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잔차기스의 고향 크레타섬은 미노스문명(혹은 미노아문명)의 본산이다. 지중해문학기행을 앞두고 이런저런 고대사 책을 들춰보는데, 중국 역사학자 쑨룽지의 <신세계사1>(전3권 가운데 2권까지 번역됐다)에도 관런한 내용이 있다. ‘뱀을 쥐고 있는 여신‘에 대해서 궁금했는데 짧게 기술돼 있다(‘뱀의 여신‘상은 복식사에서 중요한 자료이기도 하다). 미노스문명의 여신숭배에 대해선 더 전문적인 책을 알아봐야겠다...


크노소스 유적지에서 출토된 양날 도끼 역시 소의 뿔에서 영감을 얻은 것인 듯하다. 소에 대한 이러한 숭배가, 당시 그리스반도 사람들이 보기엔 나쁜 신인 소머리 괴물 미노타우로스에 대한 숭배로 간주되었다. 하지만 고대 이집트에서는 여신 하토르가 소뿔을 머리에 쓰고 있었으며, 신성한 소 아피스에 대한 숭배 역시 이집트에서 내내 지속되었다. 미노스 문명에도 여신 숭배가 있었다. 양손에 각각 뱀을 쥐고 있는 여신의 상은, 허리가 꽉 조이는 긴 치마를 걸치고 가슴을 드러낸 모습이다. 캉캉 스타일의 치마는 마치 19세기 파리 여성의 패션 같다. - P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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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한파로 외출을 자제(세탁기 사용도 자제) 당부를 지키며 강의자료를 만들다가 한숨 돌린다. 막간에 최근에 나온 알랭 바디우 세미나 두권에 대해 적는다. 철학서 독자들에게는 솔깃하게도 니체와 라캉, 두 권이 한꺼번에 나왔다. 알고보면 바디우의 '반철학 세미나' 시리즈의 두 권이다. 앞서 나왔던(2015년에 나왔다) 비트켄슈타인까지 포함하면 반철학 3종 세트다(세미나의 진행순서는 니체-비트겐슈타인-라캉이었다). <자크 라캉>에 대한 소개는 이렇다. 
















"알랭 바디우가 1994~1995년에 진행한 세미나를 엮은 책이다. 바디우는 라캉의 여러 텍스트를 ‘반철학’이라는 키워드로 독해한다. 반철학은 철학의 제일 목표인 ‘진리’를 해임하고자 하는 담론을 말한다. 따라서 반철학의 관건은 철학자라고 하는 지독하게 아픈 인간을 낫게 하는 것이다. 서구 사유의 역사가 철학과 반철학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보는 바디우는 라캉의 텍스트를 정교하게 독해한 후 라캉을 ‘최후의 반철학자이자 가장 정교한 반철학자’라고 규정한다. 나아가 라캉 반철학의 비판으로부터 철학을 옹호하며 라캉 반철학 담론이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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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캉에 관한 책은 루디네스코와의 공저 <라캉, 끝나지 않은 혁명>이 앞서 나왔으니 같이 참고할 수 있겠다. <라캉>과 <비트겐슈타인> 모두 영어판이 나와있고 <니체>도 출간된 걸로 보이는데, 알라딘에는 뜨지 않는다(인터엣에서 쉽게 다운받을 수 있다). 니체에 대한 강의를 기획하면서 전열을 정비하려는 중에 니체 세미나가 출간돼 반갑다. 분량이 좀 되는 책이라 검토하는 일에도 시간이 꽤 소요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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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볼링>(2000)으로 화제를 모았던 미국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의 후속작 <업스윙>이 출간됐다. 이번이 아니라 지난봄에. 2020년작이 2022년에 번역됐으니 늦은 건 아니다. 대신 뒤늦게 주목하게 된 건 도스토옙스키 문학의 여정에 대해 강의해온 것과 그의 사회학적 문제의식이 정확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보여서다(도스토옙스키 강의책을 이번봄에 출간할 예정이다).

가령 <업스윙>의 부제 ‘나 홀로 사회인가 우리 함께 사회인가‘는 곧바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의 주제 아닌가? 에피그라프로 쓰인 요한복음의 구절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가 뜻하는 바이기도 하다. <나 홀로 볼링>을 <지하로부터의 수기>에 대응시킨다면, <우리 아이들>(2015)을 거쳐서 <업스윙>에 이르는 여정은 곧바로 <지하로부터의 수기>에서 <카라마조프>에 이르는 도스토옙스키의 여정이기도 하다.

퍼트남의 이론적 관심이 독자적인 것인지 문학적 영감에 따른 것인지 문득 궁금하다(가령 철학자 레비나스 같은 경우는 도스토옙스키로부터 받은 영감과 영향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독자적인 것이라 해도 내게는 의미심장한 우연의 일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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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가스 요사의 <켈트의 꿈>은 2010년 바르가스 요사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10월) 직후에 발표한 소설이다(11월 출간). 물론 그 이전에 집필을 완료하고 인쇄에 넘겼을 작품이다. 노벨상 발표 이후 그의 정치적 입장 내지 편럭과 관련하여 많은 비판이 쏟아지기도 했지만 <켈트의 꿈>은 그가 우리시대의 거장이며 뛰어난 작가라는 사실을 한번더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74세에도 이런 작품을 써내는 작가정신은 모범이 될 만하다...

아래 인용문에는 오역이 들어 있는데, 주인공인 영국 영사 로저 케이스먼트가 콩고 공안군의 장교 마사르 대위에게 병사들의 만행을 비판하자 대위가 답변하는 대목이다. 그는 인권문제가 아닌 생산성 저하를 이유로 병사들을 비난한다. ˝그 손과 성기가 잘린 병사들˝의 등짝을 두들겨패겠다? ˝그 손과 성기를 자른 병사들˝로 옮겨져야 한다. 착오이지만 정반대의 의미가 돼버렸다...

"정말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마사르 대위님. 케이스먼트가 언성을 높이지 않으면서 아주 느릿하게 말했다. "제가 볼로보 병원에서 본 그 짓이겨진 손과 잘린 성기는 도저히 수용할 수 없는 만행처럼 보입니다."
"그렇죠, 물론, 그렇습니다." 대위가 싫은 표정을 지으며 즉시 수긍했다. "그리고 그보다 더 심각한 건 말이죠, 영사님, 그게 엄청난 인력 낭비라는 겁니다. 절단당한 그 남자들은 더이상 일할 수 없거나, 한다 해도 엉망으로 할 것이고, 생산성은 최저가 될 테니까요. 우리가 여기서 겪고 있는 노동력 결핍은 진정한 범죄입니다. 그 손과 성기가 잘린 병사들을 내 앞에 데려와봐요. 그러면 내가 그자들 핏줄에 피 한방울 남지 않을 때까지 등짝을 두들겨패버릴 겁니다." - 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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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사에서 위대한 비극의 시대는 단 두번, 페리클레스의 시대 아테네와 엘리자베스 1세 시대의 영국에 있었다고 하면서 두 시대의 공통점을 설명하는 대목이다...

마라톤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에서 승리한 자들과, 스페인과 싸우고 무적함대가 침몰해가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자들은 자부심에 가득차 있었다. 세상은 경탄의 장소였고, 인류는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웠으며, 행운의 절정에서 삶이 영위되었다. 특히 영웅주의의 감동적인 기쁨이 인간의 가슴을 휘저었다. 비극을 위한 소재가 아니지 않은가라고 여러분은 질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행운의 절정에서 인간은 틀림없이 비통함이나 벅찬 기쁨을 느낀다. 인간은 단조로이 느낄 수없다. 인생 속에서 비극을 보는 정신의 기질과 환희를 보는 기질은 정반대의 것이 아니다. 인생에 대한 비극적인 시각과 정반대되는 지점에 있는 것은 인생을 천박하게 보는 시각이다. 인간의 존엄성과 중요성을 결여하고 있고, 경박하고 비열하고 처량하게 희망이 없는 상태에 매몰되어 있다고 생각될 때, 비극의 정신은 떠나버린다. "언젠가 왕의 휘장을 입은 찬란한 비극이 스쳐 지나가게 하자." 그 반대극점에 고리키가「밑바닥에서(Na dne)」와 함께 서 있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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