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가까이에 체호프가 크니페르와 주고받은 서신집이 눈에 띄어서 잠깐 적는다. 내가 갖고 있는 건 영어판 선집이다. <Dear Writer... Dear Actress...>란 제목인데, 요즘식으로 번역하면 <친애하는 작가님... 친애하는 배우님> 정도 될까? 두 사람은 연애시절에, 그리고 결혼 이후에도 많은 양의 편지를 주고받아서 러시아어판으로는 500쪽이 넘는다. 영어판은 선집이라 290쪽 분량.

 

 

영어판으로 체호프의 편지들은 <서신 속의 삶>(펭귄)이란 선집으로도 나와 있다. 가족과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들은 또 다른 판본으로 나와 있고. 찾아 보니 <서신 속의 삶>에 대해서는 닉 혼비가 독후감을 쓴 게 있었다. <닉 혼비 런던스타일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9)에 수록돼 있는데, 이 책도 어느 사이엔가 절판된 모양이다. 2010년 초에 적은 한 페이퍼에 내가 이런 언급을 남겼다.

 

"어젯밤 문득 닉 혼비의 <런던스타일 책읽기>(청어람미디어, 2009)를 빼들었다가 우연히 체호프의 편지들에 관한 수다를 읽고서 '런던스타일로 체호프 읽기'란 페이퍼를 구상했지만 실행하지는 못했다. 쾌락원칙뿐만 아니라 현실원칙도 고려해야 하는 게 '현실'이므로 몇 가지 핑계를 대 욕구의 좌절을 정당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하면서 든 생각은, 그런 발상의 '쓸모없는 책얘기'는 정말 나밖에 할 사람이 없겠다는 것과(쓸모없으니까!) 하지만 그런 얘기들을 늘어놓기 위해선 나이도 그만 먹고 휴가를 가질 필요가 있겠다는 것이었다. 체호프에게 얄타라는 휴양지가 필요했듯이." 

 

'런던스타일로 체호프 읽기'를 구상했다지만 지금은 생각나는 게 아무것도 없다. 닉 혼비의 책을 다시 들춰봐야 떠올릴 수 있을 듯. 닉 혼비의 책은 한때 꽤 인기가 있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한풀 껶인 것인지 근래에 나온 책들에 대해선 별로 반응이 없는 듯싶다 그래도 그의 잡식성 독서록 정도는 다시 나왔으면 한다(한때는 '런던스타일'이란 말을 유행어로 만들지 않았나?). 영어판도 2015년에 다시 나왔군.

 

 

생각해보면 체호프의 편지들만 우리에게 소개되지 않은 건 아니다. 변변한 전기도 한권 없다. 러시아어로, 영어로 나와 있는 전기가 드물지 않은데(대학원 때 내가 읽은 전기들은 절판된 걸로 보아 영어권에서도 많이 읽히지는 않는 듯하지만), 좀 아쉬운 일이다. 소개될 기회가 정녕 없는 것일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의 해설에도 적었지만 체호프의 작품을 읽는데 그의 전기가 필수적인 참고가 되는 건 아니다. 다만 그를 사랑하는, 애정하는 독자들이라면 '체호프의 모든 것'이 궁금하고 의미가 있는 것이고, 아직 변변한 서간집이나 전기조차 읽을 수 없는 현실은 분개할 만하다. 그렇지 않은가요, 작가님? 아니, 남의 편지들까지도 왜 꼭 읽으셔야 한답니까, 독자님?.. 

 

16.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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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에 세상을 떠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연설집이 나왔다.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민음사, 2016). 고등학생 때 쓴 졸업식 송별사(1944)부터 2007년 팔순에 노벨상 수상 25주년 기념행사에서 읽은 연설문까지 그의 일생에 걸친 연설문을 모았다. 그래도 분량이 많지는 않은데,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는 제목은 그의 삶에 대한 언급으로 읽힐 수 있겠다. "그는 이 지상에 글을 쓰러 왔지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

 

"세기의 이야기꾼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드물게 청중을 향해 섰던 연설문을 중남미 문학의 권위자 송병선 교수의 유려하고 생기 넘치는 번역으로 마르케스를 사랑하는 독자들의 귀에 전하는 <나는 여기에 연설하러 오지 않았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되었다. '연설이란 인류가 처한 곤경 가운데서도 가장 끔찍한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면서도 흔쾌히 연단에 올라 세상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을 전한 작가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책장 너머 청중들을 향하여 생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2014년 우리 곁을 떠났지만, 그의 음성은 그대로 책장 속에 남아 인간의 삶을 보다 즐겁고 풍요롭게 하는 이야기의 강력한 힘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우리에겐 그의 사후에 출간되었기에 '유작'으로도 읽히는데, 2014년에 나온 영어판도 마찬가지다. 원저인 스페인어판은 2010년에 나왔다. 연설문과는 또 다르게 마르케스의 마지막 인터뷰집도 2015년에 나온 게 있다. 아직 구입하지 않았다는 걸 알고 아침에 부랴부랴 주문을 넣었다...

 

16. 05. 21.

 

 

P.S. 참고로, 마르케스의 노벨문학상 수상연설은 <아버지의 여행가방>(문학동네, 2009)에도 실려 있다. 역시나 송병선 교수의 번역이다. 그리고 그의 '파리 리뷰'인터뷰는 <작가란 무엇인가1>(다른, 2014)에서 읽을 수 있다. 소설이 아닌 그의 책으론 자서전 <이야기하기 위해 살다>(민음사, 2007)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전체 3권 분량으로 기획했다는데, 건강이 악화돼 미완으로 남은 게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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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는 교양심리학이나 육아 쪽으로 돼 있지만 제목에 기대서 '이주의 과학서'를 한권 더 고른다. 폴 레이번의 <아빠 노릇의 과학>(현암사, 2016)다. 부제가 '아이에게 아버지가 필요한 과학적.심리학적.진화론적 이유'이니까 '남자는 어떻게 아버지가 되는가'란 제목이어도 무방했겠다. 저자는 미국의 과학저널리스트이고,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다섯 아이를 키우는 미국의 과학 저널리스트 폴 레이번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밝혀내기 위해 연구를 시작했고, 모든 남성은 부성 본능을 타고 태어나며, 아빠는 엄마와 꼭 같은 크기로 중요하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아이에게 아버지란 어떤 존재일까? 그리고 남성에게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또 어떤 의미일까? 아버지와 아이 관계를 깊이 있게 파고들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아버지와 아이 사이를 상세히 설명한다. 수정 이전부터 아이가 성인이 되기 전까지 아빠와 아이의 삶을 함께 탐구해나간다."

그냥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아니다. 첫 결혼을 해서 세 아이(아들 둘에 딸 하나)를 두었고, 이들이 장성한 이후 재혼하여 다시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러니까 '아빠 노릇'을 두번 해보게 된 셈. 요즘 같은 시기에 다섯 아이를 둔 것도 예외적이지만, 그렇듯 시차를 두고 반복해서 '아빠 되기'를 경험한다는 것도 드문 일이라고 해야겠다. 그런 경험에다 과학 저널리스트로서의 식견이 더해져서 꽤 쏠쏠한 가이드북을 펴냈다. 내심 아빠의 의미와 역할에 대해 잘 안다는 이들도(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필히 참고해볼 만한 책이다(내가 진작에 읽었더라면 좀더 나은 아빠가 됐을까?). 결혼과 출산을 앞둔 예비 부모에게도 필독서. <콰이어트>의 저자 수전 케인은 추천사에서 이렇게 적었다.

"자녀의 행복에 관심 있는 사람의 필독서인 이 책은 아버지의 중요성을 과학적으로 철저하게 분석한 아버지를 위한 찬가이다. 기품 있고 명쾌한 글쓰기를 통해 저자는 아버지에 관한 통념을 바꾸어 아버지를 어머니 바로 옆에 당당하게 자리하게 만든다."

저자의 최신작은 <게임 이론가의 육아 가이드>(공저)인데(<게임 이론에서 배우는 부모 노릇>으로 옮기는 게 나을까?) 이 또한 소개되면 좋겠다... 

 

16. 05.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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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은 과학책 얘기인데, '이주의 과학서'로 <리처드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옥당, 2016)를 고른다. 신간이지만 도킨스의 신작은 아니다. 원제는 <믿기지 않는 등반>(1997) 정도라고 옮길 수 있을까. 오래 전에 도킨스의 원저들까지도 여러 권 구한 적이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진화의 과정에 대한 해명으로 <눈먼 시계공>(사이언스북스, 2004)이나 <무지개를 풀며>(바다출판사, 2015)와 견줄 만한 책.

 

"논쟁을 몰고 다니는 도킨스 식 진화론 서술의 정수를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리처드 도킨스가 영국왕립연구소의 유명한 대중 과학 프로그램인 '크리스마스 강연' 내용을 토대로 이를 보강하고 재구성하여 완성한 책이다. 어린이와 어른 모두 공감하고 이해하기 쉽게 과학을 소개하는 강연에서 출발한 책답게 어려운 과학 지식도 비교적 알기 쉽게 썼다. 진화론에 대해 쉬우면서 이만큼 정교한 강의를 책으로 접할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다. 도킨스는 진화론의 지식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생명체의 존재와 그 탄생의 역사에 놀라움을 던져주고 그 과정을 함께 생각해보게 한다."

가장 쉽게 읽을 수 있는 도킨스의 진화론 강의라고 하니까 아직 그를 읽어보지 못한 독자라면 가장 먼저 손에 들어도 좋겠다.

 

 

하지만 어지간한 독자라면 그의 출세작 <이기적 유전자>(1976)를 읽었을 터인데, 올해가 출간 40주년이 되는 해라서 다음달에는 기념판도 나온다(표지는 9월에는 나오는 하드카바판이 더 마음에 든다). 이미 원서를 갖고 있지만 기념판이라니까 또 눈길이 간다(기념판 서문이라도 더 붙어 있지 않을까). 더불어 오랜만에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도 든다. <확장된 표현형>과 함께(이건 절판됐군).

 

 

짐작엔 도킨스 책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렸을 것 같은 <만들어진 신>(김영사, 2007)도 올해 원저 출간 10주년 기념판이 나온다(영국에서도 도킨스의 대표작은 <이기적 유전자>와 <만들어진 신>이 꼽힌다). 그러니까 2006년에 나왔던 책이다.  

 

 

대략 이 정도만 읽어도 부족하지는 않을 듯싶은데, 거기에 더 얹자면 번역본이 근간 예정인 <도킨스 자서전>이다. 두 권짜리인데, 원저의 표지는 다양하군. 아무려나 자서전까지 나온다면 도킨스 독자들에겐 더할 나위 없는 한 해가 될 듯싶다...

 

16.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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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코 작지 않은 역사' 시리즈의 책이 예상보다 빠른 템포로 출간되고 있다. 세번째 책으로 윌리엄 바이넘의 <창의적인 삶을 위한 과학의 역사>(에코리브르, 2016)가 나왔길래 상기하게 된 일인데, 앞서 존 서덜랜드의 <풍성한 삶을 위한 문학의 역사>(에코리브르, 2016)와 나이젤 워버턴의 <생각하는 삶을 위한 철학의 역사>(에코리브르, 2016)가 차례로 나왔었다. 그 가운데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이 <과학의 역사>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에서 뉴턴, 아인슈타인, 크릭과 왓슨을 거쳐 디지털 혁명에 이르는 위대한 모험의 역사를 수록한 책이다. 문명의 발생부터 디지털 시대에 이르는 과학이 40개의 짤막한 장으로 나뉘어 있으며, 각 장의 내용을 서술할 때, 먼저 사회적 배경을 찬찬히 설명해줌으로써 당시 과학의 상태나 발견들을 훨씬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저자 바이넘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듯한데, '가장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의학사>와 펭귄판 <종의 기원>의 서문을 쓴 걸로 보아 상당히 권위 있는 학자로 보인다. 그렇잖아도 문학사와 철학사에 비해 과학사 책이 부족해 보이는 터라(따지고 보면 문학사 책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지만) 여하튼 반갑다.

 

 

한편 나이젤 워버턴의 <철학의 역사>는 처음 소개되는 책이 아니다. <철학자와 철학하다>(에코리브르, 2012)로 나왔던 책의 개정판. 알고 보면 <문학의 역사>보다 먼저 나온 셈이다.

 

 

'결코 작지 않은 역사'는 예일대출판부의 '작은 역사(A Little History)' 시리즈를 옮긴 것인데, 어떤 책들이 더 나오는 건지(기획이 어디까지 돼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궁금해서 찾아봤다. 알라딘에서 검색되는 건 세 종이 더 있는데, 이미 번역돼 있는 <곰브리치 세계사>(비룡소, 2010)를 제외하면 <미국사>와 <종교사>가 더 남아 있다. <미국사>까지는 모르겠지만, <종교사>는 번역돼 나왔으면 싶다...

 

16. 0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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