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10 그레이트 이펙트'란 시리즈가 출간돼 첫 세 권을 주문했다. 책은 어제 받았는데, 가장 먼저 펼쳐든 건 알베르트 망구엘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세종서적, 2012)다. 지난 학기에 원서를 구해놓았기 때문이다. 원서의 시리즈명은 '세계를 뒤흔든 책들(Books that shook the world)'이고, 각 책의 부제는 '전기(A Biography)'로 돼 있다. 책의 저자가 아닌 책의 전기가 이 시리즈의 컨셉이다(뭔가 임팩트 있는 제목을 고르다 보니 번역본 시리즈는 '이펙트'가 된 모양이다).

 

 

 

다윈의 <종의 기원>을 필두로 토머스 페인의 <인권>까지 세권이 1차분으로 나왔는데, 나머지 일곱 권의 책은 <성서>, <꾸란>, <전쟁론>, <자본론>, <국가론>, <국부론>, <군주론> 등이다. 모두 저명한 학자들이 저자로 나섰기에 꽤 읽어볼 만한 교양서가 될 듯싶다. 역자들 또한 해당 분야의 전문가들이 맡았다. 완간을 고대하는 이유다.

 

 

그런 기대와는 별도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의 '들어가는 말'을 읽다가 '옥에 티'가 있기에 적어놓는다. 두 서사시의 저자 호메로스의 경우는 '호메로스 문제'라는 말이 있을 만큼 많은 논쟁의 대상인데, 망구엘이 그 문제에 대한 견해를 밝히고 있는 대목이다. 그는 먼저 이렇게 전제한다.

하나의 책에 관한 전기는 그것을 쓴 사람의 전기가 아니다. 하지만 호메로스와 그의 두 시들의 경우에는 예외이다. 작가와 작품은 손을 맞잡고 함께 간다. 어느 쪽이 먼저인지 아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트로이아인들이 살던 도시의 멸망, 그리고 자신의 집을 향한 어느 그리스왕의 갈망에 관해 노래하는 눈먼 음유시인이 먼저인지, 아니면 전쟁을 향한 유혹과 평화를 향한 모색에 관한, 그리고 이런 일들이 실재했다고 입증해줄 하나의 작가를 요구하는 이야기들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16쪽)

보통은 작가가 먼저 존재하고 그가 쓴 작품들이 탄생하는 것이지만 호메로스의 경우에는 그가 정말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란 방대한 서사시를 직접 쓴 '저자'인지 불분명하기에(<일리아스>의 저자와 <오디세이아>의 저자를 따로 보는 견해도 있다), '음유시인'이 먼저인지 '이야기들'이 먼저인지 알 수 없다고 한 것이다. 호메로스가 일례이지만 작가와 작품 혹은 그 주인공의 관계는 일률적이지 않다.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들은 그것을 읽는 독자의 눈에 흥미진진한 관계를 형성한다. 책들 가운데는 작가가 영감을 불어넣은 언어를 통해 그 작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지 암시해주는 생생한 등장인물들을 마치 주문처럼 불러들이는 책도 있다. 돈키호테와 세르반테스, 햄릿과 셰익스피어가 적절한 예다. 작가들 중에는 - 오스카 와일드가 자기 자신에 관해 말했듯이 - 자신의 삶 자체가 자신의 천재성을 그릇처럼 담아낼 수 있는 작가도 있고, 책들이 곧 자신들의 재능의 생산품이 되는 작가도 있다.  

망구엘은 여기서 작가와 작품의 관계를 두 가지로 구분한다. 하나는 작품이 작가를 압도하는 경우, 다른 하나는 작가가 작품을 압도하는 경우다. 돈키호테와 햄릿은 전자의 좋은 사례다. 굳이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따로 참조하지 않더라도 돈키호테와 햄릿이란 두 주인공은 불멸의 생명력을 자랑한다. "작가가 영감을 불어넣은 언어를 통해 그 작가가 실제로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암새해주는 생생한 등장인물들"인 셈인데, 여기서 '암시해주는'이라고 옮긴 동사는 'overshadow'이다. '가리다' '빛을 읽게 하다'란 뜻으로 '작가를 무색하게 하는 주인공들'이라고 하는 게 더 낫겠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스카 와일드처럼 작가가 작품을 무색하게 만드는 경우다. "자신의 삶 자체가 자신의 천재성을 그릇처럼 담아낼 수 있는 작가도 있고, 책들이 곧 자신들의 재능의 생산품이 되는 작가도 있다"라고 (마치 두 작가가 있는 것처럼) 옮겼는데, 원문은 "There are writers whose lives are the recipients of their genius, and whose books are only the product of their talent."이다. "자신의 삶 자체가 천재성을 담는 그릇이고 작품은 단지 그 재능의 산물인 작가들이 있다." 정도로 옮길 수 있다. 호메로스는 어느 쪽인가.

호메로스와 그의 작품들은 첫번째 범주에 속한다. 그러나 그 작품들의 긴 역사 속에는 독자들이 그 작품들을 두번째 범주에 맡기기로 선택했던 때도 여러 차례 있었다.(16-7쪽)  

첫번째 범주라는 것은 작품이나 주인공이 작가보다 더 빛을 발하는 경우다. <일리아스>나 <오디세이아>는 저자와 무관하게 존재감을 자랑한다. 하지만 때로는 두 서사시를 '위대한 호메로스'의 천재성이 낳은 결과로 이해하던 때도 있었다는 애기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 원전 번역은 현재 천병희 선생의 번역이 유일하다. 서양고전학자로서 역자는 새로운 번역본을 준비중인 듯한데,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이펙트>의 작품 인용은 역자가 직접 번역한 것이라 눈길이 간다. 

 

 

아마도 다음 세대 번역으로는 이미 두 권의 해설서를 쓴 강대진 박사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번역과 함께 기대해봄직하다. 내년 1학기에는 두 서사시를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

 

12. 10. 20.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