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아침부터 일거리가 많군. 기사들을 읽다가 그냥 넘어가기 뭐해서 몇 개 옮겨놓는데, 최근에 <헤겔>을 출간한 이제이북스의 전응주 대표를 다룬 인터뷰 기사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에 한번 다룬 줄 알았더니 그냥 읽기만 하고 지나쳤던 모양이다. 해서, 예의상 자리를 마련한다.
경향신문(06. 08. 12) "제대로 된 철학서 누군가는 내야겠죠"
-‘2006 한국출판연감’에 따르면 2005년 9월 말 현재 문화관광부에 등록된 출판사 2만4천5백80개 가운데 지난해 책을 한 종이라도 낸 출판사는 전체의 10%에도 못미치는 2,273개이다. 평균 발행 부수는 2,745부. 이들 가운데 그나마 적자를 면할 정도로 책이 팔린 출판사는 얼마나 될까.

-이제이북스는 이른바 ‘안 팔리는 책’만 ‘골라서’ 내는 출판사 가운데 하나다. ‘안 팔리는’ 인문학서적, 그것도 철학서를 주로 내놓는다. 인문학서적의 손익분기점이라고 흔히 말하는 1,000부 이상 팔린 책은 손에 꼽을 정도. 이 회사 전응주 대표(49)는 “재판(再版) 찍은 게 3~4종 정도 되는데 그나마 철학책은 하나도 없다”면서 “사재를 털어 꾸역꾸역 책을 내고 있다”고 밝혔다.





-‘범주론 명제론’ ‘플라톤과 유럽의 전통’ ‘헤겔 예나 시기 정신철학’ ‘스피노자와 정치’…. 출간 도서목록만 살펴봐도 사정을 알 만하다. 최근 내놓은 역서 ‘헤겔, 영원한 철학의 거장’도 그 같은 ‘운명’을 비켜가기가 수월치 않아 보인다. 책은 극단의 평가를 받는 철학자 헤겔의 참모습을 가장 충실하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 전기물이다. 1,000쪽이 넘는 방대한 양이 독자들을 압도한다. 전대표는 “출판사를 시작한 2001년에 번역자와 계약을 했으니 5년이 넘게 걸린 셈”이라고 웃었다.
-철학을 전공하고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전대표는 “좋은 철학서를 제대로 내겠다”는 신념 하나로 출판업계에 뛰어들었다(*묵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했던가?). “철학서의 번역물들이 이해하기 힘든 게 많았고, 일본어 번역서를 다시 번역한 것도 많았습니다. 최소한 오역이 없는 철학서를 내보자고 생각했지요.”
-어려운 개념이 많다보니 철학서 번역은 특히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다. 대여섯번 교열을 보는 건 기본. ‘헤겔~’은 교열과 편집 작업에만 반 년 가까이 걸렸다. 전대표가 직접 교열을 보는 경우도 많다. 그는 “지금도 아리스토텔레스의 ‘니코마코스 윤리학’ 원전 번역물을 영어와 독일어 번역을 옆에 두고 비교하면서 보고 있다”면서 “그냥 대충 하면 손해보지 않고 갈 수도 있겠지만 그럴 수는 없다”고 말했다. 편집자들은 그를 원고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라고 부른다. 책을 오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철(絲綴) 제본을 하고, 밑줄 긋고 메모하기 편한 종이를 쓰는 것도 그 같은 꼼꼼함 때문이다.
-전대표는 희랍어·라틴어 원본을 번역할 수 있는 세대가 활동하고 있는 지금 관련 철학서를 번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만간 아리스토텔레스의 ‘형이상학’을 낼 예정이고, 플라톤 전집도 완간을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책을 낼수록 적자만 쌓여가는 상황은 고민거리다. “좋은 책인데 내려면 겁난다”는 그의 말은 이 같은 고민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도 유행을 따라 책을 만들 생각은 없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란다. “남들은 뭐라 해도 1,500부, 2,000부 팔았다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철학서 독자가 50~100% 늘었으니 그걸로 된 거 아닌가요.”
06. 08. 14.
P.S. 국내 철학전문 출판사라면 서광사와 철학과현실사를 들 수 있었다(서광사의 책들은 뜸해졌다, 철학과현실사의 책들은 '대중'과 '교양'을 별로 염두에 두지 않는 듯하다). 이제이북스는 새로운 강자다. 플라톤 전집까지 완간한다면 아마 판도가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쌓여가는 적자를 버텨주기만 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