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학자로 한국 현대 사상사의 지도를 그려온 윤건차 교수의 신작이 출간됐다.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창비, 2009). 6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부제는 '1945년 이후의 한국.일본.재일조선인'. 물론 '재일조선인'이라는 독특한 입각점이 사상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어떻게 관련되는가가 포인트겠다. 강상중, 서경식과 함께 '자이니치(在日)' 의식의 또 한 가지 유형을 보여줄지도 모르겠다. 인터뷰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9. 07. 21) ‘자이니치’ 빼곤 일본 전후사 생각도 못해

“일본과 조선의 사이에서 ‘자이니치’를 자각한다/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려 움직이는 진자.”(시집 <겨울숲> ‘진자(振子)’ 중에서)

재일동포 2세인 윤건차 가나가와대 교수(65)의 정신적 궤적은 ‘자이니치(재일·在日)’라는 ‘디아스포라(이산·離散)’ 의식에 다름 아니다. 교육학 전공인 그가 일본·한국·자이니치의 관계사 및 사상·정신의 교착사(交錯史)에 천착하게 된 것도 ‘자이니치’로서의 정체성에 눈 뜨면서다. 

 

최근 국내 출간된 <교착된 사상의 현대사>(창비)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자이니치’로서의 체험과 사상을 바탕으로 “일본의 패전과 한국의 해방 후 지금까지 일본과 한국, 그리고 재일조선인이 걸어온 발자취를 역사에 각인된 사상체험으로써 더듬어보고자 한” 저서다. 

 

지난 17일 만난 윤 교수는 “사상이라는 게 위대한 철학을 말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는가를 탐구하는 것”이라며 이번 책에 대해 “사회과학적인 엄격함보다 자기 생각을 많이 쓰려 했다”고 밝혔다. 책과 함께 동시출간하는 시집 <겨울숲>(화남)을 통해 68편의 시를 발표하는 것도 이 때문. “사회과학만으로는 인간 사회를 전부 알 수 없다. 시를 통해 시대상황이나 정신을 반영하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한·일 관계는 양국의 역사나 사상의 근간이 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패전, 헌법, 한국전쟁, 미·일 안보조약 등 전후 일본을 관통한 중요한 사건 뒤에는 모두 ‘조선’ 문제가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에는 식민 지배의 소산인 ‘자이니치’가 있습니다. 그걸 빼곤 일본 전후사를 생각할 수 없어요.”

책을 가로지르는 핵심 사상체험은 “민족문제와 식민지문제에 관한 탈식민지화의 과제”이다. 이는 일본에서 ‘천황제’와 ‘조선’이라는 키워드로 집약된다. “일본은 천황제에 대해선 사고정지, 조선·조선인에 대해서는 방치 상태입니다. 전쟁 책임 문제도 모두들 ‘위에서 시켰다’면서 자신은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위’의 정점에 있는 천황은 정치에 관여를 안하니까 책임이 없다는 무책임주의가 횡행합니다. ‘평화헌법’이라는 것도 거짓말이에요. 일본 헌법에는 ‘외국인’이라는 단어가 없고 국민만이 있을 뿐입니다.”

윤 교수가 보기에 진보적인 지식인들 가운데서도 이 문제를 정면에서 대응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는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가 지난해 잡지 <세카이(世界)>에 천황이 한국에 가서 사과하라는 내용의 글을 기고한 것은 천황을 이용하는 것일 뿐이지 진정한 극복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윤 교수는 ‘탈민족’ ‘탈국가’를 논하고 ‘화해’를 말하는 이들에게도 의문을 제기했다. 그는 “희미한 기억을 잊어버리지 않고 용서와 화해의 단어를 안일하게 입에 담지 않으며 엷은 껍질을 한장 한장 벗겨내듯이 오로지 노력하는 것이 현재 그리고 앞으로 요구되는 자세”라고 밝혔다. 뉴라이트의 ‘자학사관’ 비판에 대해선 “일본 측의 자학사관 비판이 가해자의 입장을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한국 측의 경우는 피해자의 입장을 잊어버리고 탈식민지화의 최대 과제인 남북통일국가의 수립을 소홀히 한 것으로 외세의존의 비주체성을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일본에서 출간된 이 책은 집필에만 5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 아내를 폐암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했다. 2000년 <현대 한국의 사상 흐름>(당대)에서 ‘지식인 이념 지도’를 그려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윤 교수는 “ ‘자이니치의 정신사’를 정리하는 일이 다음 작업이자 마지막 작업이 될 것 같다”고 했다. 그는 다음 학기 숙명여대에서 강의할 예정이다.(김진우기자) 

09. 0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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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orin 2009-07-21 01:25   좋아요 0 | URL
강상중의 글을 읽으며 재일에 대한 눈을 떴고, 서경식을 읽으며 또다른 재일을 느끼게 되었는데, 윤건차는 어떨지 매우 궁금합니다. 괜찮은 저자에 대한 소개가 정말 고맙습니다.

펠릭스 2009-07-22 06:0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재일조선인 지성들에게는 공통된 어떤 의식이 잠재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디아스포라)

로쟈 2009-07-22 22:36   좋아요 0 | URL
저는 소개를 '불법적으로' 옮겨놓았을 뿐이고요. 저작권법이 강화된다고 하니까 이런 스크랩도 접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2009-07-23 15: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람혼 2009-07-21 02:40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윤건차 선생의 <현대 한국의 사상흐름>을 본 지도 벌써 10년이란 세월이 흘렀군요. 첫 번째 사진에서도 시간의 흐름이 느껴집니다. 역시나 이번에도 좋은 책 소개해주셔서 독서에의 욕망에 불타오릅니다.^^

로쟈 2009-07-22 22:35   좋아요 0 | URL
그 욕망들을 좀 식히셔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