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인 유학생 피습으로 다시금 관심사로 떠오른 러시아의 스킨헤드와 인종테러를 진단하는 기고기사를 옮겨놓는다. 2004년 러시아 체류시에도 잔뜩 긴장하고 다녔던 기억이 새롭다(실제로 공원 등지에서 가죽옷을 입은 스킨헤드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자본주의 러시아의 음울한 이면인데, 혹 여행 계획이 있으신 분이라면 미리 주의하는 게 좋겠다.    

외국인 혐오범죄가 기승을 부리는 러시아에서 지난 7일(현지시간) 한국인 유학생이 또 피습을 당해 대책이 시급하다. 주러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 따르면 7일 오후 5시쯤 모스크바시 유고자파드나야의 상가 건물 앞에서 모스크바 국립 영화대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심모(29)씨가 괴한이 휘두른 흉기에 목 부위를 찔려 한때 중태에 빠졌다. 심씨는 병원으로 옮겨져 4시간여에 걸친 대수술을 받고 중환자실에서 회복 중이다. 외교 당국자는 심씨가 생명에 지장이 없다고 전했다. 6년 전 모스크바에 유학 간 심씨는 노래방에서 나오다 변을 당했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심씨는 동료들과 헤어져 걸어가던 중 흰 가면을 쓴 괴한으로부터 공격을 당했으며, 이 괴한은 곧바로 달아났다. 이 지역은 지난주에도 외국인 한 명이 현지 청년들에게 살해되는 등 외국인 대상 범죄가 자주 일어나는 곳이다. 현지 경찰은 범행수법으로 미뤄 극우민족주의자인 스킨헤드의 소행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러시아에 교환학생으로 갔던 한국인 대학생 강모(22)씨가 지난달 15일 극동 알타이주 바르나울시에서 현지 청년 3명에게 흉기 등으로 집단 폭행을 당해 숨졌다.(세계일보 3월 8일자 기사)

 

한겨레(10. 03. 15) [기고] 나치와 러시아 순혈주의의 만남

짧은 머리에 가죽옷, 그리고 그 가죽옷에 달려 있는 반짝이는 금속물체들…. 이들이 스킨헤드들이다. 무리지어 몰려다니며 유색인종들에게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은 도대체 어떤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하고 다닐까.

히틀러의 탄생일인 4월20일은 스킨헤드들에게 가장 큰 축제의 날이다. 러시아의 스킨헤드들은 이날을 기념하면서 순수한 ‘루스키’(러시아) 혈통을 강조하고 유색인종에 대한 인종테러를 공개적으로 선언한다. 얼마 전 있었던 한국인 유학생에 대한 잇따른 인종테러도 이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스킨헤드는 1960년대 후반 패션·음악·생활에 영향을 받은 영국 노동자들의 하부문화에서 시작되었다. 이런 스킨헤드의 하부문화에 정치성향과 인종적 태도가 혼합되면서 현재의 극우 인종차별주의로 발전하였다.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1980년 중반 이후부터 러시아 청년 하부문화에서 발생하여 나치즘과 연결된 나치스킨(Nazi Skinheads)으로 발전하였으며 이념적 성향이 무질서하게 혼합된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러시아의 스킨헤드는 이념에 의한 행동이라기보다는 무질서한 반사회적 성향을 가진 극단주의 그룹으로 보는 것이 정확하다. 



러시아 스킨헤드의 특징을 몇 가지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첫째, 소비에트 체제 붕괴 이후 경제난과 빈부격차의 심화로 소외계층 청년들의 불만이 누적되었으나 이런 불만을 분출할 만한 사회적 통로가 없었다. 그 결과는 ‘희생양’ 힘없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공격적인 태도였다.

둘째, 러시아의 극우성향을 지닌 정치단체들이 이런 불만 소외 청년들을 조직화하여 이들에게 치기 어린 민족감정을 불어넣어 주었다.

셋째, 2000년대 이후 러시아의 고도성장의 그늘에 가려졌던 소외계층 청년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러시아 내 3D 업종에 종사하는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극단적 반감으로 표출되었다.

이런 이유로 러시아에서 자행되는 인종테러는 해마다 2만건이 넘으며, 최근 5년 사이에는 매년 50여명의 외국인 노동자가 살해당했다. 지난해에는 희생자가 갑절인 100여명에 이를 정도로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희생자들의 대다수는 소연방 구성 공화국이었던 중앙아시아 출신 노동자들과 캅카스인들이다. 이들은 러시아공화국에서 잡일과 3D 업종에 종사하는 노동자로서 약 1000만명이 일하고 있다. 러시아 스킨헤드는 이들 때문에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빈곤해졌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러시아인들이 마다하는 일자리를 이들 외국 노동자들이 차지하였고 현재 러시아 경제에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연이은 인종테러에 대하여 러시아 정부도 2006년 7월 극단주의 단체 척결에 대한 연방법을 채택하는 등 강력하게 대응하려고 시도하였다. 그러나 가뜩이나 사회와 정부에 불만이 가득한 소외 청년세력의 극단적 인종주의가 반정부 성향의 행동으로 돌변할까 매우 조심스런 입장이다.

오는 5월9일은 러시아가 제2차 세계대전 중 독일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승전기념일이다. 러시아의 선열들이 나치 독일과 싸워 2000만 러시아인들의 고귀한 피의 값으로 조국을 지켜낸 날이다. 그러한 순국선열의 무덤 위에서 나치의 깃발 아래 러시아의 순혈주의를 주창하는 현재의 러시아 젊은이들을 과연 현재를 사는 러시아인들이 어떻게 보고 있는지 궁금하다.(김선래 한국외대 러시아연구소 연구교수) 

10. 03. 14.  

P.S. 핵심은 "사회와 정부에 불만이 가득한 소외 청년세력"이 반정부 성향으로 빠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극단적 인종주의'로 유도되게끔 방치한다는 것. 인종주의 포퓰리즘이 갖는 잠재성과 한계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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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크아이즈 2010-03-15 00: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이 공부할 때도 그곳이 요주의 위험구역(!)이었나요?

로쟈 2010-03-15 09:05   좋아요 0 | URL
공연을 보러갈 때 공원 같은 데서 마주칠 때가 있었어요. 적당히 피해가야했죠.^^;

Kitty 2010-03-15 0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연이은 유학생 피습 뉴스를 보고 깜짝놀랐어요.
여름쯤에 여행을 계획하고 있었는데 전면 수정 들어가야 할 것 같네요 ㅠㅠ

로쟈 2010-03-15 09:07   좋아요 0 | URL
관광객은 대체로 건드리지 않는 게 나름 불문율인데(단체로 다니기도 하고), 그래도 조심은 해야합니다. 혼자 여행하는 건 물론 위험하고요...

카스피 2010-03-15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러시아 팽창주의는 예로부터 인접 국가에는 커다란 공포였지요.러시아 청년들의 인종 차별은 혹 예전부터 이런 전통에 기인한것이 아닐까요?

로쟈 2010-03-15 09:09   좋아요 0 | URL
팽창주의 전통이야 러시아만의 것은 아닌데, 스킨헤드는 90년대 이후 현상입니다.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 속에서 생겨난 일종의 청년층 '하위문화'인데, 러시아 정치권이 악용하면서 지금은 통제가 어렵게 된 걸로 압니다...

자꾸때리다 2010-03-15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슬라브족을 천시한 히틀러를 추종하는 민족주의 슬라브족이라... 이건 뭐 뇌가 없는건지...아님 뇌의 고랑과 이랑이 머리통처럼 만질만질한 건지..

로쟈 2010-03-15 23:03   좋아요 0 | URL
원래 논리적으론 이해가 안되는 현상이죠...

2010-03-15 2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5 23: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16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폴란드나 러시아는 사회주의 정권 시절에도 권력자들이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은근히 이용해 먹었지요.독일이나 오스트리아도 요즘 극우주의자들이 날뛰고 있으니 게르만 스킨헤드와 슬라브 스킨헤드가 육박전이라도 벌이면 살벌하겠네요.

편의상 나치라고 부르고 있지만 슬라브족이 나치사상에 공명한다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로쟈 2010-03-16 23:33   좋아요 0 | URL
슬라브족이 아니라 러시아 스킨헤드들이죠. 실제로 히틀러를 숭배한답니다. 숭배의 포즈인지는 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