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강의를 다녀오면서 한주의 일정을 마무리했다. 주말과 휴일에는 또다른 일거리가 잔뜩이지만 눈도 피로한 김에 한숨 돌린다. 서재일만은 미뤄둘 수가 없어서 '이주의 고전'을 고른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아카넷, 2016) 새 번역본이 나왔으니 모른 체할 수 없기도 하다. 동서문화사판까지 포함하면 세번째 번역이다.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은 크게 전기와 후기로 나누어진다. 전기 철학의 결정판이 <논리-철학논고>라면, 후기 철학은 바로 <철학적 탐구>에 집약되어 있다. <철학적 탐구>는 1930년대 중반 이후 오랜 기간 동안 준비하고 발전시킨 생각들을 담고 있다." 

이번에 나온 아카넷판은 분량이 750여쪽에 이르는데, <심리철학-단편>이 포함돼 있어서다. 한데, 이건 앞서 나온 <심리철학적 소견들>(아카넷, 2013)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여하튼 새 번역본이 나온 김에 영어판도 새로 장만하려고(예전에 나왔던 것과 좀 다른 듯싶어서) 주문을 넣었다. <심리철학적 소견들>만 주문을 보류한 상태다. 

 

 

언젠가 다룬 듯한데, 비트겐슈타인의 전기 철학을 대표하는 <논리-철학 논고>도 선집판(책세상)을 포함해 몇 종의 번역본이 나와 있다. 학부시절에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해설서 몇 권을 읽고 <논리-철학 논고>까지 읽은 기억이 있는데, <철학적 탐구>에 대해서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었다. 새 번역본은 새로운 흥미를 제공할지 궁금하다.

 

 

역자 이승종 교수는 분석철학 전공자로 대륙철학에도 밝아서 <비트겐슈타인이 살아있다면>(문학과지성사, 2002) 외에도 <데리다와 비트겐슈타인>(개정판 2010), <크로스오버 하이데거>(생각의나무, 2010) 등의 저작을 갖고 있다. 새 번역본은 기존 <철학적 탐구> 번역과 어떤 점이 다른지 비교해보아도 좋겠다.

 

 

비트겐슈타인을 처음 접하는 독자라면 박병철 교수의 <비트겐슈타인 철학으로의 초대>(필로소픽, 2014) 같은 입문서를 먼저 손에 드는 게 좋겠다. 관심이 더 촉발된다면 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평전>(필로소픽, 2012) 등으로 이행할 수 있겠다. <철학적 탐구>에 대해서는 A 아흐메드의 <비트겐슈타인의 '철학적 탐구'를 위한 길잡이>(서광사, 2013)이 가이드북으로 나와 있다...

 

16. 05. 13.

 

 

P.S. <철학적 탐구> 얘기를 꺼내다 보니, 오래전에 궁금했던 게 생각난다. 분석철학과 함께 20세기 철학을 양분하고 있는 현상학의 창시자 후설의 주저는 <논리 연구>인데(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국내에 아직 소개되지 않았다), 이 <논리 연구>의 '연구'나 <철학적 탐구>의 '탐구'는 독어나 영어에서 같은 단어(Untersuchungen/investigations)다. 후설과 비트겐슈타인의 대표 저작 제목의 같은 단어가 왜 '연구'와 '탐구'로 달리 번역되는 것인지가 궁금했었다(누구에게 물어봐야 하는 건지?). 이를테면 <논리 연구>와 <철학 연구>로, 아니면 <논리적 탐구>와 <철학적 탐구>로 맞춰줄 수는 없었던 건지 궁금하다. 물론 이건 순전히 한국어만의 문제다. 찾아보니 일어로는 각각 <논리학 연구>와 <철학적 탐구> 혹은 <철학 탐구>로 번역된다. 일역본의 영향일까?..

 

P.S. <철학적 탐구>에 실린 '심리철학 단편'과 <심리철학적 소견들> 사이의 관계가 궁금하다고 적은 데 대해 한 전공자 분이 그 둘의 별개의 작품이라고 알려주셨다. 아울러 <탐구>의 편제에 대해서도 자세히 일러주셨는데, 여기에 공유하도록 한다.

심리철학 단편은, 철학적 탐구의 2부를 지칭하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문헌사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권위있는 가장 최신 판본인 해커-베이커 제4판(블랙윌)의 편집자 서문의 ix-xi페이지에 걸쳐 설명되어 있습니다. 이 작품은 비트겐슈타인이 거의 마지막까지 수정하던 유고이며, 또 비트겐슈타인의 작업의 특성상 계속 집필 형식과 분류를 수정해갔기 때문에(1부와 2부의 내용을 통합해 정리하려는 시도를 포함하여) 이를 둘러싸고 논의가 계속 진행 중에 있습니다. 보통은 1부와 2부를 묶어 출간하면서 "탐구" 란 단일한 제목에 담지만, 비트겐슈타인 연구자들이 통상 "PI" 로 지칭하고 숫자를 매겨 인용할 때 이는 철학적 탐구 1부의 각 절 번호를 의미하고, 2부는 통상 "PPF", 곧 "Philosophy of Psychology - A Fragment 의 줄임말로 불립니다. 대략적인 연도만을 말하면 1945년 비트겐슈타인은 탐구의 1부를 완성하고 머릿말을 쓴 후, 1945년과 1946년에 걸쳐 "심리철학적 소견들"의 1부와 2부를 완성된 형태의 내용으로 작성하고, 이후 1949년 탐구의 2부에 해당하는 내용(PPF)이 그의 병세로 인해 타이피스트를 통해 구술로 정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1951.4.29 영면) 그래서 말씀하신 두 저작은 별개의 작품이며, 여기에 1948년에 작성되어 역시 사후에 출간된 "심리학의 철학에 관한 마지막 글" 이라는 저작도 또 따로 있습니다. 셋은 모두 다른 저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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