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읽은 문학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얼마전 창간호를 낸 계간 <자음과 모음>(이룸)에 관한 것이다. 비평특집으로 '내러티브의 미래'를 주제로 한 네 편의 글이 실려 있는데, 기사는 그에 관해서 간단히 스케치하고 있다.

경향신문(08. 09. 08) 2000년대 소설 주인공은 ‘상상력’

“(한국)소설의 새로운 화자는 모험의 항해를 떠났다 되돌아오는 오디세우스보다 옷감을 짰다 풀었다를 반복하는 페넬로페 쪽에 가까워지고 있다.” 문학평론가 손정수씨가 최근의 한국 소설에 대해 내린 진단이다. 가을호로 창간된 계간문예지 ‘자음과 모음’(이룸)의 특집기획 ‘내러티브의 미래’ 중 ‘변형되고 생성되는 최근 한국소설의 문법들’이라는 글에서 손씨는 한국현대문학을 오디세우스와 페넬로페로 비유했다.

그에 따르면 요즘 작가들은 자신의 삶, 사회적 현실 등 존재하는 사실을 소설 속에 재현하지 않는다. ‘상징적 상상’ 혹은 ‘상상적 상징’ 등 전혀 다른 차원의 소설적 현실을 만들어내고 있다. 근현대소설의 주인공 대부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방황하는 지식인의 고뇌를 그렸다면, 최근의 소설들은 가볍지만 삶의 진실을 다른 방식으로 내포하고 있다. 자아의 경계는 옅어지고, 인간이 아니라 동물과 사물, 유령과 좀비, 사이보그와 합성인간 등이 소설의 주체로 등장한다.

세계와 자아의 관계 또한 변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버지를 해석하는 방식이 주목할 만하다. 특히 2030세대 소설가들의 작품에서 아버지는 없다. 때로는 성가시고 무력한 존재로 표현되다 못해 사물화되는데 여기에 동화적인 환상이 개입된다. 박민규씨는 아버지를 기린(‘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으로, 황정은씨는 모자(‘모자’)로 변신시키고, 김애란씨는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서 뛰쳐나가 방황하는 대신 아버지를 상상 속에서 달리게 만든다(‘달려라 아비’). 카프카의 ‘변신’에서 화자가 벌레로 변했던 것과 대비된다.

평론가 심진경씨는 특집기획의 ‘자기보다 낯선’이라는 글에서 소설가 권여선씨 작품을 분석하며 2000년대 한국문학의 특징을 ‘탈내면의 상상력’으로 규정한다. 속물화된 개인들이 현실세계와의 정면충돌로부터 자아를 보호하기 위해 자기방어적이고 현실도피적인 행위를 보이며 또한 현실과는 무관한 자기 유희에 몰두하는 주인공들이 대거 등장한다는 설명이다.

달라지는 것은 소설의 화자뿐 아니다. 독자들도 변하고 있다. 평론가 정여울씨는 특집기획 중 ‘원 소스 멀티 유스 시대의 소설 읽기’에서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를 분석했다. 정씨는 독자 리뷰가 ‘유희’ 차원에서 이뤄진다고 진단했다. 평론가들의 완곡어법 대신 직설화법으로 핵심을 찌르는 북로거들의 리뷰는 때로 소설을 매개로 한 별개의 에세이가 되기도 한다. 정씨는 “ ‘마이리뷰’를 논픽션 문학에 포함시키고 싶을 정도이다. 독자 리뷰를 통해 만날 수 없던 타인의 삶을 들어가는 열쇠를 얻게 된다”고 말한다. 그는 소설과 영화, 드라마를 동일한 문화상품으로 취급하는 독자들을 지켜보며 더 이상 “문학이 단지 문학에만 갇혀 있을 수 없는 시대가 왔다”며 “문학이여, 다채로운 얼굴로 대중 앞에 서라”고 주문한다.(윤민용기자)

자금과 모음? 장편소설 부흥 위해 창간된 계간지

문예계간지 ‘자음과 모음’은 기존 문예지와 달리 장편소설에 비중을 둔다. 단편 중심인 한국 문단에서 장편소설의 부흥을 위해 소설 형식을 경장편과 픽스업(pix-up) 등으로 구분한다. 경장편은 단편보다 길고 일반 장편보다 짧은 300~700장 사이의 분량이다. 픽스업은 SF 등 해외 장르 소설에서 유래한 형식으로 개개의 단편소설이 묶여 하나의 작품이 되는 소설 형식이다.

첫호에는 경장편으로 이승우의 ‘한낮의 시선’을, 픽스업으로는 SF소설가 겸 영화평론가인 듀나의 ‘브로콜리 평원의 혈투’를 실었다. 또 단편 위주의 기존 문예지와 달리 장편 연재에 비중을 두어 소설가 하성란·김태용씨의 연재소설을 선보인다. 잡지의 3분의 1이 장편연재 혹은 경장편으로 채워진다.

08. 09. 08.

P.S. 기사에 "평론가 정여울씨는 특집기획 중 ‘원 소스 멀티 유스 시대의 소설 읽기’에서 인터넷 서점의 독자 리뷰를 분석했다"는 대목이 나오는데, 그때 '인터넷 서점'이 지칭하는 건 알라딘이다. 평론가가 직접 쓴 문장은 이렇다: "비평가에게도 네비게이션이 있었으면 할 정도로 읽을거리가 해일처럼 밀려드는 시대, 비평의 방향타를 잃을 때마다 나는 인터넷서점 알라딘(www.aladin.co.kr)의 독자 리뷰를 탐독하곤 한다." 이하 글에서 인용되고 있는 리뷰들은 모두 알라딘의 리뷰이다. 덕분에 개인적으론 리뷰의 '성격'이 다양하고 '수준'도 높다는 걸 새삼 확인하게 됐다. 알게 모르게 자신의 리뷰가 인용된 알라디너분들도 글을 읽다보면 슬며시 미소를 지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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쥬베이 2008-09-08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로쟈님 리뷰 인용된거 아니에요?^^
근데 인용하려면 본인의 허락 받아야 하는거죠? 상업적 이용이니까요

로쟈 2008-09-08 23:58   좋아요 0 | URL
저는 리뷰를 쓴 게 없어서요.^^; 상업적 이용은 아니라 허용됩니다. 논문에서 인용하는 것처럼요...

마늘빵 2008-09-09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분의 글이 궁금해지는데요. ^^ 젤 아래 정여울 평론집을 들추면 볼 수 있으려나요?

로쟈 2008-09-09 09:42   좋아요 0 | URL
이미지가 첫 평론집입니다. 다른 책들도 이미 냈었지만...

Arch 2008-09-09 09: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로쟈님 소개글 듣고선 자음과 모음 창간호를 주문했어요. 김연수님과 듀나님의 글을 보고싶었거든요. 저 평론집도 읽어보고 싶은데요. 제 보기엔 바람구두님이랑 드팀전님, 파란여우님이 언급 됐을 것 같은데^^

로쟈 2008-09-09 09:41   좋아요 0 | URL
한국 소설 리뷰들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2008-09-12 10: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8-09-12 11:13   좋아요 0 | URL
스무 고개 같네요.^^ 직접 확인해보시길.^^

메르헨 2008-09-09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디너의 리뷰는 참으로 탁월하죠...^^대단한 분들이라고 속으로 생각코 있었는데 비평가들에게도 먹히는(?)군요. 유후~~~어깨가 으쓱으쓱 올라갑니다.^^

로쟈 2008-09-10 07:14   좋아요 0 | URL
남들이 알아주는 게 기분 나쁜 일은 아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