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번에 '피터 싱어 읽기' 리스트에만 보충해놓고 미처 다 읽어보지 못한 책은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산책자, 2009)이다. 필요 때문에 다시 손에 들고 리뷰기사도 하나 챙겨놓는다.   

 

국제신문(09. 08. 08) 당신의 소득 5%면 지구촌 빈곤 사라집니다

지난해 8월 부산의 청소년 인문학 공동체이자 서점인 인디고서원이 '인디고유스북페어'라는 인문학 행사를 부산에서 열었다(브라이언 파머, 발레리 제나티, 알바로 레스트레포 같은 뛰어난 지성과 실천가들이 이 행사 덕에 처음으로 부산에 왔다). 청소년들이 주축이 되어 기획했다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크고 알찼던 이 행사의 준비 과정을 취재하면서, 인디고서원의 나이 어린 인문학도들이 피터 싱어라는 철학자를 모시기 위해 꽤 공을 들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불의나 부조리와 타협할 줄 모르는 나이인 이 청소년들은 왜 이 학자에게 그토록 애정을 느꼈던 걸까.

비록 싱어가 이 행사에 참가하지는 못했지만, 이를 계기로 '죽음의 밥상' '세계화의 윤리' '민주주의와 불복종' '동물해방' 등 저서를 펴내 2005년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도 꼽혔다는 이 호주 태생 철학자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그는 철학자이며 실천가다. 세계 독자들에게 충격을 줬던 '죽음의 밥상'은 그가 농부이자 변호사인 짐 메이슨과 함께 폭넓은 현장취재를 통해 '이토록 잔인하고 붙투명한 시스템을 통해 대량생산되는 육류와 가공음식을 우리가 즐겁게 먹는 것은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가'하는 질문을 대놓고 던졌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려니 하는 '불편한 진실'을 파헤친 뒤 윤리적 차원의 질문을 던짐으로써 논쟁적 철학자라는 별칭을 달고 다니는 그의 최근 저서가 바로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다. 이 책의 주제는 '기부'다. 기본 인식은 이렇다. 세계은행 통계로, 절대 빈곤선인 하루 1.25달러 이하의 돈으로 연명하고 있는 사람은 14억 명이다. 가난한 나라에서는 푼돈이 없어 5세도 되지 못한 어린이 970만 명이 영양실조나 설사병 홍역 등으로 매년 죽어간다.  

산과(産科)적 누공(fistula)이라는 고질병이 있다. 주로 아프리카 여성들이 너무 빨리 결혼하는 관습 탓에 생긴다. 어린 신부는 골반이 채 자라지 못했기 때문에 출산을 하다 질과 방광 또는 항문 사이에 구멍이 생긴다. 이것이 누공이다. 누공이 생기면 본인의 의지와 상관 없이 대변이나 소변이 이 구멍을 타고 몸밖으로 흘러나와 지독한 악취를 풍길 수밖에 없다. 이런 여성은 당장 쫓겨나 외딴 곳에서 움막을 짓고 살다 생을 마친다. 현재 아프리카에서 300만 명이 산과적 누공을 치료받지 못하고 있으며 해마다 새로운 환자 3만3000명이 생겨난다. 의료봉사단체인 세계산과적누공기금에 따르면 이를 치료하는 데 걸리는 수술시간은 20분, 비용은 1인당 450달러가량이다. 

싱어는 묻는다. 지금 당신 책상 위에 생수병이 놓여있지 않느냐고? 먹을 수 있는 수돗물로 하루 권장량의 물을 마시면 1페니가 안 드는데 무려 1.5달러 짜리 생수를 무심코 소비하고, 3달러 짜리 라떼를 별 생각없이 마시며, 매년 1000억 달러에 이르는 먹을 수 있는 음식물을 그대로 내다버리는 것이 미국의 현실 아니냐고. 싱어는 이 책에서 가난한 나라들에 대한 기부의 필요성에 대해 감상적으로 접근하지 않는다. 논리와 인용, 최신 수치와 사례를 들면서 전투적으로 접근한다. 마치 '가난은 구제 못한다'거나 '내가 번 돈 내 맘대로 쓸 권리가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시혜를 베풀면 더 가난해질 뿐이다'라는 일반의 인식과 논리의 전쟁을 벌이는 태도다. 여기서 실천윤리학자로서 피터 싱어의 역량이 드러난다. 또 이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양심에 호소하면서 부드럽게 기부를 권유하는 '착하기만 한 책'들과 구별된다.

흥미로운 대목은 그가 많은 심리학 연구결과와 토론을 소개하면서 '기부를 주저하게 만드는 6가지 심리적 이유' '가난한 나라에 기부하는 것이 밑빠진 독에 물붓기가 아닌 이유'등을 설파한 뒤 '기부의 공식적인 기준'이라는 단원을 통해 실질적인 기부 방법의 모델까지 제시한다는 점이다. 그는 통계를 통해 부유한 나라의 여유 있는 사람들이 평균 연소득 5%를 기부하는 체제가 생기면 세계의 빈곤을 없앨 수 있다는 대안을 내놓는다. 성서에 3000번이나 나온다는 '가난을 줄이라'는 가르침을 사회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범주로 들고들어와 실천의 윤리로 생산해낸 피터 싱어의 열정이 빛난다. 이 책의 홈페이지 www.thelifeyoucansave.com에는 더 많은 방법과 이유가 나와 있다. 한글페이지도 준비 중이다. 

09. 08. 16. 

 

P.S. 지구촌 빈곤 문제와 관련하여 같이 읽어볼 수 있는 책은 싱어도 서두에서 언급하고 있는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21세기북스, 2006), 지구촌 빈곤 리포트로 소노 아야코의 <왜 지구촌 곳곳을 돕는가>(리수, 2009), 그리고 싱어 자신의 책으로 <세계화의 윤리>(아카넷, 2003) 등이 있다. <세계화의 윤리>는 또 다른 필요 때문에 자세히 읽어보려고 한다.    

 

싱어가 인용하고 있는 책을 몇 권 더 덧붙이자면, 리처드 탈러와 캐스 선스테인(카스 선스타인)의 <넛지>(리더스북, 2009). "'디폴트'를 이용해 사람들이 더 나은 선택을 하는 일을 옹호하는 책"(103쪽)으로 소개된다. '넛지'란 팔꿈치로 쿡쿡 찌르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유도하는 걸 말한다고. 그리고, 소액 대출을 통해 빈민층의 자활을 가능케 한 이야기로 무하마드 유느스의 '그라민 은행' 이야기. 책으론 데이비드 본스타인의 <그라민은행 이야기>(갈라파고스, 2009)가 최근에 나왔다. 유누스의 전기로는 <가난 없는 세상을 꿈꾸는 은행가>(좋은책만들기, 2007)가 있다.    

한편, 싱어의 실천윤리학 여정은 '동물해방론->생명윤리->세계화의 윤리'로 정리될 수 있다. 2007년 방한시의 강연들을 묶은 <이 시대에 윤리적으로 살아가기>(철학과현실사, 2008)에는 이 각각의 주제에 대한 싱어의 핵심적인 아이디어가 무엇인지 요약해주는 강연문이 원문과 함께 수록돼 있다. 말이 나온 김에 지적하자면, 싱어는 개인주의와 공리주의의 입장을 지지하며 그런 점에서 안락사에 적극적으로 찬성하는 쪽이다. 이런 식이다.

"개인적 자유에 가치를 두는 사람이라면, 삶이 계속될 가치가 있느냐 여부를 결정하는 주체는 바로 그 자신이어야 한다는 밀의 주장에 동의해야만 한다. 만약 판단 능력이 손상된 사람이 미래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을 이유로 살기보다 죽겠다는 결론에 이른다면, 살인에 반대하는 통상적인 이유는 그 사람의 요구에 응해야 하는 이유로 뒤바뀌게 된다."(234쪽) 

곧, 생사에 대한 결정은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에 맡겨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런 맥락으로 이해하자면, '판단 능력이 손상된' 사람의 의견을 존중할 수는 없다. '손상된'은 'unimpaired'(손상되지 않은)를 거꾸로 옮긴 것이다. 개인이 결정하되, 그것은 정상적인 상태에서의 온당하고도 합리적인 결정이어야 한다는 것이 싱어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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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서울비의 알림
    from seoulrain's me2DAY 2009-08-17 01:55 
    (책) 피터 싱어,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세계의 가난은 정말 해결할 수 없는가 (via 로쟈)
  2. 차라의 생각
    from tzara's me2DAY 2009-08-17 12:54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http://ow.ly/kfYW … 그런데 heterosis님 님 피터 싱어에 대한 평을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3. 우리가 기부해야 하는 이유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10-07-05 15:58 
    이번주 한겨레21은 '책 속의 책' 특집으로 '고명섭 기자가 추천하는 인문서 16선'이 실렸다. 지난해 7월부터 올 상반기까지의 출간작 가운데 16권이 선정됐는데, 나는 그 중 피터 싱어의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산책자, 2009)에 대한 서평을 급하게 청탁받고 썼다. 책을 다시 통독할 시간은 없었고, 작년 CBS 시사자키에서 소개한 내용을 바탕으로 저자의 몇 가지 주장만을 정리했다.  한겨레21(10. 0
 
 
외투 2009-08-17 13:20   좋아요 0 | URL
사람들이 '한비야' 님께 물었지요. '국내에도 가난한 아이들이 많은데,
나라밖 아이들만 챙기느냐?'며... 자신은 해외구조팀이고, 국내는
국내팀이 도움을 준다고 했습니다.
국가의 경제능력이 높을 수록 못 사는 나라에 대한 지원폭을 넓혀야
합니다. 가깝게는 북한 동포에게도 인도주의적인 지원을 해야 합니다.
생명존중 입장에서 사람이 생명을 끊을 권한은 없습니다.
자신 마저도요. 하지만 현실적인 인간적 생활권이나 경제환경이
따라 주지 못한다면 문제입니다. 국가는 개인이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을 도움줘야 복지국가, 세계인을 위해서도,,,

로쟈 2009-08-18 10:16   좋아요 0 | URL
'망원경 인류애'란 말을 조롱조로 쓰더군요. 멀리 있는 사람에만 관심을 보인다고. 사실 '지구촌'은 우리의 진화적 본성이 예상치 못했던 상황이긴 합니다...

Sati 2009-08-20 02:14   좋아요 0 | URL
현대 인류의 삶이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생각하면, 휴머니즘이니 생명존중이니 하는 말은 면피용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만...

로쟈 2009-08-20 22:53   좋아요 0 | URL
싱어의 주장은 우리가 냉소주의에 편에 설 때라도 일단은 기부는 해놓고 보자는 것이죠...

카스피 2009-08-17 15:09   좋아요 0 | URL
음,저는 그리 많은 돈은 아니지만 국내 결손 아동을 돕는데 돈을 보내고 있고 일년에 몇번 돈이 되면 푸드 뱅크에 쌀을 보냅니다.
사실 위의 글처럼 별다방,콩다방에서 마시는 커피값 몇번 아끼면 기아에서 허덕이는 많은 이들을 도울수 있지요.경제가 많이 성장한 우리나라도 이젠 그동안 다른 나라에서 받은 도움을 가난한 다른 국가들에게 되돌려 주어야 된다고 생각되는군요.

로쟈 2009-08-18 10:14   좋아요 0 | URL
네, 이미 실천하고 계시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