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연구로 유명한 문학자이자 철학자 미하일 엡슈테인 교수가 지난달 세계철학대회에 참석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엡슈테인'은 가까이 있는 책장에도 그의 책들이 여러 권 꽂혀 있을 만큼 러시아문학도에게는 친숙한 이름이다(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러시아문학자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활동을 보이는 몇 사람에 속한다. 홈피는 http://www.emory.edu/INTELNET/Index.html%20). 발표까지 들을 수 있었다면 더 좋았을 뻔했다. 교수신문에 인터뷰기사가 올라왔기에 스크랩해놓는다(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6683).
교수신문(08. 08. 25) 테크네의 귀환
<교수신문>은 지난 7월 30일부터 8월 5일까지 서울대에서 개최된 제22회 세계철학대회에 참관한 모하일(*미하일) 엡슈테인 교수와 조준래 성균관대 선임연구원(러시아문학)의 대담을 마련했다. 대담은 2008년 8월 7일 서울 서울역사박물관 내에서 이뤄졌다.
조준래: 얼마 전 폐막한 세계철학자대회의 의의와 성과에 대해 평가해달라.
엡슈테인: 첫 번째 의의라면, 통산 22회째 되는 이번 대회를 통해 세계철학자대회가 100년 이상의 명맥을 무사히 이었다는 데 있겠다(웃음). 둘째로, 형이상학적 측면에서 철학은 고독한 학문인 동시에, 본원적으로 소통과 대화를 요구하는 학문인데, 이런 철학의 특성이 자원봉사자의 도움을 비롯해 본 대회의 잘 조직된 운영방식과 조화를 이뤘단 점을 들 수 있다. 단점이라고 한다면, 프로그램과 달리 베르나르 앙리 레비, 주디스 버틀러, 장 뤼크 마리옹 등 소위 거물급 철학자들이 대거 불참한 점을 들 수 있다. 다양한 사정이 있겠지만 어떤 경우든지 동료 철학자들의 큰 행사를 경시하는 것이 좋은 모습이 아님은 분명하다.
조준래: 이번 대회부터 유가, 도가, 불교 철학이 정식분과로 채택됐다. 한국 철학자의 발표에 대한 평을 해준다면. 또 세계철학에서 동양철학이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당신의 견해는.
엡슈테인: 20년 전부터 노장 사상 및 도가와 관련된 서적을 접한 뒤 꾸준히 연구하면서 현대 철학에서 서구 철학이 놓친 사상적 공백을 메우는 역할을 동양 철학이 계속 감당할 것이란 생각이다. 지금까지 서구 철학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실재와 비실재의 관계, 비실재의 생성적 힘에 대해 동양 철학은 직관적인 해석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카오스이론, 복잡성이론, 시너제틱스 등 현대 과학에 의해 그 주장의 타당성이 꾸준히 입증되고 있기 때문에 향후 세계 철학계에서 동북아철학을 위시한 동양 철학의 목소리는 계속 커질 것이란 생각이다.
조준래: 오늘날 세계 철학계의 주요 화두라면.
엡슈테인: 첫째는 2001년 9월 11일 사태를 계기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시기가 종언을 고하고 포스트모던 시대의 다음 단계인 새로운 문화적 지층이 태동했다는 점이다. 스티븐 호킹과 에드워드 윌슨처럼 오늘날을 ‘포스트(post-)’ 대신 ‘시작’을 뜻하는 ‘프로토(proto-)’의 시기로 부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시뮬라크르의 권력에서 벗어난 미래와 현실은 예측불가능하고 비가역적이고 새롭고 진지한 모습으로 다시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 지식, 문화, 사회의 영역에서 새로이 대두하고 있는, 미궁과도 같은 ‘프로토’의 현상을 진단하는 데에 철학은 경주해야 한다. 둘째는 새 시대의 도래와 관련된 과학기술문명의 역할이다. 캐서린 헤일즈가 말한 ‘포스트휴먼(Posthuman)’은 사실 ‘프로토휴먼’을 의미한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몸을 변형시키고 인간으로 하여금 신체의 한계를 넘어서도록 하며, 궁극적으로는 인간성의 제거가 아니라 인간성의 확장을 가져올 것이다. 철학 역시 과학에 대한 긍정적이고 개방적인 관점을 통해 이런 미래 문화의 발전을 논해야 된다.
조준래: 그렇다면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도덕성 역시 제고한다고 볼 수 있을까.
엡슈테인: 얼핏 모순적으로 들릴 수도 있겠으나, 과학과 기술, 통신수단의 발전은 인간의 도덕을 오히려 향상시킨다고 믿는다. 그것을 ‘테크노모랄’(techno-morality)이라고 부르고 싶다. 기술 문명의 발전으로 인간 간의 거리는 대폭 축소됐다. 이로 인해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와 일방적인 패배는 불가능해졌다. 핵무기만 생각해보더라도 알 수 있다. 이제 군사적인 위협은 일방적이 아니라 상호적인 성격을 띠게 됐다. 어느 일방이 상대방과 동일한 행동준칙을 지키지 않는다면 공멸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극히 이기적인 욕심에서 생겨난 테크놀로지가 타인의 입장을 보다 더 많이 고려하도록 우리를 인도했다는 데에 현대 문명의 역설이 있다.
조준래: 이번 세계철학자 대회에서 발표한 주제도 앞서 말한 오늘날의 철학적 화두와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엡슈테인: 윤리학 분과에서 ‘복합윤리학’을 뜻하는 ‘스테레오에틱스(stereoethics)’라는 주제를 발표했다. 인간의 행위를 이루는 선한 가치 역시 상황에 따라 서로 충돌하고 서로 모순되는 측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유일하게 올바른 도덕적 선택을 단정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다양한 도덕적 관점의 공존이 불가피함을 인정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마치 우리의 시력이 두 눈에 서로 다르게 비친 피사체의 결합을 통해 입체적인 형상을 얻듯이 윤리학 또한 복합적인 행동준칙에 의해 보강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했다. 즉, 나와 타자의 유사성과 공통적 인간성 뿐 아니라 서로 환원될 수 없는 나와 타자의 차이를 동시에 고려하는 것이 현대 윤리학의 과제다. 훌륭한 행위란, 나의 최상의 능력이 타인의 최고의 필요에 부응할 수 있는 경우의 행위, 나를 포함해 모두가 행하기를 원하고 또 그래야 하지만, 나 외에는 다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행위를 가리킨다.
조준래: 이런 ‘복합 윤리학’은 당신의 표현대로 ‘프로토-포스트모던’의 시대적 요청이라고 생각된다. 이것은 새로운 문화 현상인 ‘트랜스컬쳐(trans-culture)’와도 무관하지 않은 듯 한데.
엡슈테인: ‘트랜스-’(trans)라는 라틴어 접두사는 무엇을 넘어서거나 초월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트랜스컬쳐’란 말은 민족, 젠더, 직업 등에 의해 다양하게 구획된 문화의 경계선을 가로질러 발전하는 새로운 형태의 문화를 말한다. 그것은 기존 문화에 대한 낯설게 하기와 외재성의 원칙, ‘자신의’ , ‘본래적인’ 문화에서 벗어나기 등을 전제로 구성된다. 트랜스컬쳐는 한 문화 내의 의미적, 기호적 틈새, 실현되지 않은 가능성을 드러내며, 여러 문화의 교차점과 간극 속에서 새로운 상징적 환경을 창조한다. 트랜스컬쳐는 문화적 상대주의와 고립성을 전제하는 멀티컬쳐(multi-culture)와는 다른 개념이다. 자기를 초극해 자기 밖의 입장에서 자기를 바라보고 타자와 소통하는 트랜스컬쳐의 관점만이 이념, 종교, 민족 다원화의 시대에 궁극적인 평화와 안정을 가져올 수 있다.
조준래: 오늘날 한국에서는 인문학의 위기라는 말이 일상화돼버린 지 오래다. 상투적인 질문이지만 인문학의 위기에 대한 ‘극복방안’을 들어본다면.
엡슈테인: 인문학, 특히 순수인문학의 위기가 초래된 일차적 원인은 현실과의 끈을 잃어버렸다는 데에 있다. 자연과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순수 인문학이든 모두 연구대상과 실용성의 두 측면을 갖고 있다. 여기서 실용성이란 학문이 연구대상과 접촉해 만들어내는 일종의 상부구조와 같은 것인데(예를 들면 자연과학이 자신의 연구대상인 자연과 접촉하여 빚어낸 상부구조인 테크놀로지, 사회과학이 자신의 연구대상인 사회와 접촉해빚어낸 상부구조인 정책이 그렇다), 다만 순수인문학은 이들과 달리 어떤 상부구조, 어떤 실용적 측면도 갖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핸디캡으로 안고 있다. 이제 실질적인 대안으로 첫째, 인문학은 자신의 연구대상인 언어, 문학, 예술 등 문화 전반을 변형시켜야 한다. 이로써 생겨나는 새로운 학문을 저는 또 다시 ‘트랜스인문학’이라고 부르고자 한다. 가령 ‘트랜스언어학’은 인공언어를 생산하고 새로운 관점에서 자연언어의 수준을 제고하는 학문이 될 것이며, ‘트랜스미학’은 시학과 미학을 통하여 예술의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 나아가면서 예술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 학문이 될 것이다. 둘째, 자연과학에서 전용돼 왔으나 본래 인문학의 용어였던 ‘테크네(techne, 예술, 기술)’를 인문학에로 되돌려 기존 인문학의 성과를 반성, 재가공하는 단계로 옮겨 가야한다. 인문학은 그 개념 자체에 내포돼 있듯이 과학과 예술의 종합적 형태로서 발전해 나갈 것이다. 한마디로 인문학의 활로는 문화를 변형시키는 예술, 즉 ‘테크노-휴머니티’(techno-humanities)로서 인문학이 거듭날 때에 발견될 것이다.
미하일 나우모비치 엡슈테인(Mikhail Naumovich EpshteIn)
전공분야 러시아 출신의 철학자, 문예학자.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 현상을 최초로 연구. 미국과 서유럽의 슬라브학을 비롯, 러시아학계 전반에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개념을 최초 도입.
주요 저서 『잠재성의 철학』(2001), 『父性의 의미』(2003), 『여백의 기호: 인문학의 미래에 관하여』(2004), 『러시아 문학의 포스트모던』(2005), 『새로운 종파: 1970년~1980년대 러시아의 종교적, 철학적 지적 경향』(1993, 2005) 등.
주요 논문 「새로움의 역설: 19~20세기의 문학 발전에 대하여」(1988),「자연, 세계, 우주의 은신처: 러시아 운문에 나타난 풍경 이미지 체계」(1990),「전체주의 사유에서 상대주의적 모델: 소비에트 이데올로기 언어 연구」(1991), 「문화의 경계선: 러시아와 미국과 소련」(1995)외 다수.
08. 08. 27.
P.S. 엡슈테인의 책으로 알라딘에서도 검색이 되는 건 <새로운 황야에서의 외침>(2002)이 유일하다. 하지만 보다 유명한 책은 <러시아 포스트모더니즘>(1999) 같은 연구서이며, 그의 이름을 알린 '출세작'은 <미래 이후(After the future)>(1995)이다(*<미래 이후의 미래>(한울, 2009)로 출간됐다). '포스트모더니즘의 역설과 현대 러시아문화'가 책의 부제. 구글에서 찾은 아래 이미지는 뜻밖에도 국내 중고서점에 나와 있는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