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일본 문단의 최대 화제작은 단연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문학동네, 2009)다. 우리에게도 올 최고 선인세를 지불한 작품으로 알려져 '흥행' 유무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어제 잠시 서점 나들이를 갔다가 갓 출간된 1권을 사들고 왔는데, 한때 떠돌던 '한물 간 노장'이라는 소문을 입방정으로 일축하려는 듯한 작가의 기세가 묵직하게 느껴진다. 관련기사를 챙겨놓는다(약간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다).  

경향신문(09. 08. 27) 하루키 ‘1Q84’ 열풍, 국내서도 불까

출간도 되기 전에 이토록 뜨거운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됐던 책이 또 있을까. 10억원대의 선인세와 일본에서의 뜨거운 인기로 출간 전부터 한국 출판계를 술렁이게 했던 무라카미 하루키(사진)의 신작 장편소설 <1Q84>(문학동네)가 일본에서 출간된 지 3개월 만에 국내에서 출간됐다. 1권이 먼저 나왔고, 2권은 다음달 8일 출간 예정이다.  

  

<1Q84>는 일본에서 숱한 기록을 낳았다. 출간 첫날인 5월29일 하루에만 68만부가 팔려나갔고, 7월 말까지 모두 223만부 이상이 팔렸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반과 체호프의 여행기도 함께 인기를 끌어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

국내에서도 <1Q84>가 ‘빅카드’로 톡톡한 노릇을 해낼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문학동네는 초판만 10만부를 찍었는데 10억원대의 선인세에 대한 손익분기점은 1·2권 합쳐 50만부이다. 출간 초기 반응은 좋은 편이다. 7월31일부터 8월25일까지 예약판매를 진행한 결과 7000여부가 판매됐으며 인터넷 서점 예스24에서는 출간 하루 만에 베스트셀러 6위에 올랐다.

<1Q84>는 하루키가 <어둠의 저편> 이후 5년 만에 출간한 소설이라는 점에서 독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하루키의 대표작들이 지닌 요소들을 집대성한 장편’이라는 평가답게 현실과 판타지가 기묘하게 뒤섞인 이야기, 신흥종교집단의 내부폭력과 잔인성이라는 사회적 문제, 남녀 주인공의 안타까운 순애보를 복합적으로 담아내면서 독자들을 이야기 속으로 빨아들인다.

소설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와 같이 불안정하면서도 기묘한 음향으로 시작돼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과 같이 주인공 아오마메와 덴고의 이야기를 교대로 진행시키며 전체 이야기의 얼개를 치밀하고 균형감 있게 맞춰나간다.

여주인공 아오마메는 스물아홉의 스포츠클럽 강사로 남들이 모르는 비밀스러운 직업을 하나 갖고 있다. 여자들을 학대하는 남자들을 비밀리에 처리하는 킬러다. 1984년 4월 어느 오후, 청부살인 현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탄 그는 고속도로가 꽉 막혀 약속시간에 늦게 되자 도로에서 지하로 연결된 비상계단을 통해 지하로 내려간다. 그리고 그날 이후 그녀를 둘러싼 세계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난다. 어느날 그녀는 밤하늘에서 두 개의 달을 보게 되고, 그날 이후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를 Question에서 Q를 따와 ‘1Q84’라고 부르기 시작한다.

남자 주인공 덴고는 소설가 지망생으로, 어느날 미완성 소설의 문장을 다듬는 임무를 맡게 된다. 소설의 원작자인 여고생 후카에리는 난독증에 걸린 독특한 소녀다. 그는 후카에리의 소설 속으로 빠져들고 후카에리가 일본의 급진적 신흥종교 집단에서 길러졌으며 그와 관련된 비밀스러운 과거가 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소설 속 이야기는 그녀가 직접 겪은 일이라는 것도.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전혀 연관없어 보이는 아오마메와 덴고의 관계가 서서히, 그러나 속도감 있게 드러난다. 아오마메는 신흥종교에 빠진 부모 아래서 자라 동급생들에게 따돌림을 받았고, 딱 한 번 자신을 도와준 덴고와의 사랑을 간직한 채 삶을 살아간다. 그리고 30세가 돼 ‘1Q84’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실의 시대>에서 시작된 하루키의 인기는 20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씨는 “하루키는 일상의 디테일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일상성을 실존적인 문제들과 결부시켜 현학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잘 녹여내고 신화적 모티프를 잘 활용한다”며 “일상성·철학성·신화성 세 가지 요소가 하루키 소설의 특성인데 한국 문단에서는 하루키가 표피적으로 읽혀 저평가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이영경기자) 

09. 08. 27. 

P.S. 어제 한 일간지 기자에게서 하루키 문학에 관한 글을 청탁받았지만 "좋아하지 않는 작가"라고 일축하고 말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좋아하지 않는다기보다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은 작가라고 해야 맞다. 20년 전 비슷한 시기에 국내에 상륙한 작가로 나는 밀란 쿤데라를 선호했지만 하루키에 대해선 무덤덤했다(나는 <상실의 시대>도 읽지 않았다). 몇 개의 평론을 읽고 안 읽어도 되는 작가로 제쳐놓았던 것. 그러다가 레이몬드 카버의 단편을 읽으면서 카버의 일본어 번역자이자 매니아인 하루키의 단편들도 몇 편 읽어보게 되었고, 몇 권의 관련서도 훑어보았다(<하루키, 하야오를 만나러 가다>가 유익했다).   

그러면서 흥미를 갖게 된 주제가 옴진리교 사건이 그에게 끼친 영향이다(신흥종교집단은 <1Q84>에서도 중심적인 모티브로 활용되는 듯하다). 하루키는 1995년 옴진리교도들이 일으킨 도쿄 지하철 사린 가스 사건에 충격을 받아 <언더그라운드>(열림원, 1998)라는 넌픽션을 썼는데, 나는 이를 계기로 그의 문학이 그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심을 갖는 쪽은 물론 그런 '외상' 이후의 문학이다(<언더그라운드>는 하루키의 저작으론 국내에서 가장 안 읽히는 책이다. 절판된 지 오래다).  

 

 

절판된 이 책은 아직 구하지 못했는데(재출간되면 좋겠다), 나중에 여유가 생긴다면 <언더그라운드> 이후의 세 주요 장편소설, 곧 <태엽감는 새>, <해변의 카프카>, <1Q84>를 한데 묶어서 다뤄보고 싶다. 그게 내가 쓰고 싶어하는 하루키론이다.   

주인공이 택시에서 듣는 체코 작곡가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http://www.youtube.com/watch?v=jVN5STjc4ng) 얘기로 시작하는 <1Q84>는 야나체크와 같은 조국의 작가 밀란 쿤데라를 은근히 연상시킨다. 야나체크란 이름을 쿤데라의 소설에서 처음 접했기 때문이다(하루키가 2006년에 카프카상을 수상한 것이 체코의 작곡가를 등장시킨 계기가 됐을까?). 마치 작곡을 하듯이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것도 전형적인 쿤데라식이다(원래 하루키식도 그런 것인가). 그런 '쿤데라필'도 하루키에 대한 오랜 무관심을 덜게 하지만, 결정적으로 내가 <1Q84>에 관심을 갖게 된 건 그가 체호프의 여행기에 대해서도 많이 언급한다는 소문을 접하고부터다(이 페이퍼의 제목이 '하루키-루쉰-오웰'이 아니라 '하루키-쿤데라-체호프'가 된 이유이기도 하다).   

기사에서도 "소설 속에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 음반과 체호프의 여행기도 함께 인기를 끌어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켰다."고 언급되는데, 그 여행기가 바로 <사할린섬>이다. 1890년 서른 살의 체호프가 갑자기 사할린으로의 여행을 감행하여 정치범 수용소가 있던 그곳의 실상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로 발표한 작품. 말하자면 하루키의 <언더그라운드>에 상응하는 체호프의 넌픽셕이다(하루키가 그런 맥락에서 <사할린섬>에 주목하지 않았을까라는 게 내 추측이다). 일본에서도 1950년대에 나왔던 이 책은 이번에 하루키 열풍을 타고 부랴부랴 재출간됐다고 한다. 영어본도 2007년에 나왔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아직 읽어볼 수 없다. <1Q84>가 나온다고 하기에 역자를 섭외해놓고 몇 군데 출판사에 <사할린섬>의 출간의사를 타진해봤지만 아쉽게도 '수용소'를 다룬 넌픽션이라고 꺼려했다. 우리는 아직 하루키나 체호프를 읽을 '충분한' 준비가 돼 있지 않다...  

09. 08. 27.  

P.S. 아래는 <언더그라운드>의 러시아어본 표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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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돌이 2009-08-27 15: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도대체 왜 하루키를 안 읽었을까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과 그때의 과도한 유행이 저에게 부정적인 감정을 일으켰던 것 같아요. 아 근데 로쟈님 글 보니까 한 번쯤은 이 사람글을 읽어야 할 듯한 기분이 드네요.

로쟈 2009-08-27 17:36   좋아요 0 | URL
안 읽긴 저도 마찬가지였는데, 후기작들은 생각할 거리를 주(려)는 듯해요...

펠릭스 2009-08-27 15: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 기억의 사람을 찾으려는 마음은 굴뚝같습니다.
어쩜 이 사람이 그 오랜 갈망의 그 사람인지 모를인데,,,

로쟈 2009-08-27 17:35   좋아요 0 | URL
흠 소설 한편인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8-27 16: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호프의 사할린 여행기는 저도 읽고 싶습니다.그 여행을 통해서 그의 문학관 철학관이 확고해지면서 톨스토이 류의 도덕주의에서 벗어난 계기가 되었다니까요.무라카미 하루키는 그 책을 읽었군요.역시 번역은 많이 될수록 좋지요.

로쟈 2009-08-27 17:35   좋아요 0 | URL
네, 하루키가 영문학도 많이 읽었지만 러시아문학도 상당히 읽었습니다. 일본 작가들의 기본 소양인지 모르겠지만요...

2009-08-27 17: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7 17: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22: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8-28 2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09-08-27 17: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아주 오래전에 다행히도 [언더그라운드]를 구입해서 가지고 있는데요, 저도 그의 소설과 에세이에 푹 빠져있어서인지 [언더그라운드]는 가장 안 읽히더군요.

로쟈 2009-08-27 18:00   좋아요 0 | URL
<언더그라운드>를 최고로 치는 독자들도 있습니다.^^

빵가게재습격 2009-08-27 23: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외람되지만, 왜 '외상 이후의 하루키'에게 관심을 가지시는지 여쭤봐도 될까요? 나중에 글을 쓰시면 알게되겠지만, 그 '나중'이 언제일지 좀 요원해 보여서요.^^(무척 바쁘신 듯...)

로쟈 2009-08-27 23:47   좋아요 0 | URL
네, 제 생각에도 좀 요원합니다.^^; 저는 <언더그라운드> 이후에 비로소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작가가 된 거라고 보구요, 자신이 받은 충격을 어떻게 문학적으로 소화내는가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하루키의 '사회철학'을 이후의 작품들에서 재구성해보고 싶은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