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익스피어 400주기'를 맞아 고대했던 책이 드디어 출간됐다. 저명한 셰익스피어 연구자 스티븐 그린블랫의 <세계를 향한 의지>(민음사, 2016). 내용을 어림하게 해주는 건 부제 '셰익스피어는 어떻게 셰익스피어가 됐는가'다. 그린블랫의 단행본으로는 <1417년, 근대의 탄생>(까치, 2013)에 이어서 두번째 책이다.

 

"퓰리처상, 전미도서상 수상 작가이자 셰익스피어와 르네상스 영문학 연구로 정평이 나 있는 스티븐 그린블랫의 대표작. 지난 2005년에 출간된 이 책은 베일에 싸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일생을 새롭게 조명하며 학계로부터 큰 찬사를 이끌어 냈을 뿐 아니라 지금까지 20만 부가 넘게 팔리며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에 9주 동안 이름을 올리는 등 대중적으로도 성공을 거뒀다. 저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노튼 영문학 개관>과 <노튼 셰익스피어>의 편집을 주간하며 쌓아 온 자신의 역량을 <세계를 향한 의지>에 불어넣으며, '신역사주의 비평'의 실천자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워낙에 명망 있는 학자이고 유명한 책이라 나부터도 수년 전에 책을 구해놓았다(다행히 꽂혀 있는 자리를 알고 있다). 번역본은 성석제, 김연수 작가의 추천사도 수록하고 있는데, 최근 작품집 개정판을 펴낸 김연수의 추천사는 이렇다.

<세계를 향한 의지>는 셰익스피어가 작품을 쓰기 전에 마주했던 그 불가해하고 모순적인 우주를 흥미롭게 재현한다. 이를 위해 저자는 셰익스피어가 살았던 시대의 사회적, 제도적, 문화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다. 평전이 실증주의적으로 치밀해질 때 낭만주의적 천재는 피를 흘리며 죽는 게 일반적이지만, 오히려 우리는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400여 년 전 온갖 관습과 제약 속에서 살았던 셰익스피어가 쓴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읽힌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작가의 재능이란 어떤 시공간에 속하든 변치 않는 하나의 우주를 볼 수 있는 힘을 말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인 셈법으로 <세계를 향한 의지>는 '400주기 관련서'로 제임스 샤피로의 <셰익스피어를 둘러싼 모험>(글항아리, 2016)에 뒤이은 두번째 책이다(일본의 셰익스피어 연구자 오다시마 유시의 <처음 읽는 셰익스피어><셰익스피어, 인생의 문장들>이 더 나왔지만 너무 '초급용'이어서 제외하면 그렇다). 물론 성에 차지는 않는다. 다섯 손가락을 채워줄 걸로 기대했지만 몇 권이나 더 나올지 궁금하다. 이번주 토요일이 '세계 책의 날'이자 '400주기'가 되는 날이다...

 

16. 0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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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비교역사문화연구소에서 기획한 '트랜스내셔널인문학총서' 가운데 <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책과함께, 2016)을 훑어보다가 정준영 교수의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식민지 의학 교육과 헤게모니 경쟁'이란 논문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관심을 상기하게 되었다. 경성제국대학에 대한 관심이다. 1926년에 설립된, 식민지 조선의 이 대표적 고등교육 기관이 어떤 의미를 지녔고,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지 관심을 갖는다는 게 이상할 건 없다. 식민지 조선시대애 관심을 갖는다면 말이다.

 

 

게다가, 아직 구하진 못했지만 기본 자료 구실을 해줄 만한 책으로 <식민권력과 근대지식: 경성제국대학 연구>(서울대출판문화원, 2011)가 나와 있다. 내가 몇년 전에 우연히 백화점 중고매장에서 <다시 보는 경성제국대학>(푸른사상, 2013)을 구한 것도 <식민권력과 근대지식>에 촉발된 관심 때문이었다. 알고 보니 공저자로 참여한 정준영 교수의 박사학위논문이 <경성제국대학과 식민지 헤게모니>(서울대, 2009)다. 단행본으로 나오면 좋겠다 싶다.

 

 

경성제국대학 관련서는 많지 않다. 정선이의 <경성제국대학 연구>(문음사, 2002)는 학위논문에 바탕한 걸로 보이는데, 일종의 개관이고, 경성제국대학 위생조사부에서 펴낸 <토막민의 생활과 위생>(민속원, 2010)이나 법문학부의 조선어조선문학전공 교수였던 다카하시 도루의 <식민지 조선인을 논하다>(동국대출판부, 2010) 등이 자료적 의미를 갖는 책들이다.

 

경성제국대학이란 무엇이었던가. 정준영 교수는 이렇게 정리한다. "근대적 지식 체계의 생산(연구)과 배분(교육)에서 독보적인 권위를 학보하고 이를 통해 식민지인들 사이에 식민 지배의 정당성을 납득시키고자 했다는 점을 주목한다면, 경성제대를 식민 당국의 헤게모니 프로젝트의 일종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식민주의 역사학과 제국>, 296쪽)

 

물론 '있지 않을까?' 정도로는 부족하고, 좀더 구체적으로 그 의미와 역할이 규명되어야 한다. 아직은 초입 단계로 보이지만 경성제국대학과 식민지 지식장에 대한 연구가 의미 있는 성과로 이어지면 좋겠다. 언제든 읽을 준비가 돼 있다...

 

16.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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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만으로는 기후에 관한 책인 줄 알았는데, 뜻밖에도(나 혼자 뜻밖인가?) 감수성의 역사를 다룬 흥미로운 책이다. 프랑스 역사가 알랭 코르뱅 등이 쓴 <날씨의 맛>(책세상, 2016).  

 

"감각과 감수성을 연구해온 프랑스의 역사학자 알랭 코르뱅을 필두로 지리학.기상학.사회학.문학 등의 전문가 열 명이 비, 햇빛, 바람, 눈, 안개, 뇌우가 불러일으키는 감정의 발자취를 뒤따랐다. 인간이 오감으로 느끼는 자연 현상으로, 우울함, 충만함, 기쁨, 공포, 불안 등 갖가지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날씨와 관련된 감각과 감정의 변천사라 할 만하다."

특히 어제오늘처럼 흐린 날에는 더욱 읽을 맛이 나는 책이다. 더불어 알랭 코르뱅의 다른 책에도 관심이 생겨서 영어로 번역된 그의 책들에 욕심도 부려보았다(장바구니에 꽤 여러 권 넣어두었지만 좀 비싸서 지르진 못하고 있다). 코르뱅은 "특히 19, 20세기 프랑스 사회문화사에 정통한 그는 몸, 냄새, 소리, 시간과 공간 인식, 매매춘을 다룬 저작들로 이름을 널리 날렸다"고 소개되는 학자다.

 

 

영어로는 <고용된 여자>나 <바다의 유혹>, <남성다움의 역사> 등이 번역돼 있는데, 몇몇은 우리말로도 번역되면 좋겠다. 일단은 나와 있는 번역본 가운데 <시간 욕망 그리고 공포>(동문선, 2002)를 구입했다(구입한 듯도 싶은데 구매 목록에 없어서 놀랐다). 요즘 19세기 프랑스문학을 강의하고 있어서 맞춤한 읽을거리다. 흐린 날에는 이런 책들과 함께...

 

16. 04.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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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러시아문학 관련서가 출간되었다(작품을 제외한). 한국러시아문학회에서 펴낸 <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써네스트, 2016). '러시아문학에서 청춘을 단련하다'가 부제로 붙었다. 러시아문학 전공자들이 각자가 감명 깊게 읽은 작품을 부분 번역하고 이에 대한 소회를 덧붙인 형식이다.

 

"천재 시인 푸시킨, 거장 중의 거장 톨스토이와 도스토옙스키 그리고 노벨 문학상 수상에 빛나는 세계적 작가들을 비롯하여 러시아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들의 작품 중 가장 인상적인 장면 하나씩을 뽑아 번역 해설하였으며 각 장면을 '사랑합니다', '고뇌와 갈망', '이상과 현실', '삶 속의 예술, 예술 속의 삶', '진정한 삶을 위하여', '세상을 바라보다'의 여섯 테마로 나누어 배치하였다."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전공하는 학생들이 흥미롭게 읽어볼 만하고, 러시아문학을 애호하는 일반 독자들도 무엇이 러시아문학의 매력인지 확인해볼 수 있는 기회다. 학생들이라면 미르스키의 <러시아문학사>(써네스트, 2008), 그리고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현암사, 2014)와 같이 구비해놓아도 좋겠다(<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 20세기 편은 하반기에 출간될 예정이다).

 

 

말이 나온 김에 최근에 번역된 러시아문학 작품들에 대해서도 한마디. 레르몬토프의 소설 <우리 시대의 영웅>(작가와비평, 2016)이 새로 번역돼 나왔는데, 이미 여러 차례 번역된 작품이지만 (번역본마다 다 다른 맛이 있다고 생각하는) 나로선 반갑다. 레르몬토프와 이 작품에 대해서는 <로쟈의 러시아문학 강의>를 참고하시길.   

 

 

톨스토이의 후기 대표작인 중편소설 <크로이처 소나타>(뿌쉬낀하우스, 2016)도 '똘스또이 클래식'의 한 권으로 다시 나왔다. 보통 <크로이체르 소나타>라고 번역된 작품. 이번 번역본은 부록이 강점인데, "똘스또이가 소설의 주제에 대해 직접 쓴 '크로이처 소나타 에필로그'와 러시아 시인이자 극작가인 옐레나 이사예바가 베토벤과 똘스또이의 '크로이처 소나타'를 비교한 연구 논문 '똘스또이가 들은 베토벤의 음악, 왜 '크로이처 소나타'인가'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간간이 출간 소식을 전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러시아문학 번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지는 않다. <전쟁과 평화>가 다시 번역돼 나온다는 5월이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러길 기대한다...

 

16. 04. 17.

 

 

P.S. 내게도 '나를 움직인 이 한 장면'을 골라달라면, 도스토예프스키의 <가난한 사람들>에서 골라야 하겠다. <가난한 사람들>과 <분신>, 그리고 <지하생활자의 수기>(요즘엔 <지하로부터의 수기>로 번역된다)를 대상으로 학부 졸업논문을 썼기 때문이다. 기억엔 '도스토예프스키 작품에 나타난 시선과 권력의 문제'가 제목이었다. 유실한 지 오래됐지만 그땐 나도 이십대 중반이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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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치의 산수 민음의 시 222
강정 지음 / 민음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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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광 속에는 광부가 산다

죽음 속에 삶이 살고

증오 속에 사랑이 살듯

오래전 무너져 내려 석탄도 금도 없는 폐광 속에는

검은 공기만 마시며 더 깊은 어둠이 되어 가는 광부가 산다

광부니까,

빛도 어둠도 분간 못하는 장님이 되었으니까,

무엇 하나 캐낼 것도 살아남을 것도 없는 어둠과 함께

오로지 자신의 몸만 스스로 썩히며 폐광 속에는 산다

(...)

캐낼 아무런 보석이 없어도 폐광 속에서만 산다

폐광에서 혼자 죽으려는 게  아니라,

이미 스스로 폐광이 되어

마음 안의 모든 보석들을 지상으로 퍼 올리고

그러고도 남아 있는 삶이 더 깊은 어둠 속에서

여전히 용을 쓰며 견디고 있다는 게 스스로 대견스러워서가 아니라,

오로지 광부니까 폐광 속에 산다

무너졌든 번창하든 광부는 광 속에 살아야 한다는 몽매의 신념 따위 없다

쥐와 두더지 들을 다스려 지하의 왕이 되겠다는 야망도 없다

광부는 광부니까

폐광 속에서 산다

삶이 결국 죽음을 부르고

사랑이 마침내 증오의 싹으로 자라

한순간의 빛을 어둠의 칼날로 바꾸듯

광부는 광부니까

모든 게 없어지고 무너져 내린 폐광에 산다

(...)

 

-'광부'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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