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신문에서 '2008년 학술출판 전망' 기사를 옮겨놓는다. 올해의 '수확'을 미리 훑어볼 수 있어서 유익하다. 이미 예고돼 있던 책들도 있고 처음 소식을 접하는 책들도 있다. 돌이켜보면 작년에 학술서나 이론번역서 출간이 '빈곤'했다는 인상을 갖게 되는데, 라인업을 보니 올해는 사정이 훨씬 나이질 수도 있겠다.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서 '행복한 고민'(어쩌면 고난!)에 빠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교수신문(07. 12. 31) 실증적 역사·한국철학 계보·한국사회 방향 등 ‘기대주’

2008년 학술 출판의 동향을 전망하고자 총 31개 출판사의 출간예정 주요 도서 500여종의 목록을 받았다. 이미 계획되고 있는 책들만 조사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2008년 출판되는 분량은 두 배 이상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국내서들을 중심으로 그간의 연구 성과들이 집약되고 있다면, 해외서들은 새로운 학자들과 이론들을 소개하면서 연구의 지평을 확장할 것으로 기대가 모아진다. 한국학술진흥재단(학진)의 출판지원 사업에 힘입어 출간계에 뜸했던 신진연구자들도 소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국내서와 해외서의 비중을 살펴보면, 국내서가 270여종으로 해외서 260여종에 비해 약간 앞섰다. 비등한 비율이지만, 해외 학자들의 유명세에 기대던 이전의 출판 경향에 빗대면 국내 학술서의 괄목할 만한 성장세다. 인문서 중에는 국내로 시선을 맞춘 한국사 연구서들이 두드러진다. 특히 기존의 역사연구가 정치경제적 관점에서 사건사를 중심으로 이뤄져왔다면, 이들은 문화적·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화여대 출판부가 준비하는 ‘이화한국학총서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올해 소개되는 2차분은 이혜순 등이 『조선중기 예학사상의 사회적 수용과 일상문화의 변화』로, 김영미 등이 『고려시대의 일상문화』로, 이배용 등이 『일제시대의 일상문화』로 한국의 일상사를 연구했다.

이화여대출판부의 시리즈가 고대부터 일제까지를 집약했다면, 서울대출판부와 권태억 등은 근대 시기를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서울대출판부)로 준비하고 있다. 전우용은 서울이라는 공간을 철학적, 역사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기술하는 『서울이야기』(돌베개)로 문화사를 그려내고, 『청년의 역사』(이기훈, 역사비평사)도 출간된다.



조선시기 일상민중의 삶을 고스란히 복원했다는 평가를 받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강명관 지음)에 뒤이어 당대의 특정 풍속으로 시대를 들여다보는 저작들도 밀려올 예정이다. 전봉관이 『경성자살클럽』(살림), 이민주가 『조선의 패셔니스타』(살림)에 초점을 맞췄다면, 강명관은 조선시대 열녀(『열녀의 탄생』, 돌베개)에 내포된 역사적 의미와 모순 등을 설명한다.

실증(實證)을 표방하는 흐름에서 정치사회학적 역사연구서들로는 지난해에 시작된 역사비평사의 ‘20세기 한국사 시리즈’가 『전두환과 제5공화국』(정해구 지음), 『한국전쟁』(박명림 지음), 『식민지배정책사』(이승렬 지음) 등을 준비하고 있다. 물론 관점에 도전하는 역사서도 나온다. 정일준은 『대한민국 만들기』(새물결)로 『해방전후사의 인식』과 『해방전후사의 재인식』을 넘어서는 건국사 서술을 시도해 주목된다.

한국철학·사회철학 세우기
철학계는 ‘서양철학 되풀이’라는 자성을 반영하듯 한국철학사와 사회철학 연구서들이 기지개를 켜고 있다. 이제이북스는 신남철의 『역사철학』의 재출간을 준비했다. 월북철학자로 국내에서 비교적 조망 받지 못해온 그는 서양철학을 수용하면서 ‘신체적 인식론’이라는 독특한 실천적 역사철학을 정립한 바 있다. 한국 철학사의 단절을 조금이나마 메울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된다.

이정우는 『소운 박홍규와 서양철학사』(그린비)로 한국철학계의 거두인 故박홍규의 사상을 탐색했다. 이밖에도 한국 철학계를 달궜던 『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방법론』(이진경, 그린비)과 『한국철학에세이』(김교빈, 동녘), 『삶과 철학』(한국철학사상연구회, 동녘)이 재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한편, 사회철학의 필요성을 강조해온 김상봉과 홍윤기를 중심으로한 철학자앙가주망 네트워크는 잡지 <철학의 전선>(돌베개)을 창간, 철학이 상아탑의 공리공담이 아니라 현실의 변화를 견인하고 주도하는 담론임을 선포하고, 1970~80년대 『창작과 비평』이나 1960년대 프랑스 『텔켈』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생존해 있는 우리 학자의 학문세계를 논하는 책들도 새롭게 다가온다. 생각의 나무에서 출간하는 『김우창 전집』(전20권)과 함께 한국학술협의회는 아카넷과 ‘석학 연속강좌 연구서’를 시리즈로 기획, 그 첫 권으로 『김재권과 물리주의』(하종호 외)를 내놓는다. ‘한국의 학자’라는 이름이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사회과학계는 2007년을 달궜던 한국사회 진단과 새로운 진로 모색이 흐름을 이어갈 전망이다. 먼저 서울대출판부가 출간할 『외환위기 10년, 한국사회 얼마나 달라졌나』(정운찬 외 지음), 『외환위기 10년, 한국 금융의 변화와 전망』(김광억 엮음)은 IMF 외환위기 이후 10년 동안의 한국사회의 경제적 변화를 분석했다.

창비에서 출간예정인 『민주화 이후의 한국자본주의』(이병천 지음)는 87년 민주화 운동을, 후마니타스에서 나오는 『금융세계화, 자본주의 모델, 그리고 한국경제』(전창환 지음)는 세계화를 기점으로 한국사회의 경제적 변화를 천착한다. 성공회대 민주주의와 사회운동 연구소는 한국 민주주의의 문제를 비교연구로 접근했다.

한울에서 펴낸 ‘아시아 민주주의 비교연구 시리즈’는 2008년 1차분으로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와 ‘정치적 독점’의 변형과정』(조희연·김동춘 엮음), 『민주화 이후 아시아 민주주의와 ‘정치적 독점’의 변형과정』(조희연 엮음)을 선보인다. 대안의 빈약함이 2007년을 마무리한 가운데 아르케는 ‘대안발전모델 시리즈’를 기획했다. 먼저 ‘생태사회학적 발전모델’을 모색(『생태·사회적 발전을 위하여』, 구도완 외 지음)하고, 귀감이 되는 해외 사례들(『생태·사회적 발전의 해외 현장을 찾아서』, 오용선 외 지음)을 찾는다.

오늘날 한국사회 지식인의 성찰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해에 경향신문 특별취재팀이 마련한 ‘민주화 20년, 지식인의 죽음’ 기획 시리즈는 후마니타스를 통해 『한국지식인의 초상』으로 나올 예정이다.

학진의 저술지원사업들 책으로
올해는 학진의 저술지원사업들이 구체적 성과를 쏟아낼 예정이다. 학진의 지원정책을 둘러싸고 평가가 엇갈리고 있긴 하지만, 신진연구자들이 소개되고 있어 반갑다. 아카넷은 올해부터 학진의 박사논문출판지원사업 선정작을 ‘한국인문사회과학의 미래 시리즈’로 기획, 출판한다.

『가다머에서 변증법적 윤리와 해석학』(정연재 지음), 『호남지역 풍물굿의 잡색놀음 연구』(이영배 지음) 등 학문후속세대들의 사유와 함께 꼼꼼히 정리된 자료들도 도움될 만하다. 명저번역지원 사업의 경우 서양사는 나남에서, 동양사는 소명출판에서 집중적으로 나온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요강』(박승찬 옮김), 헤겔의 『철학백과전서 강요 제2부 자연철학』(김성호 옮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김도형 역주) 등을 만나볼 수 있다.



번역, 묵직한 사상가들부터 최신이론까지
2008년 출간되는 번역서는 저명한 사상가들의 저작과 함께 새로운 학자들과 최신이론의 도입도 두드러진다. 생각의 나무는 영국의 지성사학자 이사야 벌린의 『러시아지성사』를 처음으로 완역한다. 새물결은 현대사상가들을 조망하는 ‘What’s up 총서’를 기획, 슬라보예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고』(한보희 옮김), 알랭 바디우의 『사도바울』(현성환 옮김), 지오르지오 아감벤의 『호모사케르 1』을 내놓는다.



시리즈는 아니지만 자끄 라깡의 『에크리』(이종영 외 옮김), 『세미나 11』(맹정현 옮김)도 준비했다. 그린비는 ‘모리스 블랑쇼 선집’을 역작으로 준비 중이다. 올 하반기 『기다림, 망각』(박준상 옮김), 『우정』(박규현 옮김)을 시작으로 블랑쇼 컬렉션을 만들 계획이다. 도서출판 길은 독일어본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강신준 옮김)을 번역해 5권으로 출간한다.

에티엔 발리바르와 함께 프랑스 철학계에서 ‘알튀세르의 후예’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비교적 국내에 소개되지 못했던 자끄 랑시에르의 책들, 『정치의 가장자리에서』(양창렬 옮김), 『불화』(진태원 옮김) 도 도서출판 길이 소개하며, 에릭 홉스봄의 『혁명가들』(김정한 외 옮김), 프레드릭 제임슨의 『미래의 고고학』(이경덕 옮김), 베네딕트 앤더슨의 『새 깃발 아래서』(서지원 옮김)도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창비는 이매뉴얼 월러스틴의 『유럽의 보편주의』(김재오 옮김)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매진은 지난 달 출간해 화제를 모았던 스타즈터클 시리즈 『일』을 올해 『희망은 마지막까지 남는다』로 이어간다. 을유문화사의 ‘현대예술의 거장 시리즈’는 『스트라빈스키』(장준호 지음), 『뭉크』(수프리도 지음), 『프랭크 시네트라』(앤써니 써머스 외)를 준비했다.

이제이북스는 정암학당과 그리스 고전을 계속 번역해 출간한다. 플라톤 전집 중 올해 소개될 책들은 『에우티데모스』, 『메넥세노스』, 『고르기아스』 등 6권, 아리스토텔레스 선집은 『자연학』이다. 지난해까지 22종의 현대사상의 모험 시리즈를 내놓은 민음사는 줄리아 크리스테바(『사랑의 역사』 재번역, 김인환 옮김), 레이몬드 윌리엄스(『키워드』, 김성기 옮김), 미셀 푸코(『말과 사물』 재번역, 이규현 옮김), 자끄 데리다(『그라마톨로지』, 김성도 옮김)의 책들로 관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밖에도 동양경전류의 주해서들이 열풍을 이어가고, 『바쿠닌 평전』(하승우 지음, 이매진), 『뿌쉬킨 평전』(손유택, 소명출판), 『여운형 평전2』(역사비평사) 등의 묵직한 평전들도 눈에 띤다. 2008년 ‘주요학술서’는 이제 연구자들의 관심과 논쟁의 몫으로 남았다.(김혜진 기자)

 
08. 01.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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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혼 2008-01-02 17: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조르주 바타이유의 사진이 모리스 블랑쇼의 것으로 잘못 소개되어 있네요.^^

로쟈 2008-01-02 17:49   좋아요 0 | URL
그러고 보니 교수신문에서 착오를 일으켰네요.^^; 블랑쇼는 워낙에 은둔적이어서 사진이 별로 없을 텐데요...

람혼 2008-01-02 23:29   좋아요 0 | URL
네. 블랑쇼의 사진은 젊은 시절의 것을 제외하고는 아마 파파라치가 찍은 사진밖에 없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블랑쇼를 대상으로 하는 파파라치라니, '인문학적' 파파라치인지도...^^

로쟈 2008-01-03 11:20   좋아요 0 | URL
'블랑쇼'가 잘려나갔네요.^^. '모리스'만 남았습니다...

사량 2008-01-02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허걱, 박규현 씨... 레비나스의 <모리스 블랑쇼에 대하여>(동문선) 번역을 생각하니 걱정만 앞섭니다.;; 부디 기우이길..ㅜㅜ

로쟈 2008-01-02 23:05   좋아요 0 | URL
역자 풀이 한정돼 있기 때문에 아마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었을 것 같아요...

Ritournelle 2008-01-02 2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랑시에르의 책 두 권 이외에 이미 <민주주의에 대한 증오>가 출간 예정으로 되어 있어요. 인터넷 교보문고에 출간 예정으로 되어 있어 곧 출간될 것 같습니다.

로쟈 2008-01-02 23:05   좋아요 0 | URL
네, 인간사랑에서 나오더군요. 안 그래도 지난주에 복사한 책이라 번역본이 나오면 곧바로 읽어볼 참입니다...

드팀전 2008-01-04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많은 책들이네요..잡지<철학의 전선>과 이름만 들어 유명한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그리고 재작년에 한번 뵌 적이 있었던 강신준 교수의 <자본>이 기대가 됩니다.강 교수님 그 때 뭔가 작업이 있어서요 라고 했는데..그게 <자본> 재번역이었던 것으로 추측되었습니다.2007년에 나올 지 알았는데 늦어진 건지 ..

로쟈 2008-01-04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기대하는 타이틀이 몇 개 되는데, 사실 이 리스트의 서너 배는 나와줘야 할 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