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활발하게 창작활동을 벌이고 있는 젊은 문인들은 문학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이에 대한 유용한 지표가 될 만한 조사결과가 나왔다. 교수신문이 대략 1970년 이후 출생하고 2000년 이후에 등단한 신진문인들을 상대로 가장 과대평가된 문인은 누구인가, 다시 주목해야 될 문인은 누구인가, 가장 주목하는 동료 문인은 누구인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를 짚어보는 특집기사들을 옮겨온다. 소위 '2000년대 문학'의 판도와 실상을 이를 주도하고 있는 젊은 문인들의 의식과 시각을 통해서 이해하는 데 유익한 자료가 될 만하다. 기사에서의 강조와 군말은 나의 것이다.  

교수신문(06. 09. 23) 유사이래 문학작품의 물량이 지금처럼 넘쳐나는 때가 없었다. 몇년 전에 비해 발표지면이 10배 이상 늘어난 탓이다. 그만큼 새로운 신진들의 작품도 쏟아져 나오고 그에 대한 비평적 리뷰가 필요한 시점이다. 교수신문은 외재적으로 신세대를 조명하기보다는 이들 신진문인 95명의 의견을 직접 들어보았다. 과연 이들은 전세대 문학전통에 대해 어떤 인식을 갖고 있는지, 문학적 모티프를 어떻게 만들어왔고 또 만들어나갈 예정인지를 그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들어보고 이를 통해 향후 한국문학의 전개를 엿보는 기회로 삼고자 한다.(편집자주)

[특집] 신진문인 의식조사(1) 조사결과를 보고

문학사가 보여주듯 어느 시기에나 문학의 새로움은 신진 세대들의 몫이었다. 2000년대 이후 문학판의 크고 작은 지각 변동 역시 기성문인보다는 새로운 세대들의 주도적인 움직임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런데 비평가의 촉수는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문학판의 흐름에 대해  이 새로움이 과연 어떤 진정성을 갖고 있느냐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마련이다. 그 진정성을 따지는 작업은 신진으로 부상한 문인의 작품을 읽고, 그 시비를 따지는 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이 길만이 전부는 아니다. 작품보다는 신진 세대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를 훑어보는 방법도 매우 요긴하게 쓰이고 있다. 그들의 문학적 토대를 형성한 선이해의 바탕과 그들이 선망하거나 비판하는 작가들을 눈여겨 살피는 길이 그 중의 하나이다.

물론 한 작가나 시인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를 더듬는 작업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이들의 문학적 의식의 토대를 형성한 요소들이 다양하고, 다층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교수신문’에서 젊은 문인들에게 설문으로 들고 있는 항목들은 이들의 문학적 의식의 일부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징검다리가 강을 건너는 훌륭한 다리가 되듯, 여기의 항목들이 비록 일부일지라도, 2000년대 새로운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지향 전체를 암시할 만한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이번 설문이 지닌 의미가 있다.

설문 중 필자의 관심을 끄는 항목은 우선 가라타니 고진의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한 젊은 작가들의 반응이다. 소설가들의 답변 비율이 동의 쪽으로 기울어진 듯하지만, 시인이나 비평가들의 입장은 동의할 수 없다는 쪽이 훨씬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보면, 근대문학은 종언을 고할 수 없다는 입장으로 정리할 수 있다.

문학판의 상황이 위기감으로 팽배해 있지만, 근대문학의 종언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는 의식의 근저는 무엇일까. 이는 자기세대의 문학에 대한 당위성과 함께 가능성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은 아닐까. 문학은 소생 불능이 아니라, 끊임없이 갱신되고 진화해야 할 시대의 명확한 목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그 주체는 물론 젊은 작가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신세대 의식’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며, 젊음을 갱신과 진화의 무기로 인식하고 있다. 기력이 쇠한 늙은 문학이 아니라, 젊고 건강한 문학을 통해 시대에 대한 전망을 이끌어내려 하고 있다는 점은 매우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그렇다면 그 젊고 건강한 문학이 과연 어떤 문학인가. 신세대의 화살이 어느 과녁을 겨냥하고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물음에 간접적으로 답변을 얻을 수 있는 설문이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문인들, 과대 평가되어 비판이 필요한 문인, 새롭게 조명받아야 할 문인, 마지막으로 최근에 주목하고 있는 동료문인’ 등의 질문이다. 여기에 대한 신진 작가들의 답변은 매우 흥미롭다.

먼저 젊은 비평가들의 응답이다. 이들에게 비평을 문학의 한 장르로 인식하게 해준 김현의 존재는 여전히 커다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김현은 우리 비평사에서 비평도 문학작품임을 실천비평을 통해 확인시켜 준 비평가다. 그런데 젊은 비평가들이 김현의 비평적 작업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은, 비평을 창작의 한 장르로 인식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비평 행위를 작품에 대한 단순한 해석과 평가만으로 인식하는 선이 아니라, 문학예술의 장내로 적극적으로 끌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은 비평이 지닌 매혹을 경험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비평에 대한 인식은 상당히 긍정적인 측면으로 이해된다. 시나 소설처럼 가독성을 지닌 비평이 존재할 때, 비평은 독자적인 영역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이 생겨나기 때문이다.

그런데 비평이 창조적 비평만을 추구할 때는 텍스트에 대한 분석력과 현실에 대한 응전력을 방기할 가능성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다행스럽게도 젊은 비평가들이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자들이 텍스트를 현실과 관련시켜 구심적이면서 원심적으로 꼼꼼하게 읽는 김우창이나 유종호 같은 비평가들과 현실 인식과 예술성을 함께 보여주는 황석영 같은 작가들이란 점이다. 이런 비평가나 작가들의 영향권을 무시할 수 없다면, 이들이 생산할 비평적 작업의 방향은 일방적으로 텍스트 자체에 함몰되거나 텍스트가 현실 이데올로기의 수단으로 전락되지는 않을 것이다.

젊은 비평가들이 자기세대의 문인으로 전성태에 주목하고 있는 점도 이런 측면에서는 이해되는 대목이다. 그의 소설이 현실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지만, 전통적인 리얼리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현실성과 함께 새로운 소설미학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젊은 비평가들의 고민은 자기세대의 모든 작가나 시인들이 문학성과 함께 현실성이 잘 융합된 작품만을 만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젊은 시인들의 설문응답 내용을 살펴보면, 이러한 문제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상황과 만난다.

시인들의 응답에서, 자신들이 영향을 받은 시인들의 공통된 사항은 치열성과 실험성이다. 현존하거나 작고한 시인 중 영향을 많이 받은 시인들은 이성복, 김혜순, 백석, 김수영, 이상 등으로 나타나는데, 이들에게서는 현실성의 문제를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다. 그러나 자기 세대의 주목받는 시인으로 오면, 시의 경향은 실험성을 지닌 쪽으로 기울어진다.

젊은 시인들은 김경주, 황병승, 김행숙 등을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시가 지닌 상상력을 통한 실험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의 영역에서 실험성 짙은 작품들이 성행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소위 리얼리즘 시의 경향이나 서정시 계열의 시인들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들은 이미 주류에서 멀찌감치 밀려나 있는 형편이다. 영향을 받은 외국 문인으로 보르헤스나 보들레르를 우선 들고 있다는 점도 이들이 시에서 상상력을 얼마나 중시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과장 평가된 시인의 첫 자리에 고은 시인을 두고 있음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젊은 시인들이 내세우는 새로운 형식과 실험 정신을 소위 미래파라고 명명하며, 그 가능성을 긍정하는 논의들이 일고 있지만, 아직 소통의 시문법을 형성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이들에게 주어진 과제이다. 문학 위기론의 가장 큰 이유로 젊은 문인들 역시 독서인구 감소에 의한 문학시장의 협소 침체로 들고 있는데, 시의 영역에서 시도되고 있는 실험시들이 지닌 소통불능의 문제를 극복하지 못하면, 이런 현실적인 과제를 풀기 힘들기 때문이다.

소설가들의 응답에서는 시에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을 본다. 영향을 받은 주요 작가로 김승옥, 오정희, 조세희, 이상 등을 들고 있다는 것은, 젊은 작가들의 문학적 의식의 근저가 현실에 뿌리를 내린 상상력을 통한 소설미학을 추구한 작가들에 가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이 젊은 작가들이 자기세대의 작가로 주목하는 대상을 살펴보면, 김애란, 김중혁 등에 관심함으로써, 새로운 이야기 방식에 더 비중을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백민석, 김윤영 등 자기세대의 젊은 작가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대상 작가로 내세우는 것도 같은 선상에서 이해된다.

설문 응답에 나타난 결과들의 개관을 마치면서 내리는 결론은, 젊은 문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지향점은 새로움이란 것이다. 이 새로움의 추구는 새로운 세대가 응당 져야할 작가의 몫이다. 자기세대의 문학판을 만들어 가야 하는 숙명을 지닌 자들이 문인들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새로움의 추구가 오늘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진정성을 지니는 작품으로 읽히느냐 하는 점이다.(남송우 / 부경대, 국문학)

[특집] 신진문인 의식조사(2)소설가

젊은 작가들은 아고타 크리스토프, 파스칼 키냐르, 레이먼드 카버에서 오르한 파묵, 살만 루시디, 프랑코 모레티, 척 폴라닉까지 퍽 다양한 독서편력을 보여줬다. 선호하는 국내 문인도 박상륭에서 김승옥, 오정희, 이인성, 장정일, 천운영 등 범주가 넓다.

그러나 “문학사적으로 과대평가된 외국 문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7명이 공통으로 “하루키”를 꼽았다. 응답자들은 하루키에 대해 “초기작은 좋은데 후기로 갈수록 완성도가 떨어진다”고 아쉬움 겸 불만을 표했다. 이는 그만큼 “하루키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그들의 삶”과 연관되는 부분일 수도 있다. 몇몇 작가들은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하루키를 꼽기도 했다.

현존 국내 문인 중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이는 이문열이다. “작품의 질에 비해 지나친 문학 권력을 보유”했고, “매체들이 ‘위대한 작가’라고 칭송해 반감이 든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의 문학에서 ‘문학적인 무엇’을 바라는 일에 회의적”이며 문학 자체에 대한 “정밀한, 문학적 평가가 필요하다”고 답했다.(*하루키와 이문열에 대한 평가는 상식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춘원 이광수 또한 3명이 ‘비판이 필요한 문인’으로 꼽았다. “정치적으로 이용되어 과장된 수사로 점철된 문인”이라는 것. 김동인에 대해서도 2명의 작가가 “작가적 이데올로기의 실체가 보이지 않”고 “습작기적 자태를 벗어나지 못한 수준”이라고 평했다. 비교적 젊은 문인으로는 소설가 한강이 “특색이 없”어 “간혹 ‘누구의 목소리’인지 헷갈린다”고 언급됐으며, 김영하에 대해서도 “그의 문학에는 시대적 진정성이 없으며 그것은 전략적으로 제거된 것이 아니라 김영하 자체의 불완전함 때문이다”라는 일침이 가해졌다(*김영하에 대한 평가도 상식적이다. 다만, 한강에 대해서는 내가 별로 읽어본 바 없어서 잘 모르겠다. 최근에 읽은 그녀의 단편은 수작이었다).

문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할 문인에는 세 명의 작가가 이승우를 거론했다. 이승우는 영향을 많이 미친 작가로 거론되기도 했다. 1981년 스물 한 살에 <에리직톤의 초상>으로 등단한 그는 이후 <생의 이면> 등의 작품을 통해 지속적으로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제기하고 이를 작품을 통해 명쾌하게 결론내린 작가”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그의 소설이 가볍지 않아서인지 대중적 인지도가 높지는 않은 편이고, 평단에서도 인기 주제는 아니었다. 이외에 젊은 작가들은 제3세계 문학에 목말라했다. “베트남, 필리핀, 인도네시아 문학에 대해서는 알려고 해도 방법이 없다”며 보다 많은 번역·연구·관심을 주문했다.

“주목하는 동료 문인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는 5명이 ‘김중혁’을 꼽았다. 한 작가는 김중혁에 대해 “작품의 소재는 아날로그적인데 이것이 또 디지털적이기도 하다”며 “디지털 요소와 아날로그적 요소가 잘 결합돼 있다”라고 밝혔다. 이는 작가적 테크닉에 대한 부러움으로 보인다. 평론가 김형중은 “기능적 가치로부터 해방된 사물들을 작품 속에 수집함으로써 인간까지 해방시킨다”고 ‘김중혁 論’을 펼친 바 있다(*<문학동네>의 가을호 특집이 김중혁을 다루고 있다. 젊은 세대, 혹은 '레고블록 세대'의 감성이 나와 다르다는 걸 알겠다).

<달려라 아비>의 주인공 김애란은 주목받는 만큼 평이 엇갈렸다. “젊고, 잘 쓰고, 인기많은” 김애란에 대해 몇몇 작가들은 “지금의 평가는 80년대 출생이라는 문학 외적 사실, ‘아버지를 부정하는 방식’에만 과도하게 치중됐다”라거나 “잘 읽힌다는 점으로 과하게 주목받고 있다”라며 ‘김애란’ 자체보다는 ‘김애란’에 과도하게 주목하는 평단을 비판했다(*김애란은 주목할 만한 작가이다. 다만, 평단의 그 주목이 다른 작가들에게도 두루 할애되고 있지 않다는 건 문제를 제기할 만하다). 

신예 작가들은 몇몇 작가들에게만 주목하는 비평에 불만이 많았다. 한 작가는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문인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조명은 누가 하는 것이냐”라는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다. “조명 자체가 문학이라는 사건을 ‘무대화’시키는 것이며 누군가를 새롭게 조명하기보다는 조명받을 기회조차 없는 신인들에게 눈길을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문학판 또한 얼마간은 '스타 시스템'에 의존한다. 그건 당연한 거 아닌가? 문학판은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 따로 있는 게 아니니까).

또한 ‘문학적으로 새롭게 조명해야 하는 문인’으로 공선옥과 전성태를 꼽은 한 작가는 “비평가들이 자신들의 지평에서 담론을 펼치기 쉽거나 혹은 적합한 문학에만 먼저, 자주 손을 대는 경향이 있다”며 “김영하, 성석제, 전경린, 배수아 등이 그런 점에서 많이 노출된 반면, 훨씬 공력이 높은 공선옥, 전성태 등은 비춰지지 않는다”며 비판했다. 문학의 위기를 초래하는 내적 요인으로 “몇몇 문예지와 비평가 중심으로 문학 판도가 좌우되는 것”을 꼽기도 했다(*공선옥에 대해서는 판단유보이지만, 전성태가 공들인 작품들을 쓴다는 건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

‘한국 문학 위기론의 이유’에 대해 신진 소설가들은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 시장 협소”를 가장 많이 꼽았다. 이 외에 “문학을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자본주의 시장의 논리”, “왜 한국 문학을 접해야 하는지,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는 현 교육 시스템의 결함”을 꼽기도 했다. 그러나 “문학의 위기란 문학 내생적인 것”, “세계문학사에 비춰보더라도 한국문학은 이제 시작인데 위기라고 생각하는 인식 자체가 문제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문학이란 더 이상 ‘위기’라고 부를 만큼 커다란 것이 아니며 개인적인 향유와 소통의 차원의 것이다”라는 답변도 나왔다.(박수진 기자)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3)시인

젊은 시인들은 공교롭게도 애증의 사제지간으로 얽힌 고은과 서정주를 현대문학사에서 가장 과대평가된 시인으로 평가했다(*이것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결과이다. 고은에 대한 평가에는 나도 동의한다). 한편, 주목하는 동료시인으로는 황병승과 김경주를 많이 꼽았다. 2000년 이후 등단한 시인을 중심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현존하는 작가 중에서 과대평가된 시인으로는 4명중 1명이 고은을 꼽았다. 이는 설문조사 문항 자체가 보기 없이 주관식으로 이뤄졌다는 점을 감안하면 젊은 작가들의 일반적인 인식으로 여겨진다.

고은 다음으로 이문열, 김영하, 신경숙 등 기존 문단에서 문학성과 상업성을 겸비했다고 인정받던 소설가들이 각각 2명으로부터 “과대평가 됐다”고 거론됐다. 작고한 문인으로는 “작품성보다는 권력 편에 선 삶의 과오가 컸다”는 이유로 5명이 서정주를 지목했다. 전세대를 매료시킨 서정주의 미학적 魔力은 통하지 않았다. 이 외에 기형도와 윤동주(3명), 김소월·한용운(2명) 순으로 나타났다. 교과서 첫머리를 장식하는 이들이 젊은 시인들의 의식 속에서는 ‘제대로 청산해야 할 과거’가 되고 있었다. 

70~80년대 민중시단을 선도했고, 한때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던 고은을 과대평가 됐다고 평가한 주된 이유는 “목청과 활동반경에 비해 그다지 개성적이거나 뚜렷한 문학적 성과를 남겼다고 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창비가 만들어낸 가장 대표적인 '신화'가 아닌가도 여겨진다). 실제 작품보다 ‘주변인’들의 주관적 평이 고은의 ‘이미지’를 굳혔다는 얘기며, 나아가 “근작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다”는 혹평도 더러 있었다. 시인 서정주는 “작품성만으로 평가하기에는 민족에 대한 과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과대평가된 문인에 올랐다. 이처럼 신인들은 ‘민족’을 중요시 여겼다.

결국 고은과 서정주는 사회적 활동이 작품을 압도한 경우로 해석된다. 기형도에 대해서는 “요절시집에 붙은 문학평론가 김현의 해설이 크게 작용”했고 이후 “요절의 상징이 됐다”, “작품의 폭이 넓지 않고, 암울하며 서술적이다”는 평가가 주어졌다. 한 응답자는 시인 진이정이 기형도 못지 않게 뛰어나지만 제대로 평가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기형도와 진이정에 대해서는 나도 짤막한 페이퍼를 쓴 바 있는데, '기형도 못지 않게 뛰어난 진징정'이란 평가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는다).

윤동주에 대해서는 “유약한 센티멘털리즘에 도취된 청춘”, “혁명가와  저항시”라는 수식어가 과장됐다는 평가다. 외국 작가로는 “태작이 많고, 상업추수주의”인 점을 들어 무라카미 하루키(4명)와 무라카미 류(2명)를 꼽았다. 작품활동을 하는 데 있어 영향을 받았거나 가장 존경하는 작가로는 백석(10명), 김수영(8명), 이성복·李箱(6명), 보르헤스(5명), 김혜순(4명), 보들레르(4명) 등을 꼽았다.

지난해 ‘시인세계’에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현대시 1백년 최고의 시집으로 백석의 <사슴>이 꼽히기도 했는데, 한 젊은 시인은 “외롭고 높고 쓸쓸하지만 단단한 갈매나무”라는 싯구로 백석의 시세계를 묘사했다. 고향과 추억, 언어의 순도, 유랑자의 시선으로 백석의 시는 많은 젊은 시인을 매혹시키고 있다. 이는 도회적 시가 유행하는 현대 시단에서 젊은 시인들이 향토적 서정을 갈망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시인 김수영에 대해서는 “현실에 직면하는 詩作”, “치열함에서 오는 새로움”, “첨예한 의식으로 구성된 산문”이란 평가가 뒤따랐으며, 시인 이상에 대해서는 “치열한 부정과 혁신정신”, “실험정신과 문제의식”이란 수식어와 함께 “청소년기 처음 접했을 때의 충격이 아직 가시지 않았고 문학정신을 배우고 싶다”며 거론됐다(*20세기 한국시는 점차 '백석이냐 김수영이냐'로 정리되는 듯하다).

현존하는 시인 가운데 젊은 시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친 시인 이성복에 대해서는 “문학에의 진정성이 돋보인다”, “치밀한 글쓰기의 전형을 보여준다”, “섬세한 감수성과 실험정신, 전통의 조화를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현실에 대한 비유의 다양성과 시간초월성이 탁월한 작가”라는 추천사를 받은 보르헤스는 이 세대만의 아이콘으로 여겨졌다(*개인적으론 80년대의 이성복이 그러한 문학사적 평가를 감당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시인 김혜순에 대해서는 “초기작에 비해 최근의 시가 더 좋은 시인” , “최승자와 더불어 늙지 않는 시세계” 등 의 이유가 조심스레 들어졌다. “천상의 노래를 지상으로 끌어내린 시인”, “현대성, 현실에 가장 탄력적 반응을 보인 시인”으로는 보들레르가 꼽혔다. 이밖에도 신경림, 김지하, 박상륭, 오규원 등에 각 2명씩 답했다. 하지만 이성복과 더불어 80년대 시단을 양분했던 황지우 시인에 대한 언급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탈-황지우'는 모처럼 눈에 띄는 현상이다).

새롭게 조명해야할 작고문인으로는 손창섭, 김종삼, 백석, 리처드 브라우티건 등을 각각 3명씩 거론했으며, 현존 작가로는 “노동과 삶의 새로운 상상력을 보여준” 시인 김신용과 “도시적 감수성에서 자연, 사물의 존재성으로 돌아간 변화에 대해 주목받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규원이, “자기철학을 운동으로 밀고 나가는 신념에 동감한다”는 이유로 김지하가 나란히 2명씩 추천됐다.

낯선 이름인 미국의 소설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깨끗한 스타일, 전혀 다른 새로운 소설”이란 이유로  몇몇 젊은 시인으로부터 주목받았다.올 7월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랜덤하우스 중앙)를 펴내 문단 안팎으로 주목을 받았던 시인 김경주는 동료시인들로부터 “서정과 실험이 적절히 어울어진다”, “철학적 사유가 독특하다”, “땅에 발 딛고 쓰는 시인이 없는 세상에서 대비되는 시인이다”라는 평을 얻었다. 이밖에도 김행숙, 이준규, 김애란, 진은영, 김언이 2명으로부터 추천됐다.

한편 ‘‘근대문학의 종언’에 동의하는 가’라는 질문에 젊은 시인들 21명은 동의하지 못한다고 답했으며, 12명은 동의 내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고 답했다. 기타의견 2명은 문학은 ‘종언’이기보다는 ‘항상 시작’으로 여긴다는 마음가짐으로 답을 대신했다.

‘한국문학의 위기론’을 묻는 질문에는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침체화”를 들었으나, “사적 생활로 흐르는 문학적 테마”, ”해외 유명작가들 베끼기에 급급한 상상력 부족”, “매너리즘 답습” 등도 문학을 위태롭게 하는 요인으로 파악됐다. “인터넷 문화 약진으로 인한 문학의 위상 변화”, “변화에 인색한 문단”, “편가르기와 특정작가와 평론가의 상호인정으로 인한 권위 독점”, “저질 작품 과잉생산” 등의 의견도 잇달았다. 하지만 “위기론은 일상적 수사일 뿐, 한국문학은 독자와 너무 많은 소통을 원하는 건 아닌가”, “자본주의 구도에서 자리변화일 뿐 생산담론 형성이 더 중요하다”는 등의 희망적 견해도 있었다.

젊은 시인들의 주요 창작 모티프는 ‘사람들 사이의 갈등과 화해’ 및 ‘독서’가 가장 많았다. 독서는 대부분 문학 외에 철학서와 예술, 영화관련서들을 많이 보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것이 모티프”라고 말한 시인도 있었다.(신정민 기자)

[특집]신진문인 의식조사 (4)평론가

30대 젊은 문학평론가들은 현존 문인 가운데 소설가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작고한 문인 중에서는 시인 李箱과 서정주를 과대 평가된 문인으로 꼽았다.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는 소설가 전성태와 시인 황병승을 추천한 평론가들이 많았다. 이번 교수신문이 실시한 의식조사에서 문학평론가는 모두 31명이 참가했다. 30대를 중심으로 40대 초반까지 평단에서는 젊은 편에 속하는 평론가들이다.

문학평론가 31명 가운데 7명은 국내, 국외에서 과대평가된 문인으로 각각 이문열과 무라카미 하루키를 들었다. 소설가 이문열은 △정치적 발언의 의미 파장에 대한 책임 있는 태도의 결여 △초기의 탁월한 미적 재능이 단조롭고 틀에 박힌 정치적 의식으로 더 이상 전개되지 못한 점 △정신과 지향의 불구성 △봉건성 등 주로 보수 우파의 입장을 대변했던 정치적 행보에 따른 ‘과대평가’ 요인이 많았다. 무라카미 하루키에 대해서는 지나친 상업성에 대한 지적이 많았는데 상품으로서의 문학, 세계시장과 문학의 관계에서 그가 미친 영향에 대한 성찰 필요, 일시적 유행 모드라는 지적이었다. 20살 초반의 감수성에 기댈 뿐이라는 혹평도 있었다.
이문열에 이어 고은(3명), 문태준(2명), 신경숙(2명), 공지영(2명)도 과대평가 문인으로 꼽혔으며, 답변이 적었던 외국에서는 하루키 외에 귄터 그라스(2명)도 비판이 필요하다는 응답이었다.

작고한 시인 李箱과 서정주는 각각 5명이 ‘과대평가’ 됐다고 말했다. 李箱은 그의 시세계에 대한 납득할만한 해명과 연구가 더 필요하다는 인식이 많았고, 작품에 대한 신비화를 경계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서정주는 친일 행각과 전두환 정권 찬양 등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에 영합하는 태도와 문학권력에 의해 그의 작품들이 교과서를 비롯 대중들에게 많이 소개되는 바람에 다른 뛰어난 시인들의 작품이 사장되거나 주목을 받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새롭게 조명해야 할 문인으로 소설가 박태순이 유일하게 중복(2명) 답변이 나왔고, 공선옥, 김애란, 배수아, 임헌영, 장정일 등 23명이 거명됐다. 작고한 문인 가운데서는 김사량, 김종삼, 김소진이 각각 2명씩 의견이 모였다. 이태준 등 월북 작가 재평가 지적도 빠지지 않았다. 특히 김사량은 식민지적 삶의 극단적인 가능성을 보여주었고, 문학적 성과에 비해 전집조차 발간되지 못한 상황이 한심스럽다는 평가가 나왔다.

평론가들이 최근에 가장 주목하고 있는 문인으로 꼽힌 소설가 전성태(3명)는 종전의 리얼리즘과는 달리 그의 소설은 환상을 품고, 공간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는 다른 가능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크게 봤다. 여전한 문제의식을 다른 각도로 볼 여지를 모색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실 모순의 진중한 고민도 한몫을 했고, 전통의 창조적 계승을 이유로 들었다.

시인 황병승(3명)도 주목하고 있었는데 시의 새로움이 무엇인지 보여주고 있다, 시의 정치성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게 해준다고 평가했다. 한 평론가는 “시는 황병승 전후로 나뉜다”라고 극찬했다. 생물학적 성을 넘어선 여성적인 비평, 폭넓은 교양과 작품을 보는 깊은 눈과 유려한 문체 등을 이유로 신진 평론가 신형철(2명)도 주목을 받았다.

문학평론가들이 시인, 소설가와 달리 가장 두드러진 의식을 드러낸 것은 가라타니 고진이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데 대한 동의 여부 였다. 소설가는 동의한다는 입장이 앞섰고, 시인은 두 배 정도가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했으나 평론가들은 ‘동의하지 않는다’는 답변(21명)이 ‘동의한다’는 답변(4명)보다 압도적이었다(*나로선 동의한다는 쪽이다. 사실 포스트모더니즘 문학 자체가 고진의 관점에 원용하자면 이미 근대문학의 종언을 함축한다). 가라타니 고진의 문제제기의 진정성엔 동의할 수 있지만 한국적 맥락에서 굴절돼 논의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가타라니식 의제 설정 자체에 동의하기 힘들다는 이유를 제시했다.

‘한국문학 위기’의 원인을 묻는 질문엔 낯익은 비판들이 쏟아졌다. ‘독서인구 감소에 따른 문학시장의 협소·침체화’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았으나 기타 의견도 많았다. “위기를 늘 품고 있어야 모색도 치열해 질 수 있다는 문인들의 자기 암시도 한몫을 한다”, “문학만 위기일까”를 들기도 했다. 또, 문학의 권력화와 아카데미화(대학중심의 문학판)에서 찾을 수 있다는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 “절대적인 독서 인구는 결코 줄지 않았다. 한국문학은 지식독자층 뿐만 아니라 대중으로부터도 ‘왕따’를 당하고 있다. 작가들은 대학교수(평론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작품을 쓰고, 평론가는 그 장단을 맞추고, 그들이 쓴 평론(논문)은 오직 그들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만 읽힐 뿐”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문학평론가들이 가장 존경하고 영향을 받은 선배 문인으로 황석영(4명)이 가장 많이꼽혔다. 다음으로 유종호, 오정희가 3명씩, 김우창, 백낙청, 조세희, 최인훈도 2명씩 응답했다. 외국의 문인 중에서는 밀란 쿤데라(4명), 가라타니 고진(2명), 귄터 그라스(2명), 마르께스(2명)가 ‘영향’을 많이 끼친 것으로 나타났다. 작고한 문인중에서는 ‘비평도 문학작품임을 일깨워 준’ 김현이 6명으로부터 헌사를 받았다.(김봉억 기자)

설문에 참여해주신 분들
고인환, 권오현, 김나정, 김대산, 김동윤, 김미정, 김양선, 김영찬, 김정남, 김종욱, 김형중, 류신, 복도훈, 안미영, 엄경희, 오윤호, 오창은, 이경수, 이선영, 이성혁, 이수형, 이재영, 이현식, 이희환, 장일구, 정재림, 조강석, 허병식, 허윤진 이상 30명. 가나다순.

06. 09. 23-24.

 

 

 

 

P.S. 결론 삼아, 젊은 문인들이 주목하는 동세대 작가/시인들을 꼽아보자면, 소설가로는 김중혁과 김애란(비록 논란의 대상이지만)이 대표주자라 할 만하다. 더불어, 앞세대 작가로서 <생의 이면>의 작가 이승우가 시에서의 이성복만큼 높이 평가된 것은 이 설문의 '수확'이라 할 만하다. 그리고 평론가들이 주목하는 작가로 전성태, 시에서 황병승이 꼽힌 것은 수긍할 만하다. 김경주 시인이 거론된 것이 뜻밖인데, 내가 아직 접해보지 않은 유일한 시인이어서 그렇다(참고로, 최근에 내가 주목한 작가/시인은 백가흠과 이근화이다). 맛보기로 한 편을 인용해놓는다. 이게 또 왜 목련인가?!..

목련

마루에 누워 자고 일어난다
십 이년동안 자취(自取)했다

삶이 영혼의 청중들이라고
생각한 이후
단 한번만 사랑하고자 했으나
이 세상에 그늘로 자취하다가 간 나무와
인연을 맺는 일 또한 습하다
문득 목련은 그때 핀다

저 목련의 발가락들이 내 연인(戀人)들을 기웃거렸다
이사 때마다 기차의 화물칸에 실어온 자전거처럼
나는 그 바람에 다시 접근한다
얼마나 많은 거미들이
나무의 성대에서 입을 벌리고 말라가고서야
꽃은 넘어오는 것인가
화상은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다
문득 목련은 그때 보인다

이빨을 빨갛게 적시던 사랑이여
목련의 그늘이 너무 뜨거워서 우는가

나무에 목을 걸고 죽은 꽃을 본다
인질을 놓아주듯이 목련은
꽃잎의 목을 또 조용히 놓아준다
그늘이 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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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09-23 22: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6-09-2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제가 가끔은 부지런을 떨지요. 요즘은 옮겨오는 걸 자제하는 편인데, 용케도 맞히셨네요.^^

닉네임을뭐라하지 2006-09-23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봤습니다- 퍼갈게용

끼사스 2006-09-24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밌는 기사네요. 퍼가겠습니다.

비로그인 2006-09-25 07: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요즘 나오는 시인이나 소설가는 단 한명도 없습니다. 오히려 일본작가들을 더 많이 알고 있다는 자조와 쓴 웃음이 맘에 번집니다. 대학시절 시인 장정일과 이성복을 좋아해 그들의 시집은 아직도 다 가지고 있지요. 서울대 나온 이성복은 제대로 대접받는 것 같은데 아직도 시인 장정일은 아니네요. 서글프군요 현실이. 꽤 친하게 지냈던 교수님조차 장정일을 너절한 시인쯤 알고 있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도 시인 장정일의 위치는 아직도 갈팡질팡이군요 끝에 써 놓은 시 누구시입니까 ?

로쟈 2006-09-25 09: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적어놓은 대로, 김경주 시인의 시입니다...

니브리티 2006-09-25 1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도 황당한 질문에 명쾌한 정리더군요.

sommer 2006-09-27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의 존재론과 시인의 존재론이 가능하다면, 위에서 보이는 젊은 문인들의 '고백'은 그 둘이 분간 안 되게 겹쳐서 나타난다는 게 인상적이네요. 더불어 그들의 대답으로 잠재적인 문제/질문을 구성해 보는 것도 흥미있어 뵈네요. 이를테면, 문학판에 들어서기 전과 후의 심경의 변화, '한때'와 '지금'의 차이, 소년에서 어른이 되고 난 뒤의 판단의 변화 등등으로 말이죠. 이렇게 말해 놓고 보니, 그들은 일종의 '고백'의 형식을 빌어서 말하고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