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버벅거리던 PC의 상태가 더 나빠져 오늘은 부팅도 안 된다. 당장 강의자료를 만들고 프린트하는 게 불편해졌는데 이미 오래전부터 예상했던 상황이라 놀랍지는 않지만 불편한 건 불편한 거다. 사소한 일에는 낙관하는 습성대로 개의치 않고 PC로 적으려던 것을 폰으로 적는다. 영화책들 얘기.

문학비평가이자 영화비평가인 강유정의 신작 에세이가 나왔다. <죽음은 예술이 된다>(북바이북, 2017). ‘문학과 영화에서 죽음을 사유하는 방식‘이 부제다. 죽음도 꽤 큰 주제라 관련된 문학작품과 영화만 하더라도 부지기수이니 이 주제의 에세이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짤막한 영화평을 읽는 기분으로 뒤적였는데 이번주 강의에서 다룰 <컨택트> 얘기를 가장 먼저 읽었다. 이미 지난달에 한번 테드 창의 원작과 함께 강의한 영화여서 내겐 친숙하다. 저자의 견해도 나와 크게 다를 건 없었다.

강유정의 에세이와 함께 읽으려고 하는 다른 책들은 조금 무겁다. 김소연의 <사랑의 내막>(자음과모음, 2017)은 김기덕 영화론이다. ‘라캉의 눈으로 김기덕을 보다‘가 부제. 영화와 정신분석에 관한 얼마간의 예비지식을 요구하는 책이다. 나로선 몇편의 김기덕론을 쓴 적이 있어서(<로쟈의 인문학 서재>에 수록) 더 관심을 갖게 된다.

김소연과 마찬가지로 영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이창우의 <그로테스크 예찬>(그린비, 2017)은 저자의 학위논문을 단행본으로 펴낸 것이다. ‘한국영화를 통해 본 사회변동의 문화사‘가 부제. ‘그로테스크‘로 분류될 수 있는 영화들을 검토대상으로 삼아 1960년 이후 한국현대사를 훑는다. 김기영의 ‘하녀‘부터 김기덕의 ‘시간‘까지 주요 작품 목록이 낯설지 않아서 저자의 논지를 흥미롭게 따라가볼 수 있다.

나란히 적었지만 한권은 가볍고, 다른 두권은 좀 무겁다. 취향에 따라 나눠서 읽어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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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아침을 먹으며 읽은 책은 엔도 슈사쿠의 에세이 <인생에 화를 내봤자>(위즈덤하우스, 2015)다. 나온 지 2년이 됐지만 별로 주목받지 못한 책으로 이번에 <내가 버린 여자>와 함께 구입했다. 초판 1쇄.

제목이 예상하게 하듯이 소설가 주변의 일상을 가볍고 유머러스하게 그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엔도 슈사쿠적이지 않은 엔도 슈사쿠 입문서라고 해도 될까. 저자의 표현으론 ‘조금 모자란 소설가‘의 일상을 엿볼 수 있다. 만년 노벨상 후보였던 엔도는 1996년에 세상을 떠나는데 같은 세대의(따져보니 35년생인 오에보다는 한 세대 앞선다)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이후다. 결과적으로는 오에에 비해 ‘조금 모자란‘ 작가가 되어 버렸다.

엔도가 스스로도 꼽은 대표작이 <침묵>과 <깊은 강>이다. 유언에 따라 그의 관속에 같이 넣어진 책들이다. <깊은 강>은 세계문학 전집판으로 나와있는데 <침묵>도 온전한 형태로 다시 번역돼 나오면 좋겠다(이제까지 나온 번역본에는 소설 말미의 ‘기리시단 주거지 관리인의 일기‘가 빠져 있다. 이 대목은 <침묵의 소리>의 역자가 부록으로 번역해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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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발견‘도 북플로 적는다. 스마트폰을 이용하는지라 여러 제약이 있지만(타이핑에 시간이 더 걸리고 이미지나 상품넣기도 편하지 않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짧게 쓰게 된다. 페이퍼 쓰는 부담이 덜하다는 것.

오늘 보자마자 주문한 책은 인류학자 클리퍼드 기어츠의 <극장국가 느가라>(눌민, 2017)다. ‘19세기 발리의 정치체제를 통해서 본 권력의 본질‘이 부제다. 대표작 <문화의 해석>을 통해서도 알 수 있지만 기어츠는 인도네시아 발리 현지조사로 유명한 인류학자다. 그의 권력론에 해당하는 <극장국가 느가라>도 발리의 정치체제를 표본으로 하고 있는 것.

책에 대한 관심은 ‘극장국가‘라는 키워드 때문인데 먼저 만난 것은 권헌익의 <극장국가 북한>(창비, 2013)에서였다. 언젠가 짧은 서평을 썼던 책인데, 기억은 나지 않지만 기어츠의 책에 대한 언급이 그 책에도 있었을 것 같다. 핵심개념을 빌려오고 있으니까 말이다(‘극장국가‘란 말의 저작권이 기어츠에게 있는 듯이 보이므로).

이런 예기치않은 책들의 출현이 독서가들에게는 발견이고 굿뉴스다. 가장 유력한 북한 연구서의 하나인 <극장국가 북한>도 이 참에 다시 꺼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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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돌책 얘기가 나온 김에 한권 더. 아니 번역서로는 두권이다. 중국사회과학원 소속의 학자 자오위안의 방대한 대작 <명청 교체기 사대부 연구>가 지난달에 번역돼 나왔는데 <증오의 시대><생존의 시대>(글항아리) 두권 합계가 1400쪽이 넘어간다. 중국에서야 나올 만하다지만 이걸 번역해서 책으로 펴낸 역자와 출판사가 놀랍다(물론 글항아리라고 하면 고개는 끄덕여진다. 작년에는 위잉스의 대작 <주희의 역사세계>를 펴낸 이력이 있다).

올여름의 대표 벽돌책으로 존 킨의 <민주주의의 삶과 죽음>(교양인)과 나란히 놓자니 이런 책들은 독자까지도 숭고하게 만드는 거 아닌가 싶다. 그나마 날씨가 선선해져 가고 있지만 여름날 이런 무게의 책들과 씨름하는 독자를 떠올려보라. 하긴 사사키 아타루의 말대로 책은 원래 읽으라는 물건이 아닌지도 모른다. 읽어버림으로써 인생이 바뀌게 되는데 어찌 함부로 읽겠는가. 그저 만져볼 따름이다. 저녁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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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주제로 한 책들을 몇권 읽어봐도 좋겠다 싶은데 이게 또 만만치가 않다. 이번주에 나온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교유서가, 2017)만 하더라도 1000쪽이 넘는 분량이다(‘벽돌책‘으로 자동분류된다. 이 부류의 특징은 무게 때문에 가방에 넣고 다닐 수가 없다는 데 있다). 책의 존재는 작년에 이언 모리스의 <전쟁의 역설>을 읽다가 알게 되었는데, 기억에 모리스의 책에서는 저자가 ‘아자르 갓‘으로 표기됐었다. 이스라엘 학자로 전쟁학 전문가다.

피터 터친의 <제국의 탄생>도 <전쟁과 평화와 전쟁>이라는 원제가 알려주듯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염두에 둔 책이다. 그런데다가 <문명과 전쟁>에 붙인 김대식 교수의 추천사를 보니 월터 샤이델의 <거대한 평등주의자>도 전쟁을 주제로 한 탐나는 저작이다. 하여간에 읽을 책들이 빼곡하다. 이러다간 읽다가 전사했다는 말도 나오겠다. 독서도 전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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