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인셉션>도 보지 못한 상황이지만 지난주에 개봉한 다큐영화 한 편에 눈길이 간다. 칼럼을 읽고서야 영화에 대해서, 그리고 '엘시스테마'란 베네수엘라의 음악교육 프로젝트에 대해서 알게 됐다. 창립자는 음악가이자 경제학자 출신 활동가 호세 안토니오 아브라우 박사라 한다. 방학이 끝나가는 아이들이 한번쯤 보면 좋을 듯싶다. 물론 어른들은 보는 것만으론 부족하고 뭔가 느껴야겠고...   

경향신문(10. 08. 16) 삶을 구원하는 예술의 힘   

모골이 송연해지는 영화, 그러면 곧 납량특선 공포영화를 떠올리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 비참한 현실을 전복시킨 실화 다큐 <기적의 오케스트라-엘 시스테마>를 보면 모골이 송연해진다

베네수엘라 빈민촌 아이들을 30여년에 걸친 음악교육을 통해 오케스트라 주자로 키워내며 나라 자체를 문화공동체로 변신시킨 기적의 현장이 우리 삶에도 영감과 감흥을 준다. 이를테면 “예술이, 음악이 밥 먹여주느냐?”며 예술을 하며 살겠다는 이들을 기죽이는 세속·실용적 논리는 이 다큐를 보면 뒤집어진다. 먹고사는 게 중요하니 돈벌이 직장부터 확보하고 취미로 예술을 하라는 이런 충고는 삶을 구하는 예술의 힘을 본 적이 없기에 나온 것이리라.

최근 다시 출간된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가 주창하듯이 인류문화의 기원은 놀이다. 우리 자신도 돌이켜보면 어린 시절, 온갖 놀이에 빠져 살지 않았던가? 놀이는 예술행위와 같은 것이다. 어린이 그림이 천재 미술가처럼 보이는 것은 아직 길들여지지 않은 인간의 본질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남미 북부 작은 나라, 빈부격차가 우리 못지않게 심각한 이곳에서 1970년대 중반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마약 거래와 총기 사고가 일상화된 이곳, 누추한 차고에서 음악 레슨이 시작되었다. 음악가이자 경제학자 출신 활동가 호세 안토니오 아브라우 박사와 뜻을 같이한 소수가 아이들 손에 악기를 쥐여주며 희망의 싹을 뿌렸다. 전과 5범 소년까지 포함한 11명으로 시작된 빈민 구제용 음악교육은 30여년이 지난 현재 200여개 음악센터로 가지쳐 40여만명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하는 삶의 길을 열어주었다. 이제 베네수엘라는 클래식 음악의 미래로 불리기도 한다.

마더 테레사가 가장 빈곤한 이들과 함께했듯이, 아브라우 박사는 가장 가난한 아이들에게 음악을 안겨준 것이다. “죽으면 쉴 텐데”라며 휴일 없이 일하는 그는 꿈을 실현하는 방식을 알아낸 지행합일 몽상가 현자이다. ‘잘 아는 이를 당할 수 없지만, 즐기는 이는 그 누구도 못 당한다’는 공자님 말씀이 바로 엘 시스테마 프로젝트 몰입에도 드러난다. 가난한 이웃을 가족으로 삼았던 인류의 스승들 얼굴이 공유하는 인자함과 사랑, 그런 공익활동이 개인적으로도 즐거운 일이란 것을 보여주는 그의 미소가 아우라가 되어 마음을 뒤흔든다.

그런 즐거움은 전염된다. 시내 공연에 나가는 아이들은 아브라우 할아버지와 같이 시내에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산책할 생각에 즐겁고 들뜬 마음을 전한다. 최근에는 음악센터까지 올 형편조차 안되는 쓰레기 하치장 아이들을 위해 쓰레기 더미 속에 음악센터를 세웠다. 청각장애 아이들을 위한 합창단 육성에도 집중하고 있다. 늘어나는 아이들에게 악기를 마련해줄 비용이 없어서 종이악기로 음악교육을 시작하여 종이 오케스트라라는 기발한 아이디어도 등장했다. 음악은 악기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하는 것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음악의 영혼을 인간의 영혼과 접속시키는 교육으로부터 삶을 치유하고 변화시켜 나간다.

‘시몬 볼리바르 오케스트라’는 삶의 열정이 폭발하는 연주로 유례가 없는 세계적인 오케스트라가 되었다. 2008년 말 내한공연에서도, 이렇게 꿈틀대는 연주는 처음이라는 관객의 열광적 반응을 얻어냈다. ‘현대판 모차르트’로 불리는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은 차세대 마에스트로로 꼽히는 격정적 지휘로 객석을 사로잡는다. 그의 지휘를 보기만 해도 심장이 떨리는 음악의 힘을 느끼게 된다. 강렬한 삶의 약동이 온 세포를 자극한다.

엘 시스테마는 연주에만 그치지 않는다. 악기 제작과 수리, 차세대 교육까지 같이 나눈다. 그 결과 성장하면서 서구의 유수한 오케스트라에 진출하고 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어우러져 하모니를 이루는 오케스트라 만들기는 ‘따로 또 같이 미학’을 증명한다. 베토벤의 ‘운명’ 같은 장중한 클래식으로부터 남미 특유의 꿈틀대는 맘보 리듬은 무대와 객석을 같이 흔들어 놓는다. 아파트 몇 채나 되는 레슨비를 치르며 계급 차별화의 만족감에 쏠려가는 연주자 양성 풍토에선 찾아보기 힘든 열정이 객석에서 솟구친다. “음악이 없는 삶은 잘못된 삶으로, 피곤한 삶이자, 유배당한 삶”이라고 일갈한 니체의 호모 루덴스론이 실현되는 현장. 음악/예술의 힘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란 희망이 꿈틀댄다. 그리하여 이 기적의 오케스트라 현장을 꼭 관람하시라고 초대한다. 자신의 구원을 위해, 때론 출구조차 안 보이는 우리 사회의 희망을 위해서.

팁: 돈벌이 중심 인간이라는 각박한 호모 이코노미쿠스에 중독된 현실에 부딪히는 <와이키키 브라더스> <즐거운 인생> <브라보 마이 라이프>가 떠오른다. 밥벌이 현실과 음악/예술을 대치시키는 현실에 대해, 이 영화는 답한다. “그럼요, 예술이 밥 먹여 주고 말고요, 행복도 주지요”라고. 우리 모두 즐거운 놀이를 통해 비루한 삶을 변혁시킬 열정을 가진 인간이기에 이런 프로젝트는 이곳에서도 가능하다.(유지나|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크리스천투데이(10. 08. 07) 엘시스테마-바디매오처럼, 포기하지 않는다면…

“오후 6시만 되면 거리에서 총격전이 시작되고, 모두 잠을 청해야 한다. 가끔 대낮에도 총격전이 벌어져 아직 집에 돌아오지 못한 엄마를 기다린다. 혹시 총에 맞아 부상을 입지는 않았는지 걱정이다. 친구들 중에도 총상을 입어 다음날 학교를 나오지 못할 경우도 있다. 총상을 입지 않아도 사는 것은 ‘지옥’이다. 13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마약에 중독돼 사망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자체가 전쟁이다. 빈곤에서 해방되고 싶다.”

어린 아이의 입에서 ‘사는 것이 지옥’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각박한 현실이 바로 남미의 석유부국인 베네수엘라 빈곤지역 아이들이 겪는 실상이었다. 꿈이나 희망이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사치로 여겨지는 그야말로 밑바닥의 삶. 이 아이들이 마음껏 희망할 수 있는 세상으로 안내하고, “코끼리처럼 큰 걸음으로 세상을 향해 나가겠다”며 미래에 대한 희망을 말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음악’이었다.

빈곤지역 어린이와 청소년들에게 음악교육을 통해 희망을 선물하고자 했던 ‘엘시스테마’(El Sistema) 프로젝트는 1975년 베네수엘라의 한 도시의 허름한 차고에서 시작됐다. 들리는 거라곤 총소리 뿐이었던 전과 5범 소년을 포함한 11명의 아이들은 총 대신 악기를 손에 들고, 난생 처음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35년 뒤, 차고에서 열렸던 음악교실은 베네수엘라 전역에 200개 센터가 되었고, 11명이었던 단원수는 30만명에 이르렀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영화 ‘엘시스테마’는 거리의 아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통해 삶이 변화되는지 여정을 그리고 있다. 지휘자이자 경제학자였던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Jose Antonio Abreu)라는 한 사람의 꿈에서 시작된 ‘엘시스테마’라는 공동체가 어떤 과정을 통해 전 세계적인 영향을 끼치는 기적의 아이콘이 됐는지 다양하고 역동적인 영상과 아름다운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종이오케스트라를 통해 음악의 기초를 터득하고 각 단계별 오디션을 거치며 좀 더 구체적으로 음악을 배워간다. 개중에는 LA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등 전문적인 음악가로 성장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엘시스테마는 실력이 뛰어난 아이들을 발굴해 성공한 음악가로 키우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음악을 접할 기회가 없는 거리의 아이들에게 오케스트라 연주를 가르치면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감수성을 일께워주고, 희망을 갖고 자신의 인생을 개척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데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다.  

이 일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헌신했다. 설립자 아브레우 박사를 비롯해 지휘자, 교사, 수많은 자원봉사자들……. 이들은 월급이 남보다 적고 그 결과가 단시간만에 눈에 띄지 않더라도 보이지 않는 가치를 위해 기꺼이 자신의 인생을 내어놓았다.

아브레우 박사는 말한다. “엄청난 부를 가진 선진국의 사람들은 권태와 염세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지켜야 할 것, 이루고 싶은 것이 없는 그들은 엄청난 부를 가졌기에 오히려 더 비참할 수 있다. 가난한 아이들은 음악을 배우며 마음이 풍요로워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 지켜야 할 가치가 있고, 이뤄야할 꿈이 있다면 가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과 삶을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서 꿈을 발견할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다.

소경 거지 바디매오는 비참했다. 하지만 그는 그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 속에서 주저앉지 않았다. 그는 소경이라는 자신의 주어진 처지에 절망하기 보다 부르짖을 수 있는 입이 있음을 감사했다. 설령 제자들이 그를 막을지라도 그는 끝까지 “나사렛 예수”를 부르짖으며 구원을 요청했고, 그는 결국 나음을 입었다. 바디매오처럼 부르짖음을 포기하지 않고, 코끼리가 걷듯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다보면, ‘엘시스테마’의 기적은 오늘날 이 자리에 서 있는 우리에게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이미경 기자) 

10. 08.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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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때리다 2010-08-15 23: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작년에 내한공연 했을 때 가고 싶었는데 시험기간이어서 ㅜㅜ 그런데 두다멜의 말러 교향곡 5번 음반 좋더군요

로쟈 2010-08-16 20:02   좋아요 0 | URL
작년에는 모르고 지나갔습니다.^^;

루체오페르 2010-08-16 0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터 교육관련 다큐에 몇번 등장해서 관심 가졌었는데 참 괜찮고 멋진 활동 같습니다.
그 교육으로 세계적인 지휘자도 배출됬다고 하더군요. 이름은 기억 안납니다.^^;
비슷한 것으로 '노숙자 인문학 공부, 희망의 인문학' , '문제아 글쓰기 공부, 프리덤 라이터' 가 떠오르더군요. 우리도 이정도의 성과는 아니지만...지방의 학생 독서,공부모임에서 시작해 활발하게 해외석학 인터뷰도 하고 잡지,책도 내고 하는 곳도 있던데(이것역시^^;) 우리 나라에도 꼭 필요한, 있었으면 하는 모습입니다. 국내 도입이 시급합니다!ㅎㅎ

로쟈 2010-08-16 20:03   좋아요 0 | URL
인디고 말씀이시죠. 요즘은 잡지 영어판까지 발행하고 있습니다...

람혼 2010-08-19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브레우와 엘 시스테마는 정말 하나의 기적이자 기적보다 더 감동적인 전범이죠. 다큐멘터리 영화로까지 나왔다니 한 번 봐야겠군요. 두다멜과 엘 시스테마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걸 보면 정말 어깨가 절로 들썩들썩하고 눈가가 촉촉해집니다.

로쟈 2010-08-16 20:04   좋아요 0 | URL
서재엔 가끔 오시나보군요.^^ 람혼님의 공연도 흥이 나던데요.^^

2010-08-16 16: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6 20: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자읽기 2010-08-17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아노에 그만 영 흥미를 잃어버린 아들에게 보여주어야 겠습니다...
엘리트 예술 교육은, 정말 예술을 즐기고 싶은 사람들에게도 재앙이지요....

로쟈 2010-08-17 16:51   좋아요 0 | URL
예능 교육이 부의 과시가 되는 나라도 재앙이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