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윤리위원회의 소식지 <책&>(392호)에 실은 '주제별 도서소개'를 옮겨놓는다. 이번달에 고른 주제는 '공정한 사회'이고, 김승식의 <공정한 사회란?>(고래실, 2010)과 김진철의 <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밀리언하우스, 2010)을 관련도서로 읽었다.   

책&(11년 3월호) 공정한 사회란? 

‘친서민’과 함께 ‘공정사회’는 집권 후반기에 들어선 현 정부의 양대 국정지표이다. 덕분에 ‘공정사회’란 말이 5공화국 시절 ‘정의사회’만큼이나 많이 회자되고 있다. 더불어 어떤 사회가 공정한 사회인가란 의견도 분분하다. 김승식의 <공정한 사회란?>에 눈길이 간 이유이다. 증권 관련 업종에 오랫동안 종사해온 저자가 ‘공정한 사회’의 그림을 그리는 데 발 벗고 나선 것은 이 시대의 자본주의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공정한 사회의 개념을 정의할 수 없다는 판단에서이다. 그래서 붙인 부제가 ‘역사적 고찰로 살펴본 공정사회의 이념논쟁’이며 책의 대부분은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역사에 할애돼 있다. 그러한 역사적 고찰에 기대어 저자는 자유와 평등이라는 가치가 ‘완전한 보완관계’를 이루는 사회를 공정한 사회의 모델로 삼는다.  

무엇이 공정한 사회인가? 저자는 두 가지가 핵심이라고 본다. 먼저 공정한 기회균등이 보장되는 사회, 즉 “개천에서 용이 나는 사회”이고, 다음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재활의 기회가 주어지는 사회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의 70%가 ‘우리 사회는 불공정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만큼 공정한 사회라는 국정지표는 방향을 바로 잡은 것이긴 하다. 문제는 그것을 실천할 수 있는 의지일 것이다. 이때 중요한 지표가 되는 것은 계층 간 격차인데, 한마디로 요약하면 공정사회는 “몇 %의 정부지출과 사회복지지출 국가로 갈 것인지의 문제”이다.  

저자는 이명박 정부의 공정사회 개념이 기회균등은 강조하지만 동시에 개인의 선택의 책임을 강조함으로써 자유지상주의 공정의 개념에 가깝다고 본다. 물론 그것만으론 충분하지 않다. 서구의 정치경제사에 대한 개관은 “공정한 사회란 결국 한 사회가 추구하는 이념의 가치가 자유 우선에서 평등으로 이동하는 과정”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평등을 구현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의 강력한 개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저자가 보기에 우리의 소득불균등을 개선하기 위한 정부의 시장개입 정도는 매우 열악한 수준이다. 흔히 정부가 시장에 너무 많이 개입한다고 불만을 터뜨리는 경우도 있지만 실상은 정반대인 것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살펴보면, 2007년 기준 한국의 GDP대비 사회지출규모는 7.5% 수준으로사회복지를 지향하는 국가군과는 비교할 것도 없고, 자유시장을 지향하는 OECD 국가군 평균인 19%에도 훨씬 못 미친다. 결국 “우리 사회는 세계최고 수준의 자유지상주의(신자유주의) 시장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셈이다.” 따라서, 공정한 사회가 공염불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계층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한 보다 실질적인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는 게 저자의 결론이다.  

 

한편 불공정 사회를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정부만의 몫은 아닐 것이다. 일간지 경제부 기자 김진철의 <대한민국 불공정 경제학>은 언론과 시민의 바람직한 역할이 무엇인지 일러준다. 일단 경제를 알아야 한다는 것. “제대로 된 경제기사, 정의롭고 용기 있는 경제기자”도 절실히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시민 독자들이 헛된 망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어떤 망상인가. 현 정부 초기에 고환율 정책이 별다른 저항 없이 이어졌던 것은 원화 약세로 수출이 늘어나면 경제가 성장하고 ‘나’에게까지 이익이 돌아올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고, 삼성의 불법 경영권 승계와 비자금 조성에도 불구하고 삼성을 편드는 이들이 있는 건 삼성의 이익과 자신의 이익을 구분하지 못하는 착각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이런 헛된 믿음과 착각을 주입하는 것이 주로 언론이라는 데 있다. 힘 있는 자들을 견제하고 감시해야 한다는 언론 본연의 역할은 내다버린 지 오래고, “광고주의 돈, 정부의 회유, 신문사주의 이익에 기자들이 복무”하고 있는 것이 저자가 비판하는 우리의 언론 현실이다. 이권과 결탁한 현혹적인 경제기사들을 통해서 전문적인 경제지식이 부족한 일반 독자들의 인식을 과장하거나 왜곡하는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때문에 경제기사를 읽되 주의해서 읽지 않으면 읽지 않은 것보다 못하다고 경제부 기자 스스로가 밝히고 있으니 아이러니컬한 일이다.  

방책은 없는가? 애초에 신문사도 기업이기에 이윤을 추구한다. 미디어라는 사회적 역할 수행과 함께 기업으로서 이윤도 창출해내야 하는 것이 언론의 딜레마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언론으로서 자기 역할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충실히 하는 것이 그 성공을 가능하게 하는 구조가 조성되는 일이겠다. 그리고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출입처 중심주의나, 기자단의 배타주의, 보도자료 기생주의 등의 구태를 벗고 전문성을 갖춤과 함께 기자로서 본연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거기에 ‘까칠한 의심’의 태도로 경제기사를 대하는 독자의 자세를 보탤 수 있다. 이 경우엔 독자가 아닌 기자의 입장에서 주체적이면서 비판적인 기사 읽기가 필요하다. 그래야 속지 않을 수 있으며, 힘 있는 자들에게 속지 않는 것이 또한 공정한 사회로 가는 중요한 걸음이다.  

11. 03. 13. 

P.S. <공정한 사회란?>은 순전히 제목 때문에 읽게 된 책인데, 세계최고 수준의 자유지상주의 시장경제를 실천하고 있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란 지적이 흥미로웠다. 대신에 "2000년의 인류역사에서 만인평등의 의한 자유가 부여된 역사는 채 100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이다."(99쪽) 같은 대목은 뭔가 아마추어리즘적이란 인상을 갖게 한다. '2000년의 인류역사'란 표현이 두어 번 나오는데, 저자는 '인류'를 어떻게 정의하는 것인지 궁금하다. 게다가 "20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정치 사상가였던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라고 하면 좀 과도한 '어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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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11-03-13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무리봐도 저 공정은 공허하게 정의가 실종된...의 약자가 아닐까요.

로쟈 2011-03-16 08:35   좋아요 0 | URL
그럴 듯하네요.^^;

비로그인 2011-03-15 1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公正이 公定으로 읽히는 건 낱말의 의미는 사용에 있다는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지배권력의 담론으로 쓰이는 이상 空井이기 때문이겠죠...

로쟈 2011-03-16 08:35   좋아요 0 | URL
우물이란 비유도 아깝습니다.^^;

꼬마요정 2011-03-1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위 사회지배층의 입장에서 공정사회겠죠.. 돈과 권력의 경중에 따라 대접받는..

로쟈 2011-03-16 08:36   좋아요 0 | URL
한때 정의란 말이 그랬듯이, 공정이란 말도 의미가 변색될 거 같아요...

雨香 2011-03-17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지 레이코프의 지적대로 우리나라의 경우 특히 경제부문에서의 공정은 '신자유주의'가 그 프레임을 차지한 것 같습니다. 경제전문신문이나 경제주간지가 모두 신자유주의 전도사들이니까요. 그나마 이코노미 인사이트가 출간되긴 했습니다만 처음 몇 달 이후 이제는 힘이 쭈욱 빠진 느낌입니다.

로쟈 2011-03-18 11:40   좋아요 0 | URL
경제에 관해서는 '인사이트'를 원하지 않는가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