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의 '문화와 세상' 칼럼을 옮겨놓는다. 지방에 강의차 내려가면서 기차에서 책을 읽고 손으로 초고를 쓴 원고다(그러니 펑크를 내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가방에 넣고 갔던 책은 토머스 프랭크의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갈라파고스, 2012)이다(프랭크가 문제 삼은 건 2000년 대선에서 미국에서 가장 가난한 주에 속하는 캔자스 주민들이 조지 부시에 대해 압도적인 지지를 보낸 점이었다. 그래서 원제도 '캔자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나'이다). 이번 대선 결과 때문에 소급적으로 '올해의 책' 가운데 하나로 꼽게 된 책이기도 하다. 핵심적인 주장은 지젝의 <멈춰라, 생각하라>(와이즈베리, 2012)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경향신문(12. 12. 28) ‘빨간색 주’ 사람들과 계급투표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겸손하다. 그들은 수수한 옷차림을 하고서 저마다 자신이 평범하다고 말한다. 남에게 과시하는 걸 싫어하기에 잘난 체하거나 거들먹거리는 지식인들을 싫어한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경건하다. 그들은 신앙심이 두터우며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 그렇다고 신앙을 강요하지는 않으며, 예의바르고 친절하다. 그들은 공개석상에서 상스러운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애국자다. 그들에게 병역은 신성한 의무이며 국가적 위기에는 주저 없이 앞장서서 나라를 지킬 준비가 돼 있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정직하게 일하는 소박한 노동자이다. 사무실에서 서류나 만지작거리는 농땡이들과는 종류가 다르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생산자와 기생적 존재는 구분돼야 한다고 믿는다. 카페라테를 마시며 세상을 바꾼답시고 설쳐대는 족속들과는 다르게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은 소탈한 음식을 먹고 묵묵히 자기 일을 한다. 

어느 나라 얘기인가. ‘빨간색 주’라는 말에서 눈치를 챈 분들도 있으리라. 미국 얘기다. ‘빨간색 주에 사는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들이 지지하는 공화당의 상징색이 빨간색이어서다. 얼마 전 민주당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승리로 끝난 미국 대선에서도 선거결과를 보여주는 지도에서 공화당의 미트 롬니 후보가 승리한 중부와 남부의 많은 주는 빨간색으로 표시됐다. 민주당은 파란색이다.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된다. 빨간색 주에 사는 다수의 가난한 사람들조차도 미국식 ‘부자정당’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의 저널리스트 토머스 프랭크가 <왜 가난한 사람들은 부자를 위해 투표하는가>에서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왜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여 투표하는가? 프랭크에 따르면 그들의 정치적 판단 기준이 경제가 아니라 문화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따라서 자신의 경제적 이익보다도 보수적 가치가 더 우선적인 고려사항이 된다. 그 결과 선거는 ‘계급전쟁’이 아닌 ‘문화전쟁’의 장이 된다. 문제는 보수적 가치를 앞세우는 정당이나 후보 자신에게 그런 가치는 선거 때만 중요하다는 사실이다. 가령 미국의 경우 낙태 반대는 공화당이 내거는 대표적인 가치이지만 낙태 금지의 입법화는 현실에서 가능하지 않으며, 그런 사실은 그들 자신이 더 잘 알고 있다. ‘전통가치’의 수호자를 자임했던 미국 보수주의의 영웅 레이건조차도 실제로 그런 가치들의 복원을 중요한 관심사로 다루지 않았다. 보수적 가치를 역설하는 보수주의자들에게도 선거가 끝나면 가치보다 돈이 더 중요하다.
물론 여기까지는 남의 나라 미국 얘기다. 하지만 역시나 빨간색으로 도배된 이번 대선 결과를 보자니 우리 또한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되는 건 아닌가라는 공연한 염려를 갖게 된다. 비록 남과 북으로 분단된 상황이지만 우리는 ‘두 개의 미국’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역별 표심이 갈라진 미국만큼 내부적으로 분열돼 있진 않았다. 하지만 이제는 ‘통합’이 긴급한 정치적 화두로 제기될 만큼 분리의 장벽이 높다. 통합은 어떻게 가능한가? 흔히 하는 말로 먹고사는 문제가 이념보다 중요하다면 선거를 다시금 문화전쟁이 아닌 계급전쟁의 장으로 돌림으로써 가능하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미국 보수주의자들의 선동대로 “민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는 KFC(켄터키 프라이드 치킨)를 지지하는 병아리와 다름없다”에 현혹되는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자기 이익에 부합하는 계급투표를 하는 것이다. 자기가 누구인지 식별하고 이익을 계산하는 일이 불가능하지 않다면 국민통합도 불가능하지 않다. 모두 하나가 되는 것이 통합이 아니라 부자는 부자정당에 가난한 사람은 진보정당에 투표하는 것이 통합이다.

 

12. 12. 27.

 

 

 

P.S. 개인적으론 강의상의 필요 때문에 민주주의 관련서를 모아놓는 편인데, 대선 이후에 책상 가까이에 놓은 책은 래리 바텔스의 <불평등 민주주의>(21세기북스, 2012), 콜린 크라우치의 <포스트민주주의>(미지북스, 2008), 그리고 피에르 로장발롱의 <카운터 민주주의>(2009) 등이다. 로장발롱의 책은 '불신 시대의 정치'가 부제인데, 국내에도 소개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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