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998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스턴버그의 <입시가 바뀌면 인재가 보인다>(시그마북스, 2012)를 서평감으로 골랐는데, 교육전문가가 아닌 심리학자가 제안하는 입시개혁은 어떤 것인가 궁금해서 선택했다. 사랑의 심리학에 관한 책 저자로만 알고 있었는데 '성공지능이론'의 주창자이기도 하고 국내에 이미 관련서들이 소개돼 있다. 대선 후보들이 입시제도와 관련하여 어떤 개혁안들을 갖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참고할 만한 견해라고 생각된다.

 

주간경향(12. 10. 30) '대안입시’란 무엇인가

 

입시철에 나올 만한 흔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입시가 바뀌면 인재가 보인다>는 국내 교육전문가가 아닌 미국 심리학자의 책이다. 저자 로버트 스턴버그는 지능과 인지 발달이 전공분야이며 ‘성공지능이론’을 제창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공한 학자이자 교육행정의 경험을 가진 저자가 제시하는 ‘대안입시’란 무엇이고, 우리에겐 어떤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까.
 

스턴버그는 대학입시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담을 먼저 들려준다. 예일대에 지원했으나 대기자 명단에 올랐던 경험이다. 다행히도 그는 입학하게 되고 최우등 학생으로 졸업까지 한다.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을 했으니 애초에 될성부른 학생이었을 텐데, 왜 떨어질 뻔한 것일까. 졸업 후에 대학 입학처 조교를 하면서 확인해보니 자신의 입시 면접 보고서에 ‘돌출형’이라고 기록됐더란다. 돌출형 학생을 원하는 대학은 많지 않을 것이다. 다행히 재능을 알아본 입학사정관이 손을 써서 그는 겨우 합격한 것이었다. 면접시험이 숨은 인재를 제대로 가려내지 못했다고나 할까.
 
대학에 들어와서도 어려움이 없었던 건 아니다. 심리학을 전공하기 위해 심리학입문을 들었는데, 요즘도 마찬가지지만 강의와 교재 내용을 잘 기억하는 게 관건인 수업이었다. 처음 제출한 소논문에서 10점 만점에 3점을 받았고, 암기력이 좋지 않은 스턴버그는 결국 이 수업에서 C학점을 받았다. 심리학입문 지식도 제대로 암기하지 못한 학생이었지만 스턴버그는 나중에 예일대학 교수가 되고 미국심리학회 회장도 역임한다. ‘학업에 중요한 기술’을 기준으로 학생을 대학에 입학시키고 또 성적을 평가하지만 직업에서의 성공은 그와는 다른 자질과 능력을 필요로 한다는 걸 알게 해주는 사례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인재’이지만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범죄자가 되는 경우도 있다. 하버드 비즈니스스쿨 졸업생이지만 미국 역사상 최대 기업 회계부정을 저지른 ‘엔론 스캔들’의 주역 제프리 스킬링, 예일대 출신이지만 미흡한 첩보를 근거로 이라크를 침공한 조지 부시 등이 대표적이다. 대단히 똑똑한 사람들이 자신의 지위와 국가를 위태롭게 한 사례는 적잖게 찾아볼 수 있다(어디 미국만의 사례이겠는가!). 스턴버그는 이런 사례들이 모두 현행 대학입시 문제점의 한 단면이라고 본다. 사회·경제적 중상류층에게 유리한 현재의 교육제도는 기억력과 분석력만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다른 능력들의 의의를 간과한다.

 

 

 
물론 시험만으로 세상을 뒤집을 수는 없다는 사실도 저자는 인정한다. 하지만 제도적 개선방안을 찾는 일이 전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스턴버그가 제안한 것은 성공지능이론에 기반한 새로운 입시제도이다. 분석지능 외에 그가 강조하는 것은 창조지능과 실용지능, 지혜다. 지혜란 “지능과 지식을 활용하여 공동선을 꾸준히 추구하는 기술”이다. 지혜는 단순히 이익을 극대화하는 능력이 아니라 여러 이익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조정하는 능력이다. 그런데 이런 능력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
 
스턴버그의 제안이 갖는 강점은 그것이 이론적 공상에만 그치지 않고 성공적인 적용사례를 통해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다. 그는 터프츠대학교의 학장으로 재직하면서 새로운 평가방식을 도입하여 흑인 등 소수계의 숨은 인재들을 발굴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터프츠대학의 입시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출제된다. “어떤 것이 당신을 독창적으로 사고하게 만드는가? 공동선에 기여하고 사회를 바꾸려면, 당신의 독창성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고등학교 교과과정은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지적 자유를 제한한다. 당신의 대학생활을 마음속에 그려보면서, 당신이 품은 열정 가운데 좌절된 것을 기술해보라.” 시험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겠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인재는 발견해줄지 모른다.

 

12. 10.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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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이다. 푸른역사 아카데미에서 월요강좌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11월과 12월에는 정치철학을 주제로 두 권의 책을 읽기로 했다.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개마고원, 2011)과 마이클 샌델의 <민주주의의 불만>(동녘, 2012)이다. <정치의 생각>은 마이클 샌델이 추천한 정치철학 입문서이다. 자세한 강의일정에 대해서는 http://cafe.daum.net/purunacademy/8Bko/65 참조하시기 바란다.

 

 

 

<강의일정>
11월 5일 ~ 12월 26일 (8주) 매주 월요일 저녁 8시 ~ 10시 (12월 26일만 수요일)

1. 11월 05일 ~ 11월 26일 (4주) 애덤 스위프트, <정치의 생각> (개마고원)
2. 12월 03일 ~ 12월 26일 (4주) 마이클 센델, <민주주의의 불만> (동녁)
 

곧 대선이 있습니다. 선택을 눈앞에 둔 11월과 12월은 어느 때보다 더 “정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고 이야기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번 <로쟈와 함께 읽는 인문학>에서는 정치철학에 대한 두 권의 책을 함께 읽습니다.
첫 번째 책은 애덤 스위프트의 <정치의 생각>입니다. 이 책은 정의, 자유 공동체 등 정치철학의 다섯 가지 개념들의 함의와 다양한 관점들에 대한 차이점을 밝혀주는 정치철학 입문서입니다.
두 번째 책은 마이클 센델의 <민주주의의 불만>입니다. 우리가 현대 민주주의에 대해 느끼고 있는 불만들이 어디에서 비롯되었고, 그 불만들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쾌하게 제시한 책입니다.
정치란 본디 혼란스러운 것이어서 유권자들은 이 혼란에 그저 휩쓸려 다닐 수밖에 없는 것일까요? 한국 사회에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런 일련의 사례들은 민주주의 정신에 과연 부합할까요? 라는 질문을 던져 볼 수 있는 이번 강의에 많은 참석 부탁드립니다.

12. 10.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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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러시아 문학의 거장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의 대표작 <체벤구르>(을유문화사, 2012)가 번역돼 나왔다(내가 알기엔 아직 영역본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소개를 옮기면, "플라토노프의 대표작이자 유일하게 완성된 장편 소설 <체벤구르>는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접해 보지도 못한 프롤레타리아들이 나름대로 혁명을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건설해 가는 공산주의 유토피아를 이야기하고 있다. 노동자들과 농민들, 제대로 배우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혁명을 받아들이고 공산주의 이념을 실현하는지를 그들의 시선으로 그려 내고 있다." 이로써 플라토노프의 주요 중단편과 장편이 국내에 소개된 셈이다. 기념 삼아 리스트를 한번 더 만들어놓는다(2010년 가을에도 만든 적이 있다). 아래는 레프 도진의 연극 <체벤구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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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벤구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윤영순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10월
17,000원 → 15,300원(10%할인) / 마일리지 850원(5% 적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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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피판의 갑문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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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틀로반 (무선)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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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덩이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정보라 옮김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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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시리즈'의 마지막 권 <희망의 배신>(부키, 2012)이 출간됐다. 서두에 붙인 추천사를 옮겨놓는다. '배신 3부작'의 한권으로 읽어도 좋고, 중산층 문제를 다룬 책으로 읽어도 좋겠다. '우리의 침묵을 깨우는 각성제'란 제목은 편집부에서 붙여준 것이다.

 

 

 

우리의 침묵을 깨우는 각성제

 

‘워킹푸어 생존기’ <노동의 배신>에 뒤이어 ‘화이트칼라 구직기’ <희망의 배신>이 이번에 번역됨으로써 <긍정의 배신>을 통해 우리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이 완결되었다.

 

 

원제와는 다르지만 ‘배신’이란 단어만큼 그의 책들이 전해주는 임팩트를 실감나게 전달해주는 말도 드물다. 이 세 권의 책과 함께 ‘1%를 위한 세상’을 비판하는 <오! 당신들의 나라>까지 포함하면 저널리스트 겸 원숙한 사회비평가로서 저자가 2000년대에 펴낸 대표작 대부분이 우리에게 소개되는 셈이다.

 

긍정적 사고가 어떻게 우리의 발등을 찍는지 여실히 보여준 <긍정의 배신>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은 무엇이었나? 저자는 자칭 ‘긍정적인’ 사람들이라는 미국인들의 자화상을 신랄하게 묘사하고 미국식 낙관주의의 허상을 폭로했지만, 놀랍게도 그것은 우리의 자화상이기도 했다.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류의 자기계발서가 마치 복음서처럼 읽힌 연대가 우리의 2000년대 첫 10년이었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가속화되던 시기에 우리는 온갖 성공신화의 중독자였다(결국엔 MB정권까지 탄생시킨!). 모든 문제의 원천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되뇌면서 “새로운 치즈를 마음속으로 그리면 치즈가 더 가까워진다.”거나 “과거의 사고방식은 새로운 치즈로 우리를 인도하지 않는다.” 등의 주문을 아침마다 주워섬겼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그러한 주문이 얼마나 허황한 것이었던가를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추락하는 삶에는 날개가 없다는 사실도.  

 

<노동의 배신>과 <희망의 배신>은 <긍정의 배신>의 전사(前史)이자 ‘에피소드’이다. <노동의 배신>은 저자가 50대 후반의 나이에 저임금 노동의 실상을 몸소 겪고 쓴 일종의 ‘체험 삶의 현장’으로서 저임금 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임금은 너무 낮고 집세는 너무 높기에 열심히 일하는 것만으로는 숙식도 해결하기 벅찬 것이 오늘날 노동의 현실이다. 물론 그것은 미국만의 현실이 아니라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

 

<노동의 배신>에 뒤이은 <희망의 배신>은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현실을 다룬다. 저임금 노동과는 달리 이 경우는 노동이 아니라 구직 자체가 문제다. 저자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위장하여 기업체 임원급으로 취업하려고 수개월간 유료 코칭도 받고 네트워킹 행사에도 참여하고 이미지 카운슬링도 받는다. 이 과정에서 구직자는 철저하게 자신을 시장에 내다팔 수 있는 하나의 ‘상품’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기술과 노동을 파는 블루칼라 노동자와는 달리 화이트칼라는 ‘자기 자신’까지 팔아야 한다. “CEO가 바보일 수도 있습니다. 기업 행위가 불법의 경계선에 있을 수도 있어요. 그렇다 해도 당신은 일체의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몸 바쳐 일해야 합니다.”라는 한 카운슬러의 충고는 화이트칼라의 노동현실을 잘 요약해준다. 일자리의 안정성이 무너졌을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도 희생되고 있는 것이 그 현실이다. 

 

저자는 온갖 노력에도 실패를 거듭하는데 바로 이 실패의 과정이 또한 우리 시대 중산층 화이트칼라가 처한 냉정한 현실이다. 미국에서는 1990년대 중반부터 기업 고위 경영자가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앤 대가로 높은 연봉을 받는 추세가 뚜렷해졌다. 이것이 구조조정의 실상이다. 대량의 정리해고와 아웃소싱을 단행한 CEO가 그렇지 않은 CEO보다 더 많은 보수를 챙기는 것이 오늘날 기업의 현실인 것이다. 저널리스트 이전에 생물학 전공자답게 저자는 그러한 현실을 ‘포식자의 세상’이라고 표현한다. 다른 사람의 일자리를 없애야 경영자로서 살아남을 수 있는 세상에서 소위 ‘좋은 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이러한 현실의 필연적 귀결이 저자가 ‘중산층 대참사’라고 부른 중산층의 몰락이다.
 
물론 이 모든 것이 미국의 현실이라고만 치부하기엔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다. 청년실업과 중장년층의 정리해고와 재취업난은 우리에게도 일상이 되었으니까. 어떤 해결책이 가능한가? 저자는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뭉쳐 자신들의 존엄성과 가치를 주장하기 전까지는 아무 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희망의 배신>은 그런 각성의 계기를 마련해준다. 우리가 적어도 생쥐보다는 더 나은 존재라는 각성 말이다. 

 

12. 10. 21.

 

 

 

P.S. '중산층 대참사'와 관련해서는 에런라이크의 책 외에도 톰 하트만의 <중산층은 응답하라>(부키, 2012), 그리고 조준현의 <중산층이라는 착각>(위즈덤하우스, 2012)을 더 참고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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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에 '10 그레이트 이펙트'란 시리즈가 출간돼 첫 세 권을 주문했다. 책은 어제 받았는데, 가장 먼저 펼쳐든 건 알베르트 망구엘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세종서적, 2012)다. 지난 학기에 원서를 구해놓았기 때문이다. 원서의 시리즈명은 '세계를 뒤흔든 책들(Books that shook the world)'이고, 각 책의 부제는 '전기(A Biography)'로 돼 있다. 책의 저자가 아닌 책의 전기가 이 시리즈의 컨셉이다(뭔가 임팩트 있는 제목을 고르다 보니 번역본 시리즈는 '이펙트'가 된 모양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필두로 토머스 페인의 <인권>까지 세권이 1차분으로 나왔는데, 나머지 일곱 권의 책은 <성서>, <꾸란>, <전쟁론>, <자본론>, <국가론>, <국부론>, <군주론> 등이다. 모두 저명한 학자들이 저자로 나섰기에 꽤 읽어볼 만한 교양서가 될 듯싶다. 역자들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았다. 완간을 고대하는 이유다.

 

 

그런 기대와는 별도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의 '들어가는 말'을 읽다가 '옥에 티'가 있기에 적어놓는다. 두 서사시의 저자 호메로스의 경우는 '호메로스 문제'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많은 논쟁의 대상인데, 망구엘이 그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그는 먼저 이렇게 전제한다.

하나의 책에 관한 전기는 그것을 쓴 사람의 전기가 아니다. 하지만 호메로스와 그의 두 시들의 경우에는 예외이다. 작가와 작품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간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로이아인들이 살던 도시의 멸망, 그리고 자신의 집을 향한 어느 그리스왕의 갈망에 관해 노래하는 눈먼 음유시인이 먼저인지, 아니면 전쟁을 향한 유혹과 평화를 향한 모색에 관한,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실재했다고 입증해줄 하나의 작가를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16쪽)

보통은 작가가 먼저 존재하고 그가 쓴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지만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그가 정말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란 방대한 서사시를 직접 쓴 '저자'인지 불분명하기에(<일리아스>의 저자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를 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음유시인'이 먼저인지 '이야기들'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호메로스가 일례이지만 작가와 작품 혹은 그 주인공의 관계는 일률적이지 않다.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것을 읽는 독자의 눈에 흥미진진한 관계를 형성한다. 책들 가운데는 작가가 영감을 불어넣은 언어를 통해 그 작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지 암시해주는 생생한 등장인물들을 마치 주문처럼 불러들이는 책도 있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 햄릿과 셰익스피어가 적절한 예다. 작가들 중에는 - 오스카 와일드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했듯이 - 자신의 삶 자체가 자신의 천재성을 그릇처럼 담아낼 수 있는 작가도 있고, 책들이 곧 자신들의 재능의 생산품이 되는 작가도 있다.  

망구엘은 여기서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작품이 작가를 압도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작가가 작품을 압도하는 경우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전자의 좋은 사례다. 굳이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따로 참조하지 않더라도 돈키호테와 햄릿이란 두 주인공은 불멸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작가가 영감을 불어넣은 언어를 통해 그 작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암새해주는 생생한 등장인물들"인 셈인데, 여기서 '암시해주는'이라고 옮긴 동사는 'overshadow'이다. '가리다' '빛을 읽게 하다'란 뜻으로 '작가를 무색하게 하는 주인공들'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스카 와일드처럼 작가가 작품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다. "자신의 삶 자체가 자신의 천재성을 그릇처럼 담아낼 수 있는 작가도 있고, 책들이 곧 자신들의 재능의 생산품이 되는 작가도 있다"라고 (마치 두 작가가 있는 것처럼) 옮겼는데, 원문은 "There are writers whose lives are the recipients of their genius, and whose books are only the product of their talent."이다. "자신의 삶 자체가 천재성을 담는 그릇이고 작품은 단지 그 재능의 산물인 작가들이 있다." 정도로 옮길 수 있다. 호메로스는 어느 쪽인가.

호메로스와 그의 작품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그 작품들의 긴 역사 속에는 독자들이 그 작품들을 두번째 범주에 맡기기로 선택했던 때도 여러 차례 있었다.(16-7쪽)  

첫번째 범주라는 것은 작품이나 주인공이 작가보다 더 빛을 발하는 경우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저자와 무관하게 존재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때로는 두 서사시를 '위대한 호메로스'의 천재성이 낳은 결과로 이해하던 때도 있었다는 애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 원전 번역은 현재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유일하다. 서양고전학자로서 역자는 새로운 번역본을 준비중인 듯한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의 작품 인용은 역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 눈길이 간다. 

 

 

아마도 다음 세대 번역으로는 이미 두 권의 해설서를 쓴 강대진 박사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번역과 함께 기대해봄직하다. 내년 1학기에는 두 서사시를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12. 10.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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