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서를 한권 냈다. 안톤 체호프의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문학동네, 2016)이다. 체호프의 대표 단편 가운데 하나인 만큼 여러 차례 번역된 작품이기도 한데, 일러스트판으로 펴낸다고 해서(그러니까 번역의 비중이 절반이다) 일조하는 기분으로 나섰다. 초역을 넘긴 게 2년 전이고, 올봄에 바쁘게 교정을 하고 해설(옮긴이의 말)을 보태서 마무리지었다. 책의 실물은 나도 월요일에나 받아볼 텐데(오늘이 휴일이라) 그때까지 입 다물고 있는 건 또 예의가 아닌 듯하여 몇 마디 적는다.
작품의 일러스트는 스페인의 일러스트레이터 하비에르 사발라의 것이다. "관능적이고 전위적인 삽화로 작품의 의미를 배가했다"는 소개다. 하지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이 '관능적인' 작품인가에 대해선 의견이 나뉠 수 있기 때문에, 그의 삽화에 대해서도 호오가 갈릴 수 있다(벌써 '음란마귀'라고 평한 알라디너도 계시다). 여하튼 그 또한 체호프 작품이 읽히는 다양한 스펙트럼 가운데 하나라고 보면 되겠다. 사발라는 어린이용 <돈키호테> 삽화로 이름을 알린 듯한데, 문학동네의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시리즈에서는 <필경사 바틀비>와 <장화 신은 고양이>도 그의 작품이다. 아래는 내가 적은 해설의 일부다.
러시아문학의 대단한 주인공들이 시대와 세상을 향해 던진 당당한 물음이 있었다. ‘무엇을 할 것인가?’ 진보적 비평가 체르니셰프스키의 소설 제목이었고, 레닌도 자신의 정치 팸플릿에 같은 제목을 붙였다. 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의 반향을 읽어내기는 어렵다. 그의 주인공들은 ‘어떻게, 어떻게?’를 중얼거릴 따름이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를 빌리자면 그들은 쇼펜하우어(대단한 철학자)나 도스토예프스키(대단한 작가)도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결국은 아무것도 되지 못한 대단찮은 인물들이다. 그렇게 대단찮지만 한편으론 섬세해서 속물도 되지 못한다. 바로 구로프 같은 인물이다.
얄타에서 ‘개를 데리고 다니는’ 멋진 여인을 유혹하여 목적을 달성한 그가 교외의 벤치에 앉아 바다를 내려다보며 자연의 영원한 무심함과 세상의 아름다움에 대한 명상에 잠기는 모습을 보라. 자신이 얼마나 매혹적인 여자와 만났는지 자랑하고 싶지만 아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 상심하고 심지어 분노하는 구로프의 모습을 보라. 그에게 안나와의 예기치 않은 사랑은 ‘무료하고 시시한 날들’, 더 나아가 무의미한 인생의 구원처럼 여겨진다. 얄타에서 헤어진 안나를 다시 찾아가는 이유다.
그렇게 다시 만나게 된 두 사람이 한번 끊어졌던 인연을 다시 이어나간다. 안나는 남편을 속이고 지방에서 모스크바로 와서는 호텔방을 잡아놓고 구로프를 부르고, 구로프는 안나에게 가는 길에 딸을 학교까지 바래다준다. 그들의 이중생활이다. 남들 앞에 내놓고 사는 공적인 삶과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이 공존하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안나는 그들의 밀애가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으리란 두려움과 남들의 눈을 피해야 한다는 처량함에 울음을 터뜨린다. 구로프는 안나를 어루만지며 달래다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본다. 어느새 머리가 세기 시작한데다 늙고 추해진 모습이다. 안나의 인생도 곧 시들기 시작할 것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난생 처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알게 되다니!
이들의 이야기가 어떤 결말에 도달하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이 작품의 주제는 체호프가 즐겨 다루는 ‘또 다른 삶’의 가능성이다. 정확하게는 ‘어려운 가능성’이다. 분명 새로운 인생은 아름다울 테지만, 우리는 대개 그 새로운 인생의 문턱에서 주저앉는다. 그게 체호프가 바라본 인생이다. 때문에 대단한 인생을 살아가는 독자라면 체호프와 인연이 없다. 오직 변변찮은 독자들만이 그의 작품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서 당혹감과 위안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구로프와 안나야말로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들>의 딱 맞는 독자이기도 하다.
16. 05. 14.
P.S.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기준으로 말하자면 국내에 소개된 체호프 단편집은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포함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양분된다. 그리고 포함한 번역본은 다시 제목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으로 옮긴 것과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으로 옮긴 것, 두 종으로 나뉜다('개' 대신에 '강아지'나 '스피츠'라고 옮긴 번역본도 있다). 영어로는 lady에 해당하는 러시아어 'Дама(다마)'가 우리말 '부인'보다 의미역이 넓어서 빚어지는 일이다. lady와 마찬가지로 여자를 대우하여 부르는 말이다.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제목으로 내세우고 있지 않아도 여러 번역본이 이 작품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참고하시면 좋겠다. 특별히 사랑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골라놓은 번역본으로는 <사랑에 관하여>(펭귄클래식, 2010)와 <사랑과 욕망의 변주곡>(에디터, 2012)이 있다. 그리고 이번에 알게 된 것인데, 러시아어 원문과 직역을 수록한 책도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뿌쉬낀하우스, 2016)이란 제목으로 나왔다. '러시아어로 러시아 고전 읽기 시리즈'의 하나인데, 러시아어 전공의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을 염두에 둔 책이어서 그 수요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