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 '셰익스피어 저작 논쟁'에 관한 페이퍼 "썼느냐 안 썼느냐, 그것이 문제로다"(http://blog.aladin.co.kr/mramor/1578491)를 올려놓은 적이 있는데, 딱 이 주제와 관련된 책이 출간됐다. 버지니아 펠로스의 <셰익스피어는 없다>(눈과마음, 2008)가 그것인데, 이 책이 올해 구입한 마지막 책의 한권이면서 동시에 첫 2008년의 책이다(출간일이 2008년 1월 30일로 돼 있기 때문이다). 해서 나는 이 책과 더불어 자연스레 2008년으로 건너뛰게 되었다.

아직 아무런 소개기사도 떠 있지 않아서 출판사의 소개글을 참고하면, ""세계문학사상 가장 위대한 문호이자 천재적인 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존재 여부와 그가 남긴 작품들의 진위 여부를 다룬 책이다." 저자인 버지니아 펠로스는 프란시스 베이컨을 둘러싼 비밀들에 매료되어 연구하다가 그가 '셰익스피어'란 결론에 도달했다고 하는데, 책은 그 탐색의 여정을 보여주는 듯. 원제는 '셰익스피어 코드'이다. 소개의 글을 마저 옮겨놓는다. 

셰익스피어는 작품을 쓰지 않았다!

영국의 유명 연극배우ㆍ연출가 287명이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것으로 알려진 작품들의 진짜 원작자가 셰익스피어 본인이 아니라는 내용의 ‘합리적 의심 선언’을 발표했다고 영국 BBC 방송이 보도했다. 이 선언문에는 연극배우 데렉 자코비 경, 마크 릴랜스(런던 ‘셰익스피어 글로브 시어터’ 전 예술 감독) 등 영국의 대표적인 배우들과 연출가들이 서명했다. 또한 이들은 과거에 같은 의문을 제기했던 마크 트웨인과 찰리 채플린 등 유명 인사 20명의 이름도 선언문에 포함했다.  

 

이들은 16세기 영국의 지방 도시에서, 게다가 문맹 부모 밑에서 태어난 셰익스피어가 궁중 생활과 이탈리아에 대한 정확한 묘사를 한 점 등을 의심의 근거로 제시한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원고료를 받은 기록이 전혀 없고, 유서에 작품 언급이 없다는 점 또한 꼽고 있다. 셰익스피어 존재 여부에 대한 회의론자들은 희곡 작가였던 에드워드 드 비어와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등,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에 살았던 인물들이 진짜 원작자라고 주장한다.  

 

이 책, <셰익스피어는 없다>에서는 위대한 철학자이자 사상가인 프랜시스 베이컨이 진짜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하며 이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공식적으로 셰익스피어 역할을 했을 법한 인물인 가난한 연극배우 ‘윌 샥스퍼’의 삶에 대한 흔적과 베이컨과의 관계, 베이컨이 왜 셰익스피어라는 필명에 숨어 작품을 쓸 수밖에 없었는지를 그의 출생 비밀과 연계시켜 설명하며, 실제 원작자인 베이컨의 재산이 줄어들수록 윌 샥스퍼의 재산이 타당한 이유 없이 급속도로 늘어갔던 점 등, 기존의 어느 책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숨겨진 이야기들을 포함하여 읽는 이의 이해를 돕고 있다.


그들은 셰익스피어가 거짓이라고 말한다!

근대 철학의 선각자이자 영국 경험론의 창시자인 프랜시스 베이컨, 그리고 세계 문학사에 가장 위대한 유산을 남긴 셰익스피어. 각각 사상과 문학에서 천재로 군림해온 이 두 사람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출생과 죽음에 이르기까지, 이들 개인사의 질곡들이 상당 부분 부정확하거나 베일에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이들의 전기 작가들을 곤혹스럽게 한 부분인 동시에 이 책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베이컨의 출생과 죽음에 얽힌 비밀은 조직적이고도 체계적인 반면, (당대 최고 권력자였던 엘리자베스 여왕이 관여된 일이니 당연하다) 셰익스피어의 그것은 아예 처음부터 황당할 정도로 정보 자체가 부재하다. 셰익스피어가 태어난 스트랫포드는 인구가 적은 소촌임에도 불구하고 이 위대한 작가에 대해 말해줄 사람이 없다. 다시 말해 셰익스피어의 고향 마을에서조차 그의 생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는 것이다.

특히, 셰익스피어의 출생과 그의 고향에 관한 이야기는 이 책의 작가인 버지니아 펠로우 이전에 셰익스피어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심을 갖고 연구했던 오웬과 그가 이용한 ‘사이퍼 휠(Cyper Wheel)’을 통해 밝혀진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가의 진위 여부를 연구하는 이 매혹적인 미스터리에 헌신해온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중 촉망받는 젊은 외과 의사였던 오빌 오웬은 셰익스피어의 작품 속에 숨겨진 코드를 해독하기 위한 암호 해독기, ‘사이퍼 휠’을 발명하여 셰익스피어의 진정한 원작자가 말하고자 했던 비밀을 밝히고자 하였다. 우리는 이 독특한 장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웬 이후, 역시 장시간 이 문제를 연구해온 이 책의 저자는 오웬의 사이퍼 힐을 직접 입수하여 연구하는 데 성공하였고, 그녀 이전의 수많은 사람들의 연구 결과를 토대로 치열한 고민과 연구 끝에 <셰익스피어는 없다>를 집필하였다.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는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의 사생아다!

베이컨은 표면적으로 1561년에 니콜라스 베이컨과 앤 베이컨 사이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이것은 조작된 사실이며, 셰익스피어의 암호에 대한 비밀이 시작되는 출발선이기도 하다. 셰익스피어 암호를 인정하는 사람들의 주장에 따르면, 베이컨은 1561년 처녀 여왕인 엘리자베스 1세에게서 태어난 뒤 당시 대법관을 맡고 있던 니콜라스 베이컨의 집으로 옮겨졌다. 즉, 프랜시스 베이컨은 당시 영국을 통치하던 처녀 여왕의 숨겨진 아들이자 왕위 계승자였던 것이다. 이제 음모론의 냄새가 짙게 배어나오며 영국 절대주의의 전성기와 문예부흥의 황금기를 구가하면서 영국민의 숭배를 받았던 엘리자베스 여왕, 그녀의 알려지지 않은 면모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내던 베이컨은 궁정에서 유독 자신을 관심 있게 대하는 여왕의 눈길을 느낀다. 그런데 여왕과 그녀의 총신 레스터 백작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는 베이컨뿐이 아니었다. 여왕과 레스터 백작의 차남이자 베이컨의 동생인 에섹스 경이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는 친형제인 베이컨과 에섹스, 그리고 베이컨 부부의 실제 아들인 앤서니 베이컨, 이 세 사람은 정통 사가(史家)에서 배제된 슬프고도 은밀한 역사의 한 장을 이 책 속에서 엮어간다.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그리고 엘리자베스를 함께 읽는다!

국내에서도 셰익스피어는 잘 알려져 있고, ‘귀납법’ 하면 절로 따라오는 베이컨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유명세와는 달리 좀처럼 쉽게 읽히지 않는 작품이 바로 셰익스피어의 것이다. 의외로 제대로 된 번역서가 부족하다는 이유에다 장르가 희곡이라는 영향도 있다. 셰익스피어와 베이컨을 모른다고 해서 불편할 것은 없지만, 안다면 일상에서 심심찮게 튀어나오는 이들의 이름이나 작품으로 지적이고 흥미로운 대화를 이끌어갈 수 있다. 그러나 읽기 힘들고 건지는 것은 별로 없을 것 같은 희곡이나 철학서를 읽자니 부담스럽다면 이 책이 안성맞춤이다.  

 

기존의 통념을 뒤집는 방식과 정보를 위주로 전달하는 이 책은 쉽고도 흥미롭게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그리고 엘리자베스 시대를 함께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정반대로 접근하는 셰익스피어를 통해 베이컨이라는 위대한 사상가의 숨겨진 삶과 엘리자베스 치하 영국사의 일면까지 보여주는 정보와 지식이 책 속에 맛깔스럽게 담겨 있다. 


07. 12. 31.

 

P.S. '셰익스피어 코드'란 제목의 영화도 있다(http://www.youtube.com/watch?v=nbA9tkWE2wM). TV 시리즈물의 하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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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셰익스피어에 관한 책 두 권
    from 로쟈의 저공비행 2009-05-06 22:15 
    셰익스피어 관련서 두 권이 눈길을 끈다. 이젠 '셰익스피어 산업'도 성장 동력이 떨어질 만한데, 계속 나오는 걸 보면 거의 '화수분' 수준이 아닌가 싶다. 여유가 된다면 몇 권을 모아서 읽어봐도 좋겠다. 연합뉴스(09. 05. 04) 40대 하숙생이었던 셰익스피어의 모습  1612년 5월11일 월요일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영국 웨스터민스터 소재 소액청구재판소에 계류 중인 한 소송기록에 서명을 남겼다.
 
 
깐따삐야 2007-12-31 22:55   좋아요 0 | URL
저희 지도교수님이 셰익스피어 전공하셨는데 새해선물로 이 책을 드리면 정말 깜딱선물이 되겠는걸요. ㅋㅋㅋㅋ
로쟈님! 새해에도 좋은 글들 많이 올려주시고 가끔씩 열정적인 자작시도 보여주세요.
저도 성실한 알라디너가 되겠사와요.^^;

로쟈 2007-12-31 23:35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 전공자라면 싫어하실 수도 있을 거 같습니다. '열정적인 자작시'라고 하시니까 열쩍은데요.^^; 내년엔 깐따삐야님의 활약을 기대해봐야겠습니다.^^

다락방 2007-12-31 23:34   좋아요 0 | URL
앗, 로쟈님.
정말 잘 읽었어요.
별찜도 하고 보관함에도 넣었습니다.

새해 복 많이 많이 받으셔요!
:)

로쟈 2007-12-31 23:35   좋아요 0 | URL
저야 옮겨놓았을 뿐입니다.^^

qualia 2007-12-31 23:43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가 베이컨이라는 사실을 현대의 최첨단 유전자 검사법 혹은 고고학적 DNA 검사법으로 증명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수십만년 전에서 4만~1만년 전까지 생존했던 맘모스(mammoth, 매머드)까지 다시 복제해서 되살려 낼 수 있다고 하는데요. 제가 생각하기에 베이컨이 진짜 셰익스피어였는지 증명하는 일은 영국 정부와 영국 과학계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할 것 같다고 생각하는데요. 로쟈 님께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2007-12-31 23:35)

로쟈 2008-01-01 00:11   좋아요 0 | URL
셰익스피어나 베이컨이나 모두 영국인이니 영국으로선 손해볼 일은 아닌 거 같습니다. 그리고 베이컨이 셰익스피어라는 건 셰익스피어가 쓴 걸로 알려진 작품들의 실제 저자가 베이컨이란 뜻입니다.^^

qualia 2008-01-01 00:09   좋아요 0 | URL
아하, 그렇군요^^ 제가 과학적으로 오독했군요. 셰익스피어는 그럼 실존 인물이었던 모양이죠?

로쟈 2008-01-01 00:12   좋아요 0 | URL
물론이죠!..

qualia 2008-01-01 00:40   좋아요 0 | URL
그렇다면, 프랜시스 베이컨이 여왕 엘리자베스 1세와 레스터 백작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주장은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인가요? 저는 그 설이 역사적/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았다면, 그것을 유전자 검사법으로 증명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던가 봅니다.^^ 이 생각에 셰익스피어에 대한 무지가 겹쳐 위와 같은 엉뚱한 질문을 드렸던 것이군요. 잘못을 지적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로쟈 2008-01-01 00:43   좋아요 0 | URL
네, 그건 '과학적' 검증이 가능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새해 복많이 받으시길!..

yoonakim 2008-01-01 10:24   좋아요 0 | URL
친애하는 로쟈님의 독서량은 익히 알지만 늘 족탈불급임을 확인합니다.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럽다는 생각도 들고 부럽다는 생각도 듭니다. 올 한해 평안하시고 원하시는 많은 일들이 원만하게 그리고 원하는 시간안에 이루어지기를 기원합니다. *^^*

로쟈 2008-01-01 10:56   좋아요 0 | URL
아이고, 이게 다 '빈곤한' 독서량을 카바하기 위한 방책인 걸요.^^;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언제 한번 '면담'이라도 가져보도록 하지요.^^

순오기 2008-01-01 17:27   좋아요 0 | URL
대단히 흥미로운 기사군요, 더불어 책도 봐야겠단 끌림이 강력합니다! ^^ 찜!
님의 서재에 들러보지만, 어쩐지 댓글 남기기가 어렵더라는... ^^
새해에도 님의 활동 기대하며 새해 인사 드립니다!

로쟈 2008-01-01 17:57   좋아요 0 | URL
제가 '접대'에 좀 서툴러서 그런 모양입니다.^^; 하지만 댓글은 자주 남기셔도 좋습니다.^^

라로 2008-01-01 18:09   좋아요 0 | URL
저건 Dr. Who라는 영국의 TV 시리즈물 맞아요. '셰익스피어 코드'도 찾아서 봐야겠어요.
로쟈님이 모르시는 것도 있다니! 갑자기 로쟈님이 다정하게 느껴져요~.^^;;;
새해에도 변함없는 서재 활동을 해주시길 바라며 새해 인사드립니다.

로쟈 2008-01-01 18:26   좋아요 0 | URL
네, Dr. Who시리즈라고 뜨긴 하는데, 인기시리즈인지는 몰랐습니다. 제가 드라마는 안 봐서요.^^;