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드릭 제임슨 - 맑스주의.해석학.포스트모더니즘, 문예과학이론신서 28
숀 호머 지음, 이택광 옮김 / 문화과학사 / 2002년 2월
평점 :
절판


국내에 많이 소개돼 있으면서도 정작 제대로 읽히지 않는 이론가 중 대표적인 사람이 프레드릭 제임슨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맑스주의자이자 포스트모더니즘 논쟁에서 빠지지 않고 인용되는 저자임에도 불구하고,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후기 자본주의의 문화논리>는 물론이고, 아직 주저인 <정치적 무의식>조차 번역되고 있지 않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그런데, 이 제임슨의 저작들을 총체적으로 개괄적이면서도 예리하게 비평하고 있는 숀 호머의 번역서를 보면 왜 사정이 그럴 수밖에 없는가를 짐작하게 한다. 요점은 두 가지다. 그의 이론의 난해성, 그리고 연구자들의 무성의.

저자의 한국어판 서문까지 달고 있는 번역서가('문장의 미묘한 뜻에 대해 자세하게 답변해준 이 책의 저자 숀 허머에게도 고마움을...') 이토록 무책임하고 무성의하게 번역될 수 있는지는 놀라울 정도이다. 비록 오역의 향락이라 할 만한 지젝의 <향락의 전이>에는 다소 못미치지만, 이 책은 손가락으로 꼽을 만한 오역의 전범이다. 제임슨이나 호머의 문장이 다소 난삽한 것은 사실이지만, 단어나 구의 누락에서 인명 바꿔치기, 문맥 거꾸로 이해하기 등 오역의 모든 구색을 갖춘 번역문을 읽는 일은 고역이다(덕분에 원서를 읽게 됐지만).

어쩌다 발견하는 오역은 즐거움을 주지만, 간혹 정확한 번역문장을 발견하는 일은 짜증스럽다. 믿을 만한 출판사에서 제대로 된 교열/교정을 보지 않았다는 것도 실망스럽다. 게다가 '물론 이 책이 개론서라고 해서 만만한 독서를 허락하는 것은 아니다'(20쪽) 토를 달고 있는 역자의 서문을 다시 읽자니 개탄스럽다. 만만하지 않은 책은 번역하지 않으면 되지 않은가!

이 책에서 오역은 두루 산재해 있지만, 특히 <정치적 무의식>을 다룬 2장, 3장에 집중돼 있다(사실 뒷부분은 자세히 읽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비근한 예를 들어보자.

'맑스주의는 실천으로부터 제공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정치적 투쟁과 미래에 대한 대안적 전망을 투사할 필요성으로부터 생명을 얻는 것이다.'(159쪽)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맑스주의는 무엇보다 실천의 철학이 아닌가?(역자도 이상하게 생각해야 했다.) 원문은 'Marxism cannot be severed from practice...'이다. '맑스주의는 실천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인데, 역자는 (아마도) severed를 served로 본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는 애교이다. excess(과잉)을 난데없이 '중층결정'으로 번역하고, 시니피앙(기표)/시니피에(기의)는 서로 바꿔 번역했다. 만프레드 프랑크의 말을 제임슨의 말로 옮기고, 하버마스의 '미완의 기획(프로젝트)'는 '미완의 기억'으로 탈바꿈시켰다. 긴 문장을 인용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인데, 압권 중의 하나를 보자.

'생산양식에 대한 맑스주의 개념은... 환형적 제곱의 사고를 촉발한다.'(80쪽) 환형적 제곱의 사고라니? 'a squaring of the circle'를 그렇게 번역한 것인데, 그것은 말 그대로, 원을 정방형으로 만들다, 즉 불가능한 일을 가리킨다. 문맥상 그것은 맑스주의의 생산양식 개념이 제임슨의 '구조적 역사주의'(역설적이지 않은가!)를 어떻게 설명 가능하게 하는지에 대한 것이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에 대한 제임슨의 전유를 다루는 부분에서도 역자의 몰이해는 여전한데, 그가 '들뢰즈의 극장'에서 무얼 보았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 문화의 음란한 환타지'라고? 물론 거기엔 오역의 음란한 환타지도 당연히 포함돼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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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5-02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쟈님 좋은 글 감사 덕분에 돈 굳었습니다.하하

자꾸때리다 2011-01-01 0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택광이 이런 사람이었나요? ㅎㄷㄷ

clsv2948 2014-07-26 1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휴~~구입할 뻔 하다가 <로쟈>님의 날카로운 지적을 읽고 안사기로 했습니다.
휴~~~쓸데없이 돈 날라갈 뻔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