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에서는 주로 '서평블로거'로 지칭되지만, 요즘 들어서 점점 블로거 노릇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이유야 물론 시간 부족에, 여유 부족이다. 쏟아지는 책에 견주어 책을 읽을 시간과 순수한 블로깅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드는 반면에, 이런저런 상념과 블로깅 아이템은 줄지 않거나 심지어 늘기까지 한다. 그 사이가 벌어지고 있기에 어려운 것이고, 엄살을 조금 보태면 '죽을 맛'이다. 게다가 언제까지 '블로거 노릇'을 할 거냐는 내면의 투정도 가끔은 '경고'로 들린다.   

예전 같으면 오늘 같은 주말에 약간은 여유를 내서 좀 '재미있는' 글도 올려놓고 하는 것이 기분전환 거리였지만 지금은 손도 굳었을 뿐더러 의욕도 예전 같지 않다. 어제 이번주 <시사IN> 출판면의 '아까운 걸작' 란에서 프랑스 드 왈의 <보노보>(새물결, 2003)에 관한 얘기를 읽다가 '품절된 책'들에 대한 페이퍼를 써도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에너지'가 딸린다. 마치 사진 속의 보노보의 표정을 거울로 보는 듯하다.   

새물결의 조형준 주간은 이 책을 두고 "왠지 대단한 물건이 될 것이라는 나의 직감이 여지없이 빗나간 몇 권 되지 않는 책"이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검색해보니 이미 품절이다. 다시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첫 운명을 다한 책인 것. 돌이켜보니 나도 출간 당시에 서점에서 들춰본 기억이 있는데, 너무 고가의 사진집이어서 엄두를 못낸 기억이 난다(당시에 35,000원이었으면 지금 체감으론 50,000원 이상이다). 그래도 예전보단 지금 자금 사정이 조금 나은 편이니 중고로라도 구해둘까 생각중이다.  

<보노보>란 책이 꼬투리가 돼 떠올린 책은 나폴레옹 샤농의 <야노마모>(파스칼북스, 2003)이다. 아마존 오지의 아노마모족에 대한 책이다. 이 또한 관심도서였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바로 구입하진 않았고 그래서 주저하는 사이에 품절된 책이다. 아예 출판사가 문을 닫은 듯하다. 다행이 이번에 찾으니 알라딘 중고샵에 책이 나와 있길래 바로 주문을 넣었다.  

그렇게 중고샵에서라도 구하려는 책의 하나는 앨프리드 크로스비의 <생태제국주의>(지식의풍경, 2000)다. 저자의 책은 이후에도 여러 권 나왔는데, 하필 이 책만 품절 상태다(출판사의 사정이 어려운 것 같다는 인상은 든다). 아무튼 그때 그때 챙겨놓지 않으면 이렇듯 나중에 아쉬운 경우가 종종 있다. 또 어떤 책이 있을까?

    

현재 가장 많은 뉴스를 쏟아내고 있는 지역이라면 중동일 텐데, 그런 시사적인 관심에서 어제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은 아자르 나피시의 <테헤란에서 롤리타를  읽다>(한숲출판사, 2003)이다. 소장도서이긴 하지만 어디에 둔 줄 모르고 있으니 절반은 실종도서이고, 다시 구하려고 해도 이미 절판된 책이다(중고샵에는 나와 있다). 이란의 격동기에 테헤란에서 처음엔 대학에서, 나중엔 은밀하게 영미문학을 가르쳤던 저자의 체험담을 담고 있다.  

중동과 이슬람 지역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관심의 연장선에서 오늘 당일 배송으로 주문해 받은 책은 제럴딘 브룩스의 <이슬람 여성의 숨겨진 욕망>(뜨인돌, 2010)과 하이다 모기시의 <이슬람과 페미니즘>(프로네시스, 2009)이다. 물론 이 두 권은 따끈따끈하거나 아직 온기가 남아 있는 책들이다. 하지만 5년 뒤를 장담할 수 있을까?  

말이 나온 김에 한마디 보태자면, 이슬람, 조금 좁혀서는 이란의 현대사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마르잔 사트라피의 <페르세폴리스>(새만화책, 2009[2005])부터 읽어보는 것도 좋겠다. 하기야 이미 널리 알려진 만화이고 많이 읽힌 책이니 나 혼자 '뒷북'인지도 모르겠다. 개인적으론 만화책을 선호하지 않는 탓에 안 읽고 있다가 이번 이슬람 민주화운동과 맞물려 읽게 됐는데, 기대 이상이어서 아예 저자의 <바느질 수다>(휴머니스트, 2011)까지 손에 넣었다...   

음, 써놓고 보니 '컬렉터의 일기' 같은 느낌도 주기에 '로쟈의 컬렉션'으로 분류해놓는다. 하긴 오늘 오전엔 지난 달에 모스크바에서 부친 책이 도착하기도 했다(절반 가량인 60권은 들고 들어왔었다). 보름이 걸린 셈인데, 5킬로짜리 여섯 꾸러미에 나눠 포장된 책 49권이다(대략 30만원 가량의 발송비용이 들었다). 꽂아놓을 곳이 없어서 방바닥에 쌓아두긴 했지만 마음은 그런대로 흡족하다. 이 책들에 대한 얘기도 늘어놓으면 좋겠지만, 오늘은 힘에 부친다. 볕이 더 좋은 날을 기다려봐야겠다... 

11. 0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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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로쟈님의 시간을 늘리는 방법...
    from 빵가게 재습격의 책꽂이 2011-03-05 23:16 
    요 몇 년간 매일진행되었던 행사(?)를 꼽으면 로쟈님 서재에 들리는 것이었다.내 서재엔 들어오지 않아도 로쟈님 서재는 하루에 한 번 꼭 들려본다. 나만 유별난 건 아닐거다. 알라딘 마을엔 저공비행에 '중독된 사람'들이 꽤 많을테니. 처음 블로그를 시작했던 때를 되돌려보면 로쟈님이 유난히 바빠진 게 사실이다. 연재하는 글도 늘었다. 강연 소식도 늘었고 때때로 등장하는 책이나 번역물도 자주 눈에띈다. 좋은 일인가? 좋은 일이다. 하지만 바쁜 일정때문에 생기
 
 
달담이와Anne 2011-03-05 22:45   좋아요 0 | URL
로쟈 선생님의 애환이 느껴져요. 음, 왠지 저도 함께 씁쓸하네요!
외딴섬에서 살아가는 저에게 선생님 블로그는 오아시스인데요.헤
빠이팅하십시오!아자!

로쟈 2011-03-06 10:08   좋아요 0 | URL
누구나 모든 일에서 겪는 피로와 푸념이지요.^^;

비로그인 2011-03-05 23:15   좋아요 0 | URL
음, 아, 저, 그.... 요즘 말할 때마다 이러고 있습니다 제가 ㅋㅋ
'보노보' 사진을 보니 정말 심난해지는군요.
'죽을 맛'이라시니 더 심난해지구요.
저야 저 만화의 여성처럼 꽥 소리라도 지르면 어느 정도 풀릴 일이지만
로쟈님의 상황은 그렇지 못한 듯싶어 또 심난해지네요... 에휴~

로쟈 2011-03-06 10:08   좋아요 0 | URL
그게, 음, 저, 엉덩이의 문제이기도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