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리해야 할 일 때문에 학교에 나와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아무도 없는 강사실에 앉아 있다. 무심코 즐찾의 알라딘을 클릭했더니 '정상화'돼 있다(아직 100%는 아닌 듯싶다). 오후부터인 것 같다. 내일 아침까지는 '휴무'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토요일 오후에도 '근무'하는 기분이다. 학교처럼 알라딘 마을도 아주 고적하다. 어제 대형서점에 잠깐 들렀을 때는 발견하지 못했다가("이번주엔 눈에 띄는 책이 없네"라고 중얼거렸다) 언론리뷰를 보고서야 챙긴 책 두 권에 대한 소개기사만 옮겨놓고 다시금 '오프라인'으로 넘어가야겠다. 드미트리 오를로프의 <예고된 붕괴>(궁리, 2010)와 에릭 윌슨의 <멜랑콜리 즐기기>(세종서적, 2010)가 그 두 권의 책이다.    

서울신문(10. 04. 24) 전쟁·경제위기·총·범죄… 붕괴, 미국도 소련처럼?

미국의 변화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긍정, 부정 어느 방향이든 한반도의 상황과 운명에 가장 영향을 미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으로 들어선 뒤 변화와 개혁의 움직임이 꿈틀대고 있지만 미국의 몰락을 예고하는 학자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글 뒤주에 머물지 않고 철저히 현실에 기반해 미국을 파헤치는 목소리까지 가세했다. 과연 ‘미국 없는 세상’, ‘포스트 미국의 시대’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급진적 전망일 뿐인가. 아니면 냉엄한 현실로 다가오게 될 것인가.

1991년 소련은 거짓말처럼 무너졌다. 아프가니스탄 전쟁 패배의 충격, 각 민족국가의 독립 요구 등 조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미국과 함께 냉전시대의 한 축을 이뤘던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는 세계사적인 충격이었다. 오로지 소련만 쳐다보고 의지했던 범 소련권 국가들이 겪은 경제적 혼란, 대량 실업, 정치적 위기 등은 필연적 후과(後果)였다.

그렇다면 미국의 상황은? 만약에 미국이 소련처럼 붕괴한다면, 우리는? 상상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나올 때마다, 미국 이후 시대에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절박하게 미국에 매달리게 되곤 한다. 1960년대 베트남전쟁, 최근 두 차례의 이라크전쟁의 패배 혹은 서브프라임 모기지론(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등 금융자본 전횡의 후폭풍 등은 심상치 않은 위기감을 보여준다. 



‘예고된 붕괴’(드미트리 오를로프 지음, 이희재 옮김, 궁리 펴냄)는 19세기 이후 최대 제국, 미국이 구 소련과 비슷한 양상으로 붕괴될 것이라는 우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다. 학술적 측면의 접근이 아닌, 현장 중심의 근거들을 갖고 실증적 접근을 통해 이를 예견한다.

1962년 구 소련 레닌그라드에서 태어난 저자는 스스로 “전문가도, 학자도, 운동가도 아닌 목격자일 뿐”이라고 말한다. 그는 냉전시대임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 미국을 오가며 고에너지 물리학에서 인터넷 보안 등까지 다양한 분야의 엔지니어로 활동한, 드문 이력을 갖고 있다. 이는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를 직접 목격했음은 물론 미국 자본주의 현장을 구석구석 체험했음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파산하기 전 소련과 현재의 미국은 상당 부분 닮아 있다. 소련이 외채에 시달렸던 만큼, 미국 역시 재정 적자와 달러 가치 하락에 시달리고 있다. 냉전 뒤에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이유로 감내할 수 있는 수준 이상으로 국방비 지출을 늘려 왔다. 이는 고스란히 지나친 석유 의존도로 이어졌다. 1980년대 중반, 석유 부족으로 경제 위기를 맞았던 소련과 비슷한 상황이라는 설명이다. 미국의 상황이 더욱 우울한 근거로 저자는 “세계 최고의 범죄율과 민간인에게 풀린 수억 자루의 총”을 든다.

책 뒷부분에서는 아예 붕괴를 기정사실화한 뒤 각자의 대처법을 제시한다. 3단계로 나뉜 일종의 ‘생존 가이드라인’이다. 일단 마음의 준비를 하고 공동체의 힘을 믿고 따르며(완화), 붕괴 이후 석기시대에 준한 세상에 맞춰 불편하게 살 수 있도록 자신을 변화시켜야 하며(적응),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기회)이다.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쉽게 읽히도록 풀어냈다.(박록삼기자)   

 

한국일보(10. 04. 24) 입만 열면 행복 행복… 우울이 창조의 원천인줄 모르시나요?

"유감스럽게도 우리 시대에 어디를 가나 보는 것은 가면을 쓴 모습이다. 행복한 얼굴이라는 분칠… 탈출을 감행한 날 욕실 거울에 비친 모습을 본다. 다소 슬프고 음울한 표정이다. 당연하다. 행복 나라에서 탈출한 결과 자연스러움을 되찾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 아름다움이 스민 우리의 얼굴임을 깨닫는다."(121쪽)

당신은 지금 행복한가요, 묻는 책은 많다. 행복의 나라로 가는 길을 가르쳐 드릴게요, 친절한 안내서도 넘친다. 육탄전을 치르듯 행복을 갈구하지만 좀체 그것을 얻지 못하는 현대인의 모습을 비추는 거울일 터. 이 '행복 쟁탈전'의 패잔병들은 스스로를 우울, 다른 말로 하면 멜랑콜리(melancholy)의 포로로 여기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이 책_원 제목이 'Against Happiness'다_은 이렇게 선언한다. "멜랑콜리야말로 우리가 가장 필요로 하는 멘토다!" 



미국 웨이크포레스트대 교수인 저자는 문학과 심리학 사이의 관계를 연구하는 영문학자다. 그가 보기에 현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이란 "잘 짜인 행복 방정식에 맞춰 항상 방긋거리며 만족의 통념에 자신을 가둔 채" 살아가는 것이다. 저자는 기성품처럼 표준화된 이런 행복을 욕망하는 것은 진솔한 삶의 태도가 아니라고 말한다. 그리고 삶에 깃든 세상과 우주의 두 가지 상반된 요소_고통 혹은 체념이라는 극, 짜릿한 즐거움과 기쁨이라는 다른 극_에 한쪽 눈을 감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한다.

오히려 저자는 멜랑콜리가 삶의 필수적 요소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인류의 소중한 문화적 원천, 모든 창조와 발명을 가능케 한 귀중한 영감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책을 쓴 배경을 "행복에 대한 강박관념 때문에 우울증 따위는 대패로 밀어버리듯 하며, 그 결과 인류의 창조적 사고방식을 유지하는 데 필수적인 멜랑콜리마저도 멸종 위기에 놓이게 된" 현실이라고 밝힌다. 다소 격정적인 그의 토로를 그대로 옮겨보자.

"멜랑콜리라는 것은 우리 영혼의 떨림 혹은 흔들림에 다름아닌데, 그것이 완전히 멸종된다면 인간이 추구해온 장대한 소망이라는 탑은 어느 날 갑자기 휘청거리며 무너지지 않을까? 가슴을 쥐어뜯는 고통과 아름다움이 함께 교차하는 인간 삶의 교향곡은 어느 날 갑자기 멈춰버리지 않을까? … 이런 움직임은 지구온난화 같은 생태학적 위기, 핵무기 확산 같은 디스토피아적 상황 못지않게 위험하다."(12쪽)

 

저자는 행복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켜 인류의 문화를 풍요롭게 했던 천재들의 사연을 논거로 동원한다. 예컨대 존 레넌. 그는 전쟁, 부모의 이혼, 어머니의 죽음을 차례로 겪으며 성장했다. 상심과 번민에 지친 영혼이었기에, 그의 음악은 깊은 울림을 지닐 수 있었다는 얘기다. <모비딕>의 작가 허먼 멜빌, 낭만피 시인 존 키츠, 심리학자 카를 융 등도 공통적으로 '인공적인 행복'에 의문을 제기하고 고독과 은둔을 택했다. 저자는 상실감과 슬픔의 정서야말로 새로운 가능성이 숨쉬는 삶의 무대라고 거듭해 말한다. 이 책은 그 무대, 곧 창조적 도약을 위한 발판으로의 초대인 셈이다.(유상호기자)  

10. 04. 24.  

P.S. <예고된 붕괴>는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과 '옮긴이의 말'만 읽어보더라도 많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오를로프는 '석유 고갈 분야의 저명한 이론가'로 소개되는데, 그가 '미국 붕괴' 전망의 중요한 근거로 들고 있는 것도 석유 고갈 문제다. 원유의 급격한 고갈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세계 최대의 에너지 소비국'이면서 '세계 최대의 채무국'인 미국은 이에 대처하기 힘들 거라는 점. 세계 5위의 원유 수입국이면서(한국은 일본과 독일보다도 자원 낭비가 심한 나라라고 한다), '미국을 가장 닮은 나라'(강준만)라는 한국도 이러한 전망에서 빠져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석유 고갈 문제라고 하니까 석유정점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로 소개된 리처드 하인버그의 책도 참고해볼 만하다. <파티는 끝났다>(시공사, 2006)과 <미래에서 온 편지>(부키, 2010)가 번역돼 있다.   

한편, 멜랑콜리와 관련해서는 김동규의 <멜랑콜리 미학>(문학동네, 2010)도 신간이다. 저자는 “사람은 누구나 한 번은 사랑하고 죽는다. 그렇다면 사람이면 누구나 한 번은 예술과 철학을 만날 수밖에 없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고. <글루미 선데이>에 대한 글도 말미에는 붙어 있는데, 글루미한 날에 오랜만에 떠올리게 되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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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thema 2010-04-24 15:06   좋아요 0 | URL
존 레논은 마약과 환각제 상습 복용자였고, 오컬트에 깊이 빠졌었고, 자신이 재림 예수라고 했었던 비정상적인 인간이었지요.

로쟈 2010-04-24 21:14   좋아요 0 | URL
그래도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는 분보단 '정상적'이라고 생각합니다...

mediocris 2010-04-25 00:07   좋아요 0 | URL
어떤 자의 입 방정 때문에 자살한 사람의 죽음에 대고 자살세를 거론하여 비아냥거렸지만 정작 그 어떤 자의 자살에는 침묵한 미학자에게 많은 책을 읽은 아까운 자긍심을 봉헌하는 영혼보다는 서울을 봉헌한다는 자의 영혼이 그나마 때가 덜 묻지 않았을까? 세습 왕조의 봉헌 의식은 외면한 채 줄기차게 한쪽만 비판하는 균형 감각으로 많은 책을 읽는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일까?

anathema 2010-04-25 00:38   좋아요 0 | URL
아니죠. 둘 다 비정상이라고 해야죠. 거기서 거기인 인간들.

Joule 2010-04-25 14:03   좋아요 0 | URL
명박아에게 존 레논 같다고 하면 그닥 기분 나빠할 것 같지 않은데, 존 레논에게 명박아 같다고 하면 기분 나빠 할 것 같은데요.

픽션들 2010-04-25 18:11   좋아요 0 | URL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한다-는 말에, 한 인간으로서 일말의 자괴감이 일지 않나요?
행복찾기의 '게임'에서 길을 잃고 개인의 순수노동을 권력에 헌납하며 살아가는 것이 덜 때묻은 것일까요?
정상과 비정상의 차이를 단지 마약이나 과도한 자기애 등과 같은 것으로 추론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많은 위대한 영화감독들도 비정상의 범주에 쑤셔넣어야 하니까요. 거기다가 베르베르나 보통 같은 작가들도 비정상의 범주에 당연히 들어갈 겁니다.

로쟈 2010-04-26 20:12   좋아요 0 | URL
존 레논과 함께 천국을 상상해볼 순 있지만 MB와는 도저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