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개봉한 만다 쿠니토시 감독의 영화 <언러브드>(2002)에 대한 기사 두 개를 옮겨놓는다. 엊저녁 퇴근길에 문화일보에서 영화평론가 오동진의 리뷰를 읽은 게 계기가 됐다. 볼 만한 영화라고 생각하지만, 나로선 비디오로 출시되기나 기다려야 할 형편이다. 미리 스크랩해두는 걸로 아쉬움을 달랜다.

문화일보(06. 05. 30) 돈 많은 벤처사업가 가쓰노(나카무라 도오루)와의 사랑을 뿌리치 고 택배 일을 하는 가난한 청년 시모카와(마쓰오카 슌스케 )에게 마음을 연 가게야마(모리구치 요코)는 그와의 첫 잠자리에 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린다. 남자가 처음이어서가 아니다. 시모카와와의 섹스가 특별히 그녀의 몸을 더 뜨겁 게 만들어서도 아니다. 가게야마는 이제야 처음으로 자신과 ‘맞는’ 남자를 만났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시모카와의 벗은 등을 힘껏 껴안으며 왜 우느냐고 묻는 그에게 “너무 좋아서”라고 말한다. 하지만 시모카와는 가게야 마가 ‘좋다’라고 한 진짜 이유를 끝내 알아채지 못한다.

-언뜻 보면 동네 구청에서 일하는 9급 공무원 여성과 잘나가는 사 업가, 그리고 나이도 어리고 장래도 불투명한 한 청년의 그렇고 그런 3류 삼각관계를 그린 신파 TV드라마 같지만 <언러브드>는 그보다 훨씬 깊은 얘기를 다루는 작품이다. 한마디로 현대사회,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사랑의 본질을얘기하는 것인데, 그 내용이 너무 정곡을 찌르는 것이어서 때 론 섬뜩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 지나친 진실은 일상을 뒤흔든다.

-흔히들 사랑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문제, 모든 차이를 덮어 버릴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산다. 그 ‘차이’ 란 때로 정치적인 문제일 수도 있고 경제적인 문제일 수도 있으며 종교적인 문제일 수도 있다. 차이의 요소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것이지만 그 핵심은 하나, 결국 계급적이라는 것이다. 지난한 계급의 역사에서 차이가 나는 남녀의 사랑이 해피엔딩이 된 경우가 과연 얼마나 됐을까. 그런 얘기는 정말 할리우드식 로맨틱 코미디나 공중파TV의 수많은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일 뿐이다. <언러브드>는 우리들의 그 같은 오래된 착각의 세상인식을 전복시킨다.

-남녀간의 차이는 차이로 존재할 뿐 그게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다고 이 영화는 얘기한다. 여주인공 가게야마는 그 점을 너무 나 잘 아는 인물이다. 돈 많은 가쓰노는 그녀에게 수백만원짜리 의 드레시한 옷을 사 입히고 스노비시한 인간들이 넘쳐나는 최고 급 레스토랑에 데려가지만 가게야마는 가쓰노가 잠깐 일을 보러 간 사이 허름한 음식점에 가서 라면을 먹는다.

-가게야마는 가쓰노에게 옷을 돌려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가쓰노는 레스토랑에 오랫동안 혼자 놔둬서 그녀가 화가 났다고 생각한 다. 그 ‘생각’의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는다. 가게야마는 가쓰노가 자신에게 맞지 않는 ‘최고급의 옷’일 뿐이다. 가게야마 는 가쓰노에게 얘기한다. “당신과 있으면 나는 내가 아니게 돼요. 나를 잃게 돼요”라고.

-가쓰노는 그런 그녀에게 화를 낸다. 가쓰노의 분노도 이해 못할 것이 아니다. 가쓰노는, 너 역시 나를 만나면서 뭔가 기대하는 것이 있지 않았느냐며 그녀를 힐난한다. 차이를 두려워하고 거부 하는 것 역시 자기만 상처를 받지 않고 살아가겠다는 이기심의 발로가 아니냐고 캐묻는다. 가난한 택배 청년 시모카와도 그녀를 괴롭히기는 마찬가지다. 그녀식으로 자신들이 ‘차이없음’에 만족하고 사는 것은 결국 이 사회에 두껍게 벽을 쌓고 고립돼 살아가려는 왜소한 행위일 뿐 이라고 그는 안달한다.

-가쓰노는 가게야마를 자신의 세계에 끌어들이려고 하고 가게아먀 는 시모카와를 자신의 세계에 정착시키려 하지만 정작 시모카와는 가쓰노처럼 되고 싶어한다. 이 기묘한 부조화의 순환구조. 과연 누가 옳은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계급을 뛰어 넘는 사랑은 가능한 것인가. <언러브드>는 그게 결코 녹록지 않은 일임을 보여준다. 멜로드라마를 보러 들어갔다 가 무거운 마음으로 극장 문을 나서게 되는 건 그 때문이다.

한겨레(06. 05. 25) 사는 게 그렇지만 연애도 끊임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취향이나 환경, 가치관은 한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되고 또 그렇게 관계가 맺어진 뒤에도 선택의 순간은 끝나지 않는다. 여기에 타협과 포기가 끼어들고 이런 단어는 사랑이라는 우산 밑에서 헌신, 희생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그런데 현실 속의 선택에는 매뉴얼도 존재한다. 부와 능력, 배경, 외모 같은 조건들이 그렇다. 보통의 선택은 투명하게 스스로의 기준에 의한 것이 아니라 개인적 욕망과 객관적 기준의 타협이기 십상이다.

-사랑 이야기이면서 ‘사랑받지 못하는’이라는 뜻의 제목을 가진 <언러브드>(24일 개봉)에는 남다른 선택을 하는 여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시청 하급 공무원인 미쓰코(모리구치 요코)는 능력을 칭찬하고 승진 준비를 하라는 상사의 격려에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값싼 노동력에 만족하고 산다. 업무차 시청을 오가던 젊은 사업가 가쓰노(나카무라 도오루)는 참하고 조용한 미쓰코에게 반한다. 가쓰노가 연애를 걸어오자 미쓰코는 조용하게 그를 받아들이지만 가쓰노가 값비싼 드레스와 고급 레스토랑 등 자신이 속한 세계로 끌어당기자 싸늘하게 그를 거부한다. 대신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아래층 택배청년 시모카와(마쓰오카 슌스케)에게 연애를 건다.

-미쓰코는 욕심없고 소박한 인물로 보인다. 그런데 가장 평범해 보이는 그의 세계는 이해받지 못한다. 욕심없고 소박하다는 게 어떻게 해 볼 수 없어서 자조하는 것이라고 해석되는 세상에서 그가 욕심없고 소박한 자신의 세계를 관철하는 건 초고속 승진을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된다. 당연히 미쓰코를 ‘구제’해줬다고 여기는 가쓰노가 미쓰코의 거부를 이해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처음엔 미쓰코의 살뜰한 사랑을 반기던 시모카와도 싫증을 낸다. 미쓰코는 같은 세계에 있는 사람이라, 즉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어울리는 사람이라 시모카와를 좋아하지만 시모카와는 미쓰코에게서 별수 없는 패배자로서 자신의 거울을 보기 때문이다. 가쓰노는 버림받은 데 분노하지만 시모카와는 선택받은 걸 혐오한다. 결국 자신의 성을 완고하게 지키며 사랑을 하려는 여자는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존재로 남는 것이다.

-<언러브드>는 순종적으로 보이지만 결코 타협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사랑에 있어 선택의 문제를 통렬하게 보여준다. 사랑이라는 주관적 단어를 마치 수학이나 화학의 복잡한 공식처럼 철저하게 분해하면서 그 안에서 선택이 작동되는 기제를 정교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멜로드라마의 틀을 빌려왔지만 싸늘하리만치 냉정하고 이지적이다. 특히 영화의 막바지에 자신을 떠나려는 시모카와에게 미쓰코가 ‘사랑을 선택하는 기준’에 대해서 집요하게 설득하는 장면은 격렬한 토론장처럼 불꽃이 튄다. 영화 역시 밀도 있는 구성과 대사를 통해 사랑도 선택도 달콤한 휴식의 거처가 아니라 존재론적인 투쟁의 장이라는 걸 관객에게 설득해내는 데 성공한다.(*이 리뷰는 김은형 기자의 것인데, 남성 평론가 오동진과는 달리 '계급적 문제'보다는 '캐릭터의 문제'에 더 주목하고 있다. '존재론적인 투쟁'?)

06. 05. 31.


댓글(6)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마늘빵 2006-05-31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니 이 영화는 어디서 하는거래요. 못봤는데. 씨네코아도 없고 씨네큐브에도 없으면 어디에서...?

waits 2006-05-31 00: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님, 필름포럼(예전 허리우드)에서 이번 주까지 하네요. (흡, 남의 서재에 답댓글을..;;)

Joule 2006-05-31 0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이 영화 봤어요. 이벤트라고 까만 색의 예쁜 머그컵을 주었는데 소감을 말하자면 6천원짜리 머그컵 사니 덤으로 영화를 보여준거야,라고 위안하고 싶더라는. 연극적이에요. 영화보다는 영화평들이 더 훌륭한 걸 보면 차라리 영화를 보지 않는 편이 훨씬 더 울림이 크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도. 가와이 겐지가 음악을 맡았는데 애마부인 음악과 상당히 흡사한 분위기를 연출하더군요. 영화평에서 말하는 딱 그만큼만이에요. 그러나 다시 보라면 볼 것 같아요. 덤으로 주는 컵이 갖고 싶어서.

로쟈 2006-05-31 1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단관 개봉하는 걸로 보아 흥행성이 없을 거라는 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애마부인 음악'이라는 장르(?)도 있는 모양이군요.^^

마늘빵 2006-05-31 1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오늘 보러갔다가 제가 도착한 시간이랑 상영시간이 너무 차이가 나서 모노폴리 보고 왔어요.

로쟈 2006-05-31 19: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옛날 같으면 저는 <모노폴리>를 먼저 보고, <언러브드>를 봤을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