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자 김두식 교수의 신작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2010)는 적어도 알라딘에서는 따로 소개가 필요없는 책이다. 이미 '고정독자'들은 알아서들 충성도를 발휘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를 다룬 책이면서 동시에 '영화책'이기도 하다는 게 이채로운데, 알고 보면 저자도 영화광이라고. 작년 이후 책이 나오는 속도를 보면 서서히 '가속'이 붙는 듯싶은데(물론 안식년 덕분이라곤 하지만), 벌써부터 다음 책이 기대된다. 딸아이가 낼모레 여름방학 캠프에 간다고 들떠 있는 걸 보면서 '지랄 총량 법칙'을 풀이해주는 리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서울신문(10. 07. 17) ‘지랄 총량의 법칙’ 아세요?   

민중의 지혜라는 ‘지랄 총량의 법칙’을 아십니까. ‘불편해도 괜찮아’(창비 펴냄)의 저자 김두식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사춘기가 되면서 ‘이해할 수 없어진’ 딸에 대한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김 교수의 딸은 중학교 1학년이 되더니 “엄마 아빠 같은 찌질이로는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사사건건 부모와 충돌한다. 저자는 ‘시민들을 위한 싱크탱크’ 희망제작소의 유시주 선생에게 고민을 털어놓았고, 유 선생은 “모든 인간에게는 일생 쓰고 죽어야 하는 ‘지랄’의 총량이 정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그 지랄을 사춘기에 다 떨고, 어떤 사람은 나중에 늦바람이 나기도 하지만 어쨌거나 죽기 전까진 반드시 그 양을 다 쓰게 되어 있다.”라고 설명했다. 이혼한 한 배우는 어렸을 때 조신하게 살면 나이 들어서 사고를 치게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공부하란 말을 ‘교수답게’ 에둘러서 하던 김 교수는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를 보고 부모에게 필요한 것은 자녀에 대한 변함없는 사랑이지 기대나 닥달이 아니란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남주인공 고복수(양동근 분)가 여주인공 전경(이나영 분)이 아버지로부터 뺨을 맞는 광경을 보고 “진짜 아버지 따로 있을 거예요. 무슨 아버지가 이래?”라고 말하는 장면을 보고서다. 이후 김 교수는 딸의 공부에 대한 복잡한 기대를 버리자, 딸의 ‘지랄’도 놀랄 만한 속도로 안정을 찾는다.  

영화광 김 교수는 10여년 전 공부하는 아내를 위해 검사직을 그만두고 2년간 육아와 가사에 전념했다. 이를 두고 많은 사람이 “좋은 남편 만나서 (아내가) 행복하겠다.”라고만 하지, 혼자 2년 반 동안 미국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아이까지 키운 아내의 노고는 이야기하지 않더라는 게 김 교수의 고백이다. 결국 자신은 이 땅에서 남자로 태어난 특권을 누리고 있을 뿐이라고.  

‘불편해도 괜찮아’는 이처럼 영화와 드라마, 인권에 대한 이야기가 저자의 인생사와 엮여 소설보다 재미있는 인문교양서가 됐다. 김 교수는 법조계 사람들을 심층 인터뷰한 ‘불멸의 신성가족’, 저자 자신이 기독교도이면서 한국 교회에 신랄한 일침을 가한 ‘교회 속의 세상, 세상 속의 교회’ 등을 쓴 ‘문제적 저자’다. 무엇보다 그의 필력이 지닌 장점은 예민하면서도 무거운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것.  

‘국민드라마’였던 ‘내 이름은 김삼순’에서 현빈이 옛 애인이었던 정려원의 비밀을 알고 뺨을 때리는 장면에서도 사랑과 분노를 따귀로 풀어내는 우리 드라마 작가와 PD의 ‘게으름’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10년간 한국 드라마에서 따귀 때리는 장면만 모아 다큐멘터리를 만들어서 방송국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는 저자의 생각에는 슬며시 웃음도 난다.   

저자는 미국에서 아이를 키우는 동안 공공도서관에서 ‘보디 히트’ ‘나인 하프 위크’ ‘투 문 정션’ ‘와일드 오키드’와 같은 오래된 영화들을 빌려 보았다고 한다. 한국에서 뭉개진 화면으로만 감상했던 영화들이었다. 그러다 ‘색, 계’를 보게 되었을 때 이제 겨우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초입에 들어섰다고 생각했단다. ‘볼 권리’를 누리며 가슴 벅차오른 감격을 느낀 저자는 가위질은 언제나 절대적으로 위헌이라고 지적한다. 청소년, 성 소수자, 여성, 장애인, 노동자 등의 인권을 영화와 연결지어 흥미진진하게 풀어내는 책은 드라마보다 강한 중독성을 발휘한다.(윤창수기자)  

10. 07. 18.  

P.S. "공공도서관에서 ‘보디 히트’ ‘나인 하프 위크’ ‘투 문 정션’ ‘와일드 오키드’와 같은 오래된 영화들을 빌려 보았다고 한다"는 대목에서 의문. 윌리엄 허트와 캐서린 터너 주연의 <보디 히트>(1981)는 나도 비디오로 본 것 같지만(내가 중학생 때 개봉된 듯싶다), 나머지 영화는 모두 극장에서 봤다(물론 처음에는 가위질 된 걸로, 나중에는 안 잘린 걸로). 저자와는 분명 같은 세대인데 '오래된 영화'라...


댓글(6)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blanca 2010-07-18 21:57   좋아요 0 | URL
지랄 총량의 법칙은 완전 동감입니다.^^ 저도 사춘기때 그것을 안한 죄로 스무 살때 뒤늦게 부모님께 떨었던 기억이 나네요.

로쟈 2010-07-19 00:44   좋아요 0 | URL
그렇게 생각하면 저도 좀 걱정이네요.^^;

yamoo 2010-07-18 23:20   좋아요 0 | URL
하하하 지랄총량의 법칙이 있었군요..ㅎ 그나저나 영화나 소설에서 가위질은 정말이지 위헌적 소지가 너무나 많습니다. 위원회의 심의(소수)가 모든 사람들의 볼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 왜 위헌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로쟈 2010-07-19 00:45   좋아요 0 | URL
지금은 거의 무력화됐지요...

푸른바다 2010-07-19 14:46   좋아요 0 | URL
나인하프위크는 제가 고등학교 때 상영한게 확실합니다.^^ 고등학교 때 불어 교사가 그 영화를 보고와선 "너희들은 못보지?" 하며 놀렸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 후로 비디오로 보긴 했는데, 그리 인상적인 영화는 아니었던 듯 해요... 비디오도 가위질이 많이 됐었는지 모르지요.^^

델러웨이부인 2010-07-19 14:47   좋아요 0 | URL
제 지랄총량의 끝은 어디일까요.... 무지 오래 살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