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본 영화는 지난 5월말에 개봉했던 영화 <가족의 탄생>이다. <여고괴담 두번째 이야기>(1999) 이후에 찍은 김태용 감독의 두번째 장편영화인데, 영화는 기대만큼이었으며 왜 그의 이름을 우리가 기억해두어야 하는지를 '확신'시켜주었다(각본 또한 요즘 씌어지는 웬만한 한국문학을 능가하지 않는가?). '뒷북'이지만 아마도 상반기 최고작으로 꼽힐 수 있을 것이다(<사생결단> 정도를 나는 버금작으로 간주하고 있다. 계속 대여중이어서 아직 못 보고 있지만). 미루어두었던 리뷰 자료들을 몇 개 읽었는데, 일단은 개봉 당시 '필름2.0'에 게재됐던 특집 '우리의 선택 <가족의 탄생>'을 옮겨놓는다. 3명의 평론가가 동원됐으며(기사들에는 당연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다소 비판적인 기사도 포함돼 있다.  


김영진(06. 05. 22), '흥겨운 콩가루 집안 탄생기'

-김태용의 두 번째 영화 <가족의 탄생>은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를 연출한 후 너무 오래 쉰 이 감독의 재능을 관객 입장에서 기대한 보람을 느끼게 한다. ‘가족의 탄생’이란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 이상한 사연을 지닌 두 가족의 얘기를 병렬한다. 처음엔 다소 정상이 아닌 사람들의 얘기로 비치겠지만 거기서 건강하고 튼튼하고 낙관적인 인간애를 끌어내는 섬세함을 보여준다. 너와 내가 가족인 것은 같은 핏줄을 타고 났기 때문이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가족주의의 전통적 명제를 이 영화는 부정한다. 지지고 볶으며 사는 일상에서 단련된 어떤 관계로부터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끌어낸다. 그걸 느끼하지 않게 설득하는 것만으로도 이 영화는 감동의 9부 능선을 넘는다.

-<가족의 탄생>은 호기심을 갖고 바라볼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사연을 소개한다. 영화 초반에 학생들 상대로 분식집을 하며 살아가는 미라는 군에서 제대한 후 5년간 기별이 없던 남동생의 연락을 받는다. 설레며 음식을 차리고 그를 기다리는 미라는 곧 닥칠 가족상봉에 가슴 벅차지만 감격적인 재회를 기대하던 미라에게 나타난 동생 형철은 어머니뻘의 여자를 아내라고 소개하며 데리고 들어온다. 염치라고는 없는 동생도 그렇지만 그 곁에 붙어 있는 무신이라는 이름의 그 여자도 한심스럽다. 마냥 대책 없어 보이는 무신에게서 미라가 조금씩 그늘을 보게 되는 것이 그 두 여자의 우정의 시작이다.

-이는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비슷한 경로를 따라 전개되는 두 여자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담하고 분방한 듯이 보이는 관광 가이드 선경은 유부남과 연애에 빠져 아이까지 낳아 기르는 엄마가 한심스럽다. 엄마가 찾아와도 아예 상대도 하려 들지 않는다. 엄마의 애인이 찾아와 엄마가 불치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려줘도 그런 선경의 식은 애정은 점화되지 않는다. 아예 외국에서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해 이 땅을 떠날 준비를 하는 선경은 무슨 심산인지 자꾸 엄마의 옷가게를 찾아가 괜히 이런 저런 트집을 부리며 거듭 싸움을 건다. 그 과정에서 선경도 엄마의 그늘을 전보다 더 많이 보게 된다.



-이 두 단락을 묶어주는 것은 영화 초반에 기차에서 만나 인연을 시작하는 젊은 남녀 경석과 채현의 연애담을 묘사하는 세 번째 단락에 이르러서다. 대충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래도 두 단락을 묶어주는 완결성을 마침내 드러내는 대목에서는 가벼운 탄성까지 나온다. 구성의 절묘함 탓도 있지만 이게 관객의 시점을 절묘하게 대표하는 경석의 심리상태에서 끌어낸 감정의 서술결과였기 때문이다. 봉태규가 연기하는 경석은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게 더 신경을 써주는 듯이 보이는 채현의 성격이 늘 눈에 거슬린다. 성격 덕분인지 채현에게는 징징대는 선배들이 많다. 그들에게 채현은 돈도 꿔주고 상갓집에서는 헌신적으로 허드렛일을 도맡아 하고 심지어 잃어버린 아이를 찾는 일까지 발 벗고 나선다. 그런 채현을 경석은 이해할 수 없다.

-경석은 어찌 보면 이 영화에 나오는 등장인물들 가운데 가장 평범한 인물이다. 그건 경석의 누나 선경(두 번째 에피소드에 나왔던 그 선경이다.)이 그만큼 경석을 곱게 키워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혼자 사는 누나와 달리 경석은 채현과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어느 날 느닷없이 선경에게 지금 연애 중이라고 고백한 경석은 엄마와 누나의 삶이 구질구질하다고 타박한다. 경석에겐 결혼도 하지 않고 유부남과 사랑에 빠져 자신을 낳은 엄마나 그런 엄마와 평생 대결했으면서도 결국 엄마처럼 혼자 살고 있는 누나가 구질구질해 보였는지도 모른다. 그런 경석을 굳이 탓하지 않으면서 누나 선경은 가볍게 응수한다. 구질구질한 게 아니라 정이 많기 때문이라고.

-경석이 정이 많은 채현과 갈등을 빚는 끝에 도달하는 지점도 그 비슷한 구석이 있다. 경석은 채현을 통해 그가 의식적으로 거부해왔던 ‘다른 삶’의 경계에 당도하게 된다. ‘넌 너무 헤퍼’라고 결별선언을 했던 경석은 채현이 고향에 가는 열차에 동승해 다시 화해를 시도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존댓말로 상대의 마음을 떠보던 경석은 자신을 미친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는 채현의 타박에 이렇게 응수한다. “미친년도 좋던데. 개성 있잖아요.”

-봉태규의 소년 같은 인상에서 터져 나오는 온갖 연애의 고뇌와 놀라는 감정을 미세하게 포착하는 카메라는 이 대목 이후로 몇 차례의 웃음을 끌어낸 끝에 ‘개성 있게’ 살아가는 사람들, 새로운 가족의 개념을 몸에 붙이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연에 공감하게 만든다. 특히 영화 후반에 콩가루 집안의 내력을 지닌 사람들이 불쑥 꺼내는 말들을 들으며 하나도 접수되지 않아 당황하면서도 조금씩 그들의 매력에 끌리는 봉태규의 모습은 관객인 우리 자신의 거울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가족의 탄생>은 기존 가족의 개념을 파괴하고 해체하거나 아예 무시했던 종래의 영화에 비해 소박한 대로 다른 가족의 개념을 제시하는 진취성 면에서도 크게 존중받아야 한다. 이 영화는 현재의 대지에 뿌리박고 뭔가 깊이 들여다보려는 창작자의 의식을 절묘한 구성의 대중영화 문법으로 풀어냈다. 대체로 들고 찍기로 일관한 이 영화의 스타일은 좌식 생활이 익숙한 예전의 한국식 주거공간에 효율적으로 카메라를 들이댔다는 점에서도 호감을 갖게 한다(*그러니까 영화는 주제나 스타일 양면에서 대범하며 탁월하다).

-이 영화에서의 등장인물의 움직임은 대체로 작다. 좁은 집안이나 가게에서 크게 움직이며 감정을 드러낼 상황이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감독은 용감하게 거기 머무르며 카메라를 움직인다. 변기에 담배꽁초를 버려 막힌다고 불평하는 상황 등에서 오가는 감정을 단순하게 화장실 입구에서 지키고 들여다보며 묘사하는 이런 자세는 언뜻 심상해 보이지만 영화적 스타일을 굉장한 수식으로 오해하는 요즘 세태에선 놀랍도록 침착한 접근일 것이다.

-우리의 삶에서 감정적으로 과장할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이 영화에선 그런 지지고 볶는 자잘한 일상을 애초에 다른 범주로 설정해놓고 관객에게 미끼를 던져놓지만 실은 조금만 거리를 두고 보면 부모 자식 간에, 형제 남매간에, 연인들 간에 오갈 수 있는 숱한 갈등의 다른 버전이라는 걸 알게 된다. 버릴 수도 주울 수도 없는 이 가족이라는 끈을 어찌할 것인가를 두고 <가족의 탄생>은 착한 마음으로 접수되는 등장인물들의 이심전심을 담는다. 그게 너무 보편적이라고 불평할 수는 있겠지만 대중영화에서 이만큼 한 발자국 나가는 용기도 대단한 것이다.

-배우들의 연기도 모두 훌륭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선경의 엄마 매자를 연기한 김혜옥이나 경석 역의 봉태규, 채현 역의 정유미가 돋보인다. 중견의 관록을 보여준 김혜옥이나 아직 연기 영역이 어느 정도까지 넘나들 수 있는지 가늠되지 않았던 봉태규나 정유미의 존재감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한국영화의 스토리 범주가 무진장하다는 걸 거꾸로 보여준다.

-특히 매자 역의 김혜옥이 좁은 옷가게에서 딸 역의 공효진과 조용한 목소리로 언쟁을 주고받다가 어느 순간 팩 하면서 소리를 지르는 장면의 감정 처리 같은 것은 범상한 일상의 공기에 묻혀 있는 우리들의 단절의 기운과 그 단절이 누적돼 폭발하는 순간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런 것에 공감하지 않는다면 한국영화는 앞으로도 이 분야의 정서를 좀 더 정형화된 텔레비전 드라마에 아예 내주고 포기하게 될 것이다. <가족의 탄생>은 착한 영화지만 멍청하거나 위선을 감춘 영화는 아니다. 번거로워서 피해가는 우리의 가족 일상 공간을 제대로 파고 감정을 집어냈다는 점에서 진정한 테크니션의 영화다.

이상용(06. 05. 23) '가족이라는 형식'

-김태용 감독의 <가족의 탄생>은 제목 앞에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붙여야 할지도 모른다. 혈연이 아니라 애증의 관계로 얽힌 인물들의 행동과 사연들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가족이란 무엇인지를 질문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한국의 가족영화는 혈연 중심의 관계가 파괴되어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연민의 시선’을 보낸다. 작년 한 해만 돌아보더라도 <말아톤> <웰컴 투 동막골> <너는 내 운명>처럼 비평과 흥행에서 고루 상찬을 받은 작품들의 근간은 흔들리는 가족 공동체를 향한 그리움이었다. 이들 영화에서 가족은 자폐인 때문에, 전쟁 때문에, AIDS 때문에 위협받는다.

-그런데 ‘가족’이라는 이름을 제목에 버젓이 내건 <가족의 탄생>은 제목과는 달리 전통적으로 생각되는 가족의 형태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가족을 묶어주는 것은 혈연이 아니라 ‘관계’이며, 새로운 관계의 설정이야말로 우리 시대의 가족을 등장시킬 수 있는 동력임을 보여준다. <가족의 탄생>이 가족영화로서 얼마나 차별되는지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이 영화의 전체적인 흐름을 언급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당연히 스포일러적인 글이 될 수밖에 없다.) 세 가지 덩어리로 나뉜 영화의 형식은 하나의 인물을 중심으로 주변의 관계들을 보여준다.

-첫 번째 에피소드는 누이로 등장하는 문소리를 중심으로 한 사연이다. 떡볶이를 팔며 홀로 살고 있는 미라(문소리)에게 어느 날 동생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한동안 사라졌던 동생 형철(엄태웅)이 돌아온 것이다. 그런데 돌아온 탕자 형철은 버젓이 아내까지 대동하고 등장한다. 그것도 스무 살 연상의 여자인 무신(고두심)을 아내라고 소개한 후 미라에게 빌붙어 살기로 작정한 듯 집안을 거덜내고, 두 사람의 정사 소리로 누이의 휴식을 방해한다. 설상가상으로 무신의 전남편의 딸까지 등장하면서 미라의 집은 북새통을 이룬다. 미라와 형철은 핏줄을 나눈 남매 사이지만 이들 사이에서 더부살이를 하게 된 무신과 여자 아이의 등장은 남매의 관계를 흔든다. 결국 화가 난 미라는 이들을 모두 쫓아낸다.

-이러한 갈등의 패턴은 영화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도 고스란히 반복된다. 관광 가이드 선경(공효진)은 엄마 매자(김혜옥)와 사이가 좋지 않다. 모녀 사이의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은 매자가 가정이 있는 남자와 줄곧 연애질을 해왔기 때문이다. 선경은 일본으로 도피할 것을 꿈꾸며 여러 곳에 면접을 본다. 일본에 갈 날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 선경은 엄마의 애인 집을 방문한다. 버젓이 가정을 이루고 있는 남자를 향해 선경은 우리 엄마를 진짜 사랑하냐고 묻는다. 그런데 답변이 가관이다. 남자는 그렇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선경의 마음은 다소 누그러진다. 두 번째 에피소드에도 첫 번째와 마찬가지로 아이가 등장한다. 매자가 선경을 닮았다고 하는 사내아이는 선경의 이복동생이다.

-두 에피소드의 사연은 영화의 제목 그대로 가족이 탄생하는 전형적인 방식을 보여준다. 혈연으로 맺어진 원래 가족이 있고(그들은 애증 관계로 얽힌 가족이다), 여기에 새로운 인물이(혹은 아이가) 가세하면서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키기 위한 갈등이 본격화된다. 이처럼 황당한 일을 겪으면서도 그들은 새로운 가족을 탄생시켰을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영화의 가장 중요한 마지막 에피소드를 지켜봐야 한다.

-김태용 감독은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짐짓 능청을 떤다. 망난이 동생 때문에 고생하던 미라의 고민이 어떻게 되었을지, 엄마의 장례식 이후 선경이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보여주지 않는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마치 새로운 영화를 시작하는 것처럼 기차에서 만난 한 커플의 연애사를 다룬다. 기차에서 만난 20대 초반의 경석(봉태규)은 채현(정유미)의 성격 문제로 인해 빈번히 다툰다. 채현은 남자친구인 경석과의 약속보다는 주위 남자들의 청을 들어주기에 바쁘다. “넌 너무 헤퍼.” 참다못한 경석은 채현에게 이별을 선언하지만 그녀를 따라 기차에 오른다.

-평범하고 황당하게 끝날 것 같은 <가족의 탄생>이 이야기의 신비로움을 증명하는 것은 경석과 채현의 식구들이 만나는 순간이다. “우리 엄마들이야.”라고 소개할 때 경석 앞에 등장한 것은 나이가 든 미라와 무신의 모습이다. 그녀들은 오랜 만에 들른 딸과 남자 친구를 반갑게 맞이한다. 저녁식사를 하며 이들은 성가대에서 노래를 부르는 경석의 누이를 보게 된다. TV 속에서 노래를 부르는 성가대의 인물 중에 나이가 든 선경이 보인다.



-시간의 비약은 가족이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지를 보여주는 진정한 신비로움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준다는 말처럼 그들은 이미 자신들만의 가족을 이루고, 벌써 다음 세대의 언약을 준비하고 있었다. 물론 시간이 모든 갈등을 풀어주지는 못했겠지만 최소한 그들은 새로운 가족의 모습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것은 일일이 설명되기보다는 경석과 채연의 연애담을 통해 짐작하게 되는 느낌들에 가깝다.

-경석은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 선경의 이복동생으로 등장한 아이였고, 채현은 첫 번째 에피소드에서 무신을 찾아온 전남편의 딸아이였다. 세월이 흘러 그들 사이의 갈등이 누그러지고 주름이 깊어졌을 때 두 가족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아주 우연히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을 타진한다. 그런 점에서 채현과 경석이 기차에서 만난다는 것은 의미심장한 설정이다. 새로운 가족의 탄생은 수많은 우연과 가능성 사이에 잠재되어 있는 것이며, 그것이야말로 이 세상에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하게 되는 비결인 셈이다.

-이는 전통적인 한국의 가족영화들과는 다른 태도다. 가족을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하는 무엇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가족은 우연의 관계들 속에서 벌어지는 산물이라는 것이 세 가지 에피소드의 형식을 통해 작고 크게 반복되는 셈이다. 앞의 두 에피소드가 혈연으로 묶인 가족에 새로운 인물들(타자)이 등장하면서(새로운 아이가 가세하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다루고 있다면, 마지막 에피소드는 그 아이들이 성장하여 타자 대 타자의 관계로 연인이 되는 순간을 잡아내고 있다.

-<가족의 탄생>에 의하면 가족은 혈연으로 규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타자들이 등장하면서 위협받고 흔들리면서 변화해가는 무엇이다. “당신들 정말 재수 없어.”라고 항변하는 선경의 말은 가족의 구성원이 느끼는 위기감을 토로하는 것이지만 이러한 위기를 통해 가족은 새롭게 재탄생을 하게 되는 계기를 맞이하는 셈이다.

-두 편의 에피소드가 다루는 가족들 사이의 갈등이나 마지막 에피소드가 보여주는 연인 사이의 갈등은 가족 혹은 가족을 이루고자 하는 연인들 사이에 언제나 존재하는 ‘위기’일 따름이다. 가족은 언제나 위기를 겪고 있으며, 위기를 통해 자라나고 변화하는 것임을 <가족의 탄생>은 영리한 형식을 통해 증명해보인다. 무관한 듯한 세 편의 에피소드가 하나의 관계를 기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순간 수많은 타자들로 이루어진 오늘날의 가족사를 돌아보게 만든다.

-<가족의 탄생>은 가족을 이루는 진정한 토대는 ‘혈연’이 아니라 ‘타인’이었다고 말하는 영화다. 수많은 타인들이 자신의 이기심과 오만을 버리고 어떻게 가족을 이루게 되었는지를 설득력 있게 보여주는 영화다. 물론 그들의 삶은 불행할 수도 있고, 행복할 수도 있다. <가족의 탄생>은 가족의 행복이 반드시 답변은 아니라고 말한다. “정말 재수 없어” 보이는 인물들이지만(진정한 타인이지만) 어느 순간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살아가는 존재들인 것이다. 그것만큼 신비로운 것이 또 어디 있겠는가. 이 영화의 세 가지 에피소드는 이러한 신비를 드러내기 위한 고민의 산물이다.

 

최은영(06. 05. 24) '낡은 것과 새로운 것'

-김태용 감독의 두 번째 장편 영화 <가족의 탄생>은 많은 화두를 담고 있는 영화다. 거기에는 아주 낡은 소재, 즉 우리가 익히 잘 알고 있는 이야기들이 존재한다. ‘가족’과 ‘연애’는 모든 픽션에서 결코 빠지지 않는 오래된 소재다. 이렇듯 낡은 소재로 어떻게 새로운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까. 여기에는 딜레마가 존재한다. 가장 고전적인 소재일수록 그 소재 자체가 지닌 힘을 결코 간과할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새로운 감각을 일깨워 소재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에는 그러한 딜레마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다. ‘가족’과 ‘탄생’이라는 낯익은 단어가 ‘가족의 탄생’이라는 기이한 조합으로 합쳐졌을 때 느껴지는 감각은 이 영화의 전체를 지배하는 정서이며, 영화의 성패의 지점을 알려주는 키워드다.

-영화의 첫 장면은 낡은 기차 칸에 앉은 두 남녀로부터 시작된다. 남자는 여자에게 사이다와 찐 계란의 환상적인 조화에 관해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중이다. “사이다 없는 찐 계란, 아우, 상상만 해도 막 목이 메지 않아요?” 여기서 또 한 번 어울리지 않는 듯 어울리는 조합이 등장한다. 사이다와 찐 계란은 오로지 우리나라에서만 통용되는 영원한 짝패다. 따로 떨어뜨려놓고 생각해보면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음식이, 함께 만나면서 기막힌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남녀, 경석(봉태규)과 채현(정유미)은 그렇게 연애를 시작한다.

-오무신과 이형철, 이름부터가 낯선 조합이다. 하물며 그들의 외양의 조합은 더더욱 낯설다. 분식집을 경영하는 노처녀 미라(문소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말썽쟁이 동생 형철(엄태웅)과의 5년 만의 재회의 기쁨은, 형철이 20년 연상의 아내 무신(고두심)을 데리고 등장하면서 산산조각난다. 누나의 집 방 한 칸을 떡 하니 차지하고 밤마다 심란한 소음을 내는 것은 물론, 걸쭉한 입담으로 누나의 일상을 흔들어놓는 기이한 커플을 어찌 대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던 미라는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연다. 엄마와 아들뻘 되는 남녀가 커플 티를 입고 그 옆에 딸뻘인 여성이 어색하게 서 있는 모양새처럼, 지독히도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제법 살갑게 보이기 시작한다.

-한편 고궁 투어의 외국인 안내원으로 일하는 당돌하기 짝이 없는 소녀 선경(공효진)은 짐을 싸들고 찾아온 엄마 매자(김혜옥)를 단칼에 내친다. 마치 가출한 딸을 박대하듯 매몰찬 선경과 쭈뼛거리며 딸의 눈치를 살피는 매자의 모양새 또한 이상하기 짝이 없다. 알고보니 매자는 지나치게 로맨틱한 성정으로 남자를 전전하며 딸을 방치해두었던 모양이다. 매자는 유부남인 동거남과의 사이에 어린 아들을 두고 있으며, 병으로 죽어가고 있다. 가족도 연애도 모두 엉망인 선경은 외국으로 떠날 날을 받아놓고서도 왠지 자꾸만 엄마의 집을 찾는다.

-<가족의 탄생>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세 개의 에피소드를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첫 번째 에피소드, 즉 경석과 채현의 에피소드는 두 개의 다른 에피소드들(미라와 무신과 형철, 그리고 선경과 매자)을 연결시키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그래서 유독 경석과 채현의 에피소드는 늘 어딘가로 향하는 길거리에서 진행된다. 반면 미라와 형철, 무신의 에피소드와 선경, 매자의 에피소드는 일정한 공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지만, 전혀 다른 공간에서 전혀 다른 뉘앙스로 전개된다. 미라가 사는 구옥의 마당, 시골 장터, 햇빛이 가득 들어오는 창이 넓은 분식집은 때로 코믹하기까지 한 관계의 아이러니를 따뜻하게 감싸 안는다. 서먹하기만 했던 미라와 형철 부부는 마당에서 어린애처럼 서로의 몸을 부딪치며 암묵적인 화해에 도달한다. 그리고 그들은 함께 장터에서 물건을 사고 사진을 찍으면서 돈독해진다.

-그러나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선경의 좁은 방, 어두컴컴한 매자의 털실 가게는 선경이 생활하는 또 다른 장소인 고궁이나, 후반부에 등장하는 배다른 동생의 유치원 운동회 장면에도 불구하고 에피소드 전체의 분위기를 장악한다. 선경은 우울한 얼굴로 집 안에 틀어박혀 있거나 을씨년스러운 엄마의 털실 가게를 찾아가 신경질을 부린다. 병원비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매자와 어린 아들, 동거남은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을 지키기 일쑤다. 이러한 분위기의 대조는 두 에피소드 간의 관계가 종국에 서로 만나기 전 완전히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의 일부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에피소드는 진행될수록 점점 서로를 닮아간다. 두 에피소드 모두 클라이맥스를 지나 비슷한 방식으로 일단락되는 것이다. 이는 떠나는 사람과 남겨진 아이, 아이를 중심으로 새롭게 재편되는 가족, 그리고 남겨진 삶 위로 흐르는 시간의 묘사다. 마치 마실 나가듯 훌쩍 떠나버리는 형철과 결국 죽음을 맞이하는 매자의 장례식은 에피소드들의 급격한 전환점을 이루고 있다.

-침묵 속에 밥을 먹는 미라와 무신의 모습을 전경으로 후경에서 보이는 천진난만하게 뛰노는 여자아이의 슬로모션은 매자가 죽은 후 그녀가 남긴 가방을 열어보고 목 놓아 우는 선경의 주변으로 가볍게 떠오르는 선경의 어린 시절을 증거 하는 기념품의 슬로모션과 대구를 이룬다. 무신과 무신의 전남편의 딸이 형철을 기다리다 결국 미라의 집을 떠나는 장면에서 미라의 간절한 눈빛은 결국 남겨진 이들이 서로 합칠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으며, 출국을 포기하는 전화를 하는 선경의 모습은 더욱 직접적으로 새로운 가족의 탄생을 암시하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세계를 하나로 이어주는 마지막 에피소드의 결말뿐이다. 지나치게 남의 일을 챙기는 채현과 이를 못마땅해 하면서도 속 시원히 털어놓지 못하는 심약한 경석의 러브스토리는 처음에는 독립된 것처럼 존재하지만 앞선 두 에피소드들이 일단락되면서 두 에피소드의 후일담이라는 또 다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판타지에 가까운 후일담은 앞선 두 에피소드들이 맞이하는 파국의 순간을 넘어서면서 일종의 보상의 쾌락을 안겨준다. 그리고 현실이 착한 판타지로 변모하는 순간은 마지막 장면에서 극대화된다. 천사처럼 하늘에서 웃고 있는 선경의 이미지, 그리고 다시 찾아온 형철과 그의 두 번째 여자, 에필로그 크레딧 시퀀스는 모두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그들의 기이한 인연을 전 지구적인 삶의 형태로 분산시키는 동시에, 낭만적인 휴머니즘으로 포획하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은 서로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두 에피소드들이 극적인 만남에 이르는 여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캐릭터들의 어울리지 않는 조합뿐만 아니라 다른 공간에서 다른 뉘앙스로 전개되는 두 개의 에피소드를 한데 모으는 것이 이 영화의 구조적 목적인 셈이다. 영화 전체에 걸쳐 있는 이러한 유비적인 관계의 점진적 조합 과정은 눈에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매끄럽게 진행되지만, 결국 판타지로 현실을 봉합한다는 또 하나의 딜레마로 귀결된다.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사랑의 여러 형태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 영화를 하나의 거대한 러브스토리로 바라보는 관점이 가능하다면, 이 영화의 전범은 이미 존재한다. <러브 액추얼리>는 때로는 판타스틱하고 때로는 현실적인 러브스토리의 집합체로 ‘사랑은 어디에나 있다’라는 고전적인 팝송 가락을 흥얼거리며 사랑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가족의 탄생>이 종국에 귀결되는 지점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비현실적인 듯 현실적인 에피소드 속에서 관계의 아픔을 드러내는 영화의 섬세한 이미지의 결이 다소 무뎌지는 것은, ‘어딘가 다른 사랑’이 마치 오래된 옛날 얘기의 마법처럼 ‘어디에나 있는 사랑’으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얼마간의 판타지를 다 지워내지 못하고 있지만, <가족의 탄생>이 갖는 미덕은 <러브 액추얼리>를 직접 모작한 <내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의 허접함과 비교될 수 없다).

06. 0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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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케 현상 2006-07-11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본 몇 안 되는 한국영화 중 두 편이 최고작이라니 수확이 좋네요^^

로쟈 2006-07-11 13: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 의견이 그렇지만, 제 의견이란 건 다른 이들의 견해를 참고한 것이므로 제 의견만은 아닙니다. 자신이 지지하고 싶은 영화나 소설들을 만나는 건 언제나 고무적이며 즐거운 일이죠.^^

푸른괭이 2006-07-11 21: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영화 각본은 웬만하면 다, 소설(심지어 아주 잘 썼다는!)보다 나은 듯. 인재들은 다 영화판으로 갔나 봐요 --.--

니브리티 2006-07-12 15: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확실히 이 영화 웬만한 소설들보다 훨씬 낫죠! 그만큼 서사가 탄탄했고, 적당한 분량의 감동도 좋았구요. 다만 소설=서사인 한에서요..^^

로쟈 2006-07-12 15: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사도 영화에 양보하고 나면 소설은 빛좋은 개살구가 되는 것 아닌가요?^^

니브리티 2006-07-12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빛좋은 개살구죠. 근데 원래 소설은 빛좋은 개살구였지 않나요? 설마 서사인 소설이 뭔가를 할 수 있다거나, 뭔가를 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로쟈 2006-07-12 16: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래'는 아니지요. 지난번 고진의 '종언'론에 이어지는 것이지만, 소설이 뭔가를 했던 역사적 시기가 있었고, 그건 부정할 수 없습니다(그러니까 '뭔가를 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물론 말씀하시는 게 '현재'라면 공감하지만.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종언'이지만...

기인 2006-07-12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가족의 탄생. 이런 영화는 왜, 보러갈까 하면, 문을 닫는 걸까요. 스크린쿼터가 아니라 소규모영화 쿼터제가 (사실 가족의 탄생도 상업영화지만) 다문화주의를 위해서는 필요할 것 같아요. 쩝.

로쟈 2006-07-12 22: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의 개봉방식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적게, 오래, 상영하는 방식이 가능할 텐데요... 저도 비디오로 봤으니 크게 할말은 없지만...

니브리티 2006-07-13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분명히 로쟈님과는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지점이 있는데,...로쟈님의 밑밥(미끼)이 너무 먹음직스러워서...^^ 하여튼 저 같은 잔챙이는 안된다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