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저녁에 <너의 운명으로 달아나라>(마음산책)를 교재로 하여 쿤데라의 <농담>을 강의했다. 강의준비를 하면서, 책이 나온 뒤로 쿤데라에 관한 장은 처음 읽어봤는데 주인공 루드비크(세계문학전집판에서는 ‘루드빅‘)가 인민재판까지 받게 한 농담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 농담은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입니다. 무엇을 패러디한 것인가요?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에 종교 대신 낙관주의를 넣었습니다. 낙관주의는 사회주의 또는 공산주의를 말합니다.˝(사회주의적 낙관주의는 중국 화가 웨민쥔의 그림들을 떠올리게 한다.)

인용만 보면 루드비크는 ‘종교‘ 대신에 ‘낙관주의‘를 넣음과 동시에 ‘인민‘도 ‘인류‘로 대체한 듯 보이지만 그건 말이 되지 않는다. 게다가 강의에서 내가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라고 입에 올렸을 리가 없다(한번도 상상해본 적이 없는 표현이다). 편집상의 착오인가 싶었는데, 아침에(아침에서야!) 다시 생각나 두 종의 <농담>(민음사)을 확인해보니 놀랍게도 루드비크가 여자친구에게 보낸 엽서에 적은 농담이 이렇게 옮겨져 있다.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 건전한 정신은 어리석음의 악취를 풍긴다. 트로츠키 만세! 루드비크.˝

상황을 추정해보니 내가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라고 강의시 말한 대목을 편집자가 번역본에 준해서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라고 고쳤고 이게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다˝는 마르크스의 말과 조응이 안 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농담>의 번역자는 마르크스의 발언도 ˝종교는 인류의 아편˝이라고 옮겼다.

인류와 인민의 차이? 마르크스를 ‘인류를 위한 철학자‘로 보느냐, 아니면 ‘인민을 위한 철학자‘로 보느냐의 차이다. 전자는 내가 상상도 해보지 못한 것인데 여하튼 세계는 넓고 번역은 다양하다는 걸 새삼 확인한다.

그럼에도 둘다 가능하다고 보는 쪽은 아니어서 3쇄에서는 ˝낙관주의는 인류의 아편이다˝를 ˝낙관주의는 인민의 아편이다˝로 교정하기로 했다. 종교에 관한 책을 최근에 몇권 더 입수했는데 시간이 나는 대로 ‘인민의 아편‘에 대해서도 좀더 자세히 살펴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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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부산 인디고서점에 구입한 책들 가운데 하나는 황인숙 시인의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문학과지성사)다. 지난해 늦가을에 나왔는데 챙기지 못한 듯하다. <리스본행 야간열차>(2007)는 긴가민가하지만 분명 <자명한 산책>(2003)까지는 읽은 기억이 나는데, 알라딘의 구매내역에는 빠져 있다. 시집이야 서점에서도 구입하고 했으니 그럴 수 있는데 다시 구입해야 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잠시 보류.

여하튼 귀경길 기찻간에서 오랜만에 황인숙 시집을 통독했다(시집은 어떤 종류의 책보다 속독하는 편이다). 여전한 의성어와 여전한 감탄사(느낌표)를 다시 확인. 그러고 보면 가면(페르소나)을 쓰지 않는 드문 시인들 가운데 한 명으로 여겨진다. 시의 화자가 곧바로 황인숙이란 뜻이다(58년생이어서 시인도 이제 우리 나이로는 예순이다. 고종석의 ‘인숙 만필‘이 떠오르는군).

해설에서 조재룡 교수가 ‘명랑과 우수‘의 세계로 명명한 황인숙의 시세계는 요즘 시로서는 희귀할 정도도 꾸밈이 없다. ˝황인숙에게는 예술이 중요한 게 아니다. 그는 사실, 시의 중요성이나 고유성도 신봉하는 것 같지 않다˝는 지적은 그래서 정확하다. 그럼에도 시가 되는 게 황인숙의 시다. 시가 되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 듯한 마음이 빚어낸 시들 가운데 내가 고른 한 편은 ‘세입자‘다.

내 방 지붕 위에서 비둘기들
발 구르고, 우르르 몰려다닌다
가볍도 아니한 몸으로
왔다 갔다 우르르
기왓장 다 흐트러지겠네!
밤새 굳은 몸들을 푸는 모양
아침마다 저런다

이 무례한 세입자들아!
집은 또 얼마나 너저분하게 쓸꼬, 비도로기들!(아마 나만큼이나)
나처럼 관대하고 게으른 집주인이
어디 또 있을 것 같지도 않으니
쫓아낼 수도 없고

나 또한 세입자인데
내가 또 세를 내준 걸 알면
그들이 이리 집을 망가뜨리는 걸 알면
우리 전부 쫓겨나리

적으면서 한번 더 좋은 시라고 느낀다. 꾸밈이 없어 밋밋한 시도 많은데 비하면 이 시는 확실히 재미와 넉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긴장감까지도! 한 권의 시집은 이런 한 편의 시로 어엿해진다. 못다 한 사랑이 있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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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으로 두 권을 고른다. 프랜시스 오고먼의 <걱정에 대하여>(문예출판사)와 제임스 웰스의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이야기가있는집).

먼저 <걱정에 대하여>의 저자 프랜시스 오고먼은 찾아보니 빅토리아시대 문학 전문가다. 걱정거리가 많은 사람들도 읽어볼 만하겠지만 빅토리아시대 문학사와 문화사에 대한 흥미 때문에 나는 손이 가게 된다.

˝빅토리아시대(1831~1901)에 오늘날과 같은 걱정의 관념이 대두한 것부터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걱정이 현대의 ‘시대적 특징’으로 자리 잡게 된 과정을 다양한 문학 작품과 문화사를 통해 살펴보는 책이다.˝

반면 <인간은 어리석은 판단을 멈추지 않는다>는 원제가 ‘어리석음 이야기‘다.

˝역사는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문화사, 지성사, 인물사 등의 측면에서 역사는 새롭게 분석되고 해석될 수 있다. 제임스 F. 웰스는 인간의 보편적인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어리석음을 통해 새롭게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문명의 탄생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창조와 몰락, 탐욕과 부패, 오만과 분노의 기록인 역사의 한 축을 ‘어리석음’이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다.˝

저자는 생물학 박사이고 ˝현재 플로리다에 살면서 독서를 즐기며 살고 있˝단다. 유명한 저자도 아니기에 독자로서는 난감한 이력이다. 다만 주제가 흥미로워서 일단 책은 구입했다. 같은 주제의 책으로 아비탈 로넬의 <어리석음>(문학동네)도 생각나게 해주는데 이런 책들을 읽지 않고 쌓아두기만 한다는 것도 분명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해서 독서의 의지를 다시금 불태운다.

다만 당장은 피로 누적에 감기기운도 있는 탓에 침대에 누워서 북플만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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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되새겨보는 책들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나도 꽤 수집한 편인데, 예상을 초과하는 양상이다. 최근에 나온 책들 위주로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5개의 상품이 있습니다.

종교개혁의 역사
토마스 카우프만 지음, 황정욱 옮김 / 길(도서출판) / 2017년 10월
45,000원 → 40,500원(10%할인) / 마일리지 2,2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7년 10월 23일에 저장

종교개혁, 그리고 이후 500년- 16세기 유럽부터 21세기 한국까지
라은성 외 지음 / 을유문화사 / 2017년 10월
15,000원 → 13,500원(10%할인) / 마일리지 750원(5% 적립)
*지금 주문하면 "12월 4일 출고" 예상(출고후 1~2일 이내 수령)
2017년 10월 23일에 저장

루터와 종교개혁- 근대와 그 시원에 대한 신학과 사회학
김덕영 지음 / 길(도서출판) / 2017년 10월
28,000원 → 25,200원(10%할인) / 마일리지 1,400원(5% 적립)
양탄자배송
내일 아침 7시 출근전 배송
2017년 10월 23일에 저장

루터 : 신의 제국을 무너트린 종교개혁의 정치학
폴커 라인하르트 지음, 이미선 옮김 / 제3의공간 / 2017년 10월
25,000원 → 22,500원(10%할인) / 마일리지 1,250원(5% 적립)
2017년 10월 23일에 저장
절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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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공지다. 11월 1일과 15일, 저녁 7시 30분에 정릉도서관에서 ‘러시아문학과의 만남‘을 주제로 행사를 진행한다. 요청에 따라 주로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세계를 소개하고 질의에 답할 예정이다.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포스터를 참고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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