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들 아는 얘기지만, 탤런트 장자연씨의 자살과 관련한 경찰의 수사가 진행중이다. '급물살'을 탈 거란 얘기도 나오지만 아직은 답보상태이고 어젠가는 여당의 원내대표조차도 신속한 수사를 촉구한 바 있다. 지금은 검열 때문에 온라인에서 자취를 감췄지만 사건 초기엔 '장자연 리스트'가 돌아다니기도 했다. 복자(가린 글자)가 한 자씩 들어가 있었지만 대부분 유추해서 알아볼 수 있는, 한국사회의 유력한 인사들이었다. '미디어오늘'의 표현을 따르면 이들이 '더러운 포식자들'이다. 이번 수사도 유야무야로 넘어가고 그들이 계속 '포식자'로 이 사회에 군림한다면 아무리 WBC에서 야구대표팀이 기량을 뽐낸다고 하더라도 한국사회에 희망(?)은 없다. 더럽고 수치스러운 사회로 남을 뿐이다. 칼럼의 주장대로 그들이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세워지기를 기대한다(이번 사건이 어떻게 종결되는가는 과연 한국사회에서 법이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확인해볼 수 있는 중요한 척도가 될 것이다).    

미디어오늘(09. 03. 24) 더러운 포식자들…  

우리 사회를 지배하는 어둠의 포식자들이 여성 연예인들을 상대로 자신의 성욕을 채워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수치심을 견디지 못한 한 여배우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탤런트 장자연씨의 죽음! 형식은 자살이지만 내용은 타살이다.

한 여배우를 죽음으로 내몬 그 무서운 포식자들을 어떻게 법의 심판대에 세울 것인가. 이른바 ‘장자연 리스트'에 오르내리고 있는 이름들은 검은 발톱으로 대한민국을 찍어 누르고 있는 ‘무소불위 포식자'들이다. 그 포식자들의 면면이 하도 어마어마한지라 경찰마저 벌벌 떨고 있는 모양새다. 말 바꾸기와 시간끌기를 하면서 미적거리고 있다.

경찰의 늑장수사를 보다 못한 정치권이 쓴 소리를 하고 나섰다.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23일 서울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장자연 리스트’라고 불리는 것은 한국 사회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의 극치”라면서 “경찰이 좀더 적극적으로 수사해 한국 사회 상류층의 모럴 해저드가 없어지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홍 원대대표는 이어 기자들과 만나 “대한민국을 세탁기에 넣고 돌려야 한다. 상류층 윤리가 (일반 시민들과) 상당히 다르다”고 말했다.

진보신당 심상정 공동대표는 라디오에 출연, “장씨가 문건에서 밝힌 대로 노예적 성 착취가 자행됐다면, 그 사무실이야말로 여성의 아우슈비츠”라며 “여성을 착취하는 먹이사슬의 최상층 포식자에 대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위해서도 실체가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마저 꼬리를 내리게 하는 저 무서운 포식자는 대체 누군가. ‘장자연 리스트'엔 유력 일간지 대표와 재벌 총수 등의 이름이 들어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심상정 의원의 말대로 대한민국 최상층 포식자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인물들이다. 



유력 일간지 대표가 누군지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 땅의 여론을 쥐락펴락 하는 인물임은 분명하다. 이미 그 구체적인 이름이 저자거리 술좌석의 안주로 오르내리고 있다. 그가 여배우의 인권과 사회적 윤리를 짓밟으면서 냄새나는 욕정의 찌꺼기를 내뿜고 있을 때, 자신이 만드는 신문의 지면에선 얼마나 많은 위선적 기사들이 독자들을 훈계하고 있었을까.

재벌총수의 이름이 ‘장자연 리스트'에 올랐다는 사실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재벌들이 주연으로 등장했던 여배우와의 스캔들이 어디 한둘인가.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천민자본주의'가 불식되지 않는 한 재벌가의 사람들과 여성 연예인들 간에 얽히는 추문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반재벌, 반기업 정서'를 탓하기 이전에 먼저 재벌들의 극심한 모럴 해저드부터 어찌 해보는 게 순서가 아닐까.

장자연씨가 죽기 직전 한 지인에게 남겼다는 글이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일부만 옮겨보자. “근데 이렇게 누구에게라도 말하지 못하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아. 회사도 아닌, 술집도 아닌 웃긴 곳에서 생각하고 싶지 않는 일이 일어났고…. 난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고, 벗으라면 벗어야 하고. 여기저기…. 새로운 옷이 바뀔 때면 난 또 다른 사람을 만나야 하는 요즘이야." 

세상의 눈길이 미치지 못하는 음침한 밀실에서 신문사 대표와 재벌총수라는 사람들이 던지는 끈적거리는 눈길과 손길을 거부하지 못한 채 받아들여야 했던 한 여배우의 좌절감과 수치심, 분노를 상상해보라. 오죽했으면 숨이 막혀 죽을 것 같다고 했을까.

아무리 막강한 돈도, 권력도, 지위도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을 수 없다. 아직도 고 장자연씨와 같은 상황에서 신음하고 있을 다른 연예인들을 생각해보라. 장자연씨의 죽음을 헛되이 해선 안 된다. 인면수심(人面獸心)의 더러운 포식자들을 엄정한 법의 심판대에 세워라! 그 범죄를 명명백백히 밝히고 그 이름도 공개하라!(박상주 논설위원)  

09. 03. 24.  

P.S. 여배우와 '포식자들'의 유착/착취관계는 사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20년 전엔 이런 소재를 다룬 영화 <서울 무지개>가 대종상을 석권한 적도 있다(비슷한 시기에 나온 영화 <빨간 여배우>도 이 계열에 속한다). "돈과 명성을 동경하는 유라, 고향으로 가기 원하는 준. 준을 책망하며 스타가 되기위해 발돋움 하려는 유라. 하지만 준은 유라를 도와 준다. 스타가 되기까지 유라 자신도 모르게 배후에서 어떤 어른이 도와주지만 그녀는 행동을 규제 받고 애완동물처럼 취급된다. 비로소 자신이 꿈꾸던 정상이 허위와 고통의 가면이라는 것을 깨달은 유라는 준의 사랑을 그리워한다. 빠져 나가려 하지만 더욱 조여오는 현실..."이란 식의 줄거리였다. 차이라면 '유라'는 자살하는 대신에 정신병원에 감금된다는 것 정도. 결론은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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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장자연 관련 수사와 신뢰 없는 사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4-24 20:40 
    요즘은 TV 뉴스를 거의 보지 않기 때문에 종종 라디오에서 시사뉴스를 듣곤 한다. 오늘 방송된 CBS 시사자키에서 경찰의 장자연 리스트 수사 중간발표에 대한 의견 인터뷰를 옮겨놓는다.   CBS 시사자키(09. 04. 24) “故 장자연 수사결과, 경찰은 부끄러운 줄 알아야”  ▶ 진행 : 변상욱 대기자(CBS 라디오 '시사자키 변상욱입니다') ▷ 출연 : 민주당 김상희 의원 경찰이 오늘 장자연 리스트
 
 
열매 2009-03-25 12:36   좋아요 0 | URL
어제자(3.24) 뉴스데스크의 끝맺음멘트가 압권이더군요.
"야구에 열광하는 사이 '박연 차리스트'는 신구 권력층을 맹수처럼 할퀴었고 장자연 수사는 거북이처럼,YTN수사는 토끼걸음으로 갔습니다.'장자연 리스트'와 연관 있는 쪽이 '박연차 리스트'를 띄워서 덮어보려고 해서 흥미롭습니다. 한상률 전 국세청장이 슬그머니 출국해서는 수상한 냄새가 납니다. 추부길 전 비서관은 이례적으로 영장심사를 포기한 뒤 입을 굳게 다물어서 누구에겐가 무언의 약속사인을 보내 심상치 않습니다"

http://www.viewsnnews.com/article/view.jsp?seq=48273

보는 제가 철렁하며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로쟈 2009-03-25 14:50   좋아요 0 | URL
오늘 기사를 보니 '살을 베이고 뼈를 베는 싸움'이라고 적었더군요. 추부길 하나 엮어넣고 초토화를 시키겠다는 계산이 섰겠지요. '장자연 리스트'처럼 불리한 싸움은 미적거리고요...

비로그인 2009-03-25 15:08   좋아요 0 | URL
처음 뵙습니다. 로쟈님.
근데 제 개인적으로는, 로쟈님의 페이퍼에 이런 글을 드려서 그렇지만 남자들 대부분 여자들을 돈으로 사서 성관계를 맺는 일이 많이 희귀한 일은 아니지 않았나 싶습니다.......

포식자들만이 아니라 남성 사회 전체가 그런 일이 많지 않았나요? 어찌보면 그 포식자들은 남성 문화 전반에 대한 반성으로 가야지, 있는 자들 혹은 권력을 가진자들로 한정 시킨다는 건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닐것 같은데요. 로쟈님.

로쟈 2009-03-25 14:52   좋아요 0 | URL
맞습니다. 남성문화 전반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모든 남성이 권력 상층부의 '포식자'는 아니죠. '우리 안의 이명박'이 문제되는 것도 맞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명박'의 책임이 면책되는 건 아닌 것과 마찬가지라고 봅니다. '나'라도 그랬을 텐데라는 문제의식이 실제의 '범죄' 행위에 대한 면죄부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이번 건 같은 경우는 자신의 우월한 지위나 권력의 남용이고, 성적 착취죠. 대부분이 남자들이 여자를 돈으로 사기도 하지만, 이 '포식자'들은 '돈'을 내지도 않은 것 아닌가요? 죄에도 경중이 있으며,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 없다고 해서 모든 '악'이 동급으로 취급될 수는 없습니다...

비로그인 2009-03-25 15:01   좋아요 0 | URL
저는 그들이 돈을 내고 내지 않았고가 문제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합니다. 나는 여자를 돈을 내고 이용했으니 다르고 할 수는 없는 일이겠지요. 이건 엄연히 거래이고 저들은 권력의 남용이다 라고 말한다는 건 여성의 몸을 어떤 이유건 남성이 자신이 가진 무엇으로 이용했다는 것에서는 동일하지 않을 까 싶습니다.
저의 의견은 저들에게 면죄부를 줄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지요. 저들과 함께 모두가 비판받고 반성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지금 저는 남성이 여성의 몸을 어떤 의미로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삼는다는 문제에 있어서 남성 상층부의 포식자만이 비판되어서는 안된다는 점을 말하고 싶습니다. 상층부 포식자들에 대한 면죄부는 말씀하신 대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구요. 그건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까요.

로쟈 2009-03-25 17:56   좋아요 0 | URL
"상층부 포식자들에 대한 면죄부는 말씀하신 대로 당연히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구요"라고 동의하신다면, 의견 차이라고 할 건 별로 없겠습니다. 다만 현대인들님은 거기에 덧붙여 "저들과 함께 모두가 비판받고 반성해야 한다"고 보시는 거지요. 저는 그런 의견이 '물타기'로 오용되지만 않는다면, 공감합니다. 덧붙이자면, "남성이 여성의 몸을 어떤 의미로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하나의 도구쯤으로 삼는다는 문제"가 걸린 거라고 생각지는 않구요(그건 염결주의적 태도라고 봅니다. 우리는 모두 이성뿐만 아니라 타인을 수단으로서 이용합니다. 문제는 '수단으로만' 이용하는 것이지 '수단으로' 이용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서요). 결과적으로 좀 주목을 끄는 페이퍼가 돼버렸지만, 사실 이번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거라고 예상하지 않습니다. '리스트'도, 적어도 공표되진 않을 겁니다(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더라도). '법'과 '권력'은 '그들'의 편일 테니까요. 그게 한국사회의 진실입니다. 다만, 그런 진실에 불만을 토로할 수는 있고, 또 제2, 제3의 '장자연'을 예방할 수는 있겠죠. '포식자들'도 좀더 주의하게 될 테니까요... 그들의 사생활은 '음지'가 적당합니다...

paul 2009-03-25 22:46   좋아요 0 | URL
한 인간의 처절한 최후가, 여성과 남성의 성차의 문제로, 또 다시 남성의 욕망의 폭력적 분출로 "해석"되어야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군요.
어느 막다른 상황에 놓인 생명이 죽음보다 더한 괴로움 앞에서 떨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면 슬픔을 넘어서서 인간의 존재에 대한 어떤 무력함마저 느낍니다. 인간의 욕망, 그리고 그것을 가리며 휘장처럼 화려하게 걸쳐진 권력과 또 그것에 아첨하는 자들과 짐짓 자신을 그들과 다르다는 듯, 동경하는 마음을 감추려 목소리만 높여 단죄의 칼날을 세우는 자들, 모두가 공범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저는 모든 자살은 타살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솔직히 단죄가 제 2, 제 3의 또 다른 피해자들, 자신을 파괴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을 막을 수 있을지도 의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처연한 비관론입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약한 여성으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의 처참한 최후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머리 숙여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악'에 의해 합리화되지 않는 지점까지 누군가는 고통스럽고 처절하게 책임을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남겨진 자들에게 그러한 단죄만큼 중요한 것은, 뼈져리게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으로 싸움이 끝났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것을.....
여성이든, 남성이든, 사회가 되었든, 우리의 내면이 되었든 마찬가지입니다.

로쟈 2009-03-26 02:04   좋아요 0 | URL
이번 사건에 대한 냉소적인 시각도 적지 않더군요(피해자의 자업자득이라는). 여러 이유에서 자살을 선택하는 이들이 적지 않은 실정이므로 그에 대한 '책임'을 묻는 일의 견적이 얼른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다만 이번 사건은 '가해자'들이 비교적 분명하게 드러나 있으므로 이들의 책임을 엄정하게 추궁하고 밝힐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그 또한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HugoWonchulKIM 2009-03-26 23:44   좋아요 0 | URL
포식자, 성상납,매춘...그런게 아니라 방법이 다를 뿐인 강간 또는 성적노예 sexual slave 에 관련된 내용이 아닐까요.

로쟈 2009-03-27 17:10   좋아요 0 | URL
포식자 등도 그런 의미를 갖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