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의 '로쟈의 번역서 읽기'를 옮겨놓는다. 어제 아침 일찍 보낸 글인데, 마땅한 글감을 찾다가 요즘 강의차 다시 읽고 있는 <안나 카레니나>에 대해 몇 마디 적었다. 서두에서 인용한 백석의 번역시는 <근대서지>(제2호, 2010)에 자료로 실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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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11. 01. 15) 번역본 4종이 선사한 즐거움이란
한겨울은 러시아문학의 고전을 읽기에 아주 좋은 계절이다. 눈이 소복이 쌓이는 시간에 두툼한 책장을 넘기며 이내 밤을 새우고, 어스름하게 비치는 햇살과 함께 아침을 맞는 일은 이런 계절에 누릴 수 있는 호사다. 그런 밤에는 백석의 시 ‘가난한 내가/ 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 눈이 푹푹 나린다’(<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를 읊조려 보고, 그런 아침에는 그의 푸시킨 번역시 구절을 음미해 봐도 좋겠다. ‘아침 날 눈 위를 미츠러지며/ 부산떠는 말이 달리는 데 맡기어/ 찾아가자, 사랑하는 벗아, 빈 벌판을/ 어제런 듯 풍성하던 그 수풀을,/ 그리고 정다운 나의 강가를.’(<겨울 아침>)
나타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가장 유명한 소설은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이지만, 세계문학전집 출간 열풍 속에서도 아직 ‘무풍지대’로 남아 있어서 내가 펼쳐든 책은 <안나 카레니나>다. 강의시간에 주로 범우사판을 사용했는데, 요 몇 년간 3종의 새 번역본이 더 출간돼 읽을 만한 여건은 충분하다. 자세히 읽고 싶은 대목이 나오면 네 종의 번역본을 비교해서 살펴볼 수도 있다. 유명한 첫 문장만 하더라도 번역은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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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민음사) “행복한 가정은 모두 고만고만하지만 무릇 불행한 가정은 나름나름으로 불행하다.”(문학동네) “모든 행복한 가정은 닮았고,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대로 불행하다.”(작가정신) 가정 문제와는 사정이 달라서 번역이 제각각이라고 하여 독자가 불행해지는 건 아니다. 오히려 모두가 엇비슷하다면 번역본의 존재 의의가 상실될 것이다.(베낀 번역으로 오해를 살 수도 있다)
알다시피 <안나 카레니나>의 이야기는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다 들통이 난 오빠 오블론스키 집안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동생 안나가 모스크바로 기차를 타고 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그 전에 소설은 또다른 주인공 레빈을 등장시켜 그가 어떤 인물인가를 미리 알려준다. 키티에게 청혼하러 온 이 노총각 시골 지주가 먼저 만나는 이는 친구이면서 키티의 형부인 오블론스키다. 사무실로 찾아와 저녁식사 약속을 잡고 돌아간 부유한 지주 레빈의 처지를 부러워하며 오블론스키는 부하직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게다가 얼마나 팔팔하냐 말이야!”(범우사) 다른 번역자들은 레빈을 어떻게 봤을까? “게다가 얼마나 생기가 넘치나!”(민음사) “게다가 또 얼마나 발랄하냔 말야!”(문학동네) “건강은 또 어떻고.”(작가정신) 해서 우리가 그려보게 되는 레빈은 팔팔하고 생기가 넘치는데다가 발랄하기까지 한 인물이다.
하지만 키티의 어머니 공작부인은 그런 레빈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더 젊고 부유하며 잘생긴데다가 시종무관으로서 앞날도 창창해 보이는 브론스키가 훨씬 더 나은 사윗감이라고 여긴다. 두 사람을 비교한다는 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자주 집에 드나들며 브론스키가 한창 키티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는 즈음에 나타난 레빈이 달갑지 않다. 딸이 레빈에 대한 ‘성실성’ 때문에 일을 그르칠까 걱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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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빈에게 한때는 호감을 품었던 것 같은 딸이 필요 이상의 성실함으로 인해 브론스키를 거절하지나 않을까.”(문학동네) 이 대목의 ‘성실함’을 다른 번역본들이 ‘브론스키의 성실함’이라고 본 것은 착오이다. 성실은 ‘가정생활’을 모르는 브론스키와는 거리가 먼 덕목이다. 그 브론스키에게 마음이 끌려 키티는 레빈의 청혼을 거절한다. 하지만 브론스키는 어머니를 마중하러 간 기차역에서 곧 안나와 운명적인 조우를 하게 될 것이다.
11. 0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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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대학 강의실에서 읽는 <안나 카레니나>'가 궁금하신 분이라면 조주관 교수의 <러시아 문학의 하이퍼텍스트>(평민사, 2005), 석영중 교수의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예담, 2009), 그리고 오종우 교수의 <백야에서 삶을 찾다>(예술행동, 2011)를 참고할 수 있다. <러시아문학의 하이퍼텍스트>는 러시아문학 '작품사전' 성격의 책이고, <톨스토이, 도덕에 미치다>는 <안나 카레니나> 이후 후기 톨스토이에 대한 이해의 조감도를 보여준는 책이다. <백야에서 삶을 찾다>는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안나 카레니나>, <닥터 지바고> 세 작품에 대한 '자세히 읽기'를 시도한다. 그 '자세히 읽기'가 '편안한 읽기'이면서 '친철한 읽기'이기도 하다는 게 미덕이다. "매시간 눈물이 핑 돌도록 감동받았던 최고의 강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살의 모토를 배웠다."는 학생들의 강의평이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