그리고 김풍기 교수의 <독서광 허균>(그물, 2013) 등이 같이 참고할 만한 책들이다.

 

 

이어서 얼마전 핫이슈를 몰고 오기도 했던 법학자 이상돈 교수. 주로 미국의 외교와 국제정세에 관한 외서들을 읽고 적은 서평집으로 <공부하는 보수>(책세상, 2014)가 출간됐다(나온 지는 두어 주 된 듯싶다). 제목에 걸맞게 저자의 공부 내공을 보여주는 책이기도 한데, 말 그대로 읽어볼 만한 책들의 가이드북 역할에 충실하다.

‘합리적 보수’ ‘열린 보수’로 평가받는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는 지난 7년 동안 꾸준히 세계의 정치·경제·사회·외교·군사 분야의 미번역 영어 저작들을 읽고 분석하고 우리 현실에 대입하며 공부해왔다. 이 책은 그렇게 읽은 100권의 영어 책에 대한 서평집이자 공부 일기이자 세상 읽기의 결실이다. 2003년부터 2013년까지 미국에서 출간된 서구 보수 지식인들의 일급 저서 100권을 골라 그들이 세계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예측하는지 소개하고,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덧붙였다.  

저자의 다른 책으론 '보수적 자유주의자 이상돈 교수의 3년여간에 걸친 MB 정책 비판 보고서'로 나온 <조용한 혁명>(뷰스, 2011)과 <비판적 환경주의자>(브레인북스, 2006) 등이 눈길을 끄는데, MB정부의 4대강 사업을 가장 앞장 서서 비판한 점은 높이 살 만하다. 다른 쟁점에 대해서는 의견을 달리할 수 있지만 '反MB' 전선의 대오에서는 같은 편에 설 수 있겠다. 그게 '최소한의 양심적 보수' 아닐까. 가치가 아닌 돈에 편에 선 '사이비 보수'를 걸러내는 보수 말이다.

 

 

그리고 끝으로 미술사학자 최완수 선생. <겸재 정선(전3권)>(현암사, 2009)을 펴낸 데 이어서(겸재에 대한 다른 책으론 <겸재를 따라가는 금강산 여행>, <겸재의 한양진경> 등이 있다) 이번에는 추사 김정희의 글을 옮긴 <추사집>(현암사, 2014)을 펴냈다(<추사 평전>도 근간 예정이다). 이 역시 38년 전에 나온 책의 복간본인데, "그동안 수정을 거듭해왔던 <추사집>의 번역문과 원문을 꼼꼼히 대조하는 작업에 돌입하여 아쉬운 부분들을 과감하게 바로잡아 나갔다. 주석(註)의 도움 없이 이해가 어려운 내용은 더욱 보충했다" 한다.

 

 

절판된 책이긴 하나 추사에 관한 책으론 한승원의 장편소설 <추사>(열림원, 2007)이 있으며, 최근에 나온 책으로는 설흔의 <추사의 마지막 편지, 나를 닮고 싶은 너에게>(위즈덤하우스, 2013)가 '삶.사람.사물을 대하는 김정희의 지혜'를 전해주는 책이다...

 

14. 10.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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