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스러운 일이지만 이번주에도 지갑을 열게 하는 책은 많지 않다(보통 확실한 필요 때문이거나 절박한 관심 때문에, 혹은 예기치 않은 횡재일 경우에 구입을 서두르는 편이다). 그럼에도 눈길을 잡아끄는 책이 없지 않은데, 인문서 가운데는 단연 <일급 비평가 6인이 쓴 매혹의 인문학 사전>(앨피, 2009)이 '탐나는 책'이다. 찾아보니 "현재 일본 문학계를 이끄는 6인의 비평가들이 의기투합하여 1991년에 펴낸 <읽기 이론>을 번역한 책이다. 문학에서 출발하여 사상, 실제 비평으로 이어지는 심오하고도 명쾌한 내용으로 일본에서는 스테디셀러이다."라고 소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읽기 이론'이란 제목이 더 마음에 들지만, '이론'이란 말은 국내 교양서에서 기피 용어다. 아쉽게도(물론 예견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기사는 뜨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이론 읽기' 범주에 들어갈 책은 조엘 도르의 <라깡 세미나 에크리 독해1>(아난케, 2009)이다. 라캉 직계 제자의 '라캉 독해 입문서'인데, 2권이 마저 출간되면 앞으로 출간될 라캉의 <세미나>들과 <에크리> 읽기에 유익한 참조가 되겠다(<에크리>는 드디어 올해 출간되는 듯하다). 이 두 권과 함께 관심도서로 꼽아본 책은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그린비, 2009)이다. 제목에서부터 '학술적인' 냄새를 팍팍 풍기는데, 다행스럽게도 '매혹의 인류학' 같은 제목으로 개명되진 않았다. 주중에 서점에서 보고 가장 '놀란' 책이기도 하다. 예기치 않은 타이틀이어서인데, 그럼에도 리뷰기사는 충분히 예상가능했다. 한겨레의 리뷰를 옮겨놓는다. 나도 조만간 서평을 쓰게 될 듯하다(표지는 국역본이 더 마음에 드는군).     

한겨레(09. 04. 11) 자본주의를 구원하라, 인류학이여

인류학은 자주 서구 제국주의 시대 욕망의 산물이거나 서구인들의 이국취미의 학문적 발현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2001)은 이런 생각을 정면으로 부정한다. 이 책은 인류학이 대안적 세계에 대한 비전을 열어줌으로써 당대 지배체제에 대한 투쟁의 무기가 될 수 있으며 실제로 인류학의 전통 속에서 그런 투쟁의 역사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 데이비드 그레이버 자신이 학문과 투쟁을 병행하는 사람이자 학문을 투쟁의 장으로 삼는 사람이다. 뉴욕대 교수를 거쳐 런던대 교수(사회인류학)로 재직중인 그는 ‘지구적 민중행동’ ‘세계산업노동자조합’ 같은 급진 사회운동 조직에서 활동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운동가이기도 하다.  

이 책의 관심은 가치이론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인류학적 연구를 통해 제출하는 데 있다. 그의 문제의식의 출발점은 시장과 화폐를 가치의 중심으로 삼는 이 시대가, 인류학적 조망 아래서 보면 보편적이기는커녕 오히려 특수한 사례라는 인식이다. 그런 인식 위에서 그는 먼저 우리 시대의 지배 가치에 대한 비판에서부터 논의를 풀어간다. 개인들이 자유로운 시장에서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만인에게 결국 이익이 된다는 명제는 우리 시대의 거의 보편적인 믿음이 됐다. 지은이는 이런 믿음이 신자유주의 체제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개인도 시장도 역사적 차원에서 보면 최근세사의 산물일 뿐이며, ‘자기 이익 극대화 노력’이라는 것도 서구에서 발전한 자본주의 질서에서만 뚜렷하게 확인되는 특징이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자유시장을 초역사적 보편 체제라고 주장한다면, 그것은 강자·부자의 지배와 이익을 은폐하거나 정당화하려는 이데올로기 작업일 뿐이다. 

이와 함께 지은이는 ‘포스트모더니즘’ 학문 조류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주류가 일체의 보편적 평가기준을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상대화함으로써 결국 연대와 저항의 기반을 무너뜨렸다는 것이 지은이의 시각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상대주의가 귀착한 것은 ‘개인의 창조적 자기형성’이었고, 그것은 결국 사회의 파편화일 뿐이었다. 흥미로운 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런 상대주의가 신자유주의의 총체적·보편적 가치평가 체제와 상응한다는 사실이다. 한쪽은 파편화하고 다른 한쪽은 그 파편적 존재들을 총체적 가치 체제에 복속시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지은이는 인류학이 신자유주의 세계체제, 더 근본적으로는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책에서 집중적으로 살피는 사람이 인류학의 거인 마르셀 모스(1872~1950·사진)다. 지은이의 목표는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주의 비판과 모스의 인류학적 연구를 결합하는 것이다. 지은이가 보기에 “마르크스와 모스는 서로에 대한 완벽한 보완물”이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에 대한 철저한 비판에 투신했다면 모스는 비교인류학의 성과를 통해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제시했다.” 또 “마르크스는 지속적으로 인류학에 관심이 있는 사회주의자였으며, 모스는 평생 동안 적극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했던 인류학자였다.” 

여기서 지은이가 관심을 집중하는 것이 ‘사회주의’로 표출된 모스의 정치적 열망이다. 그의 대표작인 <증여론>이 바로 그런 경우인데 “다른 어떤 저작보다 더 강렬한 정치적 열망의 산물”이었다. 이 저작에서 모스는 자본주의 체제 바깥에 놓인 부족들을 연구함으로써 이 자본주의와는 전혀 다른 가치법칙이 작동하고 있음을 확인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북아메리카 북서부 원주민인 콰키우틀족의 ‘포틀래치’임은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콰키우틀족의 경우에서 보이는 교환양식을 ‘선물경제’라고 명명했다.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선물을 주고 그 선물을 받은 쪽은 또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다시 선물하는 행위양식이 이 선물경제의 특징이다. ‘자기 이익 극대화’를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 시장과는 아주 다른 교환양식이다. 자본주의 체제가 화폐의 가치, 상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놓을 때, 선물경제권에서는 “공적으로 무언가를 선물하는 기쁨이나 관대한 분배의 기쁨, 공적이고 사적인 향연에서 베푸는 호의의 기쁨”이 최우선의 가치가 된다. 여기서 모스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가치법칙이 작동하는 대안 체제를 찾아냈다.

지은이는 모스가 <증여론>을 발간하던 해에 <볼셰비즘에 대한 사회학적 평가>를 함께 출간했음을 상기시킨다. 모스는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한편으로 긍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했다. 그 혁명의 폭력적·당파적 성격에 의구심을 품었고, 특히 권력 중심적 사고에 거부감을 느꼈다. 지은이는 모스의 이런 우려를 수긍할 만한 것이라고 말하면서도, 권력 문제를 회피하는 혁명 열망은 순진한 도덕주의로 귀결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모스의 도덕주의가 마르크스의 냉철한 이론과 결합한다면 대안을 창출하는 상상력을 발동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고명섭 기자)  

09. 04. 11. 

  

P.S.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이 바로 떠올려주는 책은 물론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이다. 거기에 덧붙이자면 '마르셀 모스'론을 쓴 레비 스트로스(<구조인류학>이 재번역되어야 한다)와 일반경제로 확장시킨 <저주의 몫>의 저자 조르주 바타이유다. 최근 다시 주목받고 있는 칼 폴라니의 경제인류학과 비교해보아도 흥미롭겠다(참고로 하이에크와 폴라니의 비교는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904101737055&code=9003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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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류학적 가치이론과 자본주의의 외부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12 00:26 
    이번주 교수신문에 실은 서평을 옮겨놓는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의 <가치이론에 대한 인류학적 접근>을 훏어보고 없는 시간에 부랴부랴 작성한 것이다. 안 그래도 저자의 다른 책 <아나키스트 인류학을 위한 단상들>을 어제 구했는데,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 이 책은 105쪽 분량이니까 같은 저자의 책이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얇긴 하다.     교수신문(09. 05. 11) 시선 끄
 
 
푸른바다 2009-04-11 11:58   좋아요 0 | URL
마르셀 모스의 증여론은 모셔다만 놓고 아직 읽지 않았는데, 마침 저도 아침에 배달된 한겨레에 실린 이 기사를 읽고 그 의미를 새롭게 생각해 보게 됐네요^^

로쟈 2009-04-12 11:54   좋아요 0 | URL
저는 모셔둔 책이 어딨는지 못찾겠어요. 아마 처박아두었나 봅니다...

게슴츠레 2009-04-11 12:50   좋아요 0 | URL
최근에 한겨레21에 폴라니 특집이 실렸었죠. 개인적으로 저는 우석훈 씨 등이 주도하고 있는 '인류학적 시각'들이 좌파의 방향감각상실에 대한 징후이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괴물의 탄생>의 경우, 스위스의 시계나 이탈리아의 수제 자동차 생산 등의 사례를 들면서 강한 국민경제와 제3부문의 연관성을 드시던데 '자본주의의 세계성'에 대한 고민이 보이지 않더군요. 제3부문의 존재가 자본주의적 임금노동이 세계를 포괄하지 못한다는 논거는 될 수 있겠지만, 동시에 그것이야말로 억압적 세계체계를 구성하는 필수적 고리일 수 있다는 것, 그저 주변부의 착취를 그 저변에 둔 고급 소비재의 생산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세계체계분석과 고진을 읽으면서 들더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류학적 성과들이 모두 거부되어야 할 유토피아적 환상이라는 결론으로 나아가서도 안 될 것 같습니다. 인류학을 좌파적으로 전유하기 위해서는 지금보다는 신중하게 다뤄질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그런 맥락에서 (아마 읽을 시간은 나지 않겠지만;ㅂ;) 이 책이 기대가 되는군요. 마르크스와 모스를 어떻게 저자가 조화시키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카자와 신이치 씨의 <사랑과 경제의 로고스>와 함께 보면 좋을 것 같군요.

로쟈 2009-04-12 11:56   좋아요 0 | URL
역자인 홍기빈 씨가 '폴라니주의자'이죠.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주목일는지 판타지일는지는 진지하게 검토해봐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11 15:55   좋아요 0 | URL
에밀 뒤르카임은 사회주의자와 사귀면서도 사회주의에 대해 거리를 두었는데 그 제자인 마르셀 모스도 그랬군요.두 사람의 사회주의관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겠네요.
그레이버 책은 모스 연구서로 읽으면 좋겠군요.

로쟈 2009-04-12 12:01   좋아요 0 | URL
'뒤르켐'이라고 보통 읽지요(전공자인 김종엽 교수를 따라서). '뒤르카임'은 영미식이고, 보통 '뒤르껭'이라고 많이 읽었었지요...

푸른바다 2009-04-12 13:26   좋아요 0 | URL
고전 사회학의 3대 거장이라고 하는 맑스, 베버, 뒤르켐 중 우리나라에서 가장 푸대접을 받는 사람이 뒤르켐이 아닌가 싶군요^^ 베버의 형편도 썩 좋아 보이지는 않지만... 제가 알기론 불어에서 직접 번역된 그의 저작은 단 한권도 없는 듯 싶어요. 번역되었던 책들도 대부분 절판 상태이고... 우리나라 강단 사회학이 미국식 구조 기능주의에 가장 큰 영향을 받았다면 그 할아버지에 해당하는 사람이 뒤르켐일텐데 말입니다. 물론 현재 한국 좌파 계열의 이론적 원천 중의 하나인 프랑스의 인류학과 사회과학에도 뒤르켐의 영향은 매우 크겠지요. 아무튼 기능주의의 태두 탈콧 파슨즈의 책도 번역된 게 거의 없으니 중역이라도 몇권은 번역되었던 뒤르켐의 사정이 더 나은지도 모르지요. 번외자로서 할 소리는 아닌지 모르지만, 강단 사회학계의 부실한 기초를 상징하는 것은 아닌가 느껴져 좀 씁쓸합니다. 좌파들의 경우 그의 후계자들을 소화하는 데도 벅차서 그들의 외할아버지 뻘인 뒤르켐까지 관심이 미치기는 시간이 부족할 지도 모르겠네요. 제 개인적으로는 뒤르켐에 관심이 있고, 근대성에 대한 그의 '상대적으로 긍정적인 시각'도 분명히 참고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 보니, 제가 댓글을 다는 순간 아이콘을 바꾸셨군요^^ 취조 당하듯 의지에 앉은 지젝으로 ㅎㅎㅎ 마침 지젝의 '까다로운 주체'를 주문한 상태입니다. 이제 지젝에 대한 취조를 시작해 볼까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4-12 15:11   좋아요 0 | URL
알사스 로렌 출신이라서 독일발음처럼 읽는다고 해서 뒤르카임이 아닌가 하고 적었어요.거기가 수천년 독일문화권이라서...물론 프랑스 사람으로 통합니다만.그런데 영어발음은 뒤르켐이 아닌가요? 전에 이 문제로 참고한 책이 있었는데 기억이 잘 안나네요.저는 그동안 뒤르켕으로 표기했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4-12 20:5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람혼 2009-04-13 01:07   좋아요 0 | URL
그레이버의 책이 단연 눈에 띄는군요. 곧 구해서 탐독해 봐야겠습니다. 언제나 좋은 책 발 빠르게 소개해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로쟈님. 그나저나 서재가 새단장을 했네요. 새롭게 바뀐 배경화면과 새로운 지젝 사진이 서로 호응하는 듯합니다.^^

로쟈 2009-04-14 23:15   좋아요 0 | URL
네, 요즘 세상이 하도 '폭력적'이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