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지난 주말에 작성되어야 하는 글이었는데, 사정상 며칠 늦어졌다. 그 런 사정을 반영하여, 제일 처음에 꼽고자 하는 것은 새로 나온 <단테>와 그 해설서이다. 이건 오늘 아침에 한국일보에서 <신곡>을 완역한 한국외대 한형곤 교수와 그 해설서 <신곡 - 단테, 신의 나라로 여행을 시작하다>(서해문집)를 쓴 부산외대 박상진 교수의 대화를 읽으면서 알게 된 것이다. 다시 검색해 보니까 한형곤 교수의 이탈리어어 완역본은 지난 78년에 삼성출판사(세계문학전집)에서 나왔었고, 2003년에 개역본이 한국외대출판부에서 <풀어 쓴 단테의 신곡>으로 다시 나왔다. 이후에 새로운 판본이 다시 나왔는지는 아직 모르겠다.

물론 요즘 <신곡>보다 더 많이 팔려나가는 것은 <단테 클럽>이나 <단테의 모자이크 살인> 같이 단테의 이름을 '참칭'한 책들이지만,  교양있는 독자라면 셰익스피어, 괴테와 함께 세계 3대 문호로까지 꼽히는 단테의 <신곡>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혹은 읽은 척이라고 할 필요가 있고, 적어도 책이라도 서가에 꽂아둘 필요가 있다. 물론 우리말 역자나 해설자도 지적하는 것이지만, 이 작품을 제대로 읽은 사람은커녕 끝까지 다 읽은 사람도 찾아보기 힘들다(나부터도 그렇지만). 그건 원작 자체가 완벽한 형식미를 자랑하는 시라는 점에서도 찾을 수 있겠다. 번역도 까다롭거니와 원작의 맛을 살려낸다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거의 불가능한 것. 이 '숭고한' 책에 대해 우리로서 할 수 있는 건 읽어보려고 노력하거나, 읽은 척하는 것이다. 다시 나온 번역본이나 새로 나온 해설서가 요긴한 것은 이런 배경에서이다. 적어도 읽은 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정말로 '읽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다. 그렇게 '읽은' 한국인은 손으로 꼽을 정도일 것이다).

러시아문학 전공자인 나로서도 단테는 (페트라르카 등과 함께) 하나의 콤플렉스 거리이다. 푸슈킨도 이 '단테 알리기에리'에 대해서 여러 모로 참조하고 있지만("푸슈킨과 단테"라는 게 "푸슈킨과 셰익스피어"만큼의 크기는 아니지만 연구주제이다), 가장 결정적으로는 고골의 <죽은 혼>이 그 3부작 구성에 있어서 이 <신곡>의 구성을 의도했었다는 점. 그러니, <죽은 혼>을 (강의에서건 어디에서건) 얘기할 때마다 단테의 <신곡>도 덩달아 언급하게 되지만, '정보' 이상의 내용을 말하기는 쉽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강의'에 걸맞는 얘기를 하기 위해선 필수적으로 참조해야 하지만, '언어장애'를 비롯한 여러 가지 여건상 그간에는 사정이 여의치가 않았다. 이번에 나온 해설서는 그런 의미에서 반갑다. 물론 영어권에서 나온 해설서들도 참조할 수 있겠지만, <신곡>을 영역본으로 읽는 건 또 만만하겠는가?(나는 러시아어본도 구하긴 했다.)  

지난 2월에는 단테의 <새로운 인생>(민음사)도 우리말 번역본을 얻은바 있으니 언제 짬을 내서 단테의 세계로 한번 잠수해볼 일이다(이 책은 이탈리어 역이 아니라, 단테 로세티의 영역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T. S. 엘리엇에 의하면, "서양의 근대는 단테와 셰익스피어에 의해 양분된다. 그 사이에 제3자란 존재하지 않는다." 괴테가 들으면 섭섭해 할 일이지만, 하여간에 사정들이 그러하다고도 하니 우리의 얄팍한 교양에 (헛)바람을 집어넣기 위해서라도 단테를 좀 읽어보도록 하자(중2 때 단테의 <신곡>을 들고 다니던 한 친구 때문에 나도 덩달아 얄팍한 번역서 한 권을 들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번역이 제대로 읽혔을 리 없다.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건, 아마도 해설에서 읽은, 단테와 베아트리체의 사랑 이야기뿐).  

 

 

 

 

두번째 책은, 역시나 우리의 교양과 관련된, 그리고 단테만 아니었다면 당연히 첫손가락에 꼽았을 책인바, 프랑코 모레티의 <세상의 이치>(문학동네)이다. 영화감독 난니 모레티의 형이기도 이탈리아 출신의 영문학자 프랑코 모레티는(우리의 경우 그런 형을 둔 영화감독으로 봉준호가 있다) 동생만큼 유명한 건 아니지만, 가장 주목할 만한 영문학 '연구자'의 한 사람이다(그에게 걸맞는 칭호는 '이론가'나 '비평가'가 아니라 '연구자'이다. 실제로 그는 스탠포드대학의 소설연구센터를 지휘하고 있는 연구 총책임자이기도 하다). 이미 <근대의 서사시>(새물결, 2001)로 우리에게 소개된바 있고 몇 년전에는 한국을 다녀가기도 했지만, 겸손하게도 고작 '연구자'인 탓인지 주변에서 생각만큼 많이 읽히지는 않는 듯하다. 하지만, 모레티는 중요하다(적어도 재미있다). 그러니 읽을 필요가 있다. 중요해서건, 재미있어서건.(모레티는 페터 지마만큼 이론 지향적이지만, 테리 이글턴만큼 재미있다.) 

모레티는 문학연구에 통계학이나 지리학, 생물학 등을 도입하는 걸로 유명한데, 기본적인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제한다면, 그의 프로젝트는 '(러시아)형식주의 + 다위니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텍스트의 형식에 주목한다는 점에서 나에게 그는 텍스트사회학의 창시자 페터 지마를 떠올리게 하지만, 지마가 문학사회학의 상관항으로서 '텍스트성'을 파고든다면, 모레티는 대범하게 그러한 형식이나 텍스트성의 진화에 대해 고찰하고 기록한다(거기서 중요한 건 진화의 '단위'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아예 <유럽소설의 지도 1800-1900> 같은 걸 만들어보기도 한다. 비록 재미있다 하더라도 문학연구의 '핵심'과 다소 동떨어져 보이기도 하는 그의 작업 스타일은 내가 보기엔 역사학 연구에서 인구학자의 작업과 비슷하다. 인구변동의 통계나 다룰 듯하지만, 인구학적 접근은 역사에 대해서 생각보다 많은 걸 얘기해주는데(가령 인구학자 토드의 <유럽의 발견> 같은 책), 모레티의 작업 또한 그러하다. 문학사를 '문학의 도살장'으로 보는 그의 시각은 얼마나 (당연하면서도) 참신한 것인지!

지난 1987년에 처음 나온 <세상의 이치>는 모레티의 비교적 초기 저작이다(나는 Verso에서 나온 이 1판을 갖고 있는데, 역자에 따르면 얼마전 개정판이 나왔다. 확인해 보니까 2000년에 'New Edition'이 나온 것). '유럽 문화 속의 교양소설'이란 부제에 걸맞게 책은 '상징적 형식으로서 교양소설'이 근대사회사의 전개 속에서 갖는 의미맥락을 추적하고 재구성한다. 그런데, 결코 딱딱하지 않다. 오히려, 에드워드 사이드의 표현을 빌면, "모레티의 저작에는 페이지마다 순수한 지성이 살아숨쉰다." 읽어볼 도리밖에.

참고로, 러시아문학과 관련해서는 푸슈킨의 <예브게니 오네긴>(1831)과 레르몬토프의 <우리시대의 영웅>(1840)이 이 책에서 언급되는 러시아문학 작품(곧 교양소설)이다. 주로 스탕달을 다루고 있는 장에서. 이 때문에, 나는 이전에 이 책을 부분적으로 읽었었다. 이들과 더불어 거명되고 있는 유일한 러시아인은 미하일 바흐친이다. 한가지, 사실주의(리얼리즘)이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 발달한 문학형식이라는 게 모레티의 대전제인데, 이러한 이론적 전제에 잘 들어맞지 않는 게 러시아문학이며, 모레티 자신이 그 점을 시인하고 있다. 한 대담에서 루카치가 최고의 리얼리즘 작가로 꼽은 톨스토이와 당대 러시아와의 관계를 어떻게 보느냐는 질문에 모레티는 이렇게 답한다. "톨스토이는 제게 골치아픈 적수죠. 제 주장과 어긋나는 작가거든요. 이 질문에는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안과밖>, 제12호, 273쪽) 모레티는 솔직한 사람이다.

 

 

 

 

세번째 책은 데이비드 하비의 <신제국주의>(한울). 아마도 현대 지리학자 중 우리에게 가장 낯익은 학자이자 가장 많이 소개되고 있는 이가 하비일 것이다(그의 책은 최소한 7권이 우리말로 번역/소개돼 있다). 지난번에 <모더니티의 수도 파리>(생각의나무)라는 묵직한 책이 나온바 있는데, 이번엔 2003년에 나온 그의 최신간이다. 역자는 하비의 책을 번역한바 있는 최병두 교수. 하비에 대해선 영국 옥스포드의 좌파(맑시스트) 지리학자 정도로 기억하고 있었는데(나는 그의 책 몇 권을 사두었지만 아직 읽지 않고 있다), 이번 저자 소개를 보니까 뉴욕시립대학의 인류학과 교수로 돼 있다. 지리학자에서 인류학자로 변신? 한편으론, 그가 지리학의 외연을 거의 인류학 수준으로 확장했다는 걸 떠올려볼 수 있다(이 경우는 문화인류학의 하위범주로서 '도시인류학'이 될 것이다). 한편, 지난번에 나온 책과 관련하여 갖는 바람. 또 다른 '맑시스트' 마샬 버만에 따르면, 모더니티의 또다른 수도는 파리 외에 페테르부르크와 뉴욕이 있다. 하비급의 학자가 나서서 이 '두 도시 이야기'마저 파리 이야기만큼 써주었으면 좋겠다. 근대의 세 도시, 혹은 근대의 세 가지 유형학에 대하여. 

                    

 

 

  

네번째 책은 프랑스쪽의 '행동하는 지성'들에 관한 것. 거물 사회학자 부르디외의 <실천이성>(동문선)이 불쑥 나왔고, 드레퓌스 사건을 촉발했던 에밀 졸라의 <나는 고발하다>(책세상)가 책세상문고의 한권으로 선보였다. 역자에 따르면, 이 사건과 관련하여 가장 유익한 책은 아르망 이스라엘의 <다시 읽는 드레퓌스 사건>(자인, 2002)인바, 같이 읽으면 도움이 되겠다. 부르디외의 신간은 동문선의 간판 번역자 김웅권의 작품인데, 그가 번역한 <파스칼적 명상>에 대한 평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기에 나로선 유보적이다. <순진함의 유혹> 같은 좋은 번역서도 있는 반면에, <구조주의의 역사2-4> 같은 어수룩한 번역서도 내놓고 있기 때문인데, 이런 경우는 다른 분들이 먼저 읽고 판별해 주었으면 한다(책값이 싼 것도 아니고). 여하튼, 부르디외의 거의 모든 책들이 번역되었다. 해서, 부르디외식 사회학이 한국에서도 꽃필 수 있을까? 기대는 해보지만, 판돈을 걸지는 않겠다. 부르디외 '전공자'가 태연하게 조선일보에도 글을 쓰는 나라가 한국이고 한국 사회이기에.

 

 

 

  

다섯번째 책은 오랜만에 꼽는 시집, 조정권의 <떠도는 몸들>(창비). <산정묘지>(민음사, 1991), <신성한 숲>(문학과지성사, 1994) 이후에 10여년만에 나온 신작 시집인데(정말이다!), 그런 만큼 기대해봄 직한 시집(적어놓고 보니 시인은 출판사들도 떠돌고 있다). 마흔을 갓 넘긴 나이때  "육신이란 바람에 굴러가는 헌 누더기에 지나지 않는다"('산정묘지1')라고 선언했던 '조로한' 시인의 '후일담'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헌 누더기'의 행적을 보여주지 않을까 싶은데, 서평들을 보니 시집의 컨셉은 여행인 듯하다. 동아일보 서평에 따르면, "예술가와 예술작품의 자취가 깃든 여행지를 순례하는 과정에서 저자 자신은 예술가의 길을 가고 싶지만 결과적으로 일상에 발목을 잡히는 모습은 예술가로서 저자의 고민을 공감하게 한다. '어디로 가도 지상의 오줌냄새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아는 시인은 스스로를 망명자로 자처한다'(국내 망명자)는 이 같은 시인의 마음을 극명히 보여준다." 망명시인의 명단을 하나 더 늘여야 할 모양이다...

05. 05. 18.

 

 

 

 

P.S. 알고 보니까 연초에 타르코프스키의 <봉인된 시간>(분도출판사) 새로운 장정으로 나왔다. 하지만, 아쉽게도 표지만 바뀌었을 뿐,  편제나 내용 자체는 그닥 달라진 것 같지 않다(이젠 칼라화보라도 넣을 수 있었을 텐데). 얼마전 <씨네21>의 창간 10주년도 맞고 해서 영화관련 글들을 제법 읽게 되었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들이 머리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데, 타이밍을 못 맞추고 있다. 조만간 영화와 영화비평에 관한 이야기들을 늘어놓을 수 있게 되기를(이렇게 적어놓으면, '의무감'에서라도 몇 자 적게 되지 않을까? 이런 게 화행, 곧 'speech act'이다)...   

 

 

 

  

P.S.2. 부르디외 사회학의 한국적 적용과 관련하여 첫 손에 꼽을 수 있는 책은 <문화와 계급>(동문선, 2002)이다. 그 중 문화자본에 대한 장미혜 박사의 (실증적인)연구가 나로선 주목할 만하다고 본다. 장박사는 짐작에 "소비양식에 미치는 문화자본과 경제자본의 상대적 효과" 같은 주제의 학위논문을 썼는데, 언론에 보도되었던 내용을 더듬어보자면, '경제자본'과는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문화자본'이라는 게 있고, 이 두 변수(돈과 눈높이)에 따라 네 가지 사회적 계층이 분류될 수 있다(이 경우 사회계층이란 게 이분법적이지 않다). (1)돈도 많고 눈도 높은 경우, (2)돈은 많지만 눈은 없는 경우, (3)돈은 없는데, 눈만 높은 경우, (4)돈도 없고 눈도 없는, 속편한 경우. 거기서 가장 '문제적인' 계층은 (3)이다. 책 살 돈은 없으면서 즐겨 책타령을 늘어놓는 어떤 이도 분류하자면 거기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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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5-18 12:26   좋아요 0 | URL
맨날, 사정상......
아무튼 수고하셨습니다.^^ 영화야그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지는 않으실꺼죠?^^

로쟈 2005-05-18 12:32   좋아요 0 | URL
예, 맨날, 날이면 날마다...

비로그인 2005-05-18 13:26   좋아요 0 | URL
아 봉인된 시간 안그래도 이번에 구입할 생각이었다 장바구니에서 뺐는데 로쟈님이 말씀하시니 여쭤봐야겠네요. 보니 독일어를 번역해놓은거더라구요 원래 독일어로 쓴건 물론 아니겠죠? 번역이 어떤지요? 읽을만하면 그냥 한국어번역본으로 구입하게요. 그의 영화에 머리깼던 생각이 나서 읽고는 싶은데 괜히 책도 겁납니다..^^

로쟈 2005-05-18 13:30   좋아요 0 | URL
'이상한' 일이지만, 제가 러시아어본을 아직 못 봤습니다(타르코프스키에 대한 책들을 제법 많이 갖고 있음에도). 국역본은 읽을 만한 책입니다. 정 미심쩍으시면, 영어본을 읽으셔도 되겠지만...

주니다 2005-05-18 19:19   좋아요 0 | URL
소개하시는 책들에게 Thanks to 할 수 있도록 편집해주시죠. 좀 귀찮으시겠지만. 그럼 쌓일 적립금이 꽤 되지 않을까요? 번번이 날로 먹자니 원....

로쟈 2005-05-18 19:41   좋아요 0 | URL
책 표지사진만 끌어다 놓았습니다. 제가 '편집' 같은 데 서툴러서요. 제가 누구처럼 책을 공짜로 드리는 것도 아닌데.^^

주니다 2005-05-18 20:11   좋아요 0 | URL
로쟈님 링크를 책 전체에 걸어야 되나 봅니다. 풀어 쓴 단테의 신곡만 Thanks to가 생기는 걸로 봐서는.... 다시 해 주세요 ㅎㅎㅎ 이왕이면 귀국 후 쓰신 글들에도 다 해주세요.

주니다 2005-05-18 20:14   좋아요 0 | URL
여기서 노는 사람들은 대충 3번째의 문제적 사회계층이 가장 많지 않을까요? 심지어 주제는 모르고 눈만 높아서 결혼도 못한 사람도 있고....크크크

로쟈 2005-05-19 15:25   좋아요 0 | URL
주제를 모르신다면, 아직 '가망'이 있습니다. 지 주제를 알고 결혼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balmas 2005-05-20 00:57   좋아요 0 | URL
어이구,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왔군요.
그런데 [신곡] 완역본이 300쪽밖에 안된다는 게 말이 되나요?

로쟈 2005-05-20 13:35   좋아요 0 | URL
그게 대조해 보지 않아서 현재로선 잘 모르겠습니다. '풀어썼다면' 분량이 더 늘어나야 정상일 텐데요.^^

n69 2005-12-09 04:01   좋아요 0 | URL
부르디외의 <파스칼적 명상>은 물론 어렵긴 하지만, 읽었을 때 도대체 의미판독이 안되는 책은 아닙니다. 역자가 <실천이성>을 번역하면서 <파스칼적 명상>의 번역이 어려웠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허나, 다른 부르디외 번역서 이를테면 <예술의 규칙>이나 <텔레비전에 관하여>보단 훨씬 훌륭해 보입니다. 불어할 줄 전혀 모르나, 읽어보았을 때 그렇다는 겁니다...^^

로쟈 2005-12-12 12:16   좋아요 0 | URL
<파스칼의 명상>을 자세히 검토하진 않았기에 제 의견이 과장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주변의 의견까지 참조하면 그리 과장된 건 아니지만). 역자에 대해서는 저는 양가적인 감정을 갖는데, 훌륭한 번역서와 남루한 번역서들이 어떻게 공존하는지 좀 의아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