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포포바의 <진리의 발견>(다른)은 여러 모로 궁금한 책이다. 이름 때문에 저자가 러시아나 동유럽 출신일 거라 짐작하게 되는데 불가리아 출신의 문화비평가다(크리스테바와 토도로프가 불가리아 출신이다). 그리고 두께와 가격. 840쪽에 1킬로그램이 넘고 책값은 할인가로도 4만원에 육박한다. 한마디로 육중하다.

제목은 어떤가? 진리의 발견? 과학사책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데 얼른 든 생각은 이런 제목 책이 주목을 끌 수 있을까였다. ‘진리‘는 한국 독자들의 관심사나 취향으로 보이지 않기에(팩트나 공정, 정의, 불평등 등과 비교해보라). 통상 진리란 소수 철학자들의 관심사(골칫거리)가 아니던가. 원제가 뭔가 알아봤더니 ‘Figuring‘이다. 흠, 번역불가다. 책 제목으로는 견적이 안 나온다고 할까. 그나마 힌트가 되어주는 게 ‘앞서 나간 자들‘이란 부제다. 인물들을 다룬 책이라는 것.

˝1700년대부터 현재까지 네 세기에 걸쳐 역사적 인물들의 서로 교차하는 삶을 통해 복잡함과 다양성,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순, 진실과 의미와 초월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탐험한 책이다. 행성 운동 법칙을 발견한 천문학자인 요하네스 케플러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과학에서 여성의 길을 닦은 천문학자 마리아 미첼과 조각 예술에서 성별이라는 견고한 암석을 부수어낸 해리엇 호스머, 문학비평가이자 <뉴욕 타임스> 최초의 여성 편집자로 여성주의 운동에 불을 지핀 마거릿 풀러, 시인 에밀리 디킨슨을 거쳐 환경 운동을 촉발한 해양생물학자이자 작가인 레이철 카슨에서 끝을 맺는다.

대부분 여성이며 성소수자인 이들은 모두 대담한 사상가들로 크나큰 장애와 그 시대의 ‘성별 구조‘를 극복하고, 천문학적 발견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환경 운동의 기반을 닦았다.˝

일단 이런 구도의 발상이 신선하다. 널리 알려진 인물도 있고 생소한 인물도 있는데 개별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라 뭔가 이어지게끔 배치한 것이 강점이다. ˝이 책은 뛰어난 여성주의 책이자 혁명적이고 시적인 문학 작품이다˝라는 평도 보이는데 잘 요약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리의 발견‘이란 제목은 아쉽다. ‘아름다운 삶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는 프롤로그 제목을 살렸더라면 어땠을까 싶다.

다시 제목 생각. 흔히 ‘행복‘이라고 번역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우다이모니아‘에 대한 오해 소지 때문에 다른 번역어들이 제안되고 있는데 책의 원제 ‘figuring‘도 후보가 될 수 있겠다 싶다. ˝크나큰 장애와 그 시대의 ‘성별 구조‘를 극복하고, 천문학적 발견을 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환경 운동의 기반을 닦˝은 삶이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한 삶의 사례이겠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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