쿤데라 강의에서 <소설의 기술>을 다시 읽었다. 가장 계발적인 소설론의 하나. 번역본은 여러 차례 출간됐는데(나도 네댓번 구입했다),전집판이 결정판이 아니라는 게 유감이다. 아래 인용에서도 ‘안나나 카레니나 중 한 사람뿐˝은 ˝안나나 카레닌 중 한사람뿐˝으로 옮겨져야 한다. ˝안나 카레니나와 남편 카레닌 중 한 사람뿐˝이라고 하면 더 친절하겠다(군더더기 지적이지만, ‘안나 카레니나‘는 한 사람의 이름이다).

소설의 정신은 복잡함의 정신이다. 모든 소설은 독자들에게 사실은 당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라고 말한다. 소설의 영원한 진실은 이것이지만, 묻기도 전에 존재하면서 물음 자체를 없애버리는 단순하고 성급한 대답들의 시끄러움 때문에 점점 들리지 않는다. 우리 시대의 정신에서 옳은 것은 안나나 카레니나 중 한 사람뿐이다. 앎의 어려움과 잡을 수 없는 진실의 어려움에 대하여 우리에게 말하는 세르반테스의 원숙한 지혜는 거추장스럽거나 쓸데없는 것으로 보일뿐이다.

- P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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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문학에는 모자관계가 유난한 작가들이 여럿 있다. 20세기 작가로는 알베르 카뮈, 로맹 가리와 함께 단연 프루스트를 꼽을 수 있다. 프루스트에게서 어머니의 의미에 대해 알랭 드 보통이 잘 지적하고 있다. 어머니 잔 프루스트의 전기도 나와서 구입했는데 번역되면 좋겠다...

프루스트는 태어나자마자 분별없는 극단적인 사례를 보여주는 부모의 손아귀에 붙잡힌 셈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나는 항상 네 살짜리에 불과했다." 마르셀은 프루스트 부인(Madame Proust), 엄마(Maman), 또는 보다 흔히 사용한 명칭으로는 "사랑하는 귀여운 엄마(chère petite Maman)"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결코 ‘우리 어머니(ma mère)‘, 또는 ‘우리 아버지(mon père)‘라고 말하지 않았고, 다만 항상 ‘아빠(Papa)‘와 ‘엄마(Maman)‘라고 말했으며, 어조는 마치 감수성 예민한 작은 소년 같았고, 이 음절을 내뱉는 순간 그의 눈에는 자동적으로눈물이 고였으며, 긴장된 그의 목구멍 속에서는 울음을 억누르는 목이 쉰 듯한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프루스트의 친구인 마르셀 플랑테비뉴의 회상이다.

프루스트 부인은 아들을 어찌나 끔찍이 사랑했는지, 어지간히 열렬한 연인조차도 이들 모자 앞에서는 그만 머쓱해질정도였다. 또한 그 애정은 그녀가 낳은 장남의 무기력한 성벽을 만들어냈다고, 또는 최소한 극적으로 악화시켰다고할 수 있을 것이다. 어머니가 생각하기에 아들은 어머니 없이는 뭐든지 제대로 하는 것이 없어 보였다. 아들이 태어났을때부터 어머니가 눈을 감을 때까지 두 사람은 줄곧 함께 살았다. - P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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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1차셰계대전 직후 파리에서 열린 국제회담에 영국대표단의 일원으로 참석한 젊은 외교관 해럴드 니콜슨을 한 파티에서 소개받은 프루스트는 그에게 회담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자세히 묻는다. ˝오전 열시에 모임을 열었다˝는 한 문장을 프루스트는 천천히, 상세히 말해달라고 요청한다. ˝정확하게요, 선생님, 너무 빠르지 않게요.˝ 프루스트 읽기(와 강의)의 딜레마다..





이것은 어쩌면 프루스트의 구호인지도 모른다. "너무 빠르지는 않게요(n‘allez pas trop vite)."이렇게 너무 빠르지는 않게 지나감으로써 얻는 이득이란, 그 과정에서 이 세계가 훨씬 더흥미로워질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는 점이 아닐까? 니콜슨이보기에는 "예, 우리는 오전 열 시에 모임을 열고"라는 간결한문장으로 요약되는 이른 아침이 악수와 지도와 종이 바스락거리는 소리와 마카롱 과자를 드러낼 정도로 확장된 것이다.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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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랭 드 보통의 프루스트 에세이를 여러 번 손에 들었지만 비로소 읽게 되었다. 세번째 구입한 책으로. 두번 잃어버리고서야 읽게 되는 책들도 있는 것이다...

이 작품은 보다 서정적이던 시대의 추이를 추적하는 회고록과는 완전히 다르다. 오히려 이 작품은 어떻게 하면 시간낭비를 중지하고 음미할 수 있는 삶을 시작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관한 이야기이며, 더욱이 충분히 실용적이면서도 보편적으로 적용 가능한 이야기이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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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로쟈 >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다

2년 전의 밑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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