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러운 포식자들의 사회
요즘은 TV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종종 라디오에서 시사뉴스를 듣곤 한다. 오늘 방송된 CBS 시사자키에서 경찰의 장자연 리스트 수사 중간발표에 대한 의견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CBS 시사자키(09. 04. 24) “故 장자연 수사결과, 경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민주당 김상희 의원
경찰이 오늘 장자연 리스트 수사와 관련해서 9명을 형사입건했습니다. 그러나 장 씨의 유족들이 성매매 혐의로 고소했고 세간의 화제를 모았던 조선일보의 임원은 여기서 빠졌습니다. KBS 기자를 포함해서 장자연 리스트를 보도한 언론인들은 모두 불기소 또는 내사중지 처분으로 수사대상에서 제외됐습니다. 언론사에도 성매매 예방교육을 철저하게 시켜야겠다고 발언했던 민주당 김상희 의원으로부터 의견을 들어보겠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경찰의 수사결과를 전체적으로 어떻게 보십니까?
▷ 김상희 의원> 예상됐던 결과가 아닌가 싶습니다. 40일 동안 41명을 투입해서 조사한다고 했는데 그동안 제대로 된 수사 브리핑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은 경찰이 수사를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한 의구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시나 경찰 수사는 오히려 국민들의 의혹이 증폭되고 경찰에 대한 불신만 높아졌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장자연 씨 죽음을 경제적 죽음에 우울증까지 겹쳐서 복합적으로 자살에 이른 것이라고 판단했거든요. 이것은 장자연 씨를 두 번 죽이는 처사입니다. 이런 수사결과를 내놓는 경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합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이런 커다란 권력형 비리, 뿌리가 깊었던 관행들을 수술해내야 할 작업이라면 처음부터 분당 경찰서에 맡기기엔 역부족이었네요.
▷ 김상희 의원> 네. 그렇습니다. 최근에 불거진 두 개의 성상납 비리가 있습니다. 하나는 청와대 행정관 성상납 비리이고요. 장자연 리스트라고 하는 소위 연예인 성 착취, 성 상납 비리가 있습니다. 이 두 사안이 처리되는 걸 보면서 지금 경찰이 이런 걸 수사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마찬가지로 검찰로 넘어가면 검찰에서 할 수 있겠는가에 대해 국민들은 다 의혹을 갖고 있습니다. 박연차 리스트에서 보면 죽어 있는 권력에 대해선 아주 철저한 수사를 하고 있습니다. 안 해도 될 것까지 흘려가면서 하고 있는데, 소위 살아있는 권력에 대해서는 이렇게 공권력이 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고, 그리고 언론 권력이라는 게 얼마나 막강한지 이번에 여실히 국민들이 깨닫게 됐습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언론인들이 다 빠져나가고 나니까 물론 언론인들이 제대로 알리바이를 증명했는진 모르겠습니다만, 언론도 확실히 권력에 서 있다는 걸 느끼긴 느끼겠습니다. 김 의원님이 보시기엔 언론인 봐주기 같습니까?
▷ 김상희 의원> 언론인들의 수사 하나하나에 대해선 어떻게 수사가 됐는지는 저도 자세하게 모르기 때문에 모든 언론인을 다 봐줬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게 말하기엔 지금으로선 무리가 있는 게 아닌가 싶고요. 그렇지만 지금 가장 국민들의 의혹이 컸던 부분은 성상납 받은 사람, 누가 성상납을 받았는가에 대한 부분 아닙니까. 성상납을 받았다고 하는 유력 언론사 사주의 문제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 제대로 수사를 했어야 했는데, 제가 경찰 일문일답을 보니까 그동안 수사를 했는진 모르지만, 어제 경찰이 만나서 조사한 걸로 대답을 했는데요. 대답을 하지도 않았습니다. 경찰에 물어보니까 '구체적인 사안을 확인해줄 수 없다'고 했고, 기자들이 알고서 '어제 하지 않았냐, 그런데 어제 하고 나서 하루 만에 불기소 방침을 세우는 건 면죄부 주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니까 '그것에 대해! 서는 만나기 전에 이미 수사를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수사를 언제 어디서 했냐'고 물어보니까 '본인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했다'고 대답했습니다. 저는 정말 이런 대답을 하는 경찰에 대해서 연민에 가까운 감정을 느낍니다. 경찰이 이렇게 할 수밖에 없는지. 국민들이 그렇게 의혹을 갖고 있는데 수사 못한 것 아닙니까.
▶ 진행/변상욱 대기자> 그 사람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 대해서 했다는 건?
▷ 김상희 의원> 밝히질 않습니다. 그것에 대해선 밝힐 수가 없다는 겁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결국 그 말은 원하는 만큼만 했다는 거니까 그 사람이 5분만 하자고 하면 5분만 하고 나왔다는 뜻도 되는 겁니까?
▷ 김상희 의원> 그렇죠.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정 중에 보니까 임원의 아들이 술자리에 있었다는 게 확인됐습니다. 그런데 그것에 대해서도 수사가 제대로 안 됐습니다. 그런데 왜 중간수사를 하고 이 부분을 불기소 내사중지를 하는 건지 국민들이 이해하겠습니까. 장자연 씨가 오죽하면, 연예인의 꿈을 키웠던 이 젊은 여성 연예인이 오죽하면 죽었겠습니까. 이렇게 우리 경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를 종결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 진행/변상욱 대기자> 장자연 씨가 그 많은 것들을 기억해 쓰면서 언론인에 관한 건 다 잘못 썼다고 받아들이기도 그렇고, 아무튼 경찰로서는 이래저래 난감하고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할지 앞이 안 보이니까 일단 일본에 있는 사람이 안 잡혀서 모르겠다고 하고 중단시켜놓고 차후 눈치를 더 봐야겠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군요. 장자연 씨에 대한 사건이 이번 발표로 어떻게든 큰 틀에서 마무리된다면 우리 사회에 어떤 파장이 남을 거라고 보십니까?
▷ 김상희 의원> 저는 굉장히 우리 사회가 위험한 사회로 간다고 생각합니다. 위험한 사회라는 건 신뢰가 없는 사회입니다. 주요 권력기관에 대한 신뢰, 기대가 다 무너진 사회야말로 위험한 사회 아닙니까. 그것이 가장 우려할 사안이고, 누구도 자기가 억울한 걸 경찰이나 검찰에 호소하려고 하지 않을 겁니다.
09. 04. 24.
P.S. 알다시피 "<조선일보>는 지난 4월10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과 이정희 민주노동당 의원 그리고 인터넷 매체인 <데일리 서프라이즈>의 신상철 대표이사를 고소했다. 이종걸 의원은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이정희 의원은 문화방송 <100분 토론>에서 <조선일보>의 특정 임원이 이른바 ‘고 장자연씨 사건’과 관련된 것처럼 공표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취지였다." 이종걸, 이정희, 두 의원의 인터뷰 기사도 챙겨둔다(http://h21.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24802.html). 더불어, '미디어오늘'에 실린 박경신 교수의 기고문도 옮겨놓는다.
미디어오늘(09. 04. 24) 장자연리스트 실명보도는 언론사의 의무
미디어오늘 한상혁 논설위원은 지난 22일자 <바심마당-장자연리스트와 실명보도>를 통해 장자연 리스트의 실명보도가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서 “공인의 사생활과 관련한 내용이고 그 사실관계의 확인이 매우 어려운 반면 보도 결과 그들이 입을 명예의 손상이 심각하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며 “언론의 윤리의식”을 칭찬하였다.
언론사들은 충분히 장자연 리스트 실명공개를 할 수 있었다. 현행법상 ‘오로지 공익을 위한’ 진실 공개는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더라도 면책된다. 헌법재판소는 면책조건으로서의 ‘공익’은 폭넓게 인정되어야 한다고 판시하였고 대법원은 심지어 언론보도는 공익성이 추정된다고까지 판시한 바 있다. ‘국내 유력 언론사 대표가 자살한 연예인으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는가’는 어떤 법적 해석으로도 공적 사안이며 이에 대한 진실의 공개는 당연히 면책된다. ‘실제 성상납을 받았는가’는 ‘사실관계의 확인’이 어렵겠지만 ‘그러한 문건이 있다’는 보도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며 이 진실을 보도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없이 합법적이다.
혹자는 ‘A가 그러는데 XYZ라고 하더라’ 식의 소위 전재보도도 XYZ라는 명제가 사실이라는 근거가 없다면 허위적시에 의한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편다. 검찰의 현재까지 기소관행상 그럴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그러나 XYZ라는 명제 자체가 공적 사안이고 ‘A에 의한 제보’ 자체도 공적 사안이며 제보내용이 틀렸을 가능성과 함께 균형있게 전달된다면 위와 같은 보도는 면책이 된다.
성상납이 해당 공인의 ‘공적 사안’이 아니라 ’사생활’이라서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은 사생활의 자유에 대한 몰이해에서 비롯된다. 단순논리로 따지자면 모든 범죄는 본질적으로 모두 ‘사생활’이다. 도둑은 들키지 않으려고 어둠을 타고 다니고 뇌물은 들키지 않으려고 밀실에서 수뢰된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에 대한 고발이 사생활침해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범죄행위나 범죄의심행위에 대해서는 ‘사생활’이 인정되지 않는다는 원리가 확립되어 있다. 바로 이 원리 때문에 범죄발생의 개연성이 있는 공간이나 물건에 대해서는 국가는 영장을 받아 압수수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익성의 면책을 받아내는 비용이 부담스러워 실명보도를 하지 않는 언론사들에 대해서는 나는 언론의 사회적 책임에 호소하고 싶다. 암흑 속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권력비리에 대한 고발은 확신을 주지 않는 충분하지 못한 단서를 통해 이루어진다. 예를 들어 노회찬 의원이 안기부의 불법도청파일 외에는 아무런 근거도 없이 ‘떡값검사’ 실명을 공개한 것은 진실에 대한 실체적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라 진실규명을 해달라는 사회에 대한 요청이었다.
노회찬, 장자연, 이종걸 모두 죽음 또는 형사처벌을 무릅쓰고 공적 비리에 대한 단서를 공개했다. 사람들이 공적 사안에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은 언론의 최소한의 의무이다. 이들 내부고발자들의 단말마 비명과도 같은 아니 유언과도 같은 제보를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못한다면 언론은 존재의 가치가 없다.
‘이미 누구인지 다 아므로 실명의 활자화는 실효성이 없고 관음증만을 충족시킬 뿐이다’라는 반문은 무책임하다. 몇몇 네티즌들이 형사처벌의 위험을 감수하고 여기저기 실명을 올렸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알게되어 ‘○○일보 ○사장’라고 그나마 쓰게 된 것이다. 타인들의 용기있는 고발이나 받아먹겠다는 것이 언론의 자세가 될 수 없다. 이것은 ‘실효성’이 아니라 원칙과 상징의 문제이다.
명백히 공익적인 진실을 타인에게 불리하다고 밝히지 못하는 국가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과연 ‘명예’와 ‘위선’을 구분할 수 있을까? 언론은 익명보도에 대해 독자들에게 미안해할 일이지 ‘윤리의식’을 운운할 일이 아니다.(박경신 고려대 법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