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빌리그의 <일상적 국민주의>(그린비),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이기에 눈길이 머무는 건 제목이다. '내셔널리즘'을 '국민주의'로 번역하는 일은 드물어서다. 에르네스트 르낭의 <민족이란 무엇인가>(책세상)이 대표적인데, 이제 지금 시점에서라면 '국민이란 무엇인가'로 다시 번역해야 하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일상적 국민주의>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다. 

















아무려나 네이션/내셔널리즘을 '민족/민족주의'와 '국민/국민주의'로 이중화해서 번역하고 이해하는 것은 우리의 특수한 경험과 언어습관 때문이다(그걸 지탱하는 건 '단일 민족'이란 환상이다). 그렇지만 민족과 국민은 각기 다르게 정체성을 구성한다. 우리 헌법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조문에서 '국민'을 '민족'으로 대체하는 것이 가능한가? 주권은 민족에게 있고 권력은 민족에게서 나온다? 그렇게 상이한 '민족'과 '국민'이 그렇지만 네이션의 번역어로서는 등가적이다. 네이션의 '이중생활'이 지속될지, 정리될지 궁금하다(그렇더라도 '민족'이란 말이 한반도에서 사라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분단체제가 극복되지 않는 한).


'일상적 국민주의'는 무슨 뜻인가. 소개에 따르면 "우리의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국민주의’에 대한 분석을 담았다. 저자 마이클 빌리그는 깃발, 스포츠 행사, 화폐 속 인물 같은 ‘일상적 국민주의’가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열렬한 국민주의’의 바탕이 된다고 이야기한다. 일상적이고 사소한 기표들을 통해 국민 정체성의 재생산을 연구하여 거대 담론에서 미시 분석으로의 이동을 촉발한 고전"이다. 
















국민주의와 경합하는 번역어로는 민족주의 외에 국가주의도 있다(statism의 번역어로도 쓰지만). 우리말 의미와 뉘앙스에서 현저한 차이가 있음에도 내셔널리즘의 번역어로 쓰인다는 공통점이 있다. '내셔널리즘'이 다의적이어서 원어민 화자에게 이렇게 다른 뉘앙스로 전달되는 것인지 궁금하다. 짐작에는 '진실'과 '진리', 두 가지로 번역되는 '트루스(truth)'와 마찬가지로 그 구별은 우리에게만 존재하는 게 아닌가 한다. 


민족주의와 국가주의를 다룬 책이 상당히 많다. 국민주의라는 새로운 용례가 나왔기에 잠시 소감을 적었다...


20. 02. 2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