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식의 <나의 이탈리아 인문기행>(반비)의 한 대목을 옮긴다. <이탈리아 레지스탕스 사형수의 편지>에서 저자가 인용했으니 재인용이다. 책은 반파시즘 투쟁과정에서 체포되어 처형당한 이들의 유서 모음집이다(분량은 모르겠지만 책이 번역되면 좋겠다. 어제 찾은 토리노가 이 반파시즘 투쟁의 중심도시였다). 대부분 이름없는 민중이라는 사실이 더 감동적인데 특히 내가 밑줄을 그은 건 한 가구장인의 유서다.

가구를 만드는 마흔한 살의 장인 피에트로 베네데티는 아이들에게 이런 글을 남겼다. "공부와 노동을 사랑하거라. 정직한 삶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훌륭하며 인생의 훈장과도 같은 것이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삶의 신조로 삼고서 너희들과 같은 사람들의 소망과 고통에 항상 마음을 쓰거라. 자유를 사랑하고 이 보물을 위해서는 부단한 희생을, 때로는 목숨까지도 바쳐야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예의 삶이라면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 어머니 조국을 사랑하거라. 하지만 진정한 조국은 세계라는 점, 세상 어디에도 너희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며 그들이 바로 너희들의 형제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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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맘 2019-03-06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름다운 글입니다 모든 것을 아우르는, 이것이면 되는, 그러나
지켜내기 힘든 가르침이네요
건강하고 즐거운 여행 되세요~
아쉽아쉽, 쌤의 글로 대신해봅니다~

로쟈 2019-03-06 16:26   좋아요 0 | URL
네 궁극적인 교훈이지만 표준이죠. 구두 장인의 말이어서 더 감동.~
 

토리노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밀라노로 돌아가는 중이다. 아침에 떠날 때와 마찬가지로 고속열차(우리의 KTX)인데 토리노발 열차의 최종 목적지는 로마다. 우리는 한 시간 뒤에 중간 정차역인 밀라노에서 내리게 된다.

아침 8시 기차로 출발해서 토리노 중앙역에 도착한 건 9시 남짓(토리노 역이 두 개 있는데 나중역이 중앙역이었다). 프리모 레비의 묘지에 먼저 들르려다가 역앞 버스가 만원이어서 레비의 생가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도보로 이동했는데 1919년 레비가 태어나고 또 1987년 난간에서 몸을 던져 자살한 집이 레 움베르토 가 75번지다. 움베르토 가는 토리노의 문화중심지로 레비의 책들을 다수 출간한 에이나우디 출판사도 이 거리에 위치해 있다. 오전의 주된 일정은 이 두 곳을 찾는 것.

주소를 알고 있기에 생가를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사진에서 보던 건물 그대로였는데 올해가 탄생 100주년이니 최소한 백수십 년 된 건물이다(이탈리아에서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라지만 상대적인 의미에서일 뿐이고 토리노의 건물 대부분이 그 이상의 수명을 갖고 있는 듯 보였다). 공동주택의 명패에는 ‘레비‘라는 이름이 아직 남아있었다. 레비의 아내도 세상을 떠나고 아들 부부가 산다고 책에서 읽은 것 같다.

당연하지만 건물 밖 길거리에서 레비의 삶과 문학에 대해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다. 방대한 분량의 평전을 구입만 하고 아직 읽지 못한 터라 주로 서경식 선생의 책과 작가 연보를 참고한 설명이었다. 홀로코스트 증언문학으로서의 의의와 더 나아가 수용소문학 작가로서의 의의, 레비 삶과 자살이 우리에게 던지는 과제 등에 대해서 견해를 밝혔다.

레비가 다닌 고등학교와 에이나우디 출판사 건물 앞까지 가보고 우리는 트램을 타고 토리노의 공동묘지로 향했다. 그곳 유대인 묘역에 레비가 묻혀 있어서인데, 월요일 휴무라고 해서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장례식이 치러지는 때문인지 개방돼 있었다. 다만 관리직원들은 근무하지 않았다. 문제는 굉장히 넓은 묘지에서 레비의 묘석을 찾는 일이 모래밭에서 바늘 찾는 일에 가깝다는 것. 다행히 이탈리아 인부의 도움으로 위치는 알게 되었지만 점심식사와 이후 일정 때문에 부득히 포기해야 했다. 휴일이어서 유대인 묘역이 닫혀 있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듣고서 더는 무리할 형편이 안 되었다. 결국 그의 묘지 부근에까지 가본 걸로 만족하고 걸음을 돌렸다.

예정보다 조금 늦게 점심식사를 한 곳은 그람시 레스토랑이었다. 무슨 연고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그람시‘가 안토니오 그람시를 가리킨다면 토리노를 방문한 의미 한 가지를 더 챙길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마르크스주의자이자 ‘헤게모니‘란 말의 저작권자인 그람시 역시 토리노대학 출신으로 토리노와 연고가 있다. 1920년대 토리노는 ‘이탈리아의 페트로그라드‘로 불렸을 정도로 사회주의 혁명운동의 온상이었다. 당시 지적, 문화적 운동의 거점도시였다고 할까. 그것이 지금은 퇴색한 것으로 보이는 토리노의 전력이다(에이나우디 출판사는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금도 이탈리아 출판의 중심인지는 모르겠다).

샐러드와 파스타, 피자를 주문한 점심식사는 맛은 있었지만 과도한 양 때문에 버거웠다(다음 식사부터는 주문양을 조정하기로 했다). 그람시 식당을 나와서 우리가 향한 곳은 알베르토 광장이었다. 니체의 생의 마지막 에피소드가 벌어진 장소(며칠 전 페이퍼에서 적었다). 니체의 삶과 철학의 의의에 대해서 소개하고 우리는 토리노의 도심 궁전과 토리노대학 등을 둘러보았다. 밀라노로의 복귀 열차에 오르기 전에 마지막으로 찾은 곳이 레비가 다녔다는 유대교 회당. 거기서 중앙역까지는 5분 남짓의 거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평균 2만보 이상 걸은, 나름대로 빡빡한 하루였다. 밀라노에 도착하면 잠시 한숨을 돌리고 어제와 마찬가지로 호텔근처에서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맛있는 요리도 매일 먹으면 물린다고 벌써 뭔가 얼큰한 식단이 생각난다(매번 인천공항으로 귀국할 때마다 김치찌개를 찾았던 이유다).

본격적으로는 이제 하루 일정을 소화했지만 시작이 반이라고 치면 일정의 절반을 해치운 느낌이다. 게다가 문학기행에 익숙해지다 보니, 내내 여행중인 것 같은 착각도 든다. 지난가을 독일여행이 끝나자마자 연속해서 이탈리아여행을 하고 있는 듯한 느낌. 이 무슨 여행의 영원회귀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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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라노의 새벽이다. 한국과는 8시간 시차로 곧 아침 5시가 된다. 3시간 뒤에 급행기차를 타고 토리노로 출발하는 게 오늘(2일차) 일정의 시작이다. 어제(1일차) 한 일은 통상 문학기행의 어려운 첫 관문으로 장거리비행을 거쳐서 목적지에 도착한 것.

예상대로 12시간의 비행을 거쳐서 밀라노 말펜사 국제공항에 도착한 것은 밀라노 시간으로 저녁 6시가 못 돼서였다(한국시간으로 오전 2시). 입국수속은 빨리 끝났지만 버스를 기다리느라 조금 지체되었고 한 시간쯤 이동하여 밀라노 중앙역 옆 호텔(스타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푼 것이 8시 반. 기내식으로 이미 식사를 한 뒤였지만 으레 그렇듯 현지식으로 한번 더 식사를 했다. 한국시간으론 새벽 5시의 이른 식사라 위가 조금 놀랐을 것이다. 기억력이 좋다면 ‘또 여행의 시작인가‘ 눈치를 챘을지도.

저녁의 모습 일부만 봤을 뿐이지만 밀라노는 번화하거나 화려한 도시는 아니다. 이탈리아 경제 중심도시로서의 면모는 내일 도심을 관광하면서나 확인해볼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중앙역 부근에 오래된 낡은 건물들이 그대로여서 얼핏 오늘의 이탈리아를 본 듯했다. 독일과 대조적으로 경제 상황이 좋지 않다는 뉴스는 지난주 외신에도 흘러나왔었다.

아직 밀라노의 밤은 깊다. 한두 시갼 뒤에야 날이 밝을 듯싶다. 오늘은 예외적으로 일찍 일정을 시작하는 날이라 나로서도 준비를 서둘러야겠다. 평소보다 이르게 아침을 먹고서 일행은 7시 20분에 로비로 집결할 예정이다. 중앙역에서 아침 8시 토리노행 기차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사진이 중앙역). 오늘의 책가방을 꾸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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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륙을 앞두고 있다. 안내방송으로 이탈리아어가 나오는 걸 들으니 비로소 이탈리아행의 느낌이 난다. ‘이탈리아‘라고 내내 적고 있지만 첫 기억은 ‘이태리‘. 초등학교 1학년 때 집앞의 어느 집 굴뚝에 백묵으로 몇 나라의 이름을 적은 일이 있다. 아는 나라를 적은 것 같은데, 지나고 나니 가고 싶은 나라를 적은 건가 싶기도 하다.

분명 미국, 캐나다, 영국, 프랑스 등을 적었을 법한데 가장 확실히 기억하는 건 ‘이태리‘도 거기에 들어가 있었다는 것. 아마도 ‘이태리‘라고 적으면서 모종의 만족감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이런 나라도 안다는 유식함에 대한 만족? 프랑스와 불란서의 어감이 다르듯이, 이탈리아와 이태리의 어감도 다르다. 아무려나 내 세대에게는 한자어 이태리가 더 친숙한 이름이고 그러다 보니 더 멋있어 보이기도 한다.

그 ‘이태리‘는 이제 주로 음식과 관련해서만 쓰이는 듯하다(발음의 경제상 3음절의 ‘이태리‘가 4음절의 ‘이탈리아‘보다 선호되는 것). 그 이태리 음식들을 현지에서 맛볼 참이다. 밀라노에서 저녁을 먹기까지 앞으로 12시간 정도만 날아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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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19-03-03 15: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히 잘 다녀오세요.

비연 2019-03-03 16: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태리..
 

이탈리아문학, 19세기 문학이 국내에 소개되지 않아 유감스럽다는 페이퍼를 적은 적이 있는데 예외라고 할 만한 작품이 생각났다(지금은 인천공항 라운지다). 데 아미치스의 <사랑의 학교>(1886)와 콜로디의 <피노키오>(1883)다. 비슷한 시기에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알려진 이탈리아문학작품이 나온 것.

동화 <피노키오>를 모르는 독자는 없을 테지만 <사랑의 학교> 역시 만화, 드라마로도 제작되어 알게 모르게 친숙한 작품이다(<엄마 찾아 삼만리>도 데 아미치스의 작품이다). 내가 배운 초등학교 국어교과서에도 수록돼 있었다(2학년 때던가). 교과서 외 세계명작전집에서 <사랑의 학교>라는 제목으로 읽은 기억이 있다. 다시금 떠올린 건 그 학교가 토리노의 학교여서다. 데 아미치스와 <쿠오레>(원제)의 흔적을 토리노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쿠오레‘는 ‘마음‘이란 뜻으로 보인다. 영어 제목이 ‘Heart‘다).

동화나 청소년소설 범주에 속하지만 <사랑의 학교>는 1880년대 혼란스런 이탈리아 사회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아메리카 대륙으로 대거 이민이 이루어지던 시기다. 그런 사회상을 염두에 두고 다시 읽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이 시기 미국문학에서도 아동문학 작품이 다수 등장한다. 마크 트웨인의 <톰 소여의 모험>(1876)<허클베리 핀의 모험>(1885) 등). 성인용의 새로운 판본이 나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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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ulemono 2019-03-03 1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둘 다 만화영화로 어릴 때 재미있게 본 작품이네요. 책으로 읽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