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계의 고질적인 관행/병폐를 짚어보는 기사를 옮겨온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는 내용이지만 종합/정리한다는 의미는 있겠다. '2007년 한국 출판의 현단계'라고 보아도 좋겠고. 올 연말에는 출판계가 얼마나 달라질 것인지 기대해보면서 짚을 건 짚고 넘어가도록 해보자.  

 
뉴스메이커(07. 01. 09) 출판계의 고질병 ‘스타마케팅’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푸른숲)과 ‘마시멜로 이야기’(한국경제신문). 두 책의 공통점은 2006년 서점가를 강타한 베스트셀러라는 점이다.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은 12월말 현재까지 70만 부가 팔려 2007년 하반기 100만 부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자기계발서 ‘마시멜로 이야기’는 2006년 8월 이미 100만부 판매 기록을 세웠다.

베스트셀러라는 점 외에도 두 책의 공통점은 공지영과 정지영이라는 ‘스타’가 각각 저자와 번역자라는 점이다. 물론 ‘마시멜로 이야기’는 정지영이 아닌 제3의 인물이 대리번역한 사실이 뒤늦게 폭로되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그러나 역설적으로 ‘마시멜로 이야기’가 밀리언셀러로 등극하는데 가장 큰 공로자는 10대, 20대에 인기가 높은 정지영이라는 TV스타였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다. 정지영은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까지 ‘SBS 뉴스퍼레이드’ ‘접속 무비월드’ ‘출발 모닝와이드’ ‘TV문화지대-낭독의 발견’ 등을 진행하며 지적인 아나운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출판사는 이 점에 착안, 책 광고모델로도 정지영을 내세웠고 수차례에 걸쳐 팬사인회도 열었다.

공지영 소설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 역시 그가 지닌 스타성과 무관치 않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뿐 아니라 일본작가 쓰지 히토나리와 함께 펴낸 ‘사랑 후에 오는 것들’(소담출판사)도 2006년 28만 부가 판매됐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문학성 외에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에게 가지고 있는 이미지가 그의 책 판매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공지영은 2006년 5월 산문집 ‘빗방울처럼 나는 혼자였다’(황금나침반)를 출간했다. 이 산문집에서 공지영은 늘 왕따였던 어린시절 이야기와 세 번 결혼해 세 번 이혼했고 성이 다른 세 아이를 낳은 사연 등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한기호 소장은 “이 산문집에 실린 공지영의 인생역정 등도 대중이 공지영이라는 스타작가를 한결 인간적으로 느끼게 해준다”고 말했다.

정지영의 대리번역 파문에 이어 최근 출판계를 발칵 뒤집은 또 다른 사건은 대필 논란이다. 유명 화가 겸 방송인 한젬마의 최근작 ‘화가의 집을 찾아서’와 ‘그 산을 넘고 싶다’(샘터)가 거의 전적으로 대필작가에 의해 완성됐다는 주장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이 논란은 출판계에 관행적으로 이루어지던 대필작가, 일명 고스트라이터(Ghostwriter: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에 대한 환기를 불러 일으켰다. 고스트라이터는 수려한 문장력과 적절한 비유로 책을 완성도 높게 만들지만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리지는 못한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필자이기 때문에 그림자작가 또는 유령작가로 통한다.
 

 

 

이들의 역할은 저자가 쓴 원고를 좀더 매끄럽게 손보는 윤색 수준부터 완전 대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이들의 도움을 얻어 책 판권정보에 이름을 올린 저자는 명예와 인세(보통 판매수입의 8~10%)를 챙기는 반면 대필작가는 대부분 인세 대신 원고지 장당 얼마씩 계산하는 식의 수고비를 받는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가령 대필자에게 원고료로 500만 원을 지불하기로 계약했고 책의 정가가 1만 원이라고 하면 초판을 5000부 찍어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대필자에게 주고 재판부터 발생하는 모든 인세는 저자로 이름을 올린 이에게 준다”고 설명했다.

대필은 주로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져왔다. 작가지망생들이나 배고픈 문인들이 부업으로 정치인이나 재벌총수의 자서전을 대신 써주는 것으로 이는 가장 흔한 대필의 형태이다. 출판계 풍문에 따르면 고(故)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국내 최고의 드라마작가로 손꼽히는 A씨가 2억 원을 받고 대필했고,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도 대필자가 따로 있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문인 중 대필작가 시절을 한번쯤 거치지 않은 이는 드물다. 그러나 자서전을 대필하는 것에 딴죽을 거는 이는 없다.

문제는 이처럼 자서전 위주로 이루어지던 출판계의 관행이 이제는 자기계발서나 수필, 동화에까지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출판관계자는 “소설을 제외하고 국내에서 발간되는 서적의 50% 이상은 고스트라이터의 손을 거쳤다고 보면 된다”고 귀띔했다. 자서전과 자기계발서는 100%, 베스트셀러 중 6~7권은 대필이라는 주장도 있다.

한젬마의 두 책이 문제가 된 것도 이 지점이다. 맨 처음 한젬마의 두 책에 의혹을 제기한 언론사의 보도에 따르면 한젬마가 자신이 직접 쓴 초고라며 구성작가에게 준 것은 메모와 자료 더미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출판 직후 각종 인터뷰에서 대필작가의 경험을 마치 자신의 경험인 양 이야기했다고 보도했다. 한성출판기획 박영욱 대표는 “한젬마씨는 자료라도 줬으니 그나마 나은 편”이라며 “심한 경우 대필작가가 취재와 집필을 다하고, 책 판권정보에 저자로 이름을 올린 사람은 마지막 교정지만 확인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출판계의 대필관행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엿볼 수 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점은 출판사의 도를 넘는 대필관행이 ‘스타’를 내세워 판매부수를 높이려는 의도와 맞물려 있는 점이다. 한젬마의 경우 1999년 ‘그림 읽어주는 여자’ ‘나는 그림에서 인생을 배웠다’(명진출판)를 내며 스타덤에 올랐다. 출판계에서 명진출판은 기획출판을 통해 스타 저자를 많이 배출한 출판사로 이름이 높다. 1999년 당시 한젬마를 출판사에 소개한 출판전문가 김영수씨(김&정 기획실장)는 “한젬마씨는 서울대 미대 출신에 예쁘장한 외모여서 스타성이 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명진출판이 한젬마의 이와 같은 스타성을 더욱 부각시켰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명진출판이 내놓은 두 책과 이번에 문제가 된 샘터사의 두 책의 표지사진은 모두 스튜디오에서 공들여 촬영한 한젬마의 모습이다.

 


김영수씨는 “요즘엔 작가도 이미지가 따라주지 않으면 책이 안 팔린다”며 “이는 소설부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책 판매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글이 50%이고 나머지는 작가의 외모나 경력, 사생활 등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미지에 좌우된다는 것이다. 이때 출판사들이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게 신문 등 인쇄매체와 TV 등 영상매체다. 신문이나 TV를 통해 이름과 얼굴이 알려지면 쉽게 유명인이 되고 이는 곧 책 판매와 직결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출판사는 책 출간과 동시에 보도자료를 내는 것은 기본이고 책 성향에 따라 방송 프로그램을 섭외해 저자를 직접 출연시키면서 스타 만들기에 힘을 쏟는다. 김영수씨는 “1990년대 중반부터 출판사들은 기획을 통해 스타 만들기가 가능한 사람에게 자전적 에세이를 의뢰하는 경우가 증가했다”고 말했다.

아예 연예인 등 스타를 내세운 에세이도 줄을 이었다. 1998년 박원숙의 ‘열흘 운 년이 보름은 못 울어?’(중앙M&B)부터 1999년 서갑숙의 ‘나도 때론 포르노그라피의 주인공이고 싶다’, 2004년 김혜자의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오래된미래) 등 많은 책이 나왔다. 이 중 서갑숙의 ‘나도 때론…’은 100만부 이상 팔린 밀리언셀러다.

그러나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에서 보듯 부작용도 적잖다. 글솜씨는 물론 너무 바빠 원고를 직접 쓸 시간조차 없는 스타들을 내세우면서 대리번역, 대필문제가 대두되지 않는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일 것이다. 글솜씨가 없는 전문가가 글솜씨가 있는 이의 도움을 얻어 자신의 전문지식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는 것에 이의를 다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얼굴마담으로 이름과 얼굴만 빌려주고 책의 내용 대부분이 대필자의 창작에 의해서 완성된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출판을 통해 스타가 된 이가 심각한 문제와 직·간접적으로 연루되는 일도 있다. 1995년 베스트셀러가 된 ‘나는 언제나 한국인’(대원미디어 출간)의 주인공 에리카 김(한국명 김미혜)이 한 사례다. 문제는 그의 동생인 김경준씨가 일으켰다. 김씨는 2001년 크게 회자된 ‘옵셔널벤처스 금융사기사건’의 주인공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었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도 피해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전 시장은 2000년 김경준씨와 함께 서로의 머리글자를 딴 ‘LK이뱅크’ 사업을 벌였다. 그러나 김씨는 2001년 당시 코스닥 기업이던 옵셔널벤처스코리아를 운영하다 거액의 회사 자금을 유용하고 미국으로 도망쳤다. 인터폴의 수배를 받던 김씨는 2004년 5월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체포돼 현재 LA 메트로폴리탄 디텐션 센터에 수감돼 있다. 1990년대 후반 당시 이 전 시장에게 김씨를 소개한 이는 다름아닌 베스트셀러 저자로 명성을 높인 에리카 김이었다.

출판계에서는 정지영과 한젬마를 둘러싼 파문을 ‘출판계의 황우석 사태’라며 자조한다. 랜덤하우스코리아 유영준 팀장은 “국민을 상대로 한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의 사기극은 비난받아야 마땅하지만 그로 인해 우리 과학계 전체가 욕을 먹고 위축되지 않았느냐”며 “마찬가지로 자기가 쓰지 않은 책을 자신이 썼다며 명예와 인세 등 달콤한 과실만 먹은 이는 비난받아야 하지만 잇따른 이 두 번의 파문에 의해 출판계 전체가 위축될 수 있어 염려스럽다”고 토로했다. 각 분야의 전문가들나 출판사들이 두 번에 걸친 파동으로 보조작가가 필요한 서적마저 출간을 꺼릴 수 있다는 얘기다. 반면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대리번역과 대필, 사재기 등 출판계의 도덕성 시비가 당분간 봇물 터지듯 터질 것”이라며 “그러나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출판계 스스로 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주례사비평이 한국문학 죽였다”

 


출판계의 ‘스타 마케팅’은 비단 요즈음의 일만은 아니다. 국내 소설이 한창 대중적 사랑을 받던 시절, 즉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까지는 소설가를 ‘스타’로 띄우기 위한 출판사들의 노력이 있었다. 이유는 당연히 책의 판매부수를 높이기 위해서다.

물론 당시의 마케팅은 대리번역, 대필, 사재기 등으로 얼룩진 지금의 상황과는 다르다. 기본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솜씨와 문장력이 뛰어난 작가의 작품을 언론을 통해 띄우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등 많은 독자의 아낌을 받았던 작가들이 이때 등장하여 주목을 받았다. 스타를 만들어낸 주역은 출판사와 평론가, 주류 언론이다.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은 “특정 스타 작가의 작품이라면 완성도와 상관없이 한국 최고의 문학작품인 양 소개하는 주례사 비평이 평론가와 언론의 입을 통해 잇따랐다”며 “궁극적으로 이런 문화가 한국문학을 절벽으로 내몬 것”이라고 꼬집었다.

주례사비평이란 비평가적 양심보다 출판사, 학연·지연 등 특정한 이해관계에 얽혀 마치 결혼식에서 주례를 서듯 작품과 작가에 대해 좋은 이야기만 풀어놓는 비평행위를 말한다. 2002년에는 이런 잘못된 비평행위를 정면으로 비판한 ‘주례사비평을 넘어서’라는 책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의 표지에는 ‘비판 없는 비평이 몰고 온 비평의 타락과 문학의 위기’라는 소제목이 달려 있다. 이 책에서 김명인, 고명철, 이명원, 홍기돈, 김진석, 신철하, 하상일, 진중권 등은 신경숙, 은희경, 전경린, 김형중 등 스타 작가들의 작품에 대한 비평을 냉철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한기호 소장은 “평론가와 언론은 주례사비평을 일삼고 스타 작가들은 작품을 공들일 여유조차 없이 비슷한 성향의 작품을 연달아 성급하게 생산하면서 현재 한국문학의 자멸을 초래한 것”이라며 “요즘은 팩션이나 일본소설을 제외하면 공지영과 김훈 외에 초판 3000부 이상 팔리는 책조차 없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한국문학이 침체를 면치 못하자 지난해부터 문화예술위원회(옛 문예진흥원)는 ‘힘내라, 한국문학’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문학회생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다. 수십억 원의 복권기금을 이용해 우수문학도서 구입과 배포, 문예지 게재 우수작품 원고료 지원, 우수 문예지 구입과 배포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 같은 문학회생프로그램이 오히려 한국문학을 한층 더 고사시킬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작가에게 원고료를 지원하고 한국문학을 출판한 출판사의 해당 책을 사주겠다는 것인데 이는 근원적 해결방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는 정도의 미봉책’이라는 시각도 적잖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국가에서 한국문학의 침체를 손놓고 보고만 있지는 않겠다는 자세는 좋으나 방식에 대한 고민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작가나 출판사에 대한 지원이 궁극적으로 한국문학을 회생시키는 방안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박주연 기자)

 

07. 0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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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우스 2007-01-11 08:08   좋아요 0 | URL
이명원이나 권성우처럼 주례사비평을 다룬 책을 쓰면 거의 안팔리더군요.... 강준만도 그렇구.... 어린 물고기를 싹 잡아서 수산자원을 말리는 짓이라고 생각해요...

로쟈 2007-01-11 08:48   좋아요 0 | URL
칭찬/아부도 너무 자주하면 값이 떨어지는 게 상례이죠. 서로 쓴소리 안 하는(같은 식구들끼리는 더더욱) 미풍양속 덕분에 말의 값이 떨어지는 게 문제라고 봅니다. 비평을 액면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한국문학은 노벨상을 여럿 배출하고도 남을지 모릅니다(고래도 춤춘다니까). 이젠 좀 식상한 문구가 돼버렸지만, '주례사비평'에 대한 비판도 궁극적으론 다른 스타일의 비평을 제시하는 쪽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게 잘 눈에 띄지 않네요...

기인 2007-01-11 08:52   좋아요 0 | URL
아.. 서울대 미대를 나오고 예쁘장해서 스타성이 있는 '한젬마'라니...
미인은 괴로워~
이런.. 저는 요즘 열심히 단편소설 습작하고 있는데, 베스트셀러를 쓰려면 성형수술과 헬스장 가는 것이 필요하겠군요. 오.. 근데 장동건 외모고 소설을 쓴다면 ㅋㅋ
내가 쓴 영화에 내가 나왔네~ (맷 데이먼 이군요 ^^; )

기인 2007-01-11 08:54   좋아요 0 | URL
한젬마 씨는 좀 특이하게 생긴 것 같은데, 정지영 아나운서는 진짜 이쁘네요. tv가 없어서 몰랐어요. 어쨌든 퍼갑니다.
이제 작가도 기획사 시대! 아니; 이미 기획사가 있는 거네요;;;

나비80 2007-01-11 23:39   좋아요 0 | URL
수없이 쏟아지는 신간들 중 찬사를 받지 않는 작품이 거의 없는 형국이니 비평가들의 검증 자체가 의미 없습니다. 지난 연말에 '주례사 비평을 넘어서'를 쓰신 이명원, 고명철, 하상일 선생님 등과 만나 술 한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주류 문단의 경계를 받는 분들이시지만 한국 문학을 바로 잡으려는 열의가 대단하시더라구요. 그분들 뿐만 아니라 새로운 비평의 지평을 열어줄 건강한 신인들이 계속적으로 발언할 기회가 공정하게 주어진다면 로쟈님이 걱정하셨던 새로운 비평의 시대가 좀 수월하게 열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물론 비평가들의 치밀하고 정교한 비평 작업이 모든 조건앞에 선행되어야 하겠지요. 더불어 독자들도 한국 문학에 대한 주체적인 관심과 질책뿐 아니라 애정도 좀 보여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로쟈 2007-01-12 00:42   좋아요 0 | URL
기인님/ 거의 '공익은 한가해' 수준이시네요. 소설 습작까지 하시고. 내년 신춘문예를 기대해 보겠습니다.^^

소이부답님/ 좋은 지적을 해주셨네요.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기인 2007-01-14 11:25   좋아요 0 | URL
ㅋ 원래 공익은 그렇습니다. 김연수 선생도 공익 때 소설 열심히 써서 등단했다죠. ㅋ 저는 구상만 많이 해요. 얼른 '물질화'해야 하는데. ㅎㅎ
 

독일의 역사학자 볼프강 몸젠의 <원치 않은 혁명, 1848>(푸른역사, 2006)이 출간됐다. 작년말이다. '몸젠'이란 이름이 낯설지 않아서 찾아보니까 내가 들어본 몸젠은 다른 '몸젠들'이었다. 그의 조부는 고대 로마사연구로 노벨상까지 수상한 테어도어 몸젠이고, 아버지 역시 <비스마르크>(한길사, 1997) 등의 저서를 갖고 있는 저명한 역사학자 빌헬름 몸젠이다. 내가 이 볼프캉과 혼동했던 역사학자 한스 몸젠은 그의 쌍둥이 형제였다. 이 만한 가계면 적어도 역사학계의 다윈가나 헉슬리가 정도 되지 않을까 싶다.  

 

 

 

 

소개에 따르면 볼프강 몸젠은 "1968년부터 1996년 은퇴할 때까지 독일 뒤셀도르프 대학교에서 근세사 부문 정교수로 재직했다. 주요 전공은 제국주의 시대이지만, 그가 관심을 가졌던 시기는 자유주의에서부터 1차 세계대전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 막스 베버에 관한 전문가로서 베버 전집 간행 작업을 총괄했으며, 1988년부터 4년간 독일 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이 간략한 이력에 출생과 작고 년도는 빠졌는데, 1930년 11월 5일에 태어나서 2004년 8월 11일에 세상을 떠났다. 그의 형제 한스는 아직 생존해 있다.

일단 독일을 대표하는 역사학자의 저작이란 점에서 눈길을 끌지만, 책은 부제대로 '1830년부터 1849년까지 유럽의 혁명운동'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끈다. 러시아 지성사에서 사실 1789년보다 더 중요한 의미를 갖는 해가 바로 1848년이기 때문이다(얼마전에 관련 기사를 옮겨온 적이 있는 알렉산드르 게르첸 같은 경우도 1848년 혁명에 환멸을 느껴서 서구파에서 중도적인 슬라브파로 '전향'하게 된다). 그간에 이 시기는 홉스봄의 책들 정도로 카바하고 있었는데, 몸젠의 책이 '본진'의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책소개에 붙어 있는 역자의 말을 참조해보면 이렇다.

영국의 역사가 에릭 홉스봄이 강조했던 것처럼, 19세기 서양의 역사는 "혁명의 시대"로 일컫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에서부터 1830년 7월 혁명과 1848년 2월 혁명, 그리고 1871년 파리 코뮌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역사는 정치적 소용돌이와 휴지기가 연속적으로 교차하면서 진행되었다. 이 모든 사건들 가운데서도 역사가들이 1848년 혁명에 특히 주목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 부르주아지와 더불어 새로운 산업사회의 주축을 이루게 된 노동자들이 하나의 세력을 형성하면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한 것이 바로 이때라는 점이다. 둘째, 1848년을 계기로 유럽이라는 거대한 수레를 움직여 온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양대 바퀴가 엄청난 파열음을 내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충돌은 그 후에 닥쳐올 수많은 파란과 비극의 시원이 되었다.

문득 드는 생각은 그 '파란과 비극'의 구도 안에 있다는 점에서 한국사회는 1987년 체제이면서도 세계사적으로는 1848년 체제에 속해 있는 게 아닌가 싶다. 1987년 체제 전환을 위한 개헌논의가 한창 벌이질 듯한데 거기에 덧붙여 좀 거시적으로 1848년 체제에 대한 성찰도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아래는 몸젠의 타계 이후에 나온 가디언지의 추모기사이다. 저자에 대한 유익한 정보들을 포함하고 있어서 옮겨놓는다.  

Wolfgang Mommsen

A leading German historian, he brought academics together to further the understanding of his country's past

Richard J Evans
Tuesday August 17, 2004

The historian Wolfgang Mommsen, who has died of a heart attack while bathing in the Baltic Sea at the age of 73, was a leading member of a remarkable generation of liberal and left-leaning historians who championed a more critical attitude to the German past from the 1960s onwards.

He came from a famous family of scholars: his great-grandfather was Theodor Mommsen, a leading late 19th-century liberal and winner of the Nobel Prize for Literature for his trilogy on the history of ancient Rome. Visitors to Wolfgang's family home in Düsseldorf, overlooking the Rhine, could not escape noticing the large gallery of photographs of the many eminent professors whom he numbered among his ancestors and relatives. His father, Wilhelm Mommsen, was also a historian.

So, too, was Wolfgang's identical twin brother Hans, whose career matched his with uncanny precision. After studying in Marburg, Wolfgang obtained his doctorate in Cologne in 1958, in the same year as his brother was awarded his PhD in Tübingen. Both were appointed to chairs in the same year, 1968: Hans in Bochum, Wolfgang a stone's throw away in Düsseldorf.

To attend a German historical conference where both were present was an uncanny experience, as each, in true professorial style, flitted from one parallel session to the next, making participants who did not know them wonder why the same historian had to make two different contributions to the same discussion within the space of a few minutes. Hans smoked and drank, while Wolfgang did not; and seeing them together was like seeing the effects of 40 years of alcohol and tobacco on the same body: Wolfgang was undoubtedly the leaner and fitter of the two, though even he perhaps was throwing caution to the winds when he plunged fatally into the cold waters of the Baltic.

While Hans eventually became an important historian of Nazi Germany, Wolfgang specialised in the Imperial period, from the middle of the 19th century to the end of the first world war. His dissertation, on Max Weber and German politics, published in English in 1984, must surely be one of the most brilliant debuts a historian has ever made: it revolutionised our understanding of the 20th century's most influential sociologist by setting him firmly in the context of his times, and showing him to be a liberal nationalist and imperialist, much to the horror of many of his admirers. He went on to demonstrate that a knowledge of Weber's political thought and action was essential if we were to grasp accurately his theory of power. This was an outstanding achievement, and Wolfgang followed it up by playing a leading role in editing a new, comprehensive edition of Weber's works; his dynamism was essential in pushing on towards its completion.

The Mommsens were related to Weber by marriage, so there was something particularly iconoclastic in Wolfgang's book, which caused a huge storm when it first appeared. Building on this, he went on to produce a wide range of studies on German liberalism and on imperialism. But in the central period of his career, it was as an academic politician and administrator that he made his mark. A spell as a British Council scholar in Leeds at the end of the 1950s had made him into something of an Anglophile: it was a mark of his acculturation that the best gift one could take him on a visit to Germany was a packet of plain English tea - Liptons, PG Tips or Brooke Bond, not the fancy concoctions that are all one can obtain in German grocery stores. So it seemed natural that he should take over as director of the recently founded German Historical Institute in London in 1977.

Wolfgang's energy quickly made the institute into the most important centre for British historians working on Germany. He raised large sums of money, building up a well-stocked library and moving the institute into spacious and elegant new premises on the corner of Great Russell Street and Bloomsbury Square. He attracted a brilliant generation of young German historians as research fellows. And above all, perhaps, he organised a string of important conferences, of which the most influential was held in 1979, on state and society in Nazi Germany. The vehemence of the clashes between those who argued that it all came down to Hitler, and those who argued for the primacy of structural forces, took many observers aback, and still reverberates today.

In such a setting, Wolfgang was in his element. His love of controversy found another outlet in his cogent contributions to the debate that raged in Germany in the mid-1980s over whether the time had come to draw a line under the Nazi past: Wolfgang was sharply critical of those, such as the rightwing historian Ernst Nolte, who thought it had. All of this was too much for the conservative government led by Helmut Kohl that came to power in West Germany in 1982, however, and Wolfgang was effectively forced to return to his chair in Düsseldorf in 1985, leaving the institute in less energetic hands.

Wolfgang quickly found another role as president of the Association of German Historians from 1988 to 1992, and in this capacity took a lead in arguing against those who saw German reunification as the opportunity for a more nationalist view of the German past. In the mid-1990s he produced his masterwork, a huge, two-volume history of Germany from 1850 to 1918, elegantly written, comprehensive, and full of stimulating insights and material scarcely known even to specialists. On their simultaneous retirement in 1996, the Mommsen twins spoke jointly at a seminars in London and Cambridge: their mutual competitiveness had not diminished with time, and it was almost impossible for other participants to get a word in edgeways as each launched into a string of criticisms of the other's paper.

Wolfgang was not always an easy character to work with; he could seem arrogant and self-important, though those who knew him well could see through these traditional social attributes of the German professor to the real man underneath. He was particularly kind to younger British historians, and made those of us who knew him feel that we were making an important contribution to explaining his country's past, whether we really were or not. His infectious, braying laughter enlivened many an academic occasion and revealed a lighter side to his nature.

His perpetual restlessness and youthful energy led him, in his 60s, after his children had grown up and left home, to leave his wife for a graduate student. However, the relationship did not last, and Wolfgang spent his final years in a bachelor apartment in Berlin, continuing to work on the Weber edition and to publish books, the most notable of which was a study of Germany's part in the origins of the first world war. He is survived by his wife Sabine and their four children. 

07. 0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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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인 2007-01-10 21:22   좋아요 0 | URL
아 퍼갑니다 ^^ 최근에 하비의 "파리, 모더니티의 수도" 읽었는데, 1848과 1871 사이의 파리 모습들을 그리고 있어서 1848과 1871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답니다. 읽으면서 계속 전태일 열사, 광주항쟁(꼬뮌), 87대투쟁 등이 1848-1871 파리와 '동시대'로 읽히는 경험을 했습니다.
맑스 프랑스혁명 3부작과 에릭 홉스봄 다시 읽어보려고요. ^^

로쟈 2007-01-11 00:34   좋아요 0 | URL
공익을 위해서인가요?^^
 

북데일리에 실린 북리뷰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일본의 저명한 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감독 오스지로>(한나래, 2001)에 관한 것이다. 진작부터 갖고 있던 책이지만 아직 읽지는 않았는데, 그건 내가 오즈의 영화들을 아직 보지 않은 때문이기도 하다. 내가 영화를 즐겨 볼 무렵에는 쉽게 구하기 어려웠고, 요즘처럼 DVD타이틀이 거의 다 출시돼 있기 때문에 약간의 성의와 시간만 투자한다면 얼마든지 볼 수 있게 된 시점에서는 여유 시간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도 마침 지난주 용산 부근에 갔다가 <동경이야기>의 DVD를 구한 김에 이번 겨울이 가기 전에 몇 작품을 관람해볼 생각이다. 이 기사를 챙겨두는 건 그런 연유에서이다.  

북데일리(07. 01. 09) 위대한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의 매력

일본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두 분류로 나뉜다. 오즈 야스지로를 좋아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말장난 같지만 특이하게도 오즈는 사후에 일본 영화계에서 절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오즈 영화가 한국 디비디 시장에 범람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회자되고 신인 감독들 중 대다수가 오즈의 팬이라며 자처하고 나선다. 빔 벤더스나 허우샤오시엔, 압바스키아로스타미는 그에게 헌사 하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정성일 영화 평론가는 오즈를 거론할 때 “위대한”이란 형용사를 붙인다. 무엇이 그렇게 위대하고 대단한 것일까? 모두가 보는 영화이지만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말하지 못했던 영화가 바로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동경 대학교 총장이자 영화 및 문학 비평가로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정성일 영화 평론가가 자처하여 세르쥬 다네, 김현씨와 함께 스승으로 칭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구로사와 기요시, 슈오 마사유키, 아오야마 신지같은 동시대의 걸출한 감독들을 배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한나래, 2001)는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들을 비평하는 책이다. 비평에 앞서 알아두어야 할 것은 좋은 영화평론의 귀결은 그 영화와 감독에 대한 연애편지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책 <감독 오즈 야시즈로>는 좋은 글쓰기의 표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며 더 나아가 오즈를 열렬히 예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오즈의 영화를 보았거나 혹은 오즈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거나 책의 매혹에 빠질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오즈를 둘러싼 신화를 해체하면서 시작하고 그 해체를 부정에서 다시 긍정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한다. 첫 번째로 오즈를 예찬하는 언사들이 모두 부정적인 것으로 이루어졌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오즈의 영화에는 카메라가 움직이지 않는다, 낮은 위치의 카메라는 위치도 변하지 않는다. 이동 촬영이 거의 없다. 부감은 예외적 경우 외에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오즈 영화를 칭송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언어들이 사실은 거의 다 부정적인 언사로 이루어져있거나 결여를 지칭하는 언사로 지칭되어 있다. 이런 언사들인 오즈를 더욱더 세밀하게 바라보기를 가로 막는 장치였으며 벽으로 작용하였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런 것을 모두 삭제하고 부정적 언사가 아니라 긍정의 언사로 다가간다. 그리고 지금까지 가시적으로 보이는 것들 이외의 점을 지적하고 그 불가시함의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오즈의 영화는 부정적 언사들과 함께 단조롭다거나 혹은 “가족주의”드라마로 화자되어왔다. 그래서 그 단조로움 안에서 모든 영화들이 비슷하다고 했지만, 하스미 시게히코는 현존하지 않는 오즈의 작품들을 시나리오 속에서 재발견하거나 서구 비평가들에게 무시되어왔던 오즈의 초기 무성영화와 필름 느와르 속에서 견고하게 굳어져 있는 오즈적 일관성을 탈피한다. 그리고 영화 역사서에 줄곧 등장하는 그런 비평과 평가들을 일부 부정하거나 혹은 긍정하지만 그 비밀을 말하지 않았던 것을 설명한다.

가장 놀라운 것은 하스미 시게히코는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으로 영화를 해체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는 오즈의 영화에서 인물들이 옷을 갈아입는 것을 말하거나 혹은 먹는 것을 말한다. 또는 살아가는 것을 말한다. 오즈의 영화에서 딸이 시집을 갈 때 갈아입었던 옷의 비밀, 혹은 남성들이 갈아입었던 옷의 의미와 먹는 것을 통하여 내부와 외부를 연결짓는 오즈의 내러티브 연결법을 설명하면서 그렇게 내부와 외부를 차단 된 것이 아닌 열린 공간으로 나아가게 했던 오즈의 위대함을 역설한다. 또한 누구도 계산하거나 염두에 두지 않았던 것 중에 하나가 오즈의 딸들이 거의 비슷한 연령대에 머물러있었다고 말한다.

저자는 오즈의 영화가 세트로 촬영되었다는 것에서 출발하여 집안 구조의 단일성과 그 단일성이 대부분의 작품에서 반복되었다는 것을 알리고 세트 구조를 해체하기 시작한다. 이 세트 구조의 해체는 곧 오즈의 카메라와 시선이 머무르는 곳을 알려주며 그 시선이 부딪치는 내부의 차단성에 대해서 우리가 공공연히 감동을 받는다고 말한다. 특히나 1층과 2층을 연결해주는 계단은 영화상에는 존재하지만 세트상에는 존재하지 않는 불가시의 영역이다. (오즈의 영화에서 계단은 대부분 시야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붕 떠버린 2층의 공간에서 살아가는 여성들을 설명하고 그 1층과 2층의 공간에서 구분되는 성역의 공간을 만들어낸다.

책은 후반부에 도달해서 오즈의 영화를 보는 사람들이 그렇게 궁금해 하던 비밀을 풀기 시작한다. 왜 오즈의 영화에서는 환기작용을 하듯이 종종 이유 없는 하늘과 공장의 굴뚝 혹은 빨래가 등장할까? 그 설명의 시작에서 하스미 시게히코는 인물들이 모두 이동할 때 나란히 서있다는 것과(이것은 다른 영화에서 볼 수 없는 장면으로 항상 걸어갈 때 인물들은 나란히 걷게 되는 특징이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시선의 등방향성이다. 외부로 나아갔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시선으로 옮겨간다. 지하철역에서나 거리에서나 집단적으로 서 있을 때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몸을 기울이고 한쪽으로 시선을 옮기게 된다. 다가오는 오즈의 가상선의 파괴는 오즈가 어떻게 영화적 규칙을 파괴하고 있는지를 영화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결국 영화라는 매체가 동시에 두 가지 시선을 담을 수 없다는 한계를 오즈가 알고 있었기에 구도-역구도를 이용하여 그 시선을 한 대상이 보는 것처럼 조작한다. 이것은 마치 보고는 있지만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는 것 같은 불안감을 조장할 수도 있다. 트뤼포는 오즈의 이런 법칙들을 보고나서 이렇게 말했다.

“오즈의 영화에서는 한 사람을 이쪽 카메라에서 찍었다라고 생각하면 다음에 상대를 반대편으로 되받아쳐 찍는 듯 한 인상을 받습니다. 이것은 인상이 아니라 그렇게밖에는 생각할 수 없는 연출로, 보는 쪽으로서는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가면 사실 거기에는 상대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휩싸여 버립니다. 카메라가 되받아 칠 때마다 이미 대화 상대가 없는 것이 아닐까 하는...”

하스미 시게히코는 여기에 덧붙인다. “오즈의 시선은 전혀 배려가 없는 것이고, 그래서 이런 눈동자에 둘러싸여 사는 것은 불가능하며. 또한 그런 것을 오즈 자신도 충분히 의식하였을 것이다.” 오즈는 그 자신이 “영화에는 문법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것처럼 가상의 선을 파괴하고 영화적 문법을 해체하여 시선을 통한 불안감을 주고 기묘한 공간 감각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풀어야 될 난제가 도달한다. 즉 그 비어있는 공간과 사물을 쇼트가 느닷없이 담는 이유는 무엇인가? 구도-역구도 쇼트에서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두 명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이는 쇼트가 바로 그 비어버린 쇼트 혹은 이유 없는 정물들이다. 앞에서 그 실험적 쇼트들은 서로 다른 시선을 만들어 공간을 해체한다. 서로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거나 혹은 누군가 한명은 공간에서 이탈해있는 것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바라보는 그 정물에서 오즈는 서로 다른 생각과 행동을 하던 사람들 혹은 전쟁 전-후세대 할 것 없이 모든 장벽을 허물고 잠시나마 그 쇼트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다. “오즈적 ‘작품’이 선동하는 영화적 감성이 높아지는 것은 보다 추상적인 동시에 보다 직접적인, 즉 누구나 틀림없이 눈에 간직하지만 쉽게 서정과는 타협하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놓치기 쉬운 이미지의 힘에서 오는 것이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단조로운 영화라고 칭해지던 오즈의 평가에서 더 깊게 들어가서 오즈의 일상적인 것들이 어떤 수수께끼를 가지고 있는지 명쾌하게 풀어준다. 그렇지만 그는 못내 아쉬운 마음을 털어놓는다. 어쩌면 오즈 생전에 이런 평가들이 있었다면 그의 초기 영화들이 유실되지 않고 우리가 지금처럼 극장에서 그의 필름을 볼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오즈가 만들어낸 영화가 전 세계를 울릴 수 있다고 자부하며 오즈의 마음은 동시대적이면서 전 세계적인 보편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 책은 좋은 글쓰기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으며 더 궁극적으로는 영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를 책 읽기를 통해서 경험하게 해준다.(이도훈 시민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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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팀전 2007-01-09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다다미 쇼트를 보기 위해 의무감(?)을 가지고 본 적이 있는.. 오랜만에 만나는 이름이어서 반갑네요.국민의 25%가 봤다는 '괴물'도 지난 일요일 비디오로 볼 정도로 아기랑 씨름하고 있으니...^^

로쟈 2007-01-09 23: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결혼하니까 제일 먼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게 영화더군요. 둘다 영화광이 아닌 다음에야...

2007-01-10 04: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1-10 09: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얼른 써주시길!^^

노부후사 2007-01-10 14: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은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 붙으시나요?

로쟈 2007-01-10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고난도'의 질문이신가요? 오이를 썰 일은 별로 없는데(간혹 냉면을 먹을 때 빼고)...

노부후사 2007-01-11 11: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즈가 '만춘'에서 구사하는 유머입니다. 오이를 썰 때 칼에 오이가 많이 들러붙으면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로쟈 2007-01-1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군요.^^ 저는 질투할 일이 별로 없는가 봅니다(그래서 '발전'이 없는 건가)...
 

얼마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이 2006년 최고의 영화 10편을 꼽으면서 1위에 올려놓은 작품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이다. 이 노익장 감독은 지난해 태평양전쟁을 소재로 <아버지의 깃발>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 두 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각각 10월과 12월에 미국과 일본에서 개봉되었다고 하고, 이스트우드는 평단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 골든글로브 및 아카데미의 유력한 작품상/감독상 후보로 점쳐지고 있단다. 일흔이 넘은 나이에도 해마다 문제작들을 쏟아내는 그의 열정이 경이롭다. 여하튼 올해 가장 주목해볼 만한 영화들 중의 두 편이 이스트우드의 작품일 거라는 예상은 해볼 수 있겠다(더불어, 영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의 과제목록이 하나 더 늘겠다.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라고).  

Letters from Iwo Jima

중앙일보(07. 01. 09) 이스트우드가 새로 쓴 역사

할리우드의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77) 감독은 "역사는 승자와 패자 양쪽의 눈으로 봐야 한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란 통설을 단호히 거부한 그의 손에서 제2차 세계대전의 역사가 다시 쓰여졌다. 2차 대전 최대의 격전으로 꼽히는 이오지마(硫黃島) 전투를 미군과 일본군의 시각에서 각각 조명한 영화 '아버지의 깃발'(미.일 지난해 10월 개봉)과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미.일 지난해 12월 개봉)를 통해서다.

이에 따라 이스트우드는 할리우드외신기자협회가 15일 시상하는 제64회 골든글로브상에서 유력한 감독상 후보로 꼽히고 있다. 후보 자리는 모두 다섯인데, 그는 두 영화로 각각 감독상 후보에 올라 혼자서 두 자리를 차지하는 진기록도 세웠다. 일본에선 특히 '이오지마…'가 평론가와 관객 모두에게서 호평을 받으며 연말연시 흥행 1위를 기록했다.

두 영화는 공통적으로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의 인간적 고민에 초점을 맞춘다. 1945년 2월 19일 미군의 상륙으로 시작된 이오지마 전투는 한 달가량 이어졌다. 양쪽 모두에서 2만여 명의 사상자를 냈다. 하루하루 죽음과 맞서 싸워야 했던 병사들의 고뇌도 깊었다.



'아버지…'은 고지에 대형 성조기를 세우는 미군 병사의 모습을 담은 사진의 진실성을 추적한다. 영화에 따르면 사진은 연출됐을 뿐 아니라 사진 속 병사 중 한 명은 언론에 알려진 것과 다른 인물이다. 깃발도 하나가 아닌 여러 개였다. 그렇지만 미국 정부는 세 명의 병사를 영웅으로 미화한 뒤 전쟁국채 발행을 위한 홍보요원으로 적극 활용한다. 이들은 "우릴 영웅으로 만드는 건 사기다. 진정한 영웅은 전장에서 죽어간 전우들"이라고 항의하지만 묵살된다.



'이오지마…'의 주인공은 섬 수비대 사령관 구리바야시(와타나베 겐) 중장과 말단 병사 사이고(니노미야 가즈나리)다. 원치 않는 전쟁에 조국의 이름으로 불려온 이들은 수시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를 띄운다. 따라서 영화는 전쟁을 미화하거나 전사자를 영웅으로 떠받드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아버지…'은 다음달 15일 국내 개봉 예정이며, '이오지마…'는 아직 개봉 일정이 잡히지 않았다.(주정완 기자)

◆이오지마(硫黃島)=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약 1100㎞ 떨어진 태평양의 작은 섬.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일본 본토를 향해 폭격기를 띄우기 위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미군은 이오지마 비행장을 확보한 1945년 3월부터 도쿄 대공습을 감행해 확실한 승기를 잡게 된다.(*아주 오래전이지만 나는 가장 처절했다는 이 전투를 담은 영화 <유황도>를 본 적이 있다. 이스트우드가 쓴 '다른 역사'가 기대된다.)

마이데일리(07. 01. 08) 클린트 이스트우드, 오스카 전초전 美NBR 작품상

클린트 이스트우드(76)가 감독한 영화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Letters From Iwo Jima)가 전미비평가위원회(National Board Of Review) 선정 최우수작품상에 선정됐다. 7일(현지시간) 영화전문잡비 버라이어티, 헐리우드닷컴 등은 이 영화가 비평가위원회 선정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보도했다. 비평가위원회 수상결과는 아카데미시상식, 골든글로브 등에 많은 영향을 보여와 오스카 전초전으로 불린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 2005년 ‘밀리언 달러 베이비’로 아카데미 작품상과 감독상을 휩쓸었다. 비평가위원회 감독상은 ‘디파티드’의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 선정됐고 남자배우상은 ‘라스트 킹 오브 스코틀랜드’의 포레스트 휘태커, 여자배우상은 ‘더 퀸’의 헬렌 메린이 뽑혔다.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일본의 최대 격전지였던 태평양의 이오지마(유황도) 전투를 그린 영화다. 클린트 이스트우드는 지난해 이 영화와 똑같이 이오지마 전투를 영화로 제작한 ‘우리 아버지의 깃발’을 감독했고 연이어 ‘아오지마에서 온 편지’를 선보였다.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미국 군인 입장에서 이오지마를 그렸고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일본군의 시각에서 바라본 전투를 필름에 담았다.

Letters from Iwo Jima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라이언 필립, 제시 브래포드 등이 출연했으며 ‘이오지마에서 온 편지’는 ‘라스트 사무라이’로 잘 알려진 와타나베 켄이 주연을 맡아 일본어로 촬영됐다.



이오지마 전투는 6명의 미국 해병대 대원이 섬 정상에 성조기를 뽑는(*꽂는?) AP보도 사진으로 유명하며 ‘우리 아버지의 깃발’은 이 사진을 모티브로한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했다. 이오지마 전투는 미군 2만 4800명이 사상자를 냈고 일본군은 2만명 이상이 전사한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이경호 기자) 

07. 01.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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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화요일 한국일보에 연재되는 '과학을 읽다'는 내가 즐겨 읽는 코너이다. 지난해 줄기세포 관련보도 기자상까지 수상한 김희원 기자가 거의 전담해서 '과학책 읽어주는 기자' 역할을 하고 있는데, 이번주에는 매트 리들리의 <붉은 여왕>(김영사, 2006)이 도마에 올랐다. 사실 이 책은 지난 2002년에 출간된 바 있고, 나는 그 초판을 갖고 있다. 한데, 몇 가지 오역에 대해서 지적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며, 이번에 나온 건 소위 '전면개정판'이다(원저의 개정판이란 얘기가 아니다).

판형도 하드카바로 바뀌고 페이지수도 130쪽 가량이 늘어났다. 그렇다고 내용이 증보된 건 아닐 텐데, 어째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개정판은 지난 초판보다 훨씬 매끈하게 나왔고 구매욕구도 자극한다. 나는 지난달부터 이 '오래된 새책'을 다뤄보려고 했지만 마무리를 못 짓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리뷰기사를 접하게 되어 반갑다. 다음주까지 연재될 기사를 이 자리에 모아놓도록 하겠다. 책의 부제가 '성과 인간 본성의 진화'이다. 참, 제목은 왜 '붉은 여왕'인가?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붉은 여왕은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캐릭터이다. 저자 리들리가 1장의 에피그라프로 인용하고 있는 대목:

가장 이상한 점은 나무들과 그 주변의 것들이 결코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빨리 달려도 주변의 풍경은 그대로인 것처럼 보였다. '모든 것들이 우리를 따라 움직이는 걸까"'하고 앨리스는 어리둥절하게 생각했다. 그때 여왕은 앨리스의 그런 생각을 알아차리기나 한 듯이 이렇게 외쳤다. "더 빨리! 잡담하지 말고!"

내가 '사냥'도 자주 안 나가는 주제에 이런 잡담(페이퍼)이나 쓰고 있어도 되는 건지 모르겠다...  

한국일보(07. 01. 09) [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 上

‘남성의 대화는 공적(公的)이며, 집에서는 아예 말을 하지 않으려 하고, 경쟁적이며, 주의를 끌려고 한다. 여성의 대화는 사적(私的)이며, 큰 모임에서는 입을 다물고, 협동적이고, 안심시키려 하고, 그저 말하기 위해 말하는 경우도 있다.’

‘포르노 영화는 남성을 겨냥한다. 대체로 여러 명의 여자에 의해 남자의 욕망이 충족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배경설명이나 유혹의 과정은 가차없이 생략된다. 반면 연애소설은 여성을 위한 것이다. 사랑, 서약, 가정사, 관계를 형성하는 내용이 주된 것이다. 섹스가 등장한다 하더라도 남자의 몸이 아니라 여자의 느낌이 주로 묘사된다.’

남녀 본성의 차이는 시시한 통념이라거나, 차별적인 성 역할 교육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왔다면, 영국의 과학저널리스트 매트 리들리가 쓴 <붉은 여왕>(김영사 2003년 초간 발행)은 충격에 가까울 것이다. 그저 양육방식의 문제였다면 ‘화성 남자 금성 여자’ 시리즈와 같은 부부관계 상담서적이 그토록 공감을 얻으며 성공했을 리는 없었을 것 같다.

우리는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에 극도로 예민하고 많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러면서도 현재 인간의 모습이 성(性) 선택에 의한 진화의 결과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하지만 생물 종과 인류 문화를 넘나드는 <붉을 여왕>을 읽고 나면, 세련되게 포장된 행동들이 사실은 수백만년 전 조상으로부터 전수받은 유전자의 산물임을 간파하게 된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물 종의 짝짓기의 목표는 나의 유전자를 번성토록 하는 데 있다. 그런데 같은 목표를 위해 동맹하는 남녀는 불균형적인 투자를 한다. 특히 포유류가 그렇다. 수컷은 몇 초의 짝짓기만으로 아버지가 될 수 있지만 암컷은 오랫동안 새끼를 몸 속에서 키우고 젖을 먹여 길러야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남녀 성 선택 전략의 차이를 낳는다. 즉 남성은 가능한 한 수많은 여성과 짝짓기를 하는 것이 유전자를 퍼뜨리는 효과적인 전략이지만, 여성은 우수한 유전자를 가진 남성을 까다롭게 고르게 된다.

부모가 육아의 책임을 나눠 진다는 점에서 인간은 다른 영장류보다 조류와 비슷한 점이 많다. 남성은 수렵 채집인 시절 이후 멀리 사냥을 나가 먹을 것을 구해오고 배우자와 자식을 먹이는 역할을 해왔으며 여성은 집 가까운 곳에서 머물며 아이를 돌보고 과일을 채집하는 역할을 도맡았다. 사람의 일부일처제는 일부 조류처럼 자녀의 양육을 분담하고자 하는 남녀 전략의 결실이다.

하지만 남성은 틈만 나면 일부다처제를 추구한다. 권력과 부를 가진 남성이 하렘(haremㆍ많은 여자를 모아놓고 곳)을 구축하고 자신의 유전자를 가능한 한 널리 퍼뜨리려는 것은 역사상 수없이 확인된다. 일부일처제는 여성이 아닌, 결혼을 못하는 대다수 피지배 남성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일부일처제가 자리잡은 현대에도 약 5분의1이 혼외정사로 태어난다는 연구가 있다. 여성은 혼외정사의 경우 남편이 아닌 정부를 통해 우수한 유전자를 확보할 수 있는 이익을 얻게 된다. 남편은 그저 자녀 양육에 헌신적이면 그만이다.

이러한 진화생물학적 해석들은 페미니스트들의 강력한 비판에 처할 수 있다. “남녀의 본성은 생물학적으로 그렇다”고 정당화하는 근거로 이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책을 읽다 보면 유전자들이 펼치는 치열한 경쟁과 교묘한 전략에 빠져 사회에서의 남녀의 지위는 잠시 잊게 된다.(김희원 기자)

한국일보(07. 01. 16) [과학을 읽다] 붉은 여왕 下

문화적 차이나 시대를 초월해 남녀의 본성은 본질적으로 수렵인 시대로부터 이어져왔음을 <붉은 여왕(The Red Queen)>은 설득력 있게 설명한다. 그런데 애초에 성(性)이란 왜 존재하는 것일까? 효모처럼 인간도 그저 ‘중성’이라는 1개의 성만 있어서, 배에서 싹을 틔워 내 아이에게 내 유전자를 절반 아니라 100% 물려준다면 얼마나 효율적인가.

그리고 세상은 또 얼마나 평화롭고 단순해질 것인가. 연애감정에 시달리는 청춘도, 결혼 조건을 저울질하는 머리싸움도, 조건을 따지다 결국 치닫게 될 치정사건도 싹 사라질 테니 말이다. 성을 이해하려면 ‘붉은 여왕’이 무엇인지 살펴봐야 한다.

붉은 여왕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의 속편인 <거울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등장인물이다. 붉은 여왕은 전속력으로 뛰지만 배경이 함께 움직이기 때문에 결국 늘 제자리에 머문다. 이것이 진화를 바라보는 최근의 패러다임이다. 과거의 진화론자들이 생각하듯 생물은 진보의 방향이나 우등이라는 목표점을 향해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늘 바뀌는 생물학적 환경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나아갈 뿐이다.

성은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하는 메커니즘이다. 생물의 생존에 피튀기는 전쟁은 기생생물(병원균)과 숙주의 싸움인데 성이란 기생생물과의 싸움에 대비한 무기경쟁의 핵심 전략이다. 성의 본질은 유전자를 섞는 것이다. 단지 난자의 유전자와 정자의 유전자가 만나 섞이는 것뿐만이 아니다. 사람(대다수 생물)은 정자 또는 난자를 만들 때, 먼저 부모로부터 받은 두 벌의 유전자를 섞은 뒤에 반으로 나눈다. 이렇게 매번 새로운 유전자 조합이 만들어지고, 역시 새로운 조합의 배우자 생식세포와 결합해 유전자의 다양성을 유지한다. 세상에 오직 하나뿐인 생명체는 이렇게 태어난다.

유전자의 다양성은 기생생물과의 무기 경쟁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리의 세포는 조직적합성항원(HLA)을 갖고 있어 자기 세포를 인식하며, 외부 침입자의 항원은 백혈구 같은 면역세포가 기억하고 공격하도록 한다. 이 때 항원-항체 반응은 열쇠-자물쇠처럼 작동한다. 바이러스나 박테리아는 우리의 세포에 침투하는 열쇠를 찾기 위해 변이를 일으킨다. AI(조류인플루엔자)에 대한 우려는 이 바이러스가 인간 세포에 대한 열쇠를 곧 찾을 만큼 돌연변이가 진전됐다는 의미다.

우리의 면역계는 다양한 병원균에 대처하기 위해 다양한 자물쇠와 기억력을 갖춰야 한다. 첨단이 아닌 희소성이 관건이다. 바이러스가 쉽게 열쇠를 따기 시작했다면 이 열쇠에 맞지 않는 옛날 자물쇠를 다시 찾아 채우면 된다. 성이 없다면 이렇게 다양성을 유지할 방법은 없다. 면역계뿐 아니라 성 선택에는 붉은 여왕의 법칙이 작용한다. 경쟁력 있는 특정 유전형질이 득세하면 다시 희소한 유전형질이 유리해진다. 돌고 도는 진화의 쳇바퀴다.

성 선택에 깃든 속임수를 살펴보는 것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남성은 다산능력을 확인할 수 있는 큰 엉덩이와 큰 가슴의 여성을 선택해왔을 것이다. 이에 대해 여성은 허리가 가늘어지도록 진화했다. 실제 선호도 조사에서 남성은 여성의 몸무게나 엉덩이 크기 자체보다 엉덩이-허리의 비율에 좌우됐다.

영국 태생으로 생물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과학기자로 활동한 매트 리들리는 과학자들에게 강연을 할 정도로 깊이있는 시각을 보여준다. 2003년 처음 번역된 <붉은 여왕>은 국내에선 다소 냉담한 반응을 얻었지만 최근 번역을 손질하고 하드커버로 새로 선보였다.

07. 01. 09 -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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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08 2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딸기 2007-01-09 0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기자가 과학전공자가 아니어서 그런지, 내용 소개 말고 '평가' 부분은 마지막 한 문단 '어쨌든 재미있다' 뿐이어서 아쉽네요. 저도 과학책을 읽는 걸 좋아하지만 과학적 상상력(이해력)의 부재를 늘 뼈저리게 느끼는데, 저 기자분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이 책이 다시 나왔군요. 읽고 나서 누구 줘버렸는데... 그런데 이번엔 하드커버로요. -_- 130쪽이나 늘어났다고요. 신기하네요.

로쟈 2007-01-09 08: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성선택설에서 하는 얘기가 바로 그건데요.
딸기님/ 제 기억에 딸기님도 리뷰를 쓰셨죠 아마. 다음주에 하편도 있으니까 더 보태진 얘기가 있을지 모르죠(한데, '과학전문기자'도 비전공자를 쓰나요?). 책 분량에 대해서는 가끔 저도 우려하게 됩니다. 이제 한국어의 문제인지, 판형의 문제인지 둘다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웬만하면 원서의 두 배 이상이 돼 버리니...

아놔키스트 2007-01-09 11: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소개를 보니 구미가 당기네요. <이기적 유전자>와 <남자>라는 책을 동시에 떠올리게 하네요. 마침 요즘 남녀 차이에 관한 글을 찾아 읽고 있는데 이 책도 읽어보고 싶군요. 감사..

로쟈 2007-01-09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메이팅 마인드>도 같이 읽으셔야 합니다.^^

딸기 2007-01-09 16: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저도 리뷰를 썼어요. 그래서 항상 안타까운 '비전공자'의 마음을 잘 알고 있지요. 저분은 과학전문기자인데, 제가 알기로 학부 전공은 확실히 과학 아니었던 것 같고요, 그 뒤에 대학원이나 그런 곳에서 공부를 더 하셨는지는 모르겠어요. 책 분량은... 로쟈님도 가끔씩 퍼오시는 어떤 글의 주인공인 제 오라비 말로는, 한국어로 옮기면 두 배가 된다는데, 저 붉은여왕의 경우 한글판을 다시 내면서 늘어난 것은 좀 이해하기 힘든 일인 것 같아요. ^^

로쟈 2007-01-09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 글의 주인공'이 얼른 떠오르진 않지만, '오라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