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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두 권을 고른다. 미국 수학자 조던 엘렌버그의 <틀리지 않는 법>(열린책들, 2016)과 영국의 생물학자 루버트 셸드레이크의 <과학의 망상>(김영사, 2016)이다. <틀리지 않는 법>의 부제가 '수학적 사고의 힘'이다.

 

 

<틀리지 않는 법>은 저자가 쓴 첫 대중서라고 하는데, 펭귄에서 나온 걸로 보아 대중성과 필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펭귄에서 나온 교양서라면 가격 대비 수준이 보장된다. 대개 틀리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수학을 대할 때 느끼는 근본적인 의문에 답한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왜 수학이 필요한지, 실제로 어디에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를 다른 어떤 책보다도 치밀하게, 명료하게 그리고 유쾌하게 보여준다. 엘렌버그는 학계를 선도하는 수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세상에 수학 전공자가 더 많아야 한다고 말한다. 복잡한 현실에서 수학이 없다면 우리가 얼마나 틀리기 쉬운지, 반대로 수학을 통해 어떻게 틀리지 않을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여러 명망가들이 추천사를 붙였는데, 저명한 과학자이자 과학저술가 스티븐 핑커는 이렇게 적었다.

"이 멋진 책의 제목은 <보통 사람들을 위한 수학책>이라는 영예로운 분야에 이 책이 무엇을 보탤 것인지를 잘 알려 준다. 루이스 캐럴, 조지 가모, 마틴 가드너 같은 선배들처럼, 조던 엘렌버그는 수학이 어떻게 정신을 기쁘게 하고 자극하는지를 보여 준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모든 사려 깊은 사람들의 도구 상자 속에 수학적 사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도 보여 준다. 오류와 미신, 어떤 식으로든 틀리는 것을 피하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말이다."

 

'조지 가모'는 아마 조지 가모브(Gamow)를 가리키는 듯. 수학과 물리학에 대한 대중서가 유명하다. 마티 가드너 역시 다양한 과학 대중서를 펴냈고, 그 가운데 <수학퍼즐>은 국내에서도 스테디셀러다. 엘렌버그가 이들과 어깨를 나란히하게 되었다는 것인데, 동시에 수준도 한단계 올려놓은 듯하다. 수학 대중서를 업그레이드했다고 할까.

 

 

거기서 수준을 더 높이면 이언 스튜어트나 로저 펜로즈? 언젠가 적었지만 로저 펜로즈는 내게 '그림의 책'이고, 이언 스튜어트까지가 고급 교양서로 여겨진다. 엘렌버그가 수학열차의 최신 꼬리칸이라고 하니까 일단은 타고 보자.  

 

 

<과학의 망상>은 제목부터가 도발적인데, 과학 바깥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나온 주장이란 점이 눈길을 끈다. '출간 즉시 열광적인 찬사와 논쟁을 동시에 불러일으킨 문제작'이란 카피는 충분히 예상할 만하다. 현대 과학의 주요 전제들을 도그마적 망상으로 공격하고 있으니까.

세상의 근본적인 문제들은 이미 이론적으로 해결되었다고 여기는 과학의 태도를 비판하며 현대 과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주요 10가지 도그마를 과학적으로 설득력 있게 검증한다. 세계는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인가? 세계는 생명 없는 물질로 만들어진 기계이며, 자연은 목적이 없는가? 정신은 뇌 안에 얽매여 있으며, 뇌의 작용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가? 초자연적 현상은 환각에 불과한가? 기계적 의학만이 효과가 있는 유일한 치료법인가? 셸드레이크는 유물론과 기계적 과학으로 대변되는 현대 과학의 문제점을 독자 스스로 깨닫고, 보다 자유로운 탐구정신을 갖출 수 있도록 고대 그리스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과학사상의 변천과정과 문제들, 주요 사상가들의 과학철학 흐름과 쟁점을 한눈에 파악하기 쉽게 설명하고 있다.

 

셀드레이크는 곧 나올 신간에서도 과학과 정신의 미래를 주제로 마이클 셔머(과학저술가이면서 '회의주의' 운동가)와 대담을 나눈다. <과학의 망상>의 속편 격으로도 읽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그래서 번역되면 좋겠다). 믿음에 대한 회의라면 두 사람이 이견이 없을 텐데, 과학도 '믿음'이라고 하면(가령 세계는 물질적이거나 물리적이라는 믿음) 어떤 대화가 오고갈지 궁금하다. <과학의 망상>에 대해서는 전문가 서평을 찾아봐아겠다...

 

16. 0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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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데이비드 핸드의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더퀘스트, 2016)를 고른다.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발언을 제목으로 삼고 있지만 원제는 <우연의 법칙>이다. 번역본의 부제가 '로또부터 진화까지, 우연한 일들의 법칙'인 것은 그런 이유. 분야를 가르자면 통계학 분야의 책이다. 저자는 영국의 수학자로 통계학계의 가장 권위 있는 메달을 수상했고, 책도 영어권에서는 베스트셀러에 올랐다고. 소개는 이렇다.

 

"왕립통계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대영 제국 훈장을 받은 세계적인 통계학자 데이비드 핸드는 언뜻 보기엔 '말도 안 되는 일들' 배후에 엄밀한 수학, 통계학적 법칙이 존재함을 말한다.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등장할 법한 미스터리한 사건들을 예로 들며, 그 뒤에 숨겨진 다섯 가지 '우연의 법칙'을 설명한다. 더불어 우리가 점괘나 종교나 미신에 의존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이해하고 대처할 수 있음을 역설한다."

통계물리학자이자 <세상물정의 물리학>(동아시아, 2015)의 저자인 김범준 교수가 추천의 말을 적었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는 희박한 확률의 사건이 우리 주변에서 왜 자꾸 일어나는지 설명한다. 확률이 낮은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아니 실제로 일어난다는 것을, 데이비드 핸드는 많은 흥미로운 사례들과 함께 설명한다. 이 책은 ‘우연의 법칙’에 대한 이야기다. 우연이라는 씨줄과 날줄로 이루어진 삶의 커튼을 짜는 ‘자연의 통계 법칙’이라는 베틀에 대한 이야기다. 커튼 위에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잔무늬의 작은 아름다움, 그리고 커튼을 통과해 벽에 아른거리는 봄 햇살에 감사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사실 문학, 특히 근대소설에서는 희박한 확률의 사건, 곧 우연한 일들을 배제한다. 개연성 있는 사건, 일어남직한 사건을 다뤄야 한다는 것이 근대소설의 격률이다. '우연의 법칙'은 이런 소설의 격률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한다. 문학 독자도 읽어볼 만한 책인 것.

 

 

저자의 다른 책으론 <정보 세대: 데이터는 어떻게 우리의 세계를 지배하는가>가 있다. 제목으로 봐선 교양서 같은데 너무 전문적이지 않다면 소개됨 직하다. '아주 짧은 입문서' 시리즈의 <통계학>과 <측정>은 당연히 교양서이겠고. 인문과 사회과학 쪽 책들은 여럿 소개되어 있는데, 이 시리즈의 과학분야 책들도 번역되면 좋겠다...

 

16. 04.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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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의 과학서로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두 명의 고고학자와 같이 쓴 <사회성, 두뇌진화의 비밀을 푸는 열쇠>(처음북스, 2016)를 고른다(표지만 보면 '사회성'이 제목이고 나머지는 부제로 보이지만, 그 전체가 공식 제목이다). 앞서 나온 책들을 보건대 던바의 책은 모두 읽어볼 만하다. <사회성>도 곧바로 관심도서로 꼽은 이유다. 진화인류학자와 고고학자가 의기투합하여 연구한 주제가 무엇인가. 바로 사회적 뇌이다.

 

"700만 년 전 우리와 침팬지는 하나의 조상으로 묶여 있었지만 현재는 전혀 다른 존재가 되어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벌어졌을까? 인간은 생존하기 위해 사회를 만들었고, 그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뇌가 발달한 것이다. 사회를 유지하려고 발달한 뇌를 '사회적 뇌'라고 부른다."

 

사회적 뇌(내지는 사회성의 진화)와 관련하여 생각나는 책은 데이비드 브룩스의 <소셜 애니멀>(흐름출판, 2011)이다. "관계와 만남을 통해 성장하는 인간의 본성을 밝히며 경험과 학습, 가풍, 주변 사람과 문화, 제도의 중요성을 다룬다." 더불어 매튜 리버번의 <사회적 뇌>(시공사, 2015)도 직접적으로 사회적 뇌가 '인류 성공의 비밀'이라고 주장하는 책이다. 또 브룩스의 책과 같은 제목을 갖고 있는 엘리어트 애런슨의 <인간, 사회적 동물>(탐구당, 2014)은 사회심리학 개설서다. 사회심리학이 다루는 마음이 사회적 뇌의 소산인 만큼 두 분야의 만남도 충분히 가능하겠다...

 

16. 03. 19.

 

P.S. <사회성>에는 주석과 참고문헌이 빠져 있다. 확인해봐야겠지만 번역서에만 누락된 것이라면 유감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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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로는 같은 제목인 책 두 권이다. 리디아 류의 <충돌하는 제국>(글항아리, 2016)과 장미셸 카트르푸앵의 <제국의 충돌>(미래의창, 2015). 후자는 불어본이지만 영어로 박힌 표지 제목은 리디아 류의 책과 같다. 다루는 시기는 다르지만 '중국'이 이야기의 중심인 것도 공통적이다.

 

 

<충돌하는 제국>의 부제는 '서구 문명은 어떻게 중국이란 코끼리를 넘어뜨렸나'다. "19세기 영국과 중국이 어떻게 서로 조우하고 충돌했는지에 대한 총체적인 재검토다. 저자는 영국의 도래 이전 만주족이 중국을 정복하고 있었다는 점에 유의하면서 상호 조우의 중요한 순간을 역사적 흔적에 따라 추적해나간다. 이를 위해 각국 자료를 비교·분석하고, 외교적 의례와 외무부의 보고서, 번역 행위, 문법서까지 살핀다." 조금 전문적인 책으로 보이는데, "이 책은 19~20세기 초를 연구하는 학자나 근대 중국을 연구하는 학자라면 반드시 서가에 구비해놓아야 할 만큼 가치 있는 저서다"는 추천사를 참고해야겠다.

 

반면 <제국의 충돌>은 현재의 충돌 양상을 다룬다. '독일의 부상, 중국의 도전, 그리고 미국의 대응'이 부제. "세계경제의 패권을 향한 미국과 중국, 독일의 새로운 경쟁을 분석하고 그 미래를 전망하는 책. 특히 패권 경쟁의 이해 당사자인 이들 세 나라가 아니라, 유럽 대륙의 오랜 실력자 프랑스의 한 중견 언론인 시각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곧 유럽연합의 강자 독일과 중국, 미국의 '삼국지' 판을 그려보이고 있는 책. 21세기 세계정세 혹은 전망이 궁금한 독자라면 손에 들어볼 만하다.

 

같은 제목이지만 <충돌하는 제국>과 <제국의 충돌> 사이에는 중국사를 기준으로 한 세기의 격절이 있다. 두 세기의 풍경을 비교해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16. 03.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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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도서관의 소식지 '오늘의 도서관'(240호)에 실은 짧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청탁받은 분량이 5매였던 글이다. 몇 권의 후보 가운데 내가 고른 책은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지식채널, 2014)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일년만에 개정판이 나왔군(출판사 이름만 지식채널에서 지식플러스로 바뀐 건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도서관(16년 3월호) 과학에서 다원주의를 옹호하다

 

‘생각하고 싶어하는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과학철학 입문서’. <장하석의 과학, 철학을 만나다>가 내세운 모토다. 저자의 이름이 제목에 들어간 것은 그가 세계 학계에서 인정받고 있는 자랑스러운 한국인 학자이기 때문이다. 장하석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과학사-과학철학부 석좌교수로 재직중이고, <온도계의 철학>으로 과학철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을 받은 바 있다. 이번 책은 EBS에서 기획한 강연에 바탕에 두고 있는데, 저자의 이름값만으로도 충분히 들어볼 만한 강연이고 읽어볼 만한 책이다.


일반 대중과 학생들을 위한 입문서라고 해서 ‘단순한 개론서’ 정도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학자로서 과학에 대한 견해와 독특한 시각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철학 개론서에 해당하는 책은 이미 여럿 나와 있기 때문에 이 책만의 특징이라고 할 저자의 독특한 시각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 보인다. 그가 보는 과학철학의 핵심은 다원주의다. 그에 따르면 과학에는 절대적인 지식도 없고 절대적인 방법도 없다. 얼핏 저명한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의 상대주의적 과학관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쿤이 패러다임들 간의 교체와 이동을 통해서 과학사를 설명하는 반면, 저자는 경쟁관계의 패러다임이 공존할 수 있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이들이 공존하는 게 더 좋다고 본다. 중요한 것은 패러다임 이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패러다임 간의 공존과 상호작용이라는 것이다.


과학에서 다원주의가 갖는 여러 이점을 저자는 관용의 이득과 상호작용의 이득이란 관점에서  설명하고 그에 대한 우려에 대해서 반박한다. 이러한 입장은 비단 과학철학 분야에서만 의의를 갖는 게 아니다. 저자는 과학적 다원주의를 사회적 다원주의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일원주의 사회, 곧 독재사회가 나쁜 것처럼 과학에서도 독재와 권위주의는 나쁘다. 그런 연속성과 공통점에 비추어 과학탐구의 의의를 밝히고자 하는 것이 저자의 의도다. “시민들이 진정한 독립적 과학탐구를 배우는 것은 권위와 이데올로기에 맹종을 막는 가장 확실한 길이 될 것입니다.”

 

16. 03. 01.

 

 

P.S. 과학철학 개론서는 여럿 나와 있다고 적었는데, 고전적인 책은 물론 토머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까치, 2013)다. 쿤의 과학관과 관련한 논쟁을 엮은 책으로 <현대과학철학 논쟁>(아르케, 2002)도 이 분야의 필독서(였다). 국내 저자들의 책으론 <과학철학>(창비, 2011)이 학계의 성과를 집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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