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월의 읽을 만한 책을 꼽아본다. 간행물윤리위원회 추천도서는 그젠가 발표되었고, 내주에는 책을 골라둘 만한 여유가 없을 듯싶어서 미리 작성해놓기로 한다.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내년 전망이 밝지 않은 탓에 새해를 맞는 일이 전혀 기쁘지 않다(하긴 올해도 그랬다. 그리고 정말로 1년 동안 즐거운 일이 드물었다). 다만 개인적으로 겨울 동안의 일이 잘 마무리되어 '무사히' 봄을 맞게 되기만을 바라는 정도다(그게 새해 소망이다!). 다들 아시겠지만, 1월도 12월만큼이나 금방 지나간다. 그 '없는' 시간에 읽을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1. 문학
작가 신경숙씨가 꼽은 문학분야의 책은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까치, 2008)이다. 무슨 책인가? "어떤 책은 책의 내용을 알기도 전에 표지만 보고도 그 책이 좋아서 두 손으로 쓸어보게 되는 책이 있다. <그림과 함께 읽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는 그런 책이다.(...) 권태에 빠진 청년이 오후에 홍차와 곁들여 마들렌느를 먹다가 그 맛을 회상하며 소설의 단초를 풀어나가는 <잃어버린 시절을 찾아서>에는 미술관을 방불케 할 만큼 헤아릴 수 없는 많은 그림들이 등장한다. 소설 속의 수많은 회화들은 그저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모든 등장인물들의 의식의 흐름과 깊은 관계를 맺으며 흐름을 주도한다. <스완씨 댁쪽으로>를 비롯해 7권의 책 속 그림과 관련된 대목만으로 이루어진 책이다."


'잃어버린 시간'이 '잃어버린 시절'로 바뀐 것은 '티내기'의 일종일 텐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다. 여하튼 더 친숙한 제목으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는 그림 이야기가 많이 등장하고, 이 책은 그 그림들을 프루스트의 원문과 같이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는 것. 일종의 '보너스'이고 '서플먼트'이겠다. 그걸 제대로 감상하려면, 물론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먼저 손에 들어야겠고. 나는 책들이 다 박스에 들어가 있어서 '잃어버린 시간'보다 '잃어버린 박스'를 먼저 찾아야 할 형편이지만, <갇힌 여인> 같은 경우는 도서관에서 대출해 읽어볼까도 한다. 들뢰즈의 <프루스트와 기호들>(민음사, 1997)과 이성복의 <프루스트와 지드에서의 사랑이라는 환상>(문학과지성사, 2004)도 마들렌 과자처럼 곁들여 읽을 만하다.
7부작 중에 굳이 <갇힌 여인>을 거명한 것은 샹탈 애커만의 영화 <갇힌 여인>(2000)을 보기 위해서다. 이 영화에 대한 조금 고급한 해설은 이렇다.
1970년대 초반에 루키노 비스콘티는 자신의 마지막 영화가 될지도 모른다는 꽤 비장한 생각을 갖고서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서>를 스크린 위로 옮겨내려는 작업에 착수했지만 결국 결실을 맺지는 못했다. 해롤드 핀터가 동참했던 조셉 로지의 뒤이은 ‘프루스트 프로젝트’도 실현에 이르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현대)영화는 알랭 레네의 예에서 보듯 프루스트로부터 신선한 자극과 심원한 배움을 드물지 않게 구해왔음에도 방대함과 심오함과 복잡함이 뒤엉킨 프루스트의 실지(實地)마저 감히 정복하진 못했다. 실제로 영화화 프로젝트에 돌입했으면서도 그것에 대해 미신에 가까운 두려움을 가졌었다는 비스콘티의 태도는 프루스트란 대작가를 곤혹스럽게 대하는 영화 자체의 전반적인 태도와 통하는 데가 있지 않나 싶다.

영화가 프루스트에 대한 그 같은 두려움 혹은 무력감을 극복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은 최근의 일인데, 그 공로는 <되찾은 시간>(1999)의 라울 루이즈에게 돌아가야 할 것이다(폴커 슐뢴도르프의 <스완의 사랑>(1983)이 시기상으로는 앞선 프루스트 영화이지만 겉만 번지르르하고 전반적으로는 밋밋한 이 코스튬 드라마에서 어떤 영화적 ‘성취’를 발견하긴 어렵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마지막 편을 빼어나게 각색한 이 영화에서 그는 프루스트의 다층적인 세계가 영화의 마술적인 힘과 조화롭게 만날 수 있음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영화’라는 이슈를 고려할 때 좀더 놀라워해야 할 ‘사건’은 루이즈의 선구자적인 영화가 나온 바로 다음해에 샹탈 애커만의 <갇힌 여인>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 영화는 프루스트의 텍스트에 다가가는 쪽인 루이즈와 달리 그것을 영화감독이 자기쪽으로 끌고 오는 식으로 만들어졌다. 애커만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5편에 해당하는 <갇힌 여인>(La Prisonniere)에서 핵심이 된다고 생각하는 설정과 주제를 추출해내서 그것을 그녀 특유의 ‘내핍의 미학’ 안에 용해해 <갇힌 여인>(La Captive)이란 영화를 만들어냈다. 그렇게 축조된, 프루스트 영화로는 믿을 수 없게 단순해 보이면서도 주제와 형식에의 과감한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이 영화는 프루스트를 대하는 ‘다른’ 식의 창의적인 태도가 존재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인다.(홍성남_영화평론가)
요는 한번 봐볼 만하다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프루스트의 소설을 먼저 읽어보는 게 유익하지 않을까 라는 것이다. 사실 한국어 완역본은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긴 한데 개인적으론 원로 불문학자 홍승오 선생의 번역을 고대하고 있다.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정년 퇴임 이후에 이 작품의 번역을 필생의 과제로 삼겠다고 하신 까닭이다. 워낙 대작이라 과연 또다른 한국어본이 나올 수 있을지 궁금하다...



2. 역사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이 추천한 책은 김덕진의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2008)이다. '17세기의 또다른 역사'라고 소개 페이퍼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 책이다(http://blog.aladin.co.kr/mramor/2441832). 전문가의 평은 이렇다. "흉년(凶年)의 원인은 대개 다섯 가지다. 한해(旱害:가뭄)·수해(水害)·냉해(冷害)·풍해(風害)·충해(蟲害)가 그것인데, 이중 한 두 가지만 겹쳐도 쑥대밭이 된다. 이 다섯 가지 재해가 한꺼번에 닥쳤을 때가 이 책에서 서술하는 현종 11년(1670)과 현종 12년(1671) 때였다. 이를 경신(庚辛)대기근이라고 부르는데, 현종 11년 봄 냉해(冷害)와 한해(旱害)가 밭농사를 망치더니 여름에는 수해가 논농사를 휩쓸었다. 겨우 살아남은 작물을 가을철의 풍해(風害)·충해(蟲害)·냉해가 다시 덮쳤다.(...) 2년에 걸친 대기근이 인간과 사회를 어떻게 뒤바꾸어 놓는지 ‘기근’이란 현미경을 통해 본 새로운 역사서다."
이 '새로운 역사서'와 함께 읽어볼 만한 책은 '기념비적인 역사서'이다. 짐작에 2008년에 나온 가장 중요한 한국사 책은 제임스 팔레의 <유교적 경세론과 조선의 제도들>(산처럼, 2008)이 아닌가 싶다. 간략한 설명으론 "유형원의 <반계수록>에 나타난 경세사상을 초점으로 삼아 조선 후기 유교적 경세론의 실체를 추적해간" 책인데, 저자가 그런 길을 택한 건 "유형원이 17세기 조선 사회의 약점에 대한 전체적이고 포괄적인 분석을 쓴 조선의 첫 번째 학자로서 <반계수록>을 통해 조선의 유교적 사회의 본질과 복잡성을 파악하는 데 훌륭한 경로를 제공해주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어제 팔레 교수의 <전통한국의 정치와 정책>(신원문화사, 1993)과 영어로 나온 <Views on Korean Social History(한국사회사에 대한 관점)>을 배송받았고, 지난주에는 미국의 한국학을 개관하는 글들을 좀 읽었다(한홍구 교수와 팔레 교수의 정년 기념대담도 포함된다). 몇 가지 이야깃거리들이 있는데, 기회를 봐서 1월에 풀어놓도록 하겠다(분량도 분량이지만 20년간의 노작인 <유교적 경세론>은 워낙 고가인지라 일단 1월에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값을 마련해야겠다!).



3. 철학
김상환 교수가 추천한 철학분야의 책은 청소년용이다. 김보일의 <14살 철학소년>(부멘토, 2008). 추천의 변은 이렇다. "청소년을 위한 철학 에세이. 엽서 분량의 짧은 글들 속에 재미와 교훈, 지식과 상상, 사례와 통찰이 깔끔하게 엮여있다. 이야기는 언제나 상식을 깨는 질문에서 시작한다. 무지개 색은 일곱 가지일까? 기생충은 쓸모가 없을까? 굶주림은 식량 부족 때문일까? 동물은 야만적인 존재일까? 앵무새 같이 통념을 내뱉기 쉬운 청소년에게 지혜의 세계에 눈뜨게 하는 물음이다. 돈키호테처럼 천방지축이기 쉬운 청소년에게는 바르고 올바른 생각의 무게를 일깨울 것이다. 성장기에 있는 중·고등학생에게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는 힘을 어떻게 길러주어야 할지를 늘 고민하는 국어교사의 역작이다."
그런데 왜 하필 14살인가? 중1 나이다. 예전엔 17살(고1) 때 뭔가 결정하거나 결정되는 걸로 생각했는데, 요즘은 하도 '선행'을 하니 이 또한 빨라진 모양이다(하긴 국제중 입시라는 것도 새로 생기지 않았나?). 찾아보니 열네살 때 인생의 진로도 결정해야 하고 토플도 만점 받아야 한다. 왜 사는지, 철학적 고민을 해볼 만한 나이다!


잇대어 읽을 만한 철학서로는 윌 듀란트의 <철학이야기>가 있다. 국내에 3-4종의 번역이 나와 있는 듯싶고 그만큼 대중적이란 뜻도 된다. 개인적으론 제일 처음 읽은 철학서이기도 하다. 그래도 고3 때였던 듯싶은데, 요즘의 준재들에 비하면 많이 늦은 편이겠다. 뭐 늦더라도 꾸준한 것이 미덕이라면 나의 철학 성적표도 나쁘진 않아 보이지만...


4. 정치
정치분야의 책으로 손호철 교수가 고른 것은 미국의 전 대통령 지미 카터의 <진정한 리더는 떠난후에 아름답다>(중앙북스, 2008)이다. 사실 내용이야 제목에서 이미 짐작할 수 있는 책이다. 즉, "<진정한 리더는 떠난 후에 아름답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인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자신의 은퇴 후의 삶을 담담하게 기술한 의미 있는 책이다. 구체적으로, 이 책은 “세계를 평화롭게, 인류를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백악관을 떠난 뒤 카터재단을 만들어 세계를 누벼온 그의 후반부의 인생을 감동적으로 그려내 감동을 주고 있다." 요는 우리의 '전직'들과 비교된다는. 하지만 미국의 경우에도 카터의 퇴직 후 활동이 예외적인 것 아닌가? 게다가 그 자신이 재임시에는 가장 인기 없는 대통령의 한 사람이었으므로 사람 일이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지난 79년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카터는 내가 기억하는 첫 미국 대통령이기도 하다('땅콩장수' 출신의 카터는 전임자인 포드를 누르고 당선됐는데, 그 이전이라면 정치에 관심을 갖기엔 아직 어린 나이였다). 그게 어느덧 30년 전 아닌가? 흠, 최고 권력의 자리에서 물러나서도 30년을 더 산다는 건 좀 드문 일이지 싶다.


5. 경제/경영
이준구 교수가 추천하는 경제/경영서는 유영만의 <내려가는 연습>(위즈덤하우스, 2008)이다. 제목만으로는 정체를 알기 어려운데, 부제가 '경제빙하기의 새로운 생존 패러다임'이다. 아하, 싶은 책. 저자는 교육공학자이자 지식생태학자이고, "이 책은 지금처럼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희망의 메시지다." 왜 그런 메시지가 필요한가? 현재 "1997년 말의 경제위기를 잘 버텨낸 사람조차 겁먹게 만들 정도의 빙하기로 접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747 노래를 부르던 어떤 이조차도 어제는 내년 상반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할 수도 있다고 실토를 했다. "생존 그 자체가 문제가 되는 이 심각한 상황에서 살아남는 지혜는 과연 무엇일까? 필자는 바로 지금 항복을 선언하고 천천히 내려가기 시작하기를 권한다. 오르려면 내려가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낮은 곳에서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발휘하라고 말한다." 좀 식상한 충고인데, 어떤 위로를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라면, <공황전야>(지안, 2008)의 현실을 보다 냉철하게 직시하고 <장기 20세기>(그린비, 2008)라는 추이와 전망을 살펴보는 쪽을 택하고 싶다. 내려가는 법? 사실, 지금은 내려가는 정도가 아니라 추락하는 중이므로 중요한 건 '위로'가 아니라 '착지' 아닐까?..



6. 사회
흐흐, 김문조 교수가 추천한 사회분야의 책은 <르몽드 세계사>(휴머니스트, 2008)이다. 흐흐, 하고 웃음이 나온 건 지난주에 얻은 책이기 때문이다. 이미 소개한 적이 있는데, "<르몽드 세계사>의 특징은 세계 각처에서 벌어진 사건들을 파편화된 지식으로서가 아니라 '새의 눈(bird's eye)'이라는 거시적 안목으로 바라 볼 수 있게끔 구성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이 책은 “세계사”라는 제목이 붙여졌으되, 읽기와 보기라는 이원적 의사전달 형식에 기초해 과거와 현재, 동양과 서양을 관류하는 인류사의 이모저모를 선별된 250개의 지도를 곁들인 104개의 핵심 키워드를 통해 간결히 설명하는 독특한 기획이 돋보이는 지리책이자 역사책이다." 한마디로 좋은 책이고, 좋은 보교재다.
사회분야 책 추천이 '지리책이자 역사책'에 대한 권유로 바뀌었는데, 내친 김에 보태자면 조반니 아리기와 비버리 실버의 <체계론으로 보는 세계사>(모티브북, 2008)와 마르크 페로의 <새로운 세계사>(범우사, 1994)도 읽어볼 만하다. 페로의 책은 얼마전 <식민주의 흑서>(소나무, 2008)가 번역된 덕분에 챙겨두게 된 책인데,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부터 세계사의 여정을 시작하는 독특한 구성으로 돼 있다. 그가 편집한 <식민주의 흑서>는 하권까지 완간되면 기념으로 다룰 예정이다.


7. 과학
장경애 편집장이 추천한 과학분야의 책도 눈에 익은 책이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드는 30편의 에세이 모음집 <과학이 나를 부른다>(사이언스북스, 2008). "우리에게 과학이란 무엇인가’란 화두를 두고 소설가, 문학평론가, 과학철학자, 과학기자, 종교학자, 번역가, 물리학자, 화학자 등 과학 밖에 있는, 과학의 변경지대에 있는, 그리고 과학의 안에 있는 사람들이 진솔하게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이 책에 들어 있는 30편의 에세이는 아시아태평양이론물리센터가 발간하는 웹진 ‘크로스로드’에 실렸던 글들로 과학자는 연구자나 교육자로서 현장에서 느낀 감상이나 일화를, 인문학자는 최근의 지적 관심사에서 과학을 주제로 한 칼럼을 담았다." 참고로, 그 소설가는 김연수이고, 문학평론가는 김병익 선생이다.
과학이 부르는 대로 가보면 펼쳐지는 장관이 있다. <현대과학의 풍경>(궁리, 2008)이다. 두 권짜리이고 값도 만만찮지만, 17세기 과학혁명 이후 과학사의 흐름을 일람하는 데 좋은 책이다. 잠시 소개기사를 참고하면, "1권은 화학혁명, 에너지 보존, 다윈 혁명, 유전학, 대륙이동설, 20세기 물리학 등 17~20세기의 과학적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다룬다. 2권은 과학단체, 과학과 종교, 대중과학, 생물학과 이데올로기, 과학과 젠더 등 주제별로 현대 과학의 관심사를 다룬다. 애초에 교과서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만큼 과학기술학, 과학사에 대한 학구적 관심과 이해가 있는 독자들에게 권할 만하다. 그렇지 않다면 단순치 않은 전개방식과 다수의 번역자들이 편차를 보이는 번역투 문체 때문에 쉽게 읽히지 않을 수도 있다."(한국일보)



8. 예술
김춘미 교수가 추천한 예술분야의 책은 사이드의 <그림의 목소리>(아트북스, 2008). 무슨 책일까 궁금하게 만드는데, 이런 컨셉이라고 한다. "<그림의 목소리> 안에는 너무나 서로 다른 서른아홉 점의 작품들이 들어 있다.(...) 사이드는 그림 속으로 직접 걸어 들어가 상상으로 그 장면을 희곡으로 풀어내기도 하고, 주관적인 별도의 소설을 쓰기도 하고, 시적 이미지를 글로 드러내기도 했다. 그 글을 읽다보면 내가 본 시각과 작가가 본 시각이 매우 다르기도 하고 유사하기도 한 면들을 발견하게 된다. 아마 이 책은 그러한 비교 경험을 통해 독자의 상상력도 불러일으키는 뜻밖의 효과가 있는 흥미로운 책이다."



'목소리'를 다룬 예술 분야의 책이 또 뭐가 있을까 생각해보다가 프랑스의 영화비평가이자 감독인 미셸 시옹의 <오디오-비전>(한나래, 2004)과 <영화의 목소리>(동문선, 2005)를 고른다. <영화와 소리>(민음사, 2000)까지 하면 '3종 세트'다. 이 분야에서는 독창적이면서 독보적이란 평을 듣는 책들이며 영어로도 번역돼 있다(찾아보니 시옹의 데이비드 린치론도 영역돼 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군!). 이렇게 생겨주신 분이다.

개인적으로도 영화에서의 목소리, 특히 보이스-오버에 대해서는 관심을 갖고 있는데, 그거 '연구'하는 일로도 1월 한달은 모자라겠다...


9. 교양
이한우 기자가 꼽은 교양분야의 책은 '라이프 스토리'다. 고바야시 데루유키의 <앞은 못 봐도 정의는 본다>(강, 2008). 제목에서 어림할 수 있는 대로,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라는 타이틀이 따라다니는 교토의 다케시타 요시키 변호사의 라이프스토리다." '라이프 스토리'란 장르가 국내에선 아직 그렇게 많은 독자층을 형성하고 있지 않은 듯싶은데, '로스쿨' 준비서라고 하면 차라리 반응이 더 빠르겠다(준비생이 수만 명 아닌가?).
주인공 고바야시는 누구인가? "1951년생, 우리 나이로 58세다. 중학교 3학년 때까지 정상이었다가 실명을 한 그는 한 때의 방황을 딛고 일어서 대학에 진학한다. 그는 사법시험 공부와 더불어 ‘점자 사법시험 실시’라는 초유의 사회운동도 함께 병행해야 했다. 게다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안마사의 일도 해야 했다. 우리의 사정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일본 정부가 이런 사람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점자 사법시험을 제정한 것이 1973년이다. 이후 아홉 차례의 도전 끝에 마침내 ‘일본 최초의 시각장애 변호사’는 탄생하게 된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시각장애 사법시험 합격자가 탄생했다.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다케시다 변호사보다 27년 늦었다."
음, 그 '27년'이 한국과 일본의 격차인지도 모르겠다. 아니, 이 정권 들어서는 더 벌어졌겠다. 최근 시각 장애 합격자가 탄생한 것 말고 다른 지표는 모두 후퇴한 듯싶으니까. 대체복무제가 백지화된 걸 포함해서 말이다.



같이 읽어볼 만한 책으로 금태섭 변호사의 <디케의 눈>(궁리, 2008)과 한정우 현직 법률실장의 <변호사가 절대 알려주지 않는 31가지 진실>(한국경제신문, 2008)을 고른다. 금 변호사는 검사 시절인 2006년 한겨레에 '수사 제대로 받는 법'이라는 연재칼럼을 실었다가 열렬한 호응과 함께 내부의 '압력'을 받은 이력이 있다. 조국 교수(서울대 법학과)의 평에 따르면, "저자는 검사 생활을 접은 후 바쁜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도 법의 '속살'을 보여주는 작업을 계속 해왔다. 미국 역사의 흐름을 바꾼 여덟 편의 재판을 소개한 <세상을 바꾼 법정>을 번역한 이후, 이번에는 책을 들고 나왔다. 이번 책에서 그는 국내외에 일어난 중요한 법적 사건과 자신이 검사와 변호사로 직접 겪은 경험들을 중심으로 쉬우면서도 흥미를 불러일으키는 필치로 법과 세상을 이야기한다." 이 또한 로스쿨 준비생들의 필독서 아니겠는가.
한 실장의 책은 전작인 <세 번만 읽어도 좋은 변호사를 만나 승소하는 법>(다산초당, 2006)과 <억울한 의료사고, 제대로 대처하는 법>(다산초당, 2007)에 이어서 '법률 소비자운동' 도움서로 분류될 수 있는 책이다. "변호사가 의뢰인을 어떻게 속이고 폭리를 취하는지 그 과정을 폭로하고, 올바른 법률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현재의 법률문제들에 대해 속속들이 밝히고, 더 나은 법조계를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또한 잘못 아는 법률상식과 더불어 현직 법률실장의 현실적이고 실제적인 정보와 사례를 담았다." 한다. '변호사가 말하지 않는 불쾌한 진실'을 공개하는 셈이니 거의 내부 고발자 수준 아닌가? 저자가 '전직'이 아니라 '현직'이란 점이 그래서 눈길을 끈다. 동업자들이 눈총이 심할 듯싶어서. 아무려나 억울하고 속 터지는 일들이 많을 성싶은 새해에 찾을 일이 많은 책이겠다.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10. 식민주의
내 맘대로 고르는 책은 '식민주의'를 주제로 골랐다. 올해 주목할 만한 관련서들이 몇 권 출간되면서, 그리고 강준만의 <지방은 식민지다>(개마고원, 2008)에 자극을 받기도 해서 보다 적극적인 관심을 갖게 된 주제다. 내부 식민지이건, 외부 식민지이건 '식민주의적 상황'이란 여전히 유효한 현실인식의 틀인 듯싶고, 유럽 중심주의와도 맞물린 식민주의의 극복과 청산이 여전히 중요한 과제라는 생각이다. 식민주의와 탈식민주의(포스트식민주의) 관련서는 굉장히 많다. 일단은 마르크 페로가 편집한 <식민주의 흑사>(소나무, 2008), 제임스 블라우트의 <식민주의자의 세계모델>(성균관대출판부, 2008), 위르게 오스터함멜의 <식민주의>(역사비평사, 2006)를 골라놓는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2423241 참조).
08. 12. 27.


P.S. 1월의 읽을 만한 고전은 스피노자의 <정치론>(갈무리, 2008)이다. 3종의 번역서가 있다는 얘기는 이미 소개한 바 있다(http://blog.aladin.co.kr/mramor/2483656). 미완성작이어서 아쉽긴 한데(특히나 '민주정'에 관한 장이 완결되지 않았다), 군주정과 귀족정에 대한 그의 사유에서 요긴한 통찰을 얻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여력이 있다면 네그리의 <전복적 스피노자>(그린비, 2005), 발리바르의 <스피노자와 정치>(이제이북스, 2005) 등도 참조할 수 있겠다. 뒷표지의 문구대로라면, <정치론>은 "제국 시대의 전쟁과 권력에 맞선 절대적 민주주의 사상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어쩌면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수호하거나 되찾기 위한 지침서로 삼을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