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이대근 논설위윈의 칼럼을 옮겨놓는다. 천안함 사건(천안함 게이트)을 빌미로 벌어지고 있는 남북 대치상황이 과연 누구에게 이익이 되고 고통이 되는지 따져본 칼럼이다. 이명박과 김정일을 제외한 모두에게 고통을 안겨준다는 것이 필자의 계산서다. '적대적 공범자'라는 게 따로 없다. 자신을 이명박, 김정일과 동일시하는 이들이 왜 그리 많은 것인지.    

경향신문(10. 05. 27)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적어도 정치적으로 봤을 때 천안함 사건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손해 볼 종목은 아니다. 마침 화폐 개혁실패로 박남기 당 재정부장을 숙청하고 총리가 인민에게 사과해야 할 정도로 민심이 흉흉해진 터라 인민들의 불만을 외부로 배출하고 외부 위기를 이유로 내부 결속을 꾀할 필요가 절실했다. 그런 때에 딱 맞춰 남측이 동시 다발적 압박 공세를 하고 있으니 김정일로서는 만세 부를 일이다. 천안함 사건은 경제난이 장군님의 부덕의 소치가 아니라 외부의 제재 때문이라는 근거로 활용할 수도 있다. 선군정치가 얼마나 선견지명이 있는 것인지를 입증할 기회로 삼을 수도 있다. 인민생활 개선을 포기하면서까지 핵·미사일 개발에 자원을 집중 투입해 억지력을 확보하지 않았으면, 지금쯤 군사 보복을 당하고도 남았을 텐데 그런 사태를 막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이명박 대통령에게도 천안함 사건은 정치적으로 나쁘지 않다. 이미 지방선거 쟁점을 흐리고 반MB 표심을 약화시키는 데 상당한 정도로 기여했다. 선거에서 져도 남북 대결로 정국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다. 중도·실용때문에 진짜 보수 맞느냐는 의심을 받아야 했던 억울함도 보수세력이 오랫동안 갈망해왔던 남북대결을 선물함으로써 풀 수 있다.

이명박·김정일 뺀 모두에 고통
남북관계를 복원하라는 ‘부당한’ 압력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다. 대북 강경책은 자기 정당화의 메커니즘을 갖고 있는 묘한 동물이다. 대북 강경책은 북한의 대남 강경책을 초래하고 그 대남 강경책은 다시 대북 강경책을 정당화한다. 그 때문에 북한과 화해하다가 당하면 용서가 안되지만, 적대하다가 당한 것은 용서가 되는 것이다. 이명박이 안보·평화에 실패했으면 정치적 타격을 받아야 하는데 그러기는커녕 인기가 더 오르는 것은 이런 대결의 특성 때문이다.

이렇게 직접 부딪치지만 않으면 어설픈 화해나 뜨뜻미지근한 관계보다 적대가 정치적으로 유리하다. 바로 그 때문에 두 사람 모두 화해하거나 국면을 바꾸기 위해 무리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두 사람을 제외한, 이 땅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의 사정은 다르다. 남북 교류·협력 전면 차단은 북쪽만 아니라 남쪽 사람들의 피해를 동반한다. 대북 지원을 끊으면 김정일이 굶는 게 아니라 힘없는 북한 사람들이 굶어 죽고 그 때문에 46명의 죽음이 그랬듯이 남쪽 사람에게 적지 않은 고통을 준다. 남측이 대북 압박을 해도 북한이 ‘전면 전쟁’이니 ‘남측과의 모든 관계 단절’이니 하는 역공세로 그 불안을 더 키워 환율 급상승과 같은 경제불안 현상이 나타날 때 떨며 가슴을 졸이는 쪽은 북한이 아니라 남한이다.

한·미 양국은 연합 군사훈련으로 북한의 비상동원 체제를 유도, 그렇지 않아도 부족한 기름과 전력을 탕진하게 해서 경제난을 가중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보복과 중단, 제재로 북한의 목을 죌수록 우리의 목도 조여진다. 북한의 작은 손실조차 우리의 손실이며 북한이 잃는 것은 곧 우리가 잃는 것이다. 한반도 남쪽을 떼어내 태평양 한 가운데로 이사가지 않는 한 북한은 우리의 일부이기 때문이다.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북한이 대화하기 좋은 상대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그 반대라서 더욱 그렇다. 대화는 이명박 처럼 할 말 없을 때, 대책이 없을 때 하는 빈 말도 아니며 기념사에 동원되는 췌사(贅辭)도 아니다. 대화란 정말 대화하는 것을 말한다.

이에 반해 대결은 잠자는 적의를 불러내는 주술 혹은 악령이다. 증오와 분노를 스스로 정당화시키는 힘을 지닌 그런 악령이다. 이런 대결을 나쁘다고 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관점에서 하는 말이 아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전력 강화를 위해 엄청난 군비를 쓰고도 군사적 긴장과 불안 속에서 사는 것과 그 일부만을 북한에 지원하고도 남북이 화해와 안정 속에서 사는 것을 비교해 보라. 대결은 적절하게 써야 할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그 결과, 더 많은 미래 비용을 발생시키는 행위이기에 문제인 것이다.

대결의 엄청난 비용 직시해야
이런 대결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아마도 다음 정부는 대결을 물려받지 않을 것이다. 남북관계를 복원하려 할 것이고, 그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북한에 주지 않았던 식량을 주고, 경협을 재개하고 확대해야 할 것이다. 북한 사람을 굶기고 골탕먹이고 겁주고 북한 경제를 흔들었다고 좋아할 것 하나도 없다. 적대한 시간의 길이 만큼 청구서가 쌓일 것이다. 적대는 공짜가 아니다. 

10. 05. 27. 

P.S. '북풍몰이'로 선거국면이 유리하게 돌아가자 한나라당이 입단속에 나섰다. 유리해진 마당에 경제상황을 고려해 너무 무리하지 않겠다는 계산일 것이다. 예견된 수순이긴 하나 이러한 술수에 넘어가는 수준의 '표심'으론 아직도 '머나먼 민주주의'다. '북풍 민주주의'란 결국 '막걸리 민주주의'나 '고무신 민주주의'에서 멀지 않다. 아니 더 나쁘다고 해야겠다. 그나마 막걸리와 고무신 대신에 공포와 겁박으로 표를 쓸어모으는 것이니 말이다... 

북풍에 따른 지지율 상승 효과 못지않게 국민들 사이에서 경제위기론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자 한나라당 정 대표도 갑자기 태도를 바꿨다. 그는 경기 하남 지원유세 도중 “한나라당은 천안함과 관련해 야당을 공격하지 않겠으니 민주당도 천안함 문제를 국내 정치의 정쟁 소재로 끌어들이지 않을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앞서 당내 이한구 의원도 평화방송에 출연해 “비경제 쪽에서 사고를 너무 크게 안 쳤으면 좋겠다”고 신중한 대처를 요청했다.(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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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케 2010-05-27 08:45   좋아요 0 | URL
요즘 이 시절에 <쇼크독트린>을 읽고 있습니다. 시집도 아니고 말랑한 사랑이야기도 아닌 책을 읽다가 소주 마시러 가기는 황석영의 <~너머 ~너머> 이후 처음이아닌가 합니다. 전쟁 이야기가 나오면서 거의 40조 가까운 돈이 증시에서 사라져버렸는데 그 이면에는 풋옵션과 환치기로 대박 난 외국자본들이 있지요
단순히 지방선거때문이라고 보기에는 지나치만큼 과하게 판을 키우고 있는 무리들...이 위기를 조장하고 확대시키는 무리 (수구세력-조중동연문)의 배후...
전후복구사업이 아니라 전쟁 그 자체가 시장인 시대에 산다는 것...참 우울합
니다. 일단 투표 !

로쟈 2010-05-28 10:29   좋아요 0 | URL
이젠 고등학생 때부터 읽어야 하지 않나 싶어요...

samahun 2010-05-27 10:06   좋아요 0 | URL
책을 읽는다는 행위가 과연 내 삶에 무슨의미가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로쟈님이나 파란여우님의 서재를 보면서 새삼 삶과 사회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책읽는 행위의 가치를 느낌니다. 로쟈님의 인문학서재를 거의 무협지 읽는 기분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묘한 초식과 내공가득한 검술과 호방한 무림의 세계에 빠진듯...^^ 항상 건필하세요..

로쟈 2010-05-28 10:30   좋아요 0 | URL
혼자 고수란 건 별 의미가 없습니다.^^;

푸른바다 2010-05-27 17:16   좋아요 0 | URL
선거가 끝나면 곧 월드컵이지요. 붉은 악마의 환성 속에서 언제 전쟁분위기였냐는 듯한 상황으로 바뀌겠지요... 달력 대로 진행해 가는 모양새로 보아 이도 계산되어 있겠지요.

로쟈 2010-05-28 10:31   좋아요 0 | URL
네, 그런 계산을 해두었겠지요. '어리석은 백성'들입니다...

비로그인 2010-05-27 20:05   좋아요 0 | URL
저는 이 부분을 꼭 강조하고 싶군요. "대화는 이런 한반도에서 살아가야 하는 우리의 운명이며, 유일한 해결책이다." 적어도 한쪽에는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이긴 하지만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치킨게임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익을 위해서라면 물불가리지 않겠다는 주의죠. 대화는 사치스러워 보입니다...

Sati 2010-05-28 07:40   좋아요 0 | URL
두 사진이 참 인상적이네요.

로쟈 2010-05-28 10:32   좋아요 0 | URL
인격은 가려지지 않는 듯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