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레프트리뷰2>가 출간됐다는 소식을 접했지만 소개기사는 물론 책 자체가 눈을 씻고 봐도 뜨지 않는다. 연간 체제로 나온다고 했고 작년 2월에 1권이 나왔으니까 '제때'이긴 하다. 어떤 볼륨으로 어떤 글들이 묶였을지 궁금하지만 확인은 하루이틀 더 기다려봐야 할 듯하다. 대신에 조지 오웰의 르포르타주 <위건 부두로 가는 길>(한겨레출판, 2010)에 대한 소개기사를 옮겨놓는다. 하루키의 <1Q84> 덕에 작년에 때아닌 <1984> 붐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이 전체주의 비판 소설 탓에 많이 가려진 것이 '사회주의자 오웰'의 면모다(그렇지 않고서야 대한민국의 그 많은 학생들이 <동물농장>을 읽을 수가 있겠는가). 그에게 공정하자면 '동물농장'에만 들를 것이 아니라 '위건 부두'도 같이 둘러보아야겠다. 개인적으로는 <동물농장>과 <1984>밖에 읽지 못한지라 그의 르포르타주도 좀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웰이 사회주의자라는 건 알았지만 내가 대학에 들어온 1980년대에 대학가에서 오웰은 '얼치기 사회주의자'로 낙인 찍혀 있었다. 그게 어떤 의미였는지는 아래 기사를 읽으며 되새겨보게 된다...
한겨레(10. 01. 16) 사회주의를 위한 사회주의자 비판
그는 사회주의자로 살았다. 마흔일곱, 아까운 나이에 폐결핵으로 죽을 때까지 그는 자신을 사회주의자라 믿었고 그 주의를 옹호했다. 조지 오웰(1903~1950). 그는 현대문학의 고전 <동물농장>(1945)과 <1984년>(1949)을 쓴 소설가로 널리 알려졌지만 무엇보다 그는 사회주의 정치평론가였고 직접 혁명전선에 나선 행동가다.
한데 그의 대표작 <동물농장>과 <1984년>은 일종의 반공 우화 소설로, 사회주의의 ‘적자’로 군림했던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흔히 소개되고 그렇게 읽힌다. 아이러니다. 아니, 반토막 진실이다. 그가 1937년에 발표한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그런 독해가 상당 부분 오독일 수 있음을 시사한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은 1936년 초 오웰이 좌익 출판단체로부터 영국 북부 탄광지대의 대량 실업 문제에 관한 르포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쓴 글이다. 그는 편집자 빅터 골란츠의 부탁을 받고 두 달에 걸쳐 위건과 리버풀, 반즐리 등 탄광지대를 집중 취재했다. 그곳에서 그는 가난한 노동자와 실업자들이 묵는 하숙집과 탄광노동자의 가정에 머물며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고, 집다운 집에서 살 권리도 박탈당한 노동계급의 삶을 체험했다. <위건 부두…>는 당시 대량 보급되며 반향을 일으켰는데, 오웰은 스스로 <위건 부두…>를 통해 전투적이며 정치적인 작가로 거듭났음을 밝히고 있다. 그는 훗날 <나는 왜 쓰는가>라는 글에서 이렇게 회고한다. “1936년부터 내가 쓴 진지한 작품들은 그 어느 한 줄이건 전체주의에 맞서기 위해, 내가 아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해 쓴 것들이다.”
<위건 부두…>는 성격이 다른 두 개의 글로 돼 있다. 1부 ‘탄광지대 노동자의 밑바닥 생활’은 오웰이 목도한 영국 노동계급의 궁핍한 생활상과 실업의 비참함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기록한 르포다. 낱낱이 묘사되는 1930년대 영국 공업지대의 빈곤과 주택난, 도시재건축의 살풍경은 오늘 한국사회를 연상시킨다.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을 논한 2부는 에세이 형식으로 쓴 정치평론이다. <위건 부두로 가는 길>이 논쟁적인 것은 바로 이 글이다. 1930년대 영국 좌파 사회주의 리더들을 직접 겨냥해 공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을 청탁한 편집자 빅터 골란츠는 오웰이 파시즘과 싸우러 스페인에 간 틈을 타서 오웰의 논지에 대해 반론하는 서문을 넣고 출판했다. 골란츠는 그 뒤 오웰의 스페인 내전 참전기 <카탈루냐 찬가>(1938)에 대한 출판도 거부한다.
1936년은 대공황이 세계를 휩쓴 때이자 유럽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파시즘이 세력을 키워가던 때다. 오웰의 말을 따르면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고, 정직하게 살아가기가 불가능한 세상”이며 “사회주의가 후퇴”하던 때다.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와 그 적들’에서 당시 영국의 주류 사회주의자들을 향해 직격탄을 날린다. 그가 보기에 “누구라도 사회주의에 공감하는” 때에 사회주의 세력이 힘을 더 못 받는 것은 바로 이른바 정통 마르크스주의 그룹이 잘못된 전술을 펴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소책자에 글줄이나 쓰며 말끝마다 마르크스를 인용하며 나는 너희와 다르다는 태도로 무장한” 사회주의자들이다. 오웰의 비판 대상에는 평생 사회주의자로 산 버나드 쇼도 포함된다.
오웰은 사회주의자들이 거품을 물고 부르주아 규탄에만 열을 올림으로써 사회주의엔 오직 증오만이 있는 것처럼 노동계급과 대중들에게 비치고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주의 이론가들이 물질적인 유토피아를 사회주의의 목표로 선전하고 ‘미련한’ 러시아(스탈린) 숭배와 기계 숭배의 냄새를 풍김으로써 사회주의의 문 앞에서 서성거리던 평범하고 수수한 사람들로 하여금 파시즘으로 돌아서도록 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무직직원 등 중산층을 사회주의로 끌어들여야 한다. 이것이 오웰의 주요 논지 중 하나다. 오웰의 사회주의자 비판은 스스로를 사회주의자로 놓고 그 안에서 “사회주의를 방어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악마의 대변인’으로 나섰다고까지 오웰은 말한다.
그렇다면 오웰이 말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일단 ‘반파시즘’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기계에 의한 대량생산체제의 산업사회와 그 자본주의가 빚어내는 파시즘을 아울러 ‘전체주의’라고 이해한다. 오웰은 민주적 사회주의의 요체를 ‘정의와 자유’, ‘압제에 대한 반대’라고 말한다. 그 사회주의의 구체적 상을 찾으려 하면 일순 모호해지는 감이 있다. 오웰이 보기에 진정한 사회주의자란 압제가 타도되는 꼴을 보기를 적극적으로 원하는 사람이다.
오웰이 반대했던 것은 파시즘이었다. 그 전체주의였다. 자본주의가 필연적으로 빚어내는 그 압제적 성격이었다. 그러므로, 파시즘에 반대하는 시늉만 했을 뿐 그 전체주의적 성격에서 흡사한 면모를 보이며 사회주의를 오도했던 스탈린주의를 그토록 맹렬하게 비판했던 것이다.
당대의 파시즘 승리에 대한 오웰의 경고와 통찰은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살 떨릴 만큼 현실적이다. “상황은 절박하다. 사회주의를 효과적으로 확산시키지 못한다면 파시즘을 타도할 가망은 없어진다. … 스스로를 선택된 민족으로 여기는 파시스트 국가들이 서로 치고받다 망하는 일은 전혀 벌어지지 않고 있다. 오히려 이제 파시즘은 국제 운동이 되었으며 파시스트 국가들이 약탈을 목적으로 단결하고 있다. … 전체주의 세계라는 비전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오웰이 비판하는 1930년대 유럽의 좌파 지식인들의 모습은 오늘날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오웰은 말한다. “(파시즘에 맞서기 위해) 우리가 목표로 삼고 단결할 수 있는 이상은 사회주의의 이상밖에 없다. 그것은 바로 정의와 자유다. 이 이상은 이론 일변도의 독선과 파벌 다툼과 설익은 진보주의에 층층이 묻혀 버렸다. 사회주의자가 할 일은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다.” 오웰이 던진 숙제는 오늘에도 유효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한국의 진보논객 박노자씨는 이 책의 추천글에서 이렇게 썼다. “오웰은 20세기 문학을 통틀어 가장 선명한 ‘비판적 개인’이다. 오웰이 죽을 때까지 자신을 사회주의자라고 생각했던 것은 이 세상의 모든 사회주의자들에게 하나의 희망이다. 그것은 ‘민주적 사회주의’와 ‘비판적 개인’의 독립성 사이에 어떤 적대적 모순도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오는 21일은 오웰 사망 60주기가 되는 날이다.(허미경 기자)
10. 01. 17.
P.S. 참고로 지난 2003년이 그의 탄생 100주년이어서 몇 권의 책이 나온 바 있다. 올해도 겸사겸사 몇 권 나오는 것인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