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주문한 신간 가운데(원서와 같이 주문했다) 가장 고대하는 책은 얀 지에른카의 <반혁명>(부산대출판문화원)이다. ‘우리시대의 질문총서‘의 하나로 출간되었는데 가장 궁금한 질문을 바로 짚었다(지난해부터 ‘반계몽주의‘와 ‘반혁명‘이 관심주제 가운데 하나다).

˝왜 반자유주의의 물결이 유럽을 휩쓸고 있는가? 왜 민족주의가 부활하고 자유주의는 쇠퇴하는가? 최근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반혁명적 사회변화에 대한 탁월한 분석을 담았다. 얀 지에론카는 점점 강력해지는 반혁명세력에 대항해 승리하기 위해서는 과거의 실수를 바로잡고 21세기 유럽에 걸맞는 새로운 자유주의의 의제를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폴란드 출신으로 현재는 옥스퍼드대학의 유럽정치 전공 교수로 재직중이다. 폴란드 출신 학자로는 지그문트 바우만 이후에 기억하게 되는 이름이다. ‘새로운 자유주의 의제‘라는 게 바우만의 견해와는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덕분에 다시 상기하게 된 책은 프랑스혁명사가 자크 고드쇼의 <반혁명>(아카넷)이다. ˝프랑스 혁명기에 혁명만큼이나 다양하고 극적으로 전개된 반혁명의 투쟁 양상을 전반적이고 체계적으로 조명한 것으로, 반혁명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책이다.

책은 2012년말에 나오고 나는 2013년 봄에 구입했는데 까맣게 잊고 있었다(2014년에 이사를 한 탓이 크다). 책의 행방을 찾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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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들어 출간된 가장 두꺼운 책은 <윤이후의 지암일기>(너머북스)다. 무려 1272쪽. 책값도 5만원이 넘는다(당연해 보인다). '우리나라 옛글' 분야로 분류되는데, 조선후기 일상사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는 일기다. 간단한 소개는 이렇다.


"고산 윤선도의 손자이자 공재 윤두서의 생부이며 '일민가逸民歌'라는 가사의 작가로 알려진 윤이후(尹爾厚, 1636∼1699)가 1692년 1월 1일부터 1699년 9월 9일까지 8여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쓴 일기 완역본이다. 함평현감을 마지막으로 해남으로 내려와 죽기 5일 전까지 그의 말년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윤이후의 지암일기>의 진정한 가치는 조선후기 일상사의 보물창고라는 점에 있다. 현재 전하는 조선시대 일기가 적지 않지만 이 정도로 일상을 섬세하고 풍부하게 기술한 자료는 거의 없다."
















대표 역자가 하영휘 교수인데, 2008년 <양반의 사생활>(푸른역사) 그간에 낸 책들이 주로 양반들의 일기와 편지다. 그 가운데서는 17세기말에 쓰인 <지암일기>가 시기적으로는 가장 앞선 문건이다. 사실 17세기 조선에 대해서 한국사 연보 이외 지식을 갖기 어려운데, 일상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담긴 일기가 번역돼 나와 반갑다. 조선시대 일기 가운데 이만한 자료가 거의 없다고 하니까 더더욱. 
















또다른 일기로는 개화파이자 나중에 친일파로 악명이 높은 윤치호(1865-1945)의 일기도 생각난다. 그의 활동과는 별개로 방대한 분량의 일기는 시대의 실상을 알게 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선집을 갖고 있는데, 이런 일기들도 따로 모아놓아야겠다...


20.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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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빌리그의 <일상적 국민주의>(그린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기에 눈길이 머무는 건 제목이다. '내셔널리즘'을 '국민주의'로 번역하는 일은 드물어서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이 대표적인데, 이제 지금 시점에서라면 '국민이란 무엇인가'로 다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일상적 국민주의>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다. 

















아무려나 네이션/내셔널리즘을 '민족/민족주의'와 '국민/국민주의'로 이중화해서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특수한 경험과 언어습관 때문이다(그걸 지탱하는 건 '단일 민족'이란 환상이다). 그렇지만 민족과 국민은 각기 다르게 정체성을 구성한다. 우리 헌법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문에서 '국민'을 '민족'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주권은 민족에게 있고 권력은 민족에게서 나온다? 그렇게 상이한 '민족'과 '국민'이 그렇지만 네이션의 번역어로서는 등가적이다. 네이션의 '이중생활'이 지속될지, 정리될지 궁금하다(그렇더라도 '민족'이란 말이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일상적 국민주의'는 무슨 뜻인가. 소개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국민주의’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저자 마이클 빌리그는 깃발, 스포츠 행사, 화폐 속 인물 같은 ‘일상적 국민주의’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렬한 국민주의’의 바탕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기표들을 통해 국민 정체성의 재생산을 연구하여 거대 담론에서 미시 분석으로의 이동을 촉발한 고전"이다. 
















국민주의와 경합하는 번역어로는 민족주의 외에 국가주의도 있다(statism의 번역어로도 쓰지만). 우리말 의미와 뉘앙스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내셔널리즘의 번역어로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셔널리즘'이 다의적이어서 원어민 화자에게 이렇게 다른 뉘앙스로 전달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짐작에는 '진실'과 '진리', 두 가지로 번역되는 '트루스(truth)'와 마찬가지로 그 구별은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다룬 책이 상당히 많다. 국민주의라는 새로운 용례가 나왔기에 잠시 소감을 적었다...


20. 0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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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다른)은 여러 모로 궁금한 책이다. 이름 때문에 저자가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일 거라 짐작하게 되는데 불가리아 출신의 문화비평가다(크리스테바와 토도로프가 불가리아 출신이다). 그리고 두께와 가격. 840쪽에 1킬로그램이 넘고 책값은 할인가로도 4만원에 육박한다. 한마디로 육중하다.

제목은 어떤가? 진리의 발견? 과학사책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데 얼른 든 생각은 이런 제목 책이 주목을 끌 수 있을까였다. ‘진리‘는 한국 독자들의 관심사나 취향으로 보이지 않기에(팩트나 공정, 정의, 불평등 등과 비교해보라). 통상 진리란 소수 철학자들의 관심사(골칫거리)가 아니던가. 원제가 뭔가 알아봤더니 ‘Figuring‘이다. 흠, 번역불가다. 책 제목으로는 견적이 안 나온다고 할까. 그나마 힌트가 되어주는 게 ‘앞서 나간 자들‘이란 부제다. 인물들을 다룬 책이라는 것.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 네 세기에 걸쳐 역사적 인물들의 서로 교차하는 삶을 통해 복잡함과 다양성,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순, 진실과 의미와 초월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탐험한 책이다.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한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과학에서 여성의 길을 닦은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과 조각 예술에서 성별이라는 견고한 암석을 부수어낸 해리엇 호스머, 문학비평가이자 <뉴욕 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자로 여성주의 운동에 불을 지핀 마거릿 풀러,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거쳐 환경 운동을 촉발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에서 끝을 맺는다.

대부분 여성이며 성소수자인 이들은 모두 대담한 사상가들로 크나큰 장애와 그 시대의 ‘성별 구조‘를 극복하고, 천문학적 발견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환경 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일단 이런 구도의 발상이 신선하다. 널리 알려진 인물도 있고 생소한 인물도 있는데 개별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뭔가 이어지게끔 배치한 것이 강점이다. ˝이 책은 뛰어난 여성주의 책이자 혁명적이고 시적인 문학 작품이다˝라는 평도 보이는데 잘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리의 발견‘이란 제목은 아쉽다. ‘아름다운 삶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프롤로그 제목을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다시 제목 생각.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오해 소지 때문에 다른 번역어들이 제안되고 있는데 책의 원제 ‘figuring‘도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싶다. ˝크나큰 장애와 그 시대의 ‘성별 구조‘를 극복하고, 천문학적 발견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환경 운동의 기반을 닦˝은 삶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사례이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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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사람을 독서인, 평균보다 많이 읽는 사람을 독서가라고 부르는 것은 어색하지 않다. 그런데 ‘인간‘이 붙으면 의미가 묘해진다. 독서인의 다른 말이 될 수도 있지만 인간이란 말의 뉘앙스 때문에 뭔가 못할 짓을 하는 이를 가리키는 것처럼도 느껴진다. 가령 내게는 ‘독서중독자‘로 읽힌다(흔하게는 ‘책벌레‘가 있었고 조금 격상하여 ‘책중독자‘라고도 불렸다).

이봉호의 <독서인간의 서재>(울력)의 부제가 ‘상수동 독서중독자의 서재에서 발견한 책‘인 것은 그래서 어색하지 않다. <독서인간의 서재>는 그 독서중독자의 서평집이다. 내가 붙인 추천사를 옮긴다.

˝저자 이봉호는 ‘독서중독자’이다. 책을 손에서 놓을 줄 모르는 이가 독서중독자라면, 거기에 더하여 책에 관한 이야기를 멈출 수 없는 이도 독서중독자라 불러 마땅하다. <독서인간의 서재>는 독서 편력의 기록이면서 책에 관한 끝이 없는 이야기다. 문학과 예술, 철학과 사회비평 등 다양한 분야와 난이도의 책을 다루지만, 저자의 눈길은 시종일관 부드럽고 어조는 가지런하다. 언제 어떤 자리에서도 아주 편안하게, 그러면서도 진지하게 책 이야기를 들려줄 것만 같다. 까칠한 서평가의 딱딱한 서평집에 물린 독자들을 따듯하게 다독여 줄 책이 여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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