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에서 '2012년 나를 움직인 책'을 골라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짧은 추천사를 옮겨놓는다. 내가 고른 책은 리링의 <전쟁은 속임수다>(글항아리, 2012)이다.

 

 

 

동서양 고전 읽기에 대한 관심과 열기가 뜨겁다. 최고의 베스트셀러는 물론 『논어』인데, 수많은 번역서와 해설서가 나와 있음에도 여전히 새로운 책들이 더해지고 있고 독자들의 반응도 끊이질 않는다.

그 가운데 “『논어』가 이런 책이구나”란 감을 잡게 해준 책은 지난해에 나온 리링의 『논어, 세 번 찢기』였다. 리링은 베이징대 교수로 고고학·고문헌학·고문자학의 대가로 통한다. 『논어』를 종횡으로 읽어내는 그의 학식과 견해가 탄복할 만하여 이후엔 ‘리링의 모든 책’이다. 그가 펴낸 모든 책을 읽을 용의가 있다는 뜻이다.

고맙게도 ‘리링 저작선’이 연이어 출간되고 있다. 올해 『논어』 주석서 『집 잃은 개』와 『손자』에 대한 강의록 『전쟁은 속임수다』가 함께 나왔다. 모두 방대한 분량의 책으로 특히 『전쟁은 속임수다』는 저자가 『손자』연구의 최고 권위자로 꼽히는 이유를 알게 해준다. 『손자』에 관한 고증과 고문헌적 성과에 있어서 최고 수준을 보여주는 책이다.

리링은 중국 병법의 요체를 “전쟁에서는 속임수도 꺼리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찾는데, 그것을 “규칙이 없는 것이 바로 단 하나의 규칙이다”로 해석한다. ‘전쟁은 속임수’란 말의 뜻이다.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 백 번 이긴다”는 말은 누구나 다 아는 손자의 가르침이다. 그 손자를 알려면 리링의 강의를 읽어보시길. ‘압도적!’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말이다.

 

12. 1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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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방에 강의차 내려가면서 기차에서 책을 읽고 손으로 초고를 쓴 원고다(그러니 펑크를 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가방에 넣고 갔던 책은 토머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이다(프랭크가 문제 삼은 건 2000년 대선에서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하는 캔자스 주민들이 조지 부시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점이었다. 그래서 원제도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이다). 이번 대선 결과 때문에 소급적으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게 된 책이기도 하다. 핵심적인 주장은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경향신문(12. 12. 28) ‘빨간색 주’ 사람들과 계급투표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겸손하다. 그들은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서 저마다 자신이 평범하다고 말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걸 싫어하기에 잘난 체하거나 거들먹거리는 지식인들을 싫어한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경건하다. 그들은 신앙심이 두터우며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 그렇다고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다. 그들은 공개석상에서 상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애국자다. 그들에게 병역은 신성한 의무이며 국가적 위기에는 주저 없이 앞장서서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정직하게 일하는 소박한 노동자이다. 사무실에서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농땡이들과는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생산자와 기생적 존재는 구분돼야 한다고 믿는다. 카페라테를 마시며 세상을 바꾼답시고 설쳐대는 족속들과는 다르게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소탈한 음식을 먹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어느 나라 얘기인가. ‘빨간색 주’라는 말에서 눈치를 챈 분들도 있으리라. 미국 얘기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지지하는 공화당의 상징색이 빨간색이어서다. 얼마 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도 선거결과를 보여주는 지도에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가 승리한 중부와 남부의 많은 주는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민주당은 파란색이다.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된다. 빨간색 주에 사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미국식 ‘부자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랭크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가? 프랭크에 따르면 그들의 정치적 판단 기준이 경제가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도 보수적 가치가 더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된다. 그 결과 선거는 ‘계급전쟁’이 아닌 ‘문화전쟁’의 장이 된다. 문제는 보수적 가치를 앞세우는 정당이나 후보 자신에게 그런 가치는 선거 때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 낙태 반대는 공화당이 내거는 대표적인 가치이지만 낙태 금지의 입법화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으며, 그런 사실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전통가치’의 수호자를 자임했던 미국 보수주의의 영웅 레이건조차도 실제로 그런 가치들의 복원을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지 않았다. 보수적 가치를 역설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선거가 끝나면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남의 나라 미국 얘기다. 하지만 역시나 빨간색으로 도배된 이번 대선 결과를 보자니 우리 또한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공연한 염려를 갖게 된다. 비록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이지만 우리는 ‘두 개의 미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별 표심이 갈라진 미국만큼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통합’이 긴급한 정치적 화두로 제기될 만큼 분리의 장벽이 높다. 통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흔히 하는 말로 먹고사는 문제가 이념보다 중요하다면 선거를 다시금 문화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의 장으로 돌림으로써 가능하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선동대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는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를 지지하는 병아리와 다름없다”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계급투표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식별하고 이익을 계산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국민통합도 불가능하지 않다.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 통합이 아니라 부자는 부자정당에 가난한 사람은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통합이다.

 

12. 12. 27.

 

 

 

P.S. 개인적으론 강의상의 필요 때문에 민주주의 관련서를 모아놓는 편인데, 대선 이후에 책상 가까이에 놓은 책은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21세기북스, 2012),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민주주의>(미지북스, 2008), 그리고 피에르 로장발롱의 <카운터 민주주의>(2009) 등이다. 로장발롱의 책은 '불신 시대의 정치'가 부제인데, 국내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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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주 주간경향의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김삼웅 선생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현암사, 2012)을 골랐다. 물론 대선을 염두에 둔 선택이기도 했다. 엊그제 영화 <남영동 1985>도 봤는데, 고인이 겪은 시대의 어둠이 이 땅에서 다시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멀리 갈 것도 없이 MB시대가 재탕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2012년을 점령하라"는 유지가 기필코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투표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주간경향(12. 12. 25)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걸어온 길

 

김삼웅의 <민주주의자 김근태 평전>은 제목 그대로 김근태 평전이다. 지난 연말 우리 곁을 떠난 김근태의 삶은 어떤 것이었나. 1947년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김근태는 고등학교 때까지 ‘범생’이었다. 그는 학비와 생활비를 벌면서 공부하느라 사회문제에는 눈 돌릴 겨를이 없었다. 김근태는 1965년 경기고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에 진학한다. 상대를 선택한 것도 가난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라고 저자는 짐작한다.

박정희 정권의 굴욕적인 한일회담에 대한 대규모 반대시위가 번져가던 대학가의 분위기 속에서 김근태는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진보적인 사회과학 서적을 통해 현실과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을 갖게 된 그는 운동에 대한 확고한 신념으로 무장한다. 그가 시위를 주동한 혐의로 대학에서 제적돼 강제징집을 당한 게 1967년 10월이다. 1970년 가을 대학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시국은 악화일로였다. 김근태는 1971년 11월 마지막 학기에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돼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혐의로 수배자 신세가 된다.

 



피신 중에 김근태는 이런저런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노동자들의 상담과 교육에 열정을 쏟았다. 고은 시인은 <만인보>에서 “그는 70년대에는 물 위에 떠오르지 않았다/ 인천 어딘가/ 후텁지근한 이 공장 저 공장에 스며들어가/ 자격증 네 개 다섯 개 땄다/ 서울대 상과대학 졸업장 따위는 던져도 좋았다/ 공장에서/ 떳떳한 호모 파베르였다”고 노래했다. ‘하얀 양초 같은 얼굴’의 김근태가 수면 위로 부상하는 것은 1983년 민청련(민주화운동청년연합)을 결성하고 의장으로 부임하면서부터다. 민청련 의장을 맡으면서 김근태는 청년민주화운동의 리더로서 본격적인 정치투사의 길을 걷게 된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었다. ‘광주학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처음 이슈화한 민청련은 전두환 정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간부 전원에게 수배령이 떨어지면서 김근태는 체포된다. 1985년 9월 그는 치안본부 남영동 분실로 이송돼 그곳에서 22일간 끔찍한 고문을 당한다. 영화 <남영동 1985>의 소재가 된 사건이다. 권력 유지에 급급했던 전두환 정권은 인권과 법질서를 무시했다

정권의 하수인들에게 끔찍한 고문을 당한 김근태는 거짓 자백을 하고 수감되지만 다행스럽게도 고문 사실이 알려지면서 민주화운동은 더욱 강렬하게 불붙었다. 1986년 6월 부천서 성고문에 이어서 1987년 1월에 터진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은 결국 6월 항쟁을 불러왔다. 김근태는 1988년 6월 가석방됐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전민련(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결성과 활동으로 1990년 다시 구속된 그는 1992년 8월에야 자유의 몸이 된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가 걸어온 삶의 이력이다.

민주화 이후 그의 일차적인 관심은 민주대연합론을 통한 정권교체였다. 그 핵심은 ‘재야와 제도야권의 결합’인데, 그는 “의회를 통해 민중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를 이루고, 이를 바탕으로 통일로 가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를 위해 재야운동에서 간디의 길(사회운동)과 네루의 길(정치운동)이 결합돼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1996년 15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후 그는 간디의 길에서 네루의 길로 접어든다. 가장 성실한 의원이자 장관이었으며 언론에서도 그를 차세대 지도자감으로 꼽았지만, 아쉽게도 그는 ‘대중정치인’이 아니었다. 시대를 조금 앞선 탓인지도 모른다. ‘비정치적인’ 정치인이 새로운 정치의 희망으로 주목받는 2012년에 그의 빈 자리는 크게 느껴진다. 그 빈 자리는 ‘2012년을 점령하라’는 그의 유언을 지킴으로써 채워질 수 있을 것이다.

 

12.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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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사람과 책'에 실은 '로쟈, 고전과 만나다'를 옮겨놓는다(지면의 오탈자들을 교정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을 대상으로 삼았다. 밀즈의 책으론 <파워 엘리트>를 먼저 떠올렸지만 이미 절판돼 아쉽다. 아주 오래 전 학부에서 사회학 개론 강의를 들을 때 추천받았던 입문서가 피터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와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어서 기억을 좀 더듬어 보기도 했다.

 

 

 

사람과 책(12년 12월호)사회학 입문서의 고전

 

이달에는 관심분야를 문학이나 철학에서 사회학 쪽으로 옮겨보았다. ‘사회학의 고전’이라면 대뜸 고전 사회학자들의 저작을 떠올리게 된다. 사회학의 세 거두, 뒤르켐과 베버 그리고 마르크스의 저작들이 그것이다. 각각의 대표작 <자살론><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자본론>은 고전 필독 목록에 언제나 오르내리지만 결코 만만하게 읽히는 책들은 아니라는 점에서 충분히 고전에 값한다. 그런 묵직한 고전을 뒤로 하고도 읽을 만한 사회학 책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사회학 입문서의 고전’으로 초점을 약간 바꾼다면 손에 꼽을 만한 책이 없지 않다. 미국의 사회학자 C. 라이트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돌베개)은 그 중 하나다. 


아마도 국내에서 사회학 교재로는 가장 많이 읽히는 듯싶은 앤서니 기든스의 <현대사회학>은 ‘사회학이란 무엇인가’란 첫 장을 ‘사회학적 상상력’에 대한 소개로 시작한다. “사회학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우리의 상상력을 개발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기든스의 대전제다. 물론 개발해야 한다고 말하는 상상력이 곧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사회학자가 “자신이 친숙한 개인적인 상황을 벗어나 더 큰 문맥에서 사물을 바라보는 사람”이라면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사회학자의 기본 자질이자 요건이다.

 

사회학, 개인 관심사의 확장
사회학적 상상력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기든스는 직접 한 잔의 커피를 마시는 행위에서 어떤 사회학적 상상력을 이끌어낼 수 있는지 시범을 보이는데, 먼저 커피를 마시는 행위는 사회적 의례의 일부로 상징적 가치를 갖는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서 관심은 커피 자체보다는 대화에 두어진다.

 

커피는 사회적 상화작용과 의례 행위의 한 단초이다. 또 커피는 카페인을 함유한 일종의 마약이다. 많은 사람이 ‘각성’ 효과 때문에 커피를 마시지만 보통 커피중독자를 ‘마약중독자’로 여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커피나 알코올은 거부하면서 마리화나나 코카인 사용은 허용하는 사회도 있기 때문에 커피를 마시는 행위의 의미는 개인적 차원을 넘어선다. 아니 그 의미는 경제적 관계망을 고려하면 전 지구적 차원으로 확장된다. “커피는 지구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와 가장 부자 나라 사람들을 이어주는 상품”이기 때문이다. 주로 가난한 나라에서 경작되지만 부자 나라에서 대량으로 소비되는 커피는 국제 교역에서 석유 다음으로 가치 있는 상품이다. 따라서 이러한 거래 역시 사회학의 관심사다.

 

그뿐인가. 통시적 차원에서는 커피를 마시는 행위의 역사도 고려해야 한다. 커피의 대량 소비가 약 200년 전 서구 식민지 확장기부터였으므로 전 지구적 커피 교역은 식민주의의 유산이기도 하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세계화와 공정무역 논쟁에서도 커피는 중심에 놓인다. 이렇듯 커피 한 잔을 놓고서도 사회학적 상상력은 아주 많은 의미와 문제의식을 길어 올릴 수 있다.


사회학이란 학문을 설명하는 데 핵심적인 기본 개념이 됐지만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말 자체는 명시적인 출처와 기원을 갖고 있다. 이미 언급한 대로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개인적으로는 밀즈란 이름과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책 제목을 대학 2학년 때쯤 처음 접했다. 당시 수강한 ‘사회학개론’ 시간에 피터 버거의 <사회학에의 초대>와 함께 입문서로 소개받은 책이 밀즈의 <사회학적 상상력>이었다.

 

 

 

원서는 1959년에 나왔는데, 안타깝게도 밀즈는 1962년 46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나기에 이 입문서는 사회학도들에게 남긴 그의 유언 같은 책이 됐다. 한국어판 초판이 나온 것은 1978년이고 두 차례 출판사를 옮겨서 2004년 현재의 개정판이 출간됐다. 이 개정판에는 2000년에 나온 원서의 40주년 기념판 후기가 새로 추가돼 있다. 그렇더라도 <사회학적 상상력>이 현재 읽을 수 있는 밀즈의 유일한 저작이라는 사실은 아쉽다. 20세기 후반의 가장 뛰어난 사회학자로 꼽히기도 했지만 우리말로 번역된 <들어라, 양키들아>나 <파워 엘리트> 같은 책들이 모두 절판된 상태다. ‘사회학적 상상력’이란 아이디어 자체는 아직 요긴하지만, 그 구체적인 실례들은 필요하지 않은 것일까.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사회학적 상상력'
사실 입문서라고 해도 <사회학적 상상력>을 처음 손에 든 독자는 다소 전문적인 내용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사회학의 현실, 더 구체적으로는 1950년대 미국 사회학의 주류적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자신의 대안적 사회학을 제시하는 게 전체적 구성이기에 일반적인 입문서와는 성격을 달리하고 있기도 하다.

 

서론격인 1장의 제목이 ‘약속’인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적이다. 밀즈는 사회학, 더 나아가 사회과학의 당면한 과제를 제시하고 그에 따라 사회과학의 의미를 규정하려고 한다. 무엇이 사회학적 상상력의 약속이고 과제인가? “우리로 하여금 역사와 개인의 일생 그리고 사회라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이 양자 간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이러한 약속/과제를 인식하는 사람이라면 밀즈는 다음의 세 가지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는 사회의 전체적인 구조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들은 무엇이며, 그것은 서로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가?” 등의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둘째는 그 사회가 인류의 역사에서 갖는 위치에 대한 질문이다. “그것이 인류 전체의 발전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검토하는 특수한 사회적 성격은 그 사회가 움직이는 역사적 시기에 어떠한 영향을 주고 또 받는가?” 등이 이어지는 물음이다. 그리고 셋째는 이 특정한 시대, 사회에서 우세한 사람들의 유형에 관한 질문이다. “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선택되고 형성되며, 해방되고 억압되며, 예민해지고 둔감해지는가?”라고 밀즈는 묻는다.


사회학적 상상력은 그렇듯 한정된 경험의 시야를 확장하여 개인적 삶의 사회적․역사적 의미를 탐사한다. 즉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으며 사회 안에서 개인의 일생과 역사가 교차되는 조그만 점인 자신 속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이해하고자 할 때” 동원되는 것이 사회학적 상상력이다. 이 사회학적 상상력을 매개로 하여 ‘개인 문제’와 ‘공공 문제’는 서로 만난다.

 

밀즈가 들고 있는 예로, 가령 인구 10만 명의 어떤 도시에서 한 사람만 실업자라면 그것은 한 개인의 문제다. 하지만 취업자가 5000만인 나라에서 1500만 명이 실업자라면 그것은 공공 문제이며 개인적인 차원에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다. 사회구조라는 관념을 명확하게 인식하고 분별 있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이 곧 사회학적 상상력을 갖고 있다는 표지다. 그렇다면 사회학적 상상력은 비단 사회학자들만의 전유물일 수는 없다. 건강한 사회, 더 바람직한 사회에서 살아가기 위해서라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우리 모두가 숙지하고 발휘할 필요가 있는 능력일 것이기 때문이다.

 

 

관료기구의 일부가 된 사회과학
사회학적 상상력의 의의는 그렇게 확장될 수 있지만 <사회학적 상상력>의 많은 메시지는 주로 사회학도와 사회학자들을 향한다. 개념만을 강조하는 ‘거대이론’과 미시적 방법론만을 강조하는 ‘추상적 경험주의’를 넘어서 밀즈가 옹호하는 사회학은 해방적 사회학이다. “인간 해방 교육자와 마찬가지로 사회과학자의 정치적 임무는 개인 문제를 공공 문제로, 그리고 공공 문제를 다양한 개인들에 대한 인간적인 의미의 관점으로 전환하는 일”이라고 그는 못을 박는다.

 

다시 말해서 개개인이 놓여 있는 단편화되고 추상화된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구조를 인식하고 각자가 그 속에서 자기 위치를 인식하도록 하는 것이 사회과학의 정치적 역할이자 지적 약속이라고 밀즈는 말한다. 바로 그런 것이 사회학자의 바람직한 역할이자 소명일 테지만, 밀즈는 사회학과 사회학자의 현실에 대해서 결코 낙관하지 않는다.


가령 미국의 사회구조가 전혀 민주적이지 않지만 사회학자들이 민주적 공공 지식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 의문스러울 뿐더러, 또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손 치더라도 과연 그것이 (대중이 아닌) 공중의 회복을 가져올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일반적으로 사회과학자는 중간 정도의 계급, 지위, 권려의 환경에서 살고 있다”는 밀즈의 지적에 그래서 눈길이 가는데, 관료 기구의 일부가 된 사회과학에 대한 그의 비판이 과연 미국 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일까(밀즈는 ‘사회과학’보다는 ‘사회연구’란 말을 선호했다). 다시 읽은 소감으론 <사회학적 상상력> 대신 <들어라, 사회학자들아>란 제목이 붙여졌더라도 어색하지 않았을 책이다.

 

12. 1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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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달 책&(413호)에 실은 '로쟈의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달의 주제는 '복지국가'다. '경제민주화'에 밀린 감이 있지만 '복지국가'는 이번 대선의 빼놓을 수 없는 화두 가운데 하나다. 관련서도 적잖게 나와 있으므로 한두 권 정도는 일독해봄직하다.  

 

 

 

책&(12년 12월호) 복지국가를 위해 필요한 고민

 

대선과 맞물려 복지국가가 새로운 시대정신으로 대두하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국가로의 방향성과 복지정책의 확충에 대해서는 한 목소리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이 복지국가이며 미래의 복지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필요한 고민은 무엇인가? 2012년을 마무리하면서 복지국가를 화두로 한 책을 몇 권 순례해보기로 한다. 간단한 개념정리가 일단 도움이 되겠다. 정원오의 <복지국가>(책세상, 2010)가 용도에 맞는 책이다. 저자에 따르면 “국가가 주도하는 복지활동을 사회보장이라고 하며 사회보장제도를 통해 국민의 생활수준을 보장하는 국가를 복지국가라 한다.” 국가 형태의 발전사를 고려하면 복지국가는 원형국가에서 발전국가, 민주국가, 복지국가로 전개돼온 발전과정의 최종 형태이기도 하다. 한국현대사에 대입해보아도 얼추 들어맞는 그림이다.

 

1960-70년대 산업화 단계가 발전국가에 해당한다면, 형식적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7년 이후의 국가는 민주국가라 이를 만하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복지국가의 문턱에 서 있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요구가 국가의 규모와 기구가 확대되고 복지 제공 기능이 국가의 중심 기능으로 정착되면서 국가의 정당화 방식이 변하게 된 사정과 무관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더불어 국가가 제공하는 복지 혜택은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가에 대한 국민의 정당한 권리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복지국가는 왜 필요하며 무엇이 좋은가.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대표로 ‘복지국가 운동’을 주도하고 있는 이상이 교수의 <복지국가가 내게 좋은 19가지>(메디치, 2012)는 그런 물음에 답하는 교과서적인 책이다. 저자는 행복의 추구가 인간의 본성이며 국민이 행복한 나라가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OECD 국가별 행복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늘 하위권을 맴돈다. 올해의 발표를 보더라도 34개국 가운데 우리보다 점수가 낮은 나라는 터키와 멕시코뿐이다. 반면에 덴마크, 노르웨이, 스웨덴 같은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에 랭크돼 있다. “왜 스웨덴 국민들은 행복하고 대한민국 국민은 행복하지 않은가?”란 질문이 나올 법하다. 대답은 간명하다. “스웨덴은 제대로 된 복지국가이고, 우리나라는 복지국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문제의식을 갖고서 저자는 신자유주의적 ‘시장만능국가’에 대한 대안으로 ‘역동적 복지국가’ 모델을 제안하는데, 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가 그 네 가지 원칙이다. 핵심은 이 네 원칙이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통합적 구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 사회에서는 ‘보편적 무상급식’이란 의제 이후에 이러한 복지국가 담론이 널리 확산됐지만 지난 4.11 총선 즈음에 등장한 ‘경제민주화’ 담론에 다소 가려진 감이 있다. 복지국가가 상위의 ‘국가 비전’인데 반해서 경제민주화는 ‘하위 목표’에 해당하기에 저자는 이러한 전도현상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게다가 경제민주화의 다양한 쟁점을 두고도 유독 ‘재벌 지배구조 개혁’만을 거론하는 것은 경제민주화를 협소하게 제한하는 일이다. 이러한 협의의 경제민주화를 넘어서 역동적 복지국가의 건설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역설한다.


복지국가가 행복의 조건을 만들어내는 국가라면 그것은 동시에 우리를 불안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국가다. 어떤 불안인가. 이상이 교수가 정치사회학자 김윤태 교수와 함께 대담을 통해서 복지국가론을 정리한 <내 아이가 살아갈 행복한 사회>(한권의책, 2012)에서는 노후불안, 의료불안, 일자리불안, 보육․교육불안, 주거불안을 5대 불안으로 정의하고 이에 대한 복지국가의 해법을 제시한다. 두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복지의 확대가 경제성장을 둔화시킨다는 일부의 주장과 달리 오히려 발달된 복지제도가 지속적인 성장의 토대가 된다는 점이다. 반면에 복지에 적게 투자하는 나라들이 저출산 문제를 겪고 있으며 젊은이들의 경쟁력도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밖에 전공학자들의 좀더 전문적인 복지국가론에 대해서는 참여사회연구소에서 기획한 <대한민국, 복지국가의 길을 묻다>(이매진, 2012)를 참고할 수 있다.

 

 


한편 우리가 복지국가 대열에 들어서려 한다면 자연스레 성공사례에도 주목할 수밖에 없다. 특히 모범적인 북유럽 국가들의 복지국가 형성과정과 복지제도에 대해서는 여러 책들이 소개돼 있는데, 그중 스웨덴에 대해서는 신필균의 <복지국가 스웨덴>(후마니타스, 2011)이 기본서이다. 스웨덴 사회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를 짚어준다. 아울러 박선민의 <스웨덴을 가다>(후마니타스, 2012)에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복지정책 입안에 애써온 저자가 열흘간의 스웨덴 연수를 통해서 얻은 경험과 교훈이 생생한 현장감과 함께 기술돼 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거의 모든 것이 무상으로 제공된다는 ‘복지 천국’에서도 공중화장실은 유료라는 지적도 빠뜨리지 않는다. 노르웨이의 복지전문가 아스비에른 발의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부글북스, 2012)도 복지국가의 현황과 복지정책의 딜레마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책이다. 애초의 복지국가가 2차 세계대전 이후 체결된 새로운 사회협정 혹은 계급타협의 산물이며, 복지국가 발전에 동유럽과 서유럽 사이의 냉전과 체제 경쟁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지적은 음미해볼 만하다.

 

12.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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