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으로 사고 이후 계속 악화되고 있는 일본 후쿠시마의 원전 사태는 원자력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데, 우리도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지진 안전지대라고 낙관하기엔, '그린에너지'라고 안심하기엔 원자력은 너무 위험하며 '값비싼' 에너지이다. 원자력을 이용할 수는 있지만 폐기할 수는 없다는 점에서 그렇다. 생각거리를 던져주는 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1. 03. 19) ‘끌 수 없는 불’ 원전 신화는 무너졌다 

“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빨간불을 끄는 기술은 아직도 없습니다. 그리고 고준위폐기물을 제대로 처리하는 방법은 여전히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못합니다.”

일본의 반핵 시민과학자 다카기 진자부로가 1992년 도쿄 특별강연에서 한 예언이 10년 뒤 현실이 됐다. 대지진 뒤에 덮친 후쿠시마 원전 비극의 핵이 바로 끄고 싶어도 마음대로 끌 수 없는 불이다.

“결국은 수명이 아주 긴 방사능이 남게 됩니다.…100만년이 지나도 아직 10명의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남아 있다면 얼마나 끔찍합니까. 그렇게 오랫동안 꺼지지 않는 불, 끌 수 없는 불, 독성이 남아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인간이 만든 불이라면 끄고 싶을 때 끌 수 있어야죠. 원자력의 불은 켜고 싶을 때 켤 수 있지만 끄고 싶을 때 끌 수 없다는 점에서 빵점짜리 기술입니다.”

원자력 이용 문제의 사회적 공론화를 염원하는 7명의 젊은 생태사회연구자들이 오랜 시간 토론을 거쳐 내놓은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은 다카기의 경고가 일본만이 아니라 한국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음을 조근조근 차분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보여준다. 중동 급변사태로 더욱 가팔라졌지만, 석유가격의 고공행진과 온난화 가스 저감 압박 속에 등장한 ‘원자력 르네상스’에 대한 기대 때문인지, 아니면 상상을 절하는 일본 현실에 압도당한 탓인지 사람들은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보면서도 원자력 드라이브정책을 한 축으로 한, 일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한국 정부의 ‘저탄소 녹색성장’ 국가발전전략이 불러들일지도 모를 위험성엔 여전히 둔감한 듯하다. 사람들은 일본과 한국 원전의 발전방식과 세대 차이, 도쿄전력과 일본 당국의 어수룩해뵈는 대응조처 등을 거론하며 한국은 다를 것이라 믿고 싶어할지 모르지만 다카기의 시선으로 보면 별로 다를 게 없다. 스리마일이 그랬고 체르노빌도 그랬지만 예상치 못한 원전사태 때 제때 불을 끌 수 없는 일본의 한계는 한국이라고 다르지 않다.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은 묻는다. 원자력은 안전한가? 안전하다던 일본 후쿠시마 원전들의 어이없는 실상을 통해 그렇지 않다는 게 한층 더 명백해졌지만, 그전부터 원전 인근지역의 유아 사망률, 선천성 기형아, 암 발생률 등의 통계수치들은 원자력이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걸 이미 보여주었다. 그리고 원전 보유국들에서 크고 작은 사고가 끊이지 않았고 한국도 고리1호기가 가동된 이후 2009년까지 원전 가동을 중지해야 할 정도의 사고가 423건이나 된다. 2007년에만 12회 가동 중지로 인한 손실액이 490억원에 달했다. 그럼에도 2007년 6월로 정상수명 30년을 넘긴 고리1호기는 ‘수명 연장’ 판정을 받고 계속 가동중이다. 후쿠시마 사고 원전들이 바로 그런 낡은 원전들이다.

책에 따르면, 수명을 다한 원전들이 ‘운전 계속’ 판정을 받고 길게는 수십년을 더 버티는 것은 경제성이 있다는 증표가 아니라 그 반대다. 전력의 원전 의존율이 80%에 가까운 프랑스를 빼고, 1980년대 후반 이후 구미 국가들이 새로운 원전 건설을 중단한 채 낡은 원전들 수명 연장을 거듭하는 이유는 주로 그 지역 원전들이 사기업들이기 때문이고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이 책의 또다른 질문, 원자력은 경제적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수명 연장 외엔 뾰족한 방법도 없다. 원전은 가동을 멈추는 걸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철거하거나 그대로 밀폐 또는 굳혀서 영구보존해야 하는데 엄청난 비용이 든다. 그냥 내버려두면 치명적인 방사성물질들이 흘러나오기 때문에 계속 돈을 들여 관리해야 한다.

해체할 경우 잠시 곁에 있기만 해도 목숨을 잃게 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을 비롯한 수만톤의 방사선 오염물질들을 어디에 어떻게 처분할 것인가. 독성이 길게는 수백만년 이상 지속되는 방사성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리하는 기술을 지닌 나라는 아직 한 곳도 없다. 사기업이 이런 뒷감당을 하다간 망한다. 그러니 차라리 계속 가동하면서 눈치 보는 게 낫다. 다카기가 얘기한 끌 수 없는 불은 이런 맥락까지 고려해서 이해해야 한다. 그런 원전이 안전할까? 그리고 돈벌이가 되면 수명 연장이 아니라 새 원전을 건설할 것이다. 그게 사기업의 본성이다. 원전의 경제성은 발전단계만이 아니라 우라늄 채굴과 정련, 부지와 방사성폐기물 처리장 건설 단계도 따지고 관리비용, 천문학적인 원료 재처리 비용 등도 감안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이산화탄소도 다량 방출된다.

그럼에도 2022년까지 12기의 원전을 더 건설해서 2030년께 원전 의존율을 59%까지 끌어올리겠다(현재 35.5%)는 한국(20기 가동으로 원전설비 세계 6위)이나 55기를 가동하면서 11기를 건설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는 일본, 59기 가동에 1기를 추가 건설중인 세계 2위의 원자력대국 프랑스, 향후 20년간 45기 이상의 원전을 더 건설하겠다는 러시아, 11기 가동에 26기를 추가 건설할 중국, 17기 가동에 10기를 추가 건설할 인도, 104기 가동에 11기 추가 건설을 계획중인 세계 최대 원자력대국 미국 등에선 대체로 국가가 직접 개입하거나 거대 독점업체들이 그 사업을 주도한다. 거기엔 경제외적 요소들이 강하게 개입한다. 이산화탄소 감축의무를 손쉽게 달성하려는 정치적 계산, 표준화된 기성체제와 유착하려는 권력과 관료와 기업 등 주류 이익집단들의 경로의존성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료에 따르면, 전세계 우라늄 확인매장량은 앞으로 43~79년 정도(2007년 기준) 쓸 수 있는 양밖에 없다.

이런 정도만 들춰봐도 또다른 두 가지 질문, 원자력은 청정 에너지인가, 원자력은 지속 가능한가에 대한 답도 자명해지지 않을까. 그러니까 원자력은 안전하고 깨끗하고 경제적이고 지속가능하다 따위의 언설들은 ‘신화’에 지나지 않으며, 지금 한국 사회를 풍미하고 있는 원자력 르네상스는 실은 아주 위험한 ‘원자력 신화의 르네상스’에 지나지 않는다고 이 책은 주장한다.

1955년 한-미 원자력협정 체결 이래 지속돼온 공급위주의 원전정책과 이를 뒷받침한 값싼 심야전기, 그와 연계된 비효율적인 양수발전 제도, 그것이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다시 공급위주 에너지정책을 심화시키는 악순환구조. 그것은 석유나 원자력 의존도를 계속 높이고 에너지 낭비를 심화시키면서, 절약과 효율, 새로운 재생에너지 산업 육성 등의 대안 찾기를 외면하게 만들었다. 이런 정체된 구조 속에서 기업과 관료 등 공급자 쪽은 이득을 챙기고 비용은 결국 국민이 댄다. 이런 공급자 담합구조는 이번 도쿄전력 대응에서도 일부 드러났듯 무사안일과 무기력, 안전불감증의 원천이기도 하다.

간 나오토 총리가 말했듯이 사고 한 번으로 동일본 전체를 괴멸시킬 수도 있는 ‘끌 수 없는 불’. 그런 위험한 불을 도처에 켜 놓고 살기엔 인간의 기술은 짧고 한반도는 너무 좁지 않을까. 책은 그렇다고 당장 원자력을 포기하자고 주장하는 건 아니다. 그게 과연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어느 정도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 대안은 없는지 등을 소수 공급자들간 담합이 아닌 소비자 중심의 사회적 공론화 작업을 통해 찾아보자고 제안한다.(한승동 선임기자)    

“제임스 러블록이 틀렸다” 

지구가 온난화(warming) 정도가 아니라 가열(heating) 상태의 급박한 열탕화 위기에 직면한 지금 지구를 구할 길은 원자력뿐이다. 이런 주장을 한 이는 뜻밖에도 지구를 살아 있는 우주 생명체로 보는 ‘가이아’ 이론을 제시한 영국 과학자요 환경운동가 제임스 러블록이다. 본래 원자력 이용에 호의적이었던 러블록은 2007년에 낸 <가이아의 복수>(세종, 2008)에서 그런 주장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환경운동 분야에서 지명도가 높은 러블록의 이런 주장은 유럽 쪽에서 상당한 논란을 불러일으킨 모양이고 국내에서도 비슷한 반향이 일었다.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 필자들은 러블록의 주장이 야기할 파장을 의식했음인지, 책 제2장을 러블록 비판에 할애했다.

러블록이 생각하는 완벽한 대안은 핵융합 에너지다. 별의 에너지이기도 한 핵융합 에너지는 방사능과 폐기물 처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거의 무한하고 무해한 에너지다. 그런데 이것을 실용화하려면 적어도 10~20년은 걸린다. 많은 사람들은 핵융합 실용화에 이 정도 시간밖에 들지 않을 것이라는 러블록의 생각을 비현실적 낙관주의로 보고 있지만, 그에겐 그 정도의 시간마저 기다릴 여유가 없다. 그만큼 지구 열탕화가 위기수준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미 실용화한 핵분열 에너지, 즉 현존 원전에 기대자고 주장한다. 원자력이 가장 안전하고 폐기물 처리도 다른 화석연료들에 비해 손쉽다고 본다. 석탄에 비해 40배나 안전하며 수력보다도 안전하단다. 제3세계 사망자의 대부분은 원자력이 아니라 과로, 영양부족, 전염병으로 죽어가고 있는 만큼 방사능으로 인한 암 발생과 핵전쟁에 대한 서구인의 두려움은 허상이라고 러블록은 주장한다. 미국이 수소폭탄 실험을 한 비키니섬이나 옛 소련시절의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는 과장돼 있으며, 특히 원자력은 가이아에 아무런 피해도 주지 않는 에너지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진상형 경북대 교수는 원전을 보유한 31개국 대부분은 잘사는 나라인 데 비해 석탄과 수력을 주로 쓰는 나라들은 빈국들이 많아 안전도나 처리비용, 온난화 작용 등을 평면비교하는 건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비교하려면 31개국에 한정해서 양자를 비교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에너지원별 효과로 따지면, 예컨대 동일전력 생산을 전제로 100명이 일하면서 5명이 사망하는 석탄발전소와 10명이 일하면서 4명이 사망하는 원자력발전소 가운데 더 위험한 것은 원자력 쪽이 아니냐고도 했다. 무엇보다 원자력이 안전하지도 깨끗하지도 경제적이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고 보는 <기후변화의 유혹, 원자력>의 주장에 동의한다면 러블록의 원자력 대안론에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기술적 낙관론에 토대를 둔 러블록의 지나친 과학주의, 공학주의엔 사회적 관점이 부재하며, 인간(인간을 지구라는 생명체를 파괴하는 암세포로 보기도 한다)보다 가이아를 중심에 놓는 그의 시선은 과학과 종교 사이를 모호하게 오가는 줄타기라는 비판도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11. 03.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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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1-03-19 20:46   좋아요 0 | URL
가이아 이론의 과학자가 원자력을 무한하고 무해한 에너지로 봤다는 게 참 충격적이네요. 어제 토론프로그램에서 방청자가 원자력의 위험성에 대한 질문을 하자 그럼 대안이 뭐냐는 투로 원자력의 정당성을 얼버무리는 여당 의원에 화가 났습니다. 원할 때 끌 수 없고 제어할 수 없는 에너지원을 인간이 통제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상황도 너무 서글프네요.

로쟈 2011-03-21 08:45   좋아요 0 | URL
'원자력 마피아'란 말이 헛소리가 아닌 듯합니다...

雨香 2011-03-21 10:05   좋아요 0 | URL
"원전은 가동을 멈추는 걸로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인데도 원전을 계속 짓겠다는 사고방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원자력발전에 대해 고민하게 하는 책이군요. 감사합니다.

mirror 2011-03-22 08:33   좋아요 0 | URL
원자력 마피아의 대부는 미테랑과 죠스팽일 것 같네요. 프랑스 좌파들은 정권 잡고서도 원자력 발전소 미친듯이 지었으니 말입니다. 더구나 미테랑은 핵폭탄 실험까지 아주 열심히 했죠. ^^ 그리고 미국은 원자력 마피아가 힘을 못 쓰는 지역인것 같네요. 근 30년간 안 지었으니 말입니다. 그러고 보면 오바마가 원자력 마피아의 조직원인 것 같구요. 30년간이나 안 했던 것을 새로 시작하려 하니 말입니다. ㅎㅎ 중국과 인도는 새롭게 마피아에 장악된 지역이고요. 지금도 전기를 사용하지 못하는 전국민의 절반에게 원자력이 아니면 전기를 공급할 수 없다고 한, 인도의 관리 녀석은 진정 마피아의 끄나풀임에 틀림없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