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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Q84 2 - 7月-9月 ㅣ 1Q84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9월
평점 :
황금같은 토요일을 1Q84로 알차게 채웠다. 처음만나는 하루키. 과연 하루키. 말도 안되는 소리를 말이 되게 만들기 위해서 그는 축적된 역량을 고스란히 발휘한다. 개인적으로는 오래간만에 흥미진진한 소설의 세계에 푹 빠져있을 수 있어서 참 즐거웠더랬다. 곳곳에 의미심장한 대사와 해독이 필요한 암호따위가 가득해 꽤 오랫동안 여운이 남을 것 같다.
"이야기 속에 필연성이 없는 소도구를 등장시키지 말라는 거지. 만일 거기에 권총이 등장했다면 그건 이야기의 어딘가에서 발사될 필요가 있어. 체호프는 쓸데없는 장식을 최대한 걷어낸 소설 쓰기를 좋아했어." (p.31)
"아오마메는 이제 <신포니에타>를 구석구석까지 모두 기억했다. 몸을 극한 가까이 늘이면서 그 음악을 듣고 있으면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안해졌다. 거기에서 그녀는 고문하는 자이며 고문당하는 자였다. 강제하는 자이고 강제당하는 자였다. 그처럼 내부로 향한 자기 완결성이 곧 그녀가 바라는 것이고, 그것은 그녀를 위무해주었다.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는 그러기 위한 배경음악으로서 매우 유효했다." (p.70)
"내가 살고 있는 곳은 이야기의 세계가 아니야. 여긴 터진 틈과 부정합성과 안티클라이맥스로 가득한 현실세계야"(p.92-93)
"죽는 건 두렵지 않아, 아오마메는 다시 한번 확인한다. 두려운 것은 현실이 나를 따돌이는 것이다. 현실이 나를 두고 가버리는 것이다" (p.95)
"감정을 억눌러야 한다. 아오마메는 자신을 타일렀다. 이제 와서 아유미의 삼촌이나 오빠를 징벌한다 한들, 그들은 자신들이 무엇 때문에 벌을 받는지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와서 어떤 짓을 한들 아유미는 돌아오지 않는다. 가엾은 일이지만 그건 늦건 빠르건 언젠가 일어날 일이었다. 아유미는 치명적인 소용돌이의 중심을 향해 완만한, 하지만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접근을 계속하고 있었다. 내가 마음먹고 좀더 따스하게 받아주었다 해도 거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이제 우는 건 그만두자. 자세를 재정비해야 한다. 나 자신보다 룰을 우선한다. 그것이 중요하다. 다마루가 말했듯이"(p.123-124)
"물론 덴고의 기억이 남는다. 그의 손의 감촉이 남는다. 마음의 거센 떨림이 남는다. 그에게 안기고 싶다는 갈망이 남는다. 가령 다른 사람이 된다 해도, 덴고에 대한 그리움이 내게서 뜯겨나가는 일은 없다. 그것이 나와 아유미의 가장 큰 차이다. 아오마메는 생각했다. 나라는 존재의 핵심에 있는 것은 無가 아니다. 황폐하고 메마른 사막도 아니다. 나라는 존재의 중심에 있는 것은 사랑이다. 나는 변함없이 덴고라는 열 살 소년을 그리워한다. 그의 강함과 총명함과 다정함을 그리워한다. 그는 이곳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육체는 멸하지 않고, 서로 나누지 않은 약속은 깨지는 일이 없다"(p.133)
"하지만 대체 어느 누가 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덴고는 그렇게 생각한다). 온 세상의 신들이 한자리에 모여도, 핵무기를 폐기하지도 테러를 근절하지도 못하지 않을까. 아프리카의 가뭄을 끝내게 하지도, 존 레넌을 다시 살아나게 하지도 못할 것이고, 그러기는커녕 신들끼리 패가 갈려 격렬한 싸움이나 하게 되지 않을까. 그리고 세계는 좀더 혼란스러운 사태에 빠질지도 모른다. 그런 사태가 몰고 올 무력감을 생각한다면, 사람들을 잠시 미스터리어스한 물음표의 풀에 떠 있게 하는 것쯤은 그나마 죄가 가벼운 편은 아닐까.(p.147)
"아, 그렇군요. 당신은 아직 젊고 건강하니까 그런 건 잘 모르겠지요. 이를테면 이런 겁니다. 일정 나이를 넘으면 인생이란 무언가를 잃어가는 과정의 연속에 지나지 않아요. 당신의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이 빗살 빠지듯이 하나하나 당신 손에서 새어나갑니다. 그리고 그 대신 손에 들어오는 건 하잘것없는 모조품뿐이지요. 육체적인 능력, 희망이며 꿈이며 이상, 확신이며 의미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 그런 것이 하나 또 하나, 한사람 또 한사람, 당신에게서 떠나갑니다. 이별을 고하고 떠나기도 하고, 때로는 어느 날 예고 없이 사라지기도 합니다. 그리고 한번 그렇게 잃어버리면 당신은 다시는 그것들을 되찾을 수 없어요. 대신해 줄 것을 찾아내기도 여의치 않습니다. 이건 참으로 괴로운 일이지요. 때로는 몸이 끊어질 듯이 안타까운 일이에요. 가와나 씨, 당신은 이제 곧 서른이 됩니다. 이제부터 조금씩 인생이 그런 저물녘으로 들어서려고 해요. 그것이 예, 말하자면 나이를 먹는다는 겁니다. 무언가를 잃는다는 이 고통스러운 감각을 당신도 슬슬 느끼고 있을 텐데요. 그렇지 않습니까?"(p.160-161)
"잠시 뒤에 덴고는 눈을 감고 야스다 쿄코가 그녀 자신만의 상실된 장소에 갇혀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그곳에는 열차가 서지 않는다. 전화도 없다. 우체통도 없다. 한낮에 그곳에 있는 것은 절대적인 고독이고, 밤의 어둠과 함께 존재하는 것은 고양이들의 집요한 수색이다. 그런 나날이 한없이 반복된다."(p.199)
"조금 떨어진 곳에서 바라보니 인간이라기보다 쥐나 다람쥐류에 가까운 생물처럼 보였다. 그다지 청결하다고는 할 수 없디만 나름대로 만만치 않은 지혜를 갖춘 생물.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덴고의 아버지였다. 혹은 아버지의 잔해라고 해야 할까. 이 년의 세월이 그의 모에서 많은 것을 앗아가버렸다. 마치 세금 징수인이 가난한 집에서 가재도구를 인정사정없이 빼앗아가듯이. 덴고가 기억하는 아버지는 항상 빠릿빠릿하게 일하는 씩씩한 남자였다. 자기성찰이나 상상력과는 인연이 없었지만 나름의 윤리관이 있었고, 단순하지만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다. 인내심 강하고, 불평이나 우는소리를 입에 올리는 건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그저 빈 허물에 지나지 않았다. 따스함을 남김없이 빼앗겨버린 빈 집에 지나지 않았다"(p.204)
"덴고는 말했다. "나는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고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데 지쳤어요. 아무도 사랑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데도 지쳤습니다. 내게는 친구가 없어요. 단 한 사람도.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조차 사랑하지 못해요. 왜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가. 그건 타인을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이에요. 사람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그리고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그런 행위를 통해 나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을 아는 거예요. 내가 하는 말, 알아들어요? 누군가를 사랑하지도 못하면서 자신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는 없어요. 아니, 그게 아버지 탓이라는 게 아니에요. 생각해보면 아버지도 역시 그런 피해자 중 한 사람이었는지도 모르죠. 아버지도 아마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잘 몰랐을 거에요. 안 그래요?" (p.211)
설명을 안 해주면 그걸 모른다는 건, 말하자면 아무리 설명해줘도 모른다는 거야( 215 )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실증 가능한 진실 따위는 원하지 않아. 진실이란 대개의 경우, 자네가 말했듯이 강한 아픔이 따르는 것이야.그리고 대부분의 인간은 아픔이 따르는 진실 따윈 원치 않지.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건 자신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의미있게 느끼게 해주는 아름답고 기분 좋은 이야기야. 그러니 종교가 성립되는 거지."(p.276)
"정신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요." "어째서지?"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에요.""어째서 정신에 대해 딱히 생각할 필요가 없을까? 스스로의 정신에 대해 생각하는 건, 그것이 실효성이 있건 없건 인간의 삶 속에서 불가결한 일 아닌가""제게는 사랑이 있어요.""사랑이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건가?""그렇습니다.""자네가 말하는 그 사랑이란 누군가 특정한 개인을 대상으로 한 것인가?""그래요, 구체적인 한 남자를 향한 것이에요,""힘없고 왜소한 육체와, 이울어짐 없는 절대적인 사랑이라..., 아무래도 당신은 종교를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군.""필요로 하지 않을지도 모르죠.""왜냐하면 자네의 그런 모습 자체가 말하자면 종교 그 자체에기 때문이야."(p277-278)
어떤 의미에서도 나는 이제 더이상 이 세상에서 살아 있지 않는 게 좋아. 세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말살되어야 할 인간이야.(p.287) 이 세상에는 절대적인 선도 없고 절대적인 악도 없어. 선악이란 정지하고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항상 장소와 입장을 바꿔가는 것이지. 하나의 선이 다음 순간에 악으로 전환할지도 모르는 거야. 그 반대의 경우도 있지. 도스토옙스키가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에서 묘사한 것도 그러한 세계의 양상이야. 중요한 것은 이리저리 움직이는 선과 악에 대해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지. 어느 한쪽으로 지나치게 기울면 현실적인 모럴을 유지하기가 어렵게 돼. 그래, 균형 그 자체가 선인 게야. 내가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죽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하는 말이네. ( p.289-290 )
"마음에서 한 걸음도 밖으로 나오지 않은 일 따위, 이 세계에는 존재하지 않아." (295)
너의 사랑이 없다면 이건 그저 싸구려 연극에 지나지 않아. Without your love, it's a honky-tonk parade, - it's only a paper moon. 그래, 1984년도 1Q84년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구성요소를 갖고 있어. 자네가 그 세계를 믿지 않느다면, 또한 그곳에 사랑이 없다면, 모든 건 가까에 지나지 않아. 어느 세계에 있건, 어떠한 세계에 있건, 가설과 사실을 가르는 선은 대게의 경우 눈에는 보이지 않아. 그 선은 마음의 눈으로 보는 수밖에 없어" (323)
아오마메
덴고
노부인
리틀피플
다마루 - 노부인 호위무사.
공기 번데기
후카에리
고마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